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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96화 (97/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3) >

3일차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

마이케티아, 바르가스주(州), 베네수엘라

“......완?”

(네. 저에요.)

“......... 오랜만이네.”

(그러네요. 오랜만이에요.)

“무사한가 보네.”

(네. 무사해요. 허벅지에 흉터는 남았지만.)

“그런가. 다행이네.”

(다행인가요? 허벅지에 흉터가 남았는데?)

“흉터만 남았으면 다행인 것 같은데.”

(그렇긴 하네요. 위스키 소독은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아팠는데. 효과가 있었나 봐요.)

“그건 미안하게 됐군.”

(괜찮아요. 흉터로 끝났으니.)

“그래. 흉터로 끝났으니.”

(규호. 당신은 어때요?)

“어떠냐고? 뭐가?”

(당신은 복부에 총을 맞았는데..... 부상은 당신이 더 심했는데. 지금 목소릴 들으니 걱정한 내가 바보 같네요.)

“걱정했나?”

(걱정 했어요.)

“괜한 걱정을 했군.”

(괜한 걱정인가요?)

“그래. 괜한 걱정이야.”

(괜한 걱정이라 다행이에요.)

“지금 어디야?”

(미국 동부 어딘가 같아요. 잘은 모르겠어요.)

“미국에 도착했군.”

(미국에 보내준다고 그랬죠?)

“그랬지.”

(제가 왜 미국으로 가려고 했는지 이야기했나요?)

“..... 기억에 없군.” (미국이라는 나라만이 나를 중국에게서 지켜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랬군.”

(저는 규호 당신을 믿지 않았어요.)

“그랬나?”

(네. 트라이앵글의 데리고 나가 주겠다고 했던 그때, 당신이 정말 나를 탈출시켜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바 펜타닐에서 말 했었지.”

(그랬었죠. 제 가슴을 만지면서.)

“........ 뭐. 아무튼 믿지 않았다?”

(미안해요.)

“미안할 것까지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 그 당시 저는 당신을 전혀 믿지 않았으니까.)

“조금은 신뢰를 얻었다곤 생각했는데, 전혀 믿지 않았다니 섭섭한데.”

(섭섭해도 그게 사실이니까.)

“진실을 말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별 말씀을요. 아무튼 저는 당신을 이용할 생각이었어요.)

“그랬나.”

(그랬어요. 당신과 함께 그 곳을, 지옥 같은 카지노를, 트라이앵글을 벗어나면 모든 시선이 당신에게 쏠릴 테고, 그러면 그 틈을 봐서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지 그랬어. 그랬으면 산에서 덜덜 떨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이유?”

(당신을 떠날 이유. 당신에게서 떠날 수가 없었어요.)

“칼로에서 기회가 있었는데.”

(기억나네요. 칼로. 그 크로아상도 떠오르고. 그곳에서 당신을 떠났으면, 얼어 죽을 뻔한 일은 겪지 않았어도 되었겠네요.)

“그렇겠지. 거기서 떠났으면.”

(거기서 당신을 떠났으면, 식양에 대해서, 북한에 대해서, 내 어두운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 안했어도 되었을 텐데.)

“후회하나?”

(후회라. 미묘하네요. 후회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후회하는 건 알겠는데, 아닌 것 같다는 건 모르겠군.”

(뭐 간단한 이야기에요.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이제 그저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은 전직 하급요원으로 당신에게 보일 수 없다는 부분은 후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한데, 한편으로 규호 당신이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뭐 그런 의미에요.)

“그런 의미로군.”

(뭐. 칼로에서 나는 당신이 떠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내가 떠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어요.)

“그랬었나?”

(그때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당신을 따라 나선 것이 잘 한 선택이냐고.)

“뭐라고 답했는데?” (잘 했다고 하더군요. 이유도 근거도 없이.)

“이유도 근거도 없이.”

(네. 이유도 근거도 없이.)

