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3 : La Mancha Negra (64) >
7일차
북부창고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한규호는 도밍게즈의 집무실에서 집무실 주인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책상위에 널브러져 있는 시계가 오전 네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새끼 말이 맞아. “
도밍게즈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면서 말했다.
“더블 티 그 새끼가 숨는다면 찾을 방법이 없어. 바리오를 전부 포위한 채로 집 하나하나를 수색하지 않는 이상. 그 새끼는 술도 안마시고, 따로 데리고 다니는 여자도 없고. 먹는 것도 아무거나 잘 처먹어서 단골 레스토랑 같은 것도 없고.”
“흐음...“
“부하 놈들도 그래. 시리오 같은 잔챙이 새끼들은 더블 티가 어디에 숨는지 전혀 모르고, 그걸 아는 까바예로들은 어떤 고통이 찾아와도 절대 말 안 할 테고.”
한규호도 담배를 비벼 끄면서 말했다.
“결국 민중인가?”
“민중이라. 그렇게 과분한 단어는 그 새끼에겐 어울리지 않지만 적어도 주민들은 정부보다는 그 새끼 편을 더 들 거야.”
“그런가.”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생각에 잠겼다.
도밍게즈는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책상위로 던져 버렸다.
오늘 충분히 많이 피웠다.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이 들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는 대위가 들어와 보고했다.
“심문이 끝났습니다.”
“뭐 특별한 게 나왔나?”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 새끼는? 보냈나?”
“가라고 했는데,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 말에 도밍게즈가 피식 웃었다. 명줄을 방위군이 잡고 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겠지.
“부대 안 은밀한 곳에 며칠 처박아 뒀다가 나중에 한 3년 정도 들어 갈만한 죄를 찾아서 검찰로 보내버리자고. 쓰레기는 소각하는 게 제일이지만, 하도 더러우니 손 대고 싶지도 않군.”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대위가 말했다.
“한 대 피우겠나?”
도밍게즈가 다시 담뱃갑을 집어 들며 대위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위가 의자 하나를 끌고 와 한규호 옆에 앉았다.
“그나저나 더블 티 그 개새끼를 어떻게 찾아낼지 고민입니다.” 도밍게즈가 붙여준 담배를 빨아들이면서 대위가 말했다.
“그러게. 바리오에 숨어버리면 방법이 없는데.”
도밍게즈가 툴툴거렸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한규호가 입을 열었다. 대위는 옆에 앉아 있는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경호 대상이었다가, 상관의 친구가 된 사람.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푸에르토 본부에 단신으로 들어가 스무 명을 사살하고 푸에르토를 체포해 온 사람. 들어간 지 1분도 안돼서 까레라와 술 한 병을 들고 나온, 사람같이 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민중이 문제면 민중과 격리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게 말이 쉽지. 어떻게 하냔 말이야.”
“우리가 가진 걸 활용해야지.”
“가진 거 뭐?”
“예를 들어 장관?”
한규호는 아직 까티아 농장 한구석에 매장되어 있는 장관의 시신을 언급했다.
“장관? 어떻게?”
도밍게즈는 되물었다. 장관의 시신을 가지고 까레라를 협박한 방법은 아주 잘 먹혔다. 그러나 그 방법이 일반 민중들에게 먹힐지는 의문이었다.
“장관의 죽음은 시민들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할 듯합니다.”
대위가 말했다. 도밍게즈도 거기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아이?”
“아이?”
도밍게즈가 물었다.
“그래. 그 시리온지 뭔지 지역 관리하는 새끼에게서 구해 온 아이 있잖아. 뭐 오빠가 죽고 그 총인가 오토바이 값인가 대신 갚으라고 협박을 받았다며. 그리고 그 오빤가 하는 친구가 얼마 전 우리를 습격했던 그 놈들 중 한 명이고.”
도밍게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리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아이에게서 그런 정보를 얻었다. 시리오가 동네 소년을 설득해 습격을 시켰고, 그 여동생을 협박한 사실을.
“그. 누구지? 상사? 이름이 뭐였지?”
한규호가 물었다.
“톨레도 상사입니다.”
대위가 답했다.
