< MISSION 03 : La Mancha Negra (66) >
10일차
Arenera MINATACA 채석장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방송이 나가고 3일째 되는 날 오전, 도밍게즈의 부대를 포함해 제 5방위군의 상당수 병력이 타카구아 비에하(Tacagua Vieja)에 집결해 있었다.
더블 티가 은닉해 있다고 알려진, 아니 확실히 더블 티가 숨어있는 아레네라 미나타카 채석장까지는 불과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방송이 나가고 수많은 제보 전화가 방송국과 신문사 그리고 방위군에게 걸려왔다. 들어온 정보를 분석하고 거짓 정보를 걸러내는 과정에서 제보의 일관된 방향성이 보였다. 상당수의 정보가 카라카스 북서부에 있는 타카구아 비에하를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비에하
의 채석장이었다.
카르텔은 채석장 입구가 아닌, 산 뒤쪽으로 빠지는 비밀통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동원했고, 동원된 주민 중 일부가 그 통로를 제보한 것이었다.
제보를 분석한 후 비밀통로를 감시하다, 식료품 보급을 위해 그 통로를 빠져나온 더블 티의 충성스러운 카바예로가 한 명 체포되면서, 더블 티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위치가 확인되자 방위군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일부 정치인들이 도밍게즈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대놓고 그렇게 하기에는 더블 티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너무 높았다.
일부 드라마 제작사에서는 벌써 더블 티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더블 티와 도밍게즈의 대결을 그린 텔레노벨라를 만든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렇기에 방위군은 눈앞에 있는 더블 티보다 방위군을 찍기 위해 몰려드는 카메라를 막는데 더 신경을 쏟아야만 했다.
“고생하는군.”
베네수엘라 방위군 군복을 입고 스키마스크를 쓴 채로 방탄지휘차량에 옵서버 자격으로 앉아 있던 한규호가 도밍게즈에게 말했다.
“젠장. 미친놈들. 무슨 군사작전을 스포츠 중계라고 생각하는지.”
도밍게즈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자업자득이지.”
한규호가 웃으며 말했다.
“자업자득이라니. 매스컴을 이용하자는 것은 너의 생각이었잖아!”
“나는 그저 조언했을 뿐이지. 결정권자는 우리 도밍게즈 소령님 아닙니까? 저 같은 민간인, 아니, 외국인에게 그런 말해도....”
한규호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말투로 밉살스럽게 말했다.
도밍게즈는 잠시 한규호를 노려보다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
“상황 보고하라.”
(아직은 어수선한 상황입니다만 일단 취재진은 모두 작전 구역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작전 수행에는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다. 일단 대기.”
도밍게즈는 작전 상황판을 펼쳤다. 이 정도의 대규모 작전에서 소령급인 그가 작전을 지휘하는 것은 사실 맞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민심의 매서운 시선을 범죄 카르텔에게 돌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대통령은 요 며칠 사이 민중들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
른 도밍게즈에게 작전 지휘권을 맡겼다.
5 방위군 내부에서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위험도가 높은 이번 작전을 직접 지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지휘관은 없었다. 리스크는 너무 크고, 얻는 것은 너무 적었다. 작전에 실패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성공적으로 더블 티를 제거한다고 해도 도밍게즈
가 다 차려놓은 밥상을 중간에서 슬쩍했다는 비난을 살 수도 있었다.
이런 저런 요소가 합쳐져 제 5방위군의 정예 병력이 상당수 포함되어있음에도 소령급인 도밍게즈가 이번 작전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쉽지 않은 작전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채석장 내에는 최소 30여명의 조직원들이 더블 티를 보호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 중 대다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신도들이라 전황이 불리해진다고 해서 목숨을 아끼기 위해 항복할 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미쳐있는 더블 티가 채석장에 무슨 짓을 해놓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도밍게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가며 거점을 확보하는 기본 점령 전술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작전 중 병사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싶었기에,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토벌 작전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도밍게즈에게 갑작스럽게 몰려든 취재진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한규호는 방탄 차량의 작은 틈 사이로 밖을 바라보았다. 도밍게즈의 직할부대 100명을 포함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돌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자신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방위군에게 맡기기로 마음 먹었다.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중요했고, 지금은 나서지 말아야 할 때였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한규호의 눈이 짧게 빛났다. 도밍게즈의 방위군은 채석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즉 두 세력은 정확히 남북 방향으로 대치중이었다.
그런데 한규호의 눈에 다른 무언가가 보였다. 서쪽에 위치한 산, 숲이 우거진 산 중턱에서 이질적인 무언가가.
1.5km. 아니면 그 이상?
한규호는 잠시 생각하다 문을 열었다.
“어디 가?”
작전판을 보고 있던 도밍게즈가 물었다.
“산책.”
그렇게 말하는 한규호를 도밍게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잠시 바라보았다.
“저 쪽으로는 안 가. 약속하지.”
한규호가 말했다.
“자네가 움직인다면 뭔가 생각이 있겠지만... 부탁하네. 문제가 없었으면 하네.”
도밍게즈가 말했다.
“이해해. 걱정 마. 더블 티는 자네들 거라는 거 알고 있으니까.”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방탄 지휘차량의 문을 닫았다.
도밍게즈는 그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작전판으로 눈을 돌렸다. 슬슬 돌입을 시도할 시간이었다.
***
10일차
Arenera MINATACA 채석장 서쪽 1.6km 야산 중턱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전직 FARC(콜롬비아 무장혁명 반군) 출신의 용병 발렌티노 바레또(Valentino Barreto), 일명 VB는 지휘 장갑차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었다.
더블 티 그 개자식이 그에게 준 임무는 도밍게즈 저격이었다. 얼마 전, 연방정부 청사에서 시행된 첫 번째 저격에 실패하자 더블 티는 잔금을 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의 위조 여권까지 압수한 채로 그를 억류했다.
