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01화 (102/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8) >

3일차

라과이라 항(港)(Puerto de La Guaira)

바르가스, 베네수엘라

도밍게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자신이 본 장면이 실제인지, 아니면 헛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건물 최상층에 매달린 무언가, 아니 누군가가 건물을 향해 총을 쏘고, 유리를 깨고 들어가는 장면을 분명히 그의 두 눈으로 보았지만, 그의 머리는 시각을 통해 들어온 그 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도밍게즈는 확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가 헛것을 보았거나, 스즈키가 인간이 아니거나, 아니면 인간이지만 보통의 인간이 아니거나.

도밍게즈는 고개를 돌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앤 챔버를 보았다. 앤 챔버도 그와 비슷한 얼굴로, 반쯤 입을 벌리고 놀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헛것을 보았다는 첫 번째 가능성은 앤 챔버의 표정에서 탈락했다.

도밍게즈는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믿기지 않는 장면이라 할지라도, 복수의 사람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시간에 그것을 보았다면 실재하는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바로 지금 그들이 보았던, 건물 최상층 외벽에 매달려 총을 쏘고, 창문을 깨고,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 같은 것도 말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남았다.

인간이 아니라면 스즈키는 미국이 한창 연구하고 있다는 무인 전투 병기인가?

인간이라면 마치 어벤저스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란 말인가?

둘 다 믿을 수 없는 가능성이지만 어떤 것이든 사실로 확정되면, 미국은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이 도밍게즈를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뭡니까?”

도밍게즈가 물었다.

도밍게즈의 질문에 창밖을 보고 있던 앤 챔버는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라니. 무슨 의미지?

“네?”

“뭡니까? 미국이 만들어낸 사이보그, 뭐 터미네이터 그런 겁니까?”

“네?”

“뭡니까? 저 남자는?”

앤 챔버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도밍게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 자신도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뭐지? 저 남자는?

기프티드. 스즈키가 육체적으로 특화된 기프티드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건물 최상층 외벽에 매달려 건물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밍게즈는 터미네이터를 언급했지만 앤 챔버는 스파이더맨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뭐지? 저 남자는?

“저도 잘......” 도밍게즈는 정말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앤 챔버를 보면서 스즈키가 돌아오면,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그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죽을 것이고, 그래서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그의 귀에 다른 소음이 들렸다.

저 멀리 높은 곳에서 들려왔지만, 도밍게즈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총의 발사음.

연발로 총을 발사하는 소리가 매질인 공기를 타고 그에 고막에 전해졌다.

***

회의실로 막 몸을 돌리려는 그 순간 한규호에게 직감이 찾아왔다. 직감이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그의 감각이 확장됐다.

의도적인 확장이 아닌, 직감에 의한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감각의 확장이었다.

확장된 그의 감각에, 특히 청각에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오는 발소리, 엘리베이터가 접근하는 기계음이 그의 청각에 잡혔다.

한규호를 중심으로 좌측 전방에 있는 비상계단과 우측 후방에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동시에 소리가 전달되어 오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복도를 청소하기 위해 걸어 나온 한규호는 자연스럽게 앞뒤로 적에게 포위될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상황을 경고하기 위해 직감이 찾아온 것이었다.

한규호는 동시에 두 곳에서 발생한 사건에 당황하지 않았다.

상황이 생기면 대응하면 된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한규호는 왼손으로 도밍게즈의 글록을 꺼내들었다.

손목이 날아간 채로 신음소리를 내던 조직원은 출혈과 쇼크로 인해 기절했는지 12층 복도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없었다. 12층에서 들리는 소리는 모두 아래 층에서 만들어진 소음이었다.

한규호는 왼손에 글록을, 오른손에 베이비 이글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입구 옆 LED 표시판의 숫자는 막 10에서 11로 바뀌었다.

한규호는 오른팔에 든 베이비 이글을 엘리베이터 문 쪽으로 뻗었다. 그리고 왼팔은 비상계단 입구를 향해 뻗었다. 그의 양 팔이 ㄴ자 형태를 이루었다.

한규호는 잠시 고민했다. 둘 중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인가.

사람의 눈은 곤충의 눈처럼 겹눈이 아니다. 아무리 한규호라고 해도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 두 곳을 동시에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딩동

고민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했다는 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비상계단에서 들려오던 소리도 12층에 거의 도달했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어디를 볼 것인가?

한규호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때로는 능동적으로, 의식적으로 집중하여 초점을 맞춰야하는 시각보다, 편견 없이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청각이 더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한규호는 두뇌 연산에 필요한 모든 입력값을 청각에 의존하기로 마음먹고 눈을 감았다.

알림음이 멈추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서 엘리베이터 내부의 빛이 열린 문틈을 통해 복도를 비추기 시작했다.

동시에 비상계단 입구로 뛰어 들어온 사람들 중 가장 앞에 있던 자가 사각지대에서 한규호의 시각 범위 안으로 막 들어오고 있었다.

눈을 감은 한규호는 그 어느 것 하나 볼 수 없었다. 대신 그의 청각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방아쇠에 걸쳐놓은 양손의 검지를 거의 동시에 당겼다.

***

11층의 보안실을 빠져나온 레온의 귀에 권총이 연발로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레온은 비상계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레온이 뛰자, 레온을 따라 11층으로 내려왔던 그의 부하 둘도 지체 없이 그를 따라 뛰었다.

레온은 비상계단으로 뛰어가면서, 총격음이 12층에서 들린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CCTV 영상을 확인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12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레온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보스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비상계단 입구로 들어선 그는 계단을 두 개씩 밟으며 12층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그의 눈에 12층 입구 앞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몇 구의 시체들이 보였다.