“그래. 그 상사가 그 꼬마아이를 당분간 보호한다고 했지? 어머니도 데려오는 건가? 아무튼 민중들은 여성부 장관이 죽든 말든 별로 관심은 없어도 이웃집 아들딸이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더블 티가 당신들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는 당신들을 자신의 재산 취급하는 것 아니냐. 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대위는 놀라서 자신의 손에 들린 담배에서 재가 떨어지는 것도 알지 못했다.
먹힌다. 저 남자가 말한 부분은 분명히 먹힌다.
“예를 들어 시작은 장관 시체 발굴부터 하는 거지. 장관이 더블 티에게 납치당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거기에 정부 내각 인사가 관련되어 있다. 그런 내용을 뉴스 속보로 내는 거지. 기왕이면 까티아 농장 거기에서 발굴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면 좋을 것 같은데. 내
가 장담하건데, 거기에서 발굴되는 시체는 장관 시체 한 구만은 아닐 것 같군. 술 한 병 내기?”
한규호가 대위를 보면서 말했다.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대위, 배짱이 부족하시군. 아무튼 그런 식으로 뉴스가 나가고 바로 연결하는 거지. 더블 티가 지역에 사는 불쌍한 남매를 협박했다. 오빠는 도구로 이용하다 죽게 내버려두고 여동생은 팔아먹으려고 했다. 성노예로 삼으려 했다가 더 잘 먹히겠지만 더블 티는 여자를
밝히는 놈은 아니라니 이 방법은 못쓰겠군. 그 남매의 모친을 섭외하는 것도 괜찮겠군. 울면서 소리 지르는 엄마의 모습은 그 어느 것보다 효과적일 테니.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라면 설득하기도 쉬울 테고, 암파로에서 잡아온 그 자식은 죽었나?”
“아직 살아는 있습니다.”
“그럼 그 자식에게 직접 증언시키는 것도 좋겠군. 반성하는 모습보다는 쓰레기 같은 모습으로 증언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그 모습을 더블 티에게 투영할 테니까.” 도밍게즈와 대위는 입을 벌리고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몇 명의 인원을 투입해서 어디를 쑤실지, 누구를 잡아와서 어떻게 심문할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즈키가 알려주는 저 방법은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그런데, 뭐랄까.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그... 바리오에 사는 사람들이 뉴스를 챙겨 볼 것 같지는 않은데. 신문이나 인터넷은 당연하고.”
한규호는 웃었다. 그리고 책상위에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텔레노벨라.”
한규호가 담배를 한 대 꺼내며 말했다.
“뭐?”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도밍게즈가 물었다.
그러나 한규호는 대답 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책상에 발을 올리고, 몸을 등받이에 기댄 후 한 모금을 길게 빨아들인 다음 연기 자욱한 공간에 연기를 조금 더 더한 다음 말했다.
“호텔에서 보니 하루 종일 텔레노벨라가 방영되더군. 인기 좋은 것 같던데. 만약 저녁 시간에 가장 인기 있는 텔레노벨라가 방영되는 도중에 갑자기 드라마가 끊기고 뉴스가 나온다면? 그 뉴스에서 민중을 가축 취급하며 사용하는 더블 티의 모습이 밝혀진다면?”
대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네비시온(Venevision : 베네수엘라 최대 텔레비전 네트워크)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대위는 그렇게 말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도밍게즈는 그저 놀란 표정으로 책상위에 다리를 올리고 있는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 한규호에게 물었다.
“누구지? 자네는?”
“인류학 박사 스즈키입니다만.”
한규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한?”
도밍게즈가 물었다.
“그래. 그게 내 성이야.”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군. 그럼 일본인이 아닌 건가?”
“한국.”
한규호가 말했다.
“한국? 북? 남?”
“한국에 대해서 좀 아는군. 남쪽.”
“그런가. 그나저나 신기하군.”
도밍게즈가 말했다.
“뭐가?”
한규호가 물었다.
“내가 그동안 만난 한국인이 딱 두 명인데, 물론 둘 중에 한 명은 자네고, 아무튼 둘 다 사람 같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니. 원래 한국인들은 다들 그런가? 다들 원맨 아미처럼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아니. 뭐 그렇지는 않고. 근데 다른 한국인을 만났다고? 남쪽?”
