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3 : La Mancha Negra (59) >
4일차
까티아 농장(Planta Catia)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한규호는 울고 있는 두 사람을 채근하지 않았다.
한동안 서로를 안고 울게 두었다.
울음이 한결 잦아들고 나서야 손을 뻗어 베르나의 목 뒤를 짚어 내기를 불어넣어 재웠다.
의식을 밖으로 끄집어냈으니, 베르나가 정신을 잃기 전 느꼈던 마지막 감정이, 안도감이 의식을 잃은 동안 그녀의 정신을 달래줄 것을 기대하면서, 믿지 않는 신에게 그렇게 기도하면서 한규호는 베르나를 재웠다.
베르나가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지자 그녀를 안고 있던 앤이 놀라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잠들었을 뿐이야.”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며 팔을 뻗었다.
“내가 안고 가지.”
베르나를 넘겨받은 한규호는 그녀를 바닥에 눕힌 다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잡았다.
식은땀에 흠뻑 젖어있는 옷은 좋을 것이 없었다. 옷을 벗긴 다음 그의 상의로 감쌀 생각이었다.
그런 한규호의 의도를 눈치 챈 앤 챔버가 그를 도왔다. 그녀를 들고, 옷을 벗기고 그리고 자신이 가진 손수건으로 재빨리 베르나의 젖은 몸을 닦아냈다.
한규호는 겉옷을 벗어 베르나를 감쌌다.
30kg은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왜소한 베르나는 한규호가 입고 있던 점퍼만으로도 충분히 감쌀 수 있었다.
임시방편을 마친 한규호는 베르나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뒤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도밍게즈에게 몸을 돌렸다.
도밍게즈는 한규호가 베르나를 확보하고, 정신을 깨우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남자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감싼 아이를 안고 있는 이 남자가 과연 사람이 맞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에서 추격하는 미니 밴 3대를 총알 5개로 고철로 만들어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거짓말 같은데, 푸에르토 카르텔의 본부에 홀로 들어가 10층 창문을 뚫고 총격전을 벌인 후 카르텔 수장을 납치해 유유히 걸어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빈민가를 위성 지도 하나만 보고 들어가 필요한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조금 전만 해도 그랬다. 사무실 문 뒤에 누가 숨어있다는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는지 문에다 대고 총을 쏘았다. 그렇게 시체 한구를 만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람 같지 않은 전투력을 가진 남자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아픈 딸을 보살피는 아버지 처럼, 눈을 맞추고 자상하게 이름을 불렀다. 아이 춥지 않도록 아이의 옷을 갈아입힌 후 조심스럽게 안고 있다.
푸에르토를 어깨에 메고 나오던 스즈키와 지금 눈앞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스즈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에 부정할 수가 없어서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도밍게즈는 한규호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복도에서 경계하고 있던 대위에게 말했다.
“구출 완료.”
“작전 완료! 복귀한다!”
대위가 복창했다. 그리고 대위를 선두로 지하에 있던 사람들은 계단 쪽으로 향했다.
대위의 뒤를 도밍게즈가 따르고 그 바로 뒤로 베르나를 안고 있는 한규호와 앤 챔버가 나란히 걸었다.
그 순간 1층에서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탕!
3점사 총 소리. 방위군이 발사한 총 소리였다.
지하에 있던 모두가 멈칫했다.
한규호도 마찬가지였다.
멈춰선 그의 눈에 계단 위에서 툭 툭 소리를 내며 굴러 내려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골프공보다 조금 더 큰 구형의 물체였다.
그 순간 직감이 그를 찾아왔다.
***
카티아 농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카르텔 조직원인 후타도(Hurtado)는 갈비뼈가 부러진 고통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늑골이라는 것은 자주 부상을 입는 부위였고, 그는 늑골 부상이 많은 직업군에 속해 있었으니까.
특히 카바예로 후보군에 들어오면서 카르텔에서 시행하는 혹독한 훈련 때문에 여러 번 갈비뼈 골절을 경험한 바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이번 골절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전투화 발끝에 제대로 채이면서 늑골 두세 대는 확실히 부러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가 조금이라도 덜 아픈 자세를 찾기 위해 몸을 비틀던 중, 그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조금 전 문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은 아라도르 벨라스케스, 카르텔 카바예로 중의 한명이자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아라도르의 시체가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시체 밑에 깔려 있는 그의 왼손과, 그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은색의 구형 물체가 보였다.
수류탄이었다.
후보군 교육 중에는 수류탄 교육도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수류탄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상관은 수류탄을 던지려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안전핀을 채 뽑기도 전에, 문 뒤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고 사망했던 것이다. 그가 총에 맞은 지 몇 분이 지났지만 아직 터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후타도는 다시 몸을 뒤척이는 척하며 자신을 겨누고 있는 병사를 힐끗 보았다.
병사의 총구는 자신을 향해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지하실 계단을 향해 있었다.
후타도는 아라도르의 품에 있는 수류탄이 자신의 시선 높이에서만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할까?
이 새끼들은 방위군이다. 군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전투화가 베네수엘라 제식 전투화로 통일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 안에, 말 그대로 눈 한 번 깜짝할 시간에 사무실을 제압한 실력을 보아 방위군임이 틀림없다.
살 수 있을까? 후타도는 생각했다.