그가 남겨놓고 온 그의 팀원들이었다.

레온은 당장 복도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대신 몸을 멈추고 뒤따라 뛰어오던 부하들에게 눈짓으로 지시했다.

네가 먼저. 그 다음은 너.

레온의 눈짓을 받은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비상계단 출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이 복도에 몸을 날리자 레온도 바로 뒤이어 몸을 날렸다. 3명이 극미한 시간차를 두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세 사람이 연달아 몸을 날리면, 앞에 선 부하 두 명이 적의 시선을 끌어 인간 방패 역할을 해줄 것이다.

적이 바로 대응한다고 해도, 레온은 잠깐의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레온은 적에게 총탄을 박아줄 수 있다.

카바예로 카르텔과의 항쟁에서도 여러 번 사용했던 방법이었고, 언제나 효과적으로 먹혔던 방법이었다.

이번에도 먹힐 것이라고 확신하며 몸을 날리는 레온의 눈에,

처음 뛰어든 부하의 뒤통수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

한규호는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를 동시에 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한규호는 눈이 아닌 귀로, 감각으로,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를 보고 있었다.

한규호의 청각과 감각은, 비상계단에서 3명이 연달아 뛰어나온다는 정보를, 엘리베이터 안에는 4명이 타고 있다는 정보를 그에게 전달했다.

정보를 받은 그의 대뇌는 정보를 연산해 적들의 위치를 파악했고,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움직임을 계산했다.

계산된 결과에 따라 내려진 명령은 그의 신경을 타고 빠르게 그의 온 몸으로 퍼져나갔고, 그리고 그의 모든 신경과 근육의 움직임은 그 명령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왼손의 글록은 비상계단에서 뛰어나오는 첫 번째 조직원의 머리를 향해 9mm 탄환을 발사했다.

엘리베이터를 겨냥하고 있던 오른손의 제리코 941F는 막 열리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의 문틈으로 가운데 서 있던 조직원의 이마에 첫 번째 45구경 탄환을 날렸다.

두 권총의 초탄이 거의 동시에 각각의 방향을 향해 비행했다.

두 번째 발사는 왼손의 글록이 먼저였다.

첫 번째 조직원을 향해 날아간 총알이 채 닿기도 전에 두 번째 총알이 두 번째 조직원을 향해 발사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총알도 마지막으로 비상계단 입구에서 뛰어나온 레온을 향해 발사됐다.

발사된 4발의 총알은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에 정확히 도달했다.

총알이 각각의 머리를 뚫고 나가는 시간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시간보다 빨라서, 제리코 941F를 든 오른손은 조금 기다려야 했다.

일반인들은 시간의 단위를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규호에게는 충분히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총구를 안정시키고, 방향을 조정하고, 다시 조준점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한규호의 오른손에서 다시 화염이 뻗어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두 번째로 발사된 베이비 이글의 45구경의 탄환은 오른쪽 전방에 서 있던 조직원의 오른쪽 안구로 들어가 후두부로 나와 그 뒤에 서 있던 조직원의 미간에 박혔다.

그 짧은 시간에 총구는 다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엘리베이터 왼쪽 구석, 4명의 조직원 중  마지막 조직원의 머리에 총알을 발사했다. 양손에 든 두 자루의 권총, 그리고 두 자루의 권총에서 발사된 각 3발씩의 탄환,

총 6발의 총알로 한규호는 순식간에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온 7명을 동시에 처리해 버렸다.

걸린 시간은 1.5초. 대부분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길 기다린 시간이었다.

“열 넷. 셋.”

한규호가 감았던 눈을 뜨면서 말했다.

***

딩동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는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수천 번도 더 들어왔던 소리였지만 안내데스크 여직원은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는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에게 놀라 자신이 소변을 지려버린 자리에 주저앉은 채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떨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일으킨 것은 12층에서 내려온 조직원들이었다.

1층에서 시신을 확인한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묻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를 일으킨 조직원들은 그녀가 정신이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 주거나, 그냥 이대로 두고 다시 12층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1층으로 내려온 5명 중 4명은 다시 12층으로 올라가고, 남은 한 명이 그만의 방법으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은 조직원에게 뺨을 맞는 순간 자신이 저지른 짓이 떠올렸다.

자신이 괴한에게 푸에르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손가락으로 12층을 가리켰다.

죽는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그녀는 죽는다.

그녀만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가족도 죽는다. 푸에르토의 기분에 따라서 그녀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죽을 수 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는 조금 전과는 다른 공포, 어릴 적부터 그녀의 뼈에 새겨온 잔혹한 지배자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 공포는 뺨을 때린 조직원의 손에 이끌려 12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점점 커져갔다.

12층에 올라가면 죽는다.

절대로 죽는다.

눈앞에 널브러져 있는 저 조직원들처럼 죽는다.

딩동

그녀의 죽음을 확정하는 선고 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죽음으로 이끄는 저승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타앙

그녀는 자신을 끌고 가던 사신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손으로 권총을 들고 있는 남자, 조금 전 자동문을 열고 들어왔던 그 남자에 못 박혀 있었다.

한 손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조금 전과 판박이처럼 똑같았다.

그가 그녀 쪽을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그녀를 쏘지 않았다는 것도 똑같았다.

다만 어깨에 누군가를 들쳐 매고 있다는 것이 아까와는 달랐다.

여직원은 다시 주저앉았다.

대리석 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그녀의 젖은 속옷에 닿았지만, 그녀는 그 한기를 느끼지 못했다. 자신을 지나쳐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침입자의 뒷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괴한의 어깨에 축 늘어져있던 누군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는 푸에르토였음을 깨달았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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