“아니. 북쪽. 혹시 서로 교류하고 그런가? 내가 듣기론 전쟁 중이었다고 들었는데.” 그 말에 한규호는 쓰게 웃었다.
북한에 몰래 잠입해 목을 따고 다니는 것도 교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교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쪽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뭐. 베네수엘라는 반미 국가니까. 차베스 정권에서 반미 기조가 제일 심했고, 그래서 같은 반미 국가들과 여러모로 접촉이 있었지. 그때 군사교류의 일환으로 그 나라 특수부대장이라는 사람이 왔더군. 내가 남부 시골에 처박혀 있을 때였는데, 그나마 우리 부대가 군
대 같다고 그 자를 보낸 거지. 시험해 보겠다고.”
“시험?”
“그래. 론 울프(lone wolf)를 진행했지.”
론 울프. 한규호도 아는 훈련이다.
야전에서 소수가 숨어있고, 다수가 그 소수를 찾아내는 훈련. 소수는 침투능력을, 다수는 방어능력을 키우는 훈련이다.
“15일.”
도밍게즈가 말했다.
“그 자는 15일을 숨어 있었어. 15일 동안 1000명이 산 하나를 포위한 상태로 수색했는데, 훈련이 끝날 때까지 그 자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지.”
15일. 불가능한 시간은 아니다.
도밍게즈의 부대가 잘 훈련받은 강군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지금의 한규호, 아니, 이 능력을 가지기 이전의 한규호였어도 15일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의 특수 부대는 정말 많은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15일이 지난 후 나타난 그의 얼굴을 보는데, 정말 귀신같더군. 힘들고 지치고, 배고프고, 뭐 그런 기색이 전혀 없이, 처음 만났을 때 그 얼굴 그대로 산을 내려오는데, 특히 그 상처, 얼굴의 상처 때문에 정말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지.”
“상처?”
“특이하게 이마에서 턱까지 쭉 이어진 상처가 있었거든.”
책상위에 다리를 올리고 있던 한규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상처도 상처지만...”
“왼쪽 귀가 없었나?”
한규호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정말 교류가 있었나?”
도밍게즈는 그렇게 말하다 한규호의 심각한 표정을 보았다.
“이름이?”
한규호가 물었다.
“..... 이름은 모르지. 근데 그 괴물의 부하들이 그 괴물에게 가끔 Sir라고 부르더군. 반미 국가라면서 그들 말로 이야기하면서 Sir라고 부르는 게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지. 그 정도?”
한규호는 그들이 말했다는 '서'가 상관을 의미하는 Sir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마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자상, 그리고 날아간 왼쪽 귓불, 인간 같지 않은 전투력. 그리고 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직할 535 특수작전대대 정찰대 특무상사 서용석.
모든 단서가 그를 향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인가?”
도밍게즈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규호에게 물었다.
“안다면 아는 사람이지.”
한규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2006년 그날, 백금산에서 그 개자식과 함께 자신들을 추격해오던, 535의 서용석.
만나고 싶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직 있나? 베네수엘라에?”
만나야 할 사람 중 한명이었다.
“... 표정을 보니 좋은 인연은 아니군.”
좋은 인연? 한때는 서로 칼을 겨누기도 했지만 한규호에게는 지금 그런 사소한 은원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 개자식. 서용석이 그 백금산의 개자식과 함께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백금산의 개자식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 서용석이가 여기에 있었다고?
“있나? 여기에?”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게 벌써 5년도 더 전 이야기야. 진즉에 떠났지. 들리는 이야기로는.”
도밍게즈는 담뱃갑을 집어 담배 한 대를 꺼낸 다음 불을 붙였다. 그리고 불붙은 담배를 한규호에게 내밀었다.
한규호는 잠시 도밍게즈를 바라보다 그 담배를 받아들었다.
“다시 북한으로 가지는 않았다고 들었어. 그쪽도 지옥이긴 마찬가지니. 그 능력이면 어디 가서든 떵떵거리고 살 수 있겠지.”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까?
백금산에서 살아돌아온 한규호에게는 이 세상이 지옥이다. 그리고 서용석 그 늙은이도 이 세상 어디에 살든 삶 자체가 지옥일 것이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6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