한동안 그를 잡아 둔 더블 티는 이틀 전 그에게 마지막 의뢰를, VB에게는 명령처럼 들렸지만, 맡겼다.
방위군과의 일전이 벌어졌을 때, 도밍게즈를 저격해달라는 의뢰였다.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도밍게즈만 저격해주면 여권과 함께 잔금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고작 7천 달러다. 그 푼돈 때문에 지금 2주 가까이 이곳 베네수엘라에 발이 잡힌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지휘 장갑차에서 나오는, 베네수엘라에 작별을 고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Mierda! (씨발)”
VB는 지휘 장갑차에서 나온 그가 도밍게즈는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스키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도밍게즈라면, 저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냥 쏠 걸 그랬나? 그냥 쏴버리고, 도밍게즈를 저격했다고 전화하면 더러운 베네수엘라 놈들이 여권을 돌려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주저하는 사이, 지휘 장갑차에서 나온 사람을 놓쳐버렸다.
같은 옷, 같은 모자, 같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녹아들어버렸다.
놓쳤다. 씨발 도밍게즈는 아니었겠지.
VB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지휘 장갑차의 문에 집중했다. 수백 번이나 수행한 저격이었고, 저격을 할 때마다 기분이 더러웠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기분이 더러웠다.
1.6km. 저격하기에 적합한 거리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설사 성공했다 치더라도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결론이 도출되지 않아서일까? 왜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도밍게즈를 노리고 있는지, 그냥 다 버리고 도
망가지 않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씨발. 생각이 많으면 뒈지는 건데.”
VB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모르겠다 씨발. 언제는 뭐 생각하고 행동했나? 그냥 꼴리면 하는 거지. 이 개 같은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르는 영웅 한 명을 죽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겠지. 실패하면 튀면 그만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침착하자.
1.6km다. 지휘차와 자신이 있는 이곳까지의 거리는 1.6km다.
총을 발사하고 발각되면 방위군이 나를 찾아오는데 얼마나 걸릴까? 빨라도 10분이다. 아니, 산을 올라야 하니 최소 그 두 배다. 퇴로는 이미 봐 두었다. 여권이 없으니 돌아가는 길이 험난하겠지만 못갈 것도 없다.
VB는 그렇게 몇 분 동안 마음을 달랬다. 심장박동이 조금 느려졌고, 그래서 조금 침착한 마음으로 지휘차량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눈을 피해 7km의 거리를 반원으로 돌아 8분 만에 돌파해 그의 뒤에 서 있는 한규호를 눈치 채지 못했다.
***
한규호는 엎드려 총구를 겨누고 있는 남자를 보고 있었다. 꼼꼼하게 위장한 것으로 봐서 카르텔의 조직원은 아닌 것 같았다. 저격이라는 것은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군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한 3~4분 동안 지켜봤지만 거의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어도 수십 번 이상의 저격을 시행한 전문 저격수 같았다.
한규호는 얼마 전 미얀마 산맥에서 만났던 외눈박이 저격수를 떠올렸다. 그때 그가 특정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이 봐.”
한규호가 말했다.
저격수는 재빠르게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발목에 차고 있던 전투용 대검을 꺼내면서 몸을 굴려 일어났다.
그의 표정에는 놀람이 가득했지만, 몸을 일으키며 전투 자세를 취하는 행동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훈련받은 자임에 틀림없었다.
“영어할 줄 아나?”
한규호가 물었다.
***
VB는 대검을 들고 자세를 취한 채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스키마스크를 바라보았다. 영어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현지인처럼 자연스러운 생활회화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에게 저격을 가르친 사람이 퇴역한 미군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대검을 겨누고, 자신을 바라보는 스키 마스크를 재빠르게 살펴봤다.
VB는 그가 어떠한 총기도 지니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맨손 대 칼의 싸움은 결과가 자명하다. 절대로 맨손은 칼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저 멍청이는 맨손으로 자신을 불렀다. 스스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걷어찼다.
VB는 마음을 정했다. 대검으로 그를 처리한다. 그리고 준비된 퇴로로 재빨리 철수한다.
여권? 잔금? 도밍게즈? 더블 티?
“모두 엿이나 먹으라지!”
VB는 스페인어로 그렇게 소리치며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대검을 휘둘렀다.
***
한규호는 남자가 뭐라고 외치면서 자신에게 대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다.
능력이 없던 시기의 한규호였다면 위협적으로 느꼈을만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솜씨였다. 그러나 지금의 한규호에게는 어린애가 휘두르는 플라스틱 장난감 칼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한규호는 몸을 뒤로 살짝 빼면서 칼의 궤도에서 벗어난 다음, 칼이 지나가자마자 다시 몸을 앞으로 움직여 오른손으로 그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어 손목 뼈 일부를 부러트렸다. 두 손가락만으로 손목에 있는 뼈의 일부분을 영구히 손상시켰다.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텐데도 남자는 비명을 참아내며 손목을 빼내기 위해 몸을 눕혔다. 그러나 한규호에게는 또 다른 어린애 장난이었다.
한규호는 잡고 있는 손목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손아귀에 힘을 주면서 그가 몸을 눕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의해 고정되어 있는 그의 어깨를 왼손으로 잡은 다음, 인간의 어깨관절이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각도, 등쪽 120도로 꺾었다.
빠각
어깨뼈가 인대를 끊으며 탈골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기 위해 폐 속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그 공기가, 비명으로 터져 나오기 전에 한규호가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크흡
한규호의 손에 막혀 그의 입에서는 미약한 바람 빠져나오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한규호는 그에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조용히 말했다.
“발현 조건이 뭐지?”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6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