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5) >
3일차
라과이라 항(港) (Puerto de La Guaira)
바르가스, 베네수엘라
건물로 들어선 한규호가 거대한 회전문을 지나 현관 로비에 들어서자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유리로 된 자동문이 틈을 보이며 열리자마자, 한규호는 재빠르게 감각을 고도로 활성화시켜 내부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안내 데스크 위에 정면과 로비를 비추는 CCTV 두 대가, 1층 로비에는 6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 세 명이 무장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시각에 잡혔다. 그가 확보한 시각정보는 빠른 속도로 신경을 타고 대뇌로 흘러가 정보 처리 과정으로 넘어갔다.
무장한 사람은 셋. 두 명은 두 기의 엘리베이터 입구에 각각 서 있다. 손에 든 총은 마이크로 우지(Micro Uzi). 9X19mm 파라벨럼 탄환이고, 손잡이 모양으로 보았을 때 21발들이 탄창이 삽입되어 있다.
다른 한 명은 조금 떨어진 소파에 앉아 있다. 관리자일까? 편하게 앉아 있는 자세를 보니 적어도 서 있는 두 사람보다는 상급자일 가능성이 높다. 오른손에 권총이 보이지만 왼손이 덮고 있어 정확히 어떤 총인지는 알 수 없다. 얼핏 보기에는 베레타나 그 라이선스 카피
처럼 보인다.
남은 세 사람 중 한명은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는 여직원. 푸에르토의 취향인지 여직원은 일반적인 유니폼이 아닌 치어리더 같은 복장을 입고 있다.
원색의 민소매 상의. 밑에는 플리츠 스커트라도 입었을까? 허리 아래로는 데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무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데스크에 장전된 기관단총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는 베네수엘라니까.
베네수엘라가 아니더라해도 한규호는 여자, 아이, 노인들은 위험하지 않다는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왼쪽 구석에는 청소부 두 명. 40대? 50대? 청소부 복장의 두 여성이 각각의 손에 마대걸레자루를 잡고 구석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저들도 혹 무장했을까?
만약 저렇게 자연스럽게 보이는 청소직원에게도 총을 쥐어줬다면, 푸에르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정도로 미친놈이면 역사 한 켠에 이름을 남길 만하다.
무기가 없다고 해도 그렇다고 경계를 풀지는 않는다. 저들이 혹여 무장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긴 적진 한가운데이고, 여기서 두목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와야 하니까.
한규호는 현관 로비의 자동문이 막 열리는 그 순간에 이 일련의 사고와 분석 과정을 전부 끝마쳤다.
마지막으로 도밍게즈의 글록을 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다시 한 번 자신이 놓친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했다.
현관 로비에서 가장 먼저 한규호를 알아본 사람은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여직원은 현관 자동문이 열리자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에 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권총을 들고 자신 쪽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여전히 습관과 관성에 의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동문이 반쯤 열린 순간, 한규호의 손에 들린 권총이 불을 뿜었다.
쾅쾅.
160데시벨(dB)이 넘어가는 글록의 총소리가 로비를 가득 울렸다.
영점 몇초 차이를 두고 날아간 두 발의 총알은 로비를 비추고 있던 두 대의 감시 카메라 렌즈를 깨버렸다.
감시 카메라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한규호의 총구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총구가 불을 뿜었다.
쾅쾅쾅.
영점 몇 초의 간격을 두고 마치 연사처럼 발사된 3발의 탄환은 엘리베이터 근처에 있던 세 사람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현관 로비의 자동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한규호는 상황을 파악하고, 두 대의 감시 카메라를 무용지물로 만든 다음, 3명의 무장 조직원을 황천길로 보내버렸다.
현관을 지키던 조직원 3명은 감시카메라를 쏜 총 소리를 들었지만, 미처 그 쪽으로 몸을 돌리기도 전에 머리에 총을 맞았다. 자신들이 총을 맞는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일곱.”
한규호는 아직 총소리가 공명하고 있는 로비에 발을 내딛으며 그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자동문이 전부 열렸다.
한규호는 완전히 다 열린 자동문을 지나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안내 데스크로 걸어가는 한규호의 눈에 서로를 부둥켜 안고 쓰러지듯 주저 앉아 있는 청소 노동자 둘의 모습이 보였다. 한규호는 그제야 그들이 직접적인 위험은 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1층 로비에 있는 6명 중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3명을 처리했고, 남은 3명 중 둘은 위험하지 않다.
아직 한규호에게 ‘위험하지 않음’으로 확진받지 못한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은 몸을 다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그저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그저 온 몸이 공포에 묶여,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규호는 동상처럼 굳어 있는 여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English?”