지금은 살아있다. 아직까지는 살아있다. 저들이 들이닥치는 그 순간, 후타도만이 유일하게 생각이라는 것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머리를 숙였고, 그래서 살아남았다.
살 수 있을까?
어제 지하에 있는 꼬마를 납치하면서 방위군과 교전을 벌였다고 했다. 5명이나 죽였다고 했다. 저들이 방위군이라면 나를 살려둘까?
체포해서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할까?
말도 안 된다. 그럴 리 없다.
만약, 이곳에서 자신 혼자만이 살아남는다면, 그의 군주, 티노 토르께서 그를 용서하실까? 카바예로는 티노 토르에게는 가족이자 형제이자 분신 같은 존재인데, 그 카바예로가 죽은 곳에서 그만이 살아남았다면 과연 티노 토르가 용서하실까?
후타도는 다시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였다.
“움직이지 마.” 그를 지키고 있던 병사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러나 잠시 그를 향했던 시선은 다시 지하실로 향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지?
후타도는 빠르게 생각이라는 것을 했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지 빠르게 생각했다.
수류탄. 저 수류탄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안전클립 제거, 안전 핀 뽑고. 팅 소리가 난 후 5초 뒤에 폭발.
후타도는 교육과정을 떠올렸다. 너무 비싸서 실제로 던져 보지는 못하고 던지는 것을 구경만 했지만 그는 완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카르텔의 교육에서 낙오는 곧 죽음이었고 여태껏 그가 살아있다는 것은 그가 단 한 번도 낙오하지 않았다는 뜻이었으니까.
팔을 뻗으면 어쩌면 닿을지도 모른다.
후타도는 자신을 지키는 병사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다시 힐끗 보았다.
지하로 던지는 거야.
지하로 놈들이 많이 내려갔고, 폭발이 일어나면 당황하겠지. 그럼 그 사이에 이 새끼를 처리한 다음 총을 빼앗아서 나머지 놈들도 다 죽여 버리는 거다.
후타도는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찾아냈다.
다 죽이면 된다. 감히 티노 토르의 영토에서, 성지와 같은 까티아에 쳐들어온 이 자식들을 전부 죽여 버리면, 그러면 그는 살 수 있다.
공석이 생긴 카바예로 자리에 그가 들어갈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의 자리가 된다.
그는 몸을 조금 더 비틀었다. 그리고 여전히 계단을 향해 있는 적의 시선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는 척하며 손을 뻗었다.
팔을 뻗자 가슴에서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그러나 후타도는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이걸 참아내지 못하면 그 땐 진짜 죽는다.
진짜로 죽는 거다.
아라도르의 시체가 사무실 쪽으로 쓰러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후타도는 근성 있게 팔을 뻗어 시체 밑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아직 굳지 않은 아라도르의 손가락을 펴서 수류탄을 잡았다.
한손만으로, 손가락에 힘을 줘서 안전클립을 제거했다. 무리한 자세 탓인지 손가락이 찢어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지만, 상관없었다.
후타도는 숨을 들이쉬었다. 흉골이 확장되면서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아찔한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후타도는 그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입술이 터지도록 입을 악물며, 시체 밑에 있던 팔을 꺼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안전핀을 뽑은 다음 남은 힘을 쥐어짜 계단 쪽으로 던졌다.
타타탕
그 순간 병사의 총에서 화염이 터져 나왔다.
후타도의 가슴에서도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
직감이 찾아왔다.
한규호는 직감에 의해, 그리고 경험에 의해 계단을 타고 굴러 떨어지는 그것이 수류탄임을 알수 있었다.
수류탄. 안전손잡이가 풀리면 격철이 튕겨 올라가고, 뇌관이 점화되고, M213 지연신관이 5초 후에 내부 작약 콤포지션B를 발화시키면 수류탄 안에 있는 수많은 쇠구슬과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가 인명을 살상하는 아주 효율적인 무기.
그 수류탄이 계단을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한규호의 이성은 몸을 피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직감이 발동되고, 수류탄을 인식한 그 순간에도 한규호는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한규호만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빠르게 움직여 수류탄의 폭발지점에서 사각지대 안에만 들어간다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
그의 직감은 빨리 사각지대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규호는 그와 반대로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수류탄을 집어 들으려,
수류탄을 집어 다른 곳으로 던지려,
수류탄을 집어 다른 곳으로 던져 지하에 있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그의 몸은 오히려 수류탄 쪽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또 다른 감각이 그에게 말했다.
지금 아이를, 베르나를 안고 있다고. 그렇게 그냥 다가가다가는 품 안의 아이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고 그에게 알려왔다.
피하라는 이성, 수류탄을 처리해 사람들을 보호하라는 감성, 그리고 아이를 안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성. 이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뒤섞이면서, 한규호는 주저했다.
주저했다.
능력을 얻고 나서,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
한규호는 아주 짧은 시간, 인간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시간을 낭비했다.
어떻게 하지?
그 짧은 시간에 불현 듯 얼마 전 자신이 한 말이 떠올랐다.
(참나.... 사람이 변하면.....)
몇 시간 전, 암파로의 한 집에서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한규호는 그 말을 떠올리며,
“비켜어어어!”
선두에 있던 대위를 밀치고, 수류탄을 향해 몸을 날리는 도밍게즈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5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