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00화 (101/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7) >

3일차

라과이라 항(港)(Puerto de La Guaira)

바르가스, 베네수엘라

푸에르토의 경호팀 팀장인 레온은 11층에 위치한 보안실 메인 스크린 앞에 앉아 CCTV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영상에는 자동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오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벌써 여러 번 반복하며 돌려봤지만 레온은 원하는 정보, 습격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습격자의 얼굴은커녕 들어오는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동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그 놈은 총을 발사했고, CCTV 영상은 거기서 꺼져버렸다.

엘리베이터의 CCTV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괴한의 모습을 제대로 온전히 포착한 영상은 하나도 없었다.

괴한이 10층에서 내린 것은 파악했다. 10층 CCTV 영상도 동일하게 꺼져버렸으니까. 화면 구석에 뭔가 비치는가 싶더니 바로 꺼져버리는 CCTV.

레온은 CCTV 영상을 통해서 괴한이 누구인지, 어디 소속인지는커녕 몇 명인지도 알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괴한은 이 건물의 정확한 정보를, 적어도 CCTV 카메라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CCTV를 정확히 부숴버린 것은 사전에 그 위치를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시야에 들어오기도 전에 조준을 했다는 말이었다.

위치를 파악하고, 조준하고, 발사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겨누면서 들어왔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배신자가 있나?

레온은 스크린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12층. 어서 빨리 12층으로 가야 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면 보스가 위험할 수 있다.

지금 12층엔 몇 명이 있지?

자신의 팀원 20명 중 5명을 1층에 보냈다. 2명은 그를 따라 11층으로 왔으니 12층에는 보스를 24시간 밀착하며 지키는 경호원 3명을 포함해 16명이 있다.

16명.

적지 않은 숫자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배신자.

침입자가 몇 명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 내부에 배신자까지 있다면, 12층의 16명 중 배신자가 숨어있다면?

밀착 경호원 3명은 믿을 수 있다. 보스에 대한 그들의 충성은 신앙에 가깝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들이다.

나머지들은? 확신할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빨리 1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12층에 올라가, 경호를 두텁게 한 다음, 부하들을 빠르게 모아야 한다.

이곳에 조직원들이 몇이나 있을까? 건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직원들을 전부 모으면 50명은 족히 될 것이다.

범위를 넓혀보면? 항운노조건물 반경 500m 안에 적어도 5백 명의 조직원이 있다.

12층에서 레온 그 자신이 직접 보스를 지키며 시간을 끌고 조직원들을 불러 모은다면, 공격해온 놈들이 몇 명이든, 배신자가 몇 명이든 보스를 지켜낼 수 있다. 몸을 일으킨 레온은 보안실을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래서 그는 12층 복도에 설치된 CCTV 영상이 꺼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

문으로 다가간 한규호는 문 너머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긴장이 공기를 타고 문을 넘어 느껴졌다.

최소 10명 이상.

남은 탄환은 도밍게즈의 글록에 열 일곱, PT92에 열, 합쳐서 스물 일곱 발이다.

한규호는 몸을 돌려 검은 양복들을 뒤졌다.

검은 양복들의 가슴 홀스터에서 나온 총은 제리코 941F였다.

미국에서 소위 베이비 이글이라고 불리는 IWI제 권총.

탄창을 꺼내 보았다. 9mm탄환이 아닌 .45ACP(11.43x23mm), 속칭 콜트 45 탄환이 들어있었다.

그 중 한 자루를 챙겨 허리춤에 꽂았다.

평상시의 한규호라면 10발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권총 한 자루를 더 들고 다니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니까, 보험을 들어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열일곱, 열, 열.”

한규호는 나직하게 읊조리며 잔탄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오른손에 든 총을 눈높이에 맞춰 들어올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회의실 문손잡이를 잡고 힘차게 밀었다.

문이 열리는 그 순간 다시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5cm 정도 열렸을 때, 문틈으로 한규호가 찾고 있던 물체가 보였다.

한규호는 지체 없이 CCTV 카메라를 향해 오른손의 PT92를 발사했다.

‘열 일곱, 아홉, 열.’