한규호가 영어로 말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잔뜩 굳어있던 여직원은 한규호가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입술을 움찔움찔 거렸다.
이 괴한의 심기를 거스르면 죽는다는 본능이 공포에 속박된 그녀의 몸을 강제로 움직였다.
“푸에르토.”
대답이 없자 한규호는 또 다른 한 단어를 말했다.
“no..... no me maten por favor.(제...제발 살려주세요)”
여직원은 공포를 이겨내고 힘겹게 폐 속 공기를 내뱉어 말했다.
살려달라고.
한규호는 그녀의 스페인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원하는 답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푸에르토. 엘 푸에르토.”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천천히 또박또박.
여직원의 몸은 한번 제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빠르게 거기에 적응했다.
여직원은 울음을 터트리며 스페인어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한규호는 그녀의 빠른 스페인어를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뜻을 알 수 없는 스페인어를 빠르게 쏟아내는 여직원의 손가락은 안내판의 최상층인 12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의 몸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고 나서야 여직원은 그 자리에, 공포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실금한 소변 위로 주저 앉아 버렸다.
엘리베이터로 다가간 한규호는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전 쓰러져 있는 세 사람의 조직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던 조직원의 무릎에 놓여 있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베레타 92의 브라질 토러스社 라이선스 생산품인 PT92였다.
한규호는 탄창을 꺼내 총알을 확인했다. 약실에 1발을 포함해 15발 들이 탄창에 4발이 들어 있었다.
한규호는 잠시 생각하곤 마이크로 우지의 탄창을 뽑았다. 21발이 들어있는 탄창에서 9mm 총알을 빼냈다.
글록에 17발이, PT 92에 15발이 들어간다.
합치면 32발. 32발의 9mm 탄환이면 32명을 처리할 수 있다.
최소 32명을 처리할 수 있다.
그 이상이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없다면 만들면 된다.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손으로 글록 탄창에 우지 탄창에서 꺼낸 9mm 탄환을 밀어 넣으며 엘리베이터로 발을 옮겼다.
한규호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바로 구석에 달린 CCTV에 PT 92로 한 발을 쏘았다.
“열 일곱, 열 넷.”
한규호는 작게 말하고는 10층, 11층 버튼과 12층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한규호는 닫히는 문을 보면서 감시카메라를 생각했다.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시간으로 화면을 감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알렸다면, 12층에 도착하기 전에 대비를 할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도 전에 총알이 비처럼 날아들 수 있다.
정면으로 뚫고 나가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한규호는 조금 덜 번거로운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10층에서 내리기로 마음 먹었다. 조금의 혼동이라도 더 주기 위해 11층 버튼도 눌렀다.
그러나 한규호가 가장 신경쓰는 것은 대비하고 있는 적들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적들이야 피하거나 처리하면 된다.
그를 가장 귀찮게 하는 것은 그의 영상이 공개되는 것이다. CCTV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건물로 걸어오면서 얼굴을 바꾸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얼굴이, 그의 영상이, 행여 유트브에라도 올라가는 것을 한규호는 원치 않았다.
딩동.
10층에 도착했다는 알림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규호는 주저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걸어 나갔다.
그리고 복도에 달려 있는 CCTV부터 쏴 버렸다.
“열 일곱, 열 셋.”
한규호가 작게 말했다.
***
“뭐야 씨발!”
11층에 있는 건물 보안실에 앉아 CCTV 화면을 보고 있던 조직원이 욕설을 내뱉었다.
현관 CCTV에 어떤 미친놈이 들어오면서 총을 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평상시의 그처럼 책상에 양발을 올리고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면 그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날은 그에게 있어서 행운의 날이었다.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도리토스를 먹으며 멍하게 CCTV 화면을 보고 있었기에, 어떤 미친놈이 푸에트로 카르텔 본단에 총을 쏘면서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 그가 들어오면서 총을 쏘는, 아니 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화면이 먹통이 되었다. 1층을 비추는 2개의 CCTV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조직원은 도리토스 봉지를 내던지며 몸을 일으켰다.
본단이 습격당했다.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푸에르토 카르텔의 본단이 습격당했다.
누구일까? 그게 누구이든 간에 빠르게 보고 해야 한다.
그게 누구이든 간에, 몇 명이 쳐들어왔건 간에, 그들은 이 푸에르토 카르텔 본단에 발을 들인 순간 죽은 목숨이다.
그리고 보고가 늦으면 그도 죽을 것이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들었다. 12층, 푸에르토가 머무는 최상층 상황실에 바로 연결되어 있는 전화였다.
뚜우- 뚜우- 하는 신호음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 같았다.
“씨발 빨리 받아라!”