“잘못된 대답을 해줬네. 덕분에 고생했으니.”

(잘못된 대답인가요?)

“칼로에서 몸을 감췄어도 미국으로 올 수 있었겠지?”

(그럴 수 있었죠.)

“그런데 그 고생을 했으니. 얼어 죽을 뻔 하고, 총도 맞고, 상처에 위스키로 소독도 하고.”

(생각해보면 위스키는 정말 끔찍한 기억이네요.)

“하긴 나도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니.”

(아무튼. 당신을 이용해 미국으로 오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미국에 오니 당신이 없네요.)

“..............”

(미국에 오니 당신이 없어요.)

“그런가.”

(어디에요? 지금?)

“베네수엘라.”

(복부 총상은 정말 괜찮나 보네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곳에 가 있는 것을 보니.)

“그러게. 말도 안 되는 곳에 와 있긴 하네.”

(뭐 하나요? 거기서도 카지노에서 졸부 역할 연기 하고 있나요?)

“불행하게도 지금은 그냥 수행원. 지금 생각하니 데이빗 박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새삼 느껴지는군.”

(행복했나요?)

“마음대로 도박하고, 술도 마음껏 마시고, 미친놈 역할만 했으면 되니까.”

(저도 있었고,)

“그래. 당신도 있었고.”

(궁금한 게 있어요.)

“궁금한 거?”

(왜 자자고 안했어요?)

“음?”

(첫 날 잘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왜 그 이후 자자고 안했어요?)

“..... 그거?”

(네.)

“카메라.” (카메라?)

“감시 카메라가 있으니까. 포르노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카메라가 찍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그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겠어? 아무리 당신이 아름답다고 해도,”

(카메라에 재떨이를 던진 것은 의도적?)

“그랬지.”

(나와 자고 싶어서?)

“그건 아니고.”

(정말로요?)

“흠.... 뭐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자고 한건 내가 아니야. 그날 히비키를 가져오고, 먼저 입을 맞춘 건 당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여자를 부끄럽게 하네요.)

“더 부끄럽게 해줄 수 있지.”

(내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었죠.)

“...... 뭐 그걸 꼭 말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지키려고 했어요.)

“뭐. 그냥.”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다 얻어갔는데, 식양, 북한, 그리고 샤오메이. 모든 것을 전부 다 알아냈는데, 그런데도 날 지켜줬어요.)

“뭐. 그렇지.”

(왜 그랬어요?)

“뭐가?”

(왜 날 구해줬어요? 날 지켜줬어요?)

“뭐. 그게....”

(CIA가 물어보더라고요. 왜 날 구해줬는지.)

“CIA가....... 거칠게 대하지는 않았나?”

(아주 귀한 손님처럼 대접해 주고 있어요. 당신 덕분에.)

“다행이군. CIA가 그걸 물어봤다고?”

(어제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주면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넣어준다고 하던데요.)

“말해주지 그랬어.”

(말해주고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갈까요?)

“말해줘도 괜찮아.”

(싫어요.)

“왜?”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 해가 된다?”

(네. 규호. 당신에게 아주 작은 피해라도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아요. 더군다나 그것이 나 때문이라면.....)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요.)

“...... 그런가.”

(그래요.)

“그렇군.”

(그래요.)

“뭐라고 답했어?”

(뭐가요?)

“왜 당신을 구해줬는지에 대한 질문에. 뭐라고 답했는지.”

(뭐라고 답했을까요?)

“뭐라고 답했지?”

(내가 데려가 달라고 했다고 했어요.)

“그랬지.”

(왜 절 구한 거죠?)

“데려가 달라고 했으니까.”

(그건 제 대답이에요. 규호. 당신은 왜 당신을 죽이려고 했고, 이용하려고 했던 나를 구한 거죠?)

“..........”

(당신은 그저 혼자 힘으로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데도,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거기서 창녀 짓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어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왜 나를 그곳에서 구해 준거죠?)