카메라를 겨냥했던 총구가 CCTV 바로 밑에 서 있는 조직원의 머리로 움직여 새로운 총알을 토해냈다.

‘열 일곱, 여덟, 열.“

그 사이 문이 조금 더 열렸고, 근처에 서 있던 다른 조직원의 머리가 한규호의 시야에 노출됐다.

세 번째 화염이 총구에서 터져 나왔다.

***

레온의 명령을 받고 12층을 지키고 있던 카르텔 조직원들 중 한명인 투바우(Tubau)는 회의실 안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었다.

CCTV 카메라 바로 밑에서 엘리베이터 쪽을 경계하고 있던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총구를 회의실 쪽으로 돌렸다.

뭐지? 무슨 일이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들려온 총소리에 그는 순간 자신의 총을 발사할 뻔 했다. 보스가 있는 회의실 쪽으로.

투바우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으로 회의실을 보고 있는 동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란 그들이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비명 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그러나 투바우를 포함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회의실 안에는 보스와 보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밀착 경호원들이 있었고, 그 공간의 문을 감히 열 수 있는 조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회의실 문을 열 수 있는 권한도, 용기도 없었다. 투바우는 생각했다.

만약 별 일이 아니라면? 그저 오늘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보스가 가끔 그러하듯 분에 못이겨 총질을 한 것이라면? 밀착경호원 중 한명을 쏜 것이라면? 그런 상황이 벌어진 회의실 문을 연다는 것은 자살과 다름없다.

보스에게도, 카르텔에게도, 투바우에게도 기분 나쁜 날이었다.

아침만 해도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갔다.

살비아노의 처형 팀이 점심시간이 지난 후 무기를 잔뜩 챙겨 신이 나서 밴을 타고 나갔다가 몇 시간 후 살비아노만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거기에 푸에르토 카르텔 역사상 처음으로 카르텔 본단이 공격당했다.

12층으로 올라온 엘리베이터는 비어 있었고,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조직원들은 세 구의 시체를 발견했다고 무전기로 알려왔다.

투바우는 등줄기로 기분 나쁜, 알 수 없는 냉기의 전류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시체가 발견됐으니 공격을 당한 것은 확실한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차라리 여기저기서 총소리와 폭발음이라도 들려왔다면,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던 총소리는 그들 뒤편의 보스가 있는 회의실에서 들려왔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레온도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투바우를 포함한 조직원들은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실 문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적막만이 복도를 흐르던 그 때, 마침내 회의실 문이 움직였다.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문만을 지켜보고 있던 투바우는 그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당겨진 실처럼 팽팽하게 고조된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하는 그 순간, 문틈 사이로 고막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쩍였다.

투바우는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안에서 누군가 총을 쏘았다는 사실은 인지했다.

투바우의 뇌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몸을 피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이 초속 100m의 속도를 타고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운동신경의 명령을 받은 투바우의 근육은 명령을 수행하려고 했다.

그래서 몸을 움츠리려고 했던 그 순간, 9mm 풀메탈자켓 탄환 하나가 그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총알에 의해서 파괴된 그의 뇌는, 열린 문틈, 주먹 하나가 들어갈까 말까한 작은 틈이 활짝 열리며, 총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눈을 통해 보고받았음에도 아무런 명령도 내릴 수 없었다.

***

한규호는 문이 완전히 열리는 짧은 시간 동안 연속해서 10발을 쏘았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PT92의 탄창을 전부 비워 버렸다.

처음 CCTV 카메라에 쏜 한 발을 시작으로 문이 열리며 시야가 확대되었고, 확대된 시야에 머리가 들어올 때마다 그곳에 총을 발사했다.

복도의 조직원들이 연사라고 생각했던 총알 하나하나는 전부 조준 사격이었다.

한규호는 순식간에 CCTV 카메라 한 대와 복도에 있던 조직원들 중 9명을 처리했다.

10발의 탄환을 전부 쏟아 낸 PT92는 뜨겁게 달궈져 매캐한 화약 냄새를 내뿜었고 슬라이드는 뒤로 밀린 채로 고정되어 있었다.

손의 힘을 풀자 사명을 다한 PT92가 바닥으로 자유 낙하했다. 허리춤에 꽂아놓았던 제리코 941F가 이제 비어버린 오른손의 그 자리를 대신했다.