소리치는 그는 엘레베이터 1호기의 CCTV 화면이 꺼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 12층에 위치한 항운노조 본부 회의실에는 10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정확히는 한구의 시신과 9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9명 중 한명인 푸에르토는 참담한 심정으로 눈앞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살비아노 헤레라의, 그의 모계 쪽 사촌 동생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더블 티의 말대로 사촌 동생은 얼굴의 3분의 1이 날아가고 없었다.
그 흉칙한 얼굴을 푸에르토는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죽음의 검은 길로 달려간 그의 부하들은 그 곳에서 불타오르고 전복된 밴과 죽어버린 조직원들을 발견했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처형팀 조직원들은 전복된 차량 안에서, 혹은 밖으로 튕겨 나간 채 죽어 있었다.
차량이 전복되고, 전복되는 과정에서 손에 들고 있는 총이 난사되고, 차 안에 가득 쏟아진 기관단총 탄환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살비아노의 몸에도 총탄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치명적인 사인은 차량 전복이었다.
차량이 전복되면서 열린 창문으로 그의 몸이 튕겨 나갔고, 그리고 그의 얼굴이 도로에 갈려나갔다.
부하들은 급하게 살비아노 헤레라의 시신만을 수습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얼굴이 날아간 보스의 사촌 동생의 시신은 푸에르토 카르텔 본단 12층에서 사촌형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같이 큰 이모의 아들. 살비아노 헤레라.
같이 자랐고, 여자와의 첫 잠자리도, 첫 살인도 그와 함께였다.
어릴 적 겁 많고 착한 아이였던 살비아노는 이제 푸에르토에게는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가족이자 형제이며 부하였다.
그랬던 살비아노가 이렇게 참혹하게 죽어버렸다니.
푸에르토의 어금니 사이로 까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에르토는 턱에 힘을 잔뜩 주고, 어금니를 갈면서 맹세했다.
복수를 할 것이다. 피의 복수를 할 것이다.
최소 100명의 목숨으로 살비아노의 원혼을 진정시킬 것이다. 사랑하는 사촌동생의 진혼제에 그 정도의 목숨은 필요하다고 푸에르토는 생각했다.
푸에르토가 진혼제에 필요한 100명의 후보자를 막 떠올리던 그 순간 문이 열리고 12층 상황실에 있던 조직원 중 하나가 황급한 얼굴로 들어오며 말했다.
“기습입니다!”
갑작스러운 고성에 푸에르토의 얼굴이 굳어졌다.
감히. 지금 살비아노와의 작별의 시간을 방해하다니.
“뭐야! 웬 소란이야!”
푸에르토의 오른팔이자, 푸에르토의 경호팀 팀장인 레온(Leon)이 문을 열고 들어온 조직원에게 소리쳤다.
“그..... 그게....”
문을 열고 들어온 조직원은 순간 당황했다.
본단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1층 보안실에서 걸려온 전화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중요한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알리기 위해 짧은 거리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왔는데, 보스는, 높으신 분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자신이 실수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고,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습이라고?”
살비아노의 얼굴에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않고 푸에르토가 말했다.
“네! 그.... 그게... 보안실에서 연락이....” 푸에르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백명의 제물 중 오늘 몇 명이나 채울 수 있을까.
“몇 명?”
푸에르토가 물었다.
“그...그게 확인이 아직.....”
푸에르토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갔다.
멍청한 얼굴로 벌벌 떨고 있는 조직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권총을 들어 그 멍청한 부하를 진혼제의 첫 번째 제물로 만들어 버릴까 잠시 생각했다.
“확인해 봐.”
푸에르토는 그 생각을 억누르며 레온에게 말했다.
그의 오른팔이자, 살비아노와 같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또 다른 형제 레온은 푸에르토의 말에 지체 없이 문으로 몸을 돌렸다.
레온이 조직원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회의실 안에는 푸에르토와 푸에르토를 밀착 경호하는 3명의 경호원만이 남았다.
푸에르토는 급하게 방을 나서는 그들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 살비아노의 시신에 다시 시선을 주고, 죽여야 할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엘 오로. 그 자식이 1순위다. 엘 오로의 부추김 때문에 살비아노가 죽었으니.
더블 티도 마찬가지다. 사촌동생의 목숨을 조롱한 더블 티도 진혼제의 제물로 바쳐야 한다.
도밍게즈도, 제 5방위군도 아주 훌륭한 제물이 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살비아노의 죽음과 아주 작은 연관이라도 있는 놈들은 전부 다 죽여 살비아노의 혼을 위로할 것이다.
푸에르토는 그 생각에 너무 집중하고 있었기에,
건물 외벽에 매달려 창문을 통해 안쪽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한규호의 모습을 알아 채지 못하고 있었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