“왜.... 그랬냐고.”

(네.)

“왜 그랬냐.”

(네.)

“왜 그랬냔 말이지.”

(네.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요.)

“......... 그러고 싶었으니까.”

(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밖에 말 못하겠는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음... 뭐. 작전이야 나에게는 그렇게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고, 식양이라는 단어도 몰랐고, 북한에 대해서는 실마리 하나 잡을 수 없었고. 그런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당신을......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뭐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네.”

(내가 예뻐서?)

“.......뭐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없지만?)

“아니야.”

(...... 미안해요.)

“.....괜찮아.” (미안해요.)

“괜찮아.”

(......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내가 당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뭐. 나에겐 나쁜 기억은 아니니까.”

(나쁜 기억이 아니라고요?)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다 잘 풀렸으니까. 당신이 MSS 요원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동행도 하게 되었고,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여정이었고, 또 나는 이렇게 살아있고. 무엇보다 당신은.... 그 곳에서 빠져 나왔으니까.”

(..... 규호 당신은.)

“음?”

(당신은 좋은 남자는 못 되겠어요.)

“..... 그게 무슨 말이지?”

(그렇게 모든 걸 다 받아주는 남자는...... 여자를 힘들게 해요.)

“그런가?”

(네. 적당히 밀고 당기고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당신은 그저 전부 다 받아주니까.)

“흠.... 뭐 동의하지 못하겠는데.”

(하지만.)

“하지만?”

(좋은 남편, 좋은 아빠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칭찬인거지?”

(글쎄요?)

“좋은 남편, 좋은 아빠는 생각해본 적이 없군.”

(그랬나요?)

“음.”

(생각해 봐요.)

“이상한 말을 하는군, 그건 그렇고 또 물어볼 것이 남았나?”

(많이 남았죠. 하루 이틀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이. 하지만.)

“하지만?”

(그건 나중에 직접 만날 때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 둘게요. 지금은 그냥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좋아요. 막상 목소릴 들으니 욕심이 나네요.)

“욕심?”

(보고 싶어요.)

“그런가.”

(..... 그런가라니. 그 대답은 잘못 된 것 같은데요.)

“.... 그런가.”

(또 그런가.)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 (말 돌리네요. 뭔가요? 궁금한 게?)

“...기분 나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당신이 하는 말 중에 기분 나쁜 말은 없어요. 그런가 빼고.)

“그런.... 군. 아무튼.”

(네.)

“완. 당신이 어렸을 때.”

(어렸을 때?)

“그.... 구 교수라는 그 자와 같이 지낼 때.”

(....네.)

“그때. 많이 힘들던 그때, 누군가 당신을 구해주길 바라지 않았어?”

(구해줄 사람?)

“당신을 그 지옥 같은 곳에서 구해줄 사람이 찾아왔으면..... 그런 생각을 했었어?”

(단 하루도.)

“음?”

(단 하룻밤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 그랬군,”

(그랬어요...... 그때는 몰랐어요. 구해줄 사람이 15년 후에나 올 줄은.)

“..........”

(이제는 괜찮아요. 15년이나 늦었지만. 그래도 와 줬으니.)

“그런가.”

(누군가를 구해야 하나요?)

“.........”

(구하고 싶다면 구해줘요. 구해 줄 수 있다면 구해줘요. 당신답게.)

“나... 답게.....”

(누군지 물어봐도 되나요?)

“.......7살 여자아이.”

(다행이네요. 그 아이는 15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

(목소리 듣고 싶었어요.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

(...... 당분간 미국에 있을 것 같아요. 어리광은 다 들어줘도 무심한 당신이 날 찾아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국에 있을 거라고 알고 있어줘요.)

“그래.”

(보고 싶어요,)

“그래.” (나중에 봐요.)

“그래. 나중에 봐.”

(나중에. 꼭.)

“그래. 꼭.”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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