“열 일곱, 열.”

한규호는 이제 다 열린 문을 지나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 몇 명이 있었는지 알진 못했다. 그저 보이는 대로 쏘았을 뿐이다. 9발의 탄환으로 9명의 머리를 뚫어 버렸고, 더 이상 멀쩡한 머리가 보이지 않았기에 복도로 나간 것이다.

한규호가 걸어 나가자 복도 왼쪽에서 조직원 하나가 뛰어 나왔다.

12층 복도에 있던 13명 중에서 살아남은 네 명 중 하나, 다행히도 한규호의 시야 사각지대에 있던 조직원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행운아였는지 알지 못한 채 그는 자신의 복을 발로 걷어차 버리며 복도에 몸을 노출했다.  그의 복도 맞은편 사각지대에 있던 또 다른 조직원도 몸을 움직였다.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그에 호응하여 바로 움직인 것이다. 훌륭한 반응 속도와 대응이었다. 그 결과 앞선 동료보다 불과 1초 안팎의 차이로 몸을 내밀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빠르게 뛰어나왔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감각의 날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한규호에게는 그들이 뛰어나오는 모습이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차례차례 보는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한규호는 들고 있던 제리코로 먼저 뛰어 나온 조직원의 머리를 맞춘 다음, 바로 반대편에서 달려 나온 조직원의 머리도 뚫어버렸다.

제리코, 베이비 이글에서 발사된 45구경 탄환은 PT92에서 발사되었던 9mm탄환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더 빠른 속도로 두 사람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또 다른 조직원이 머리를 노출했다. 몸을 움직인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지만 이미 움직인 몸을 되돌릴 기회는 그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머리가 복도로 채 다 나오기도 전에, 그의 시야에 한규호가 들어오기도 전에, 한규호의 45구경 탄환은 이미 총구를 떠났고, 일부만 노출된 그의 얼굴, 정확히는 이마에 45구경 탄환의 운동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열 일곱. 일곱.”

3명을 더 처리했다.

감각이 아직 한 명이 더 남아있다는 정보를 알려 왔다.

앞으로 발을 옮겼다.

남은 자가 나를 쏘려면 스스로를 노출해야 한다. 노출을 하면 내가 먼저 쏠 수 있다.

복도 끝에서 총을 든 손 하나가 삐져나왔다.

벽 뒤에 숨어서 조준하지 않고 쏘겠다는 의도일 테지.

좋은 선택이다. 조준하기 위해 머리를 내밀면 바로 머리에 총알이 박힐 테니.

한규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튀어나온 손목에 총을 발사했다.

560줄(J)의 운동에너지를 가진 45구경 탄환은 깔끔하게 그 손목을 끊어 버렸다.

“열 일곱. 여섯.”

한규호가 작게 속삭였다.

그는 빠르게 수를 헤아렸다.

12층 회의실에서 검은 양복 3명, 회의실 밖의 CCTV 한 대와 9명, 그리고 복도로 나오면서 3명을 처리했다. 전부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방금 전 한 명의 손목을 끊었다.

확대된 감각에 더 이상의 적들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손목이 날아간 자의 신음소리만이 12층에서 잡히는 유일한 소리였다.

16명.

한규호는 12층에 총 16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애매한 숫자였다.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많다고 할 수 있는 숫자도 아니었다.

11층에도 몇 명이 있을까? 건물 밖에는? 지역 전체로 따지면?

몇 명이 있건 한규호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푸에르토다. 정신을 잃은 푸에르토가 그의 충성스런 부하들의 눈먼 총알에 맞을까 봐 골치가 아파온다.

푸에르토는 베르나를 납치했는지, 납치를 했다면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낼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 했다. 푸에르토를 지키기 위해 그의 부하들을 쏴 죽여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귀찮아질 수 있겠는걸.

한규호는 머리를 저었다.

상관없다. 상황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대응하면 된다.

회의실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푸에르토를 데려가기 위해서 한규호는 몸을 돌렸다. 그 때 그에게 직감이 찾아왔다.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언제나 그를 찾아오는 직감이 느껴졌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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