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0) >
3일차
라과이라 항(Puerto de La Guaira)
바르가스 주(州), 베네수엘라
(내 부하들을 살해하고, 아이를 납치한 것이 네 놈 짓이냐고 묻는 것이다. 이 개자식아!)
도밍게즈가 외치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터져 나왔다.
푸에르토는 도밍게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 무슨 아이를 말하는 거지?
“그래. 나다.”
하지만 푸에르토는 자신이라고 대답했다.
도밍게즈가 말하는 아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납치도 하지 않았지만 푸에르토는 그저 고속도로에서의 습격만이 자신의 짓이라는 것을 상세하게 그리고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시켰다. 그러면 어쩔 건데! 뭘 어쩔 건데 이 씨발놈아!”
(......... 레니 페레아.)
도밍게즈가 푸에르토의 본명을 불렀다. 그 가라앉은 목소리가 얼마나 섬뜩한 지, 푸에르토는 등골에 한기가 드는 기분이었다.
푸에르토는 그 기분을 날려버리려는 듯 소릴 질렀다.
“뭐 씨발놈아! 뭐! 어쩔 거야? 감히 네가 날 어쩔 거야!”
(레니 페레아. 목을 닦고 기다리고 있어라.)
“좆까고 있네! 개좆까는 소리하고 있네. 어디 계속 씨부려 봐.”
(감히 방위군을, 감히 내 부대를 건드린 보답은 톡톡히 해 주마. 5방위군이, 내 부대가, 내가 널 찾아 갈 것이다.)
“와 봐! 어디 와 봐! 이 씨발....”
푸에르토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겨 버렸다.
“뭐야 씨발. 이 새끼도 먼저 전화를 끊어? 이 개새끼가!”
푸에르토는 손에 든 휴대전화를 벽으로 던져 버렸다.
금색 테두리를 두른1200달러 휴대전화가 이번 충격에는 버티지 못하고 액정의 전원이 나가버렸다.
***
3일차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
마이케티아, 바르가스주(州), 베네수엘라
앤 챔버는 사진을 떨어트렸다.
앤 챔버의 손에서 떨어진 사진은 공기에 저항을 받으며 천천히 바닥에 떨어졌다.
사진이 인화된 전면이 하늘로 향하고 떨어져서 그곳에 있던 모두가 그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을 본 그레이스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러나 앤 챔버는 그녀를 부축할 수 없었다. 앤 챔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오직 아고스토만이 그레이스를 겨우 부축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몸을 굽혀 사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살펴 본 후 봉투에 넣었다. “누가 이걸 전해줬지?”
한규호가 안내 데스크의 직원에게 물었다.
몸매를 드러내는 제복을 입은 여직원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여자들의 반응도 그렇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남자의 눈빛에서도 심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그게...”
“어떻게 문서가 보안구역인 출국장으로 들어올 수 있었지? 누가 전달했지?”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은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육식 동물 앞에서 꼼짝 못하는 초식 동물이 된 느낌이었다.
“그게... 그.... 보안 팀에서.....”
여직원은 겨우 힘을 짜내서 말을 꺼냈지만 계속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한규호의 시선이 자신을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옭죄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녀를 구해준 것은 어느새 그들에게 다가온 공항 경비대원이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미스터 스즈키 되십니까?”
공항 경비대 제복을 입은 군인이 한규호에게 물었다.
한규호의 시선이 여직원에게서 경비대원에게로 옮겨졌다.
그 시선을 받은 경비대원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기분을 느꼈다.
“도밍게즈 소령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었습니다. 이 번호로 연락을 달라며....”
경비대원은 전화번호가 담긴 쪽지를 건네주었다.
한규호는 경비대원이 건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두 번도 울리기 않았는데 바로 통화가 연결됐다.
(베르나가 납치당했어.)
도밍게즈는 전화를 받자마자 용건부터 말했다.
“알아. 사진을 보냈어.”
(사진?)
“부하들은 어떻게 되었나?”
한규호가 물었다.
(...... 전부....)
도밍게즈의 목소리에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렇군..... 베르나를 납치한 놈들이 사진을 찍어 보냈더군. 경비대를 통해 보내겠네.”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사진이 담긴 종이봉투를 전화번호를 가지고 온 경비대원에게 건넸다. 경비대원은 봉투를 받고 자리를 떠났다.
“누구 짓인지 알 수 있나?”
(엘 푸에르토.)
“우리를 습격한 놈들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도밍게즈가 말했다.
한규호는 잠시 생각했다. 입국장에 들어와 비행기를 타기 직전이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한규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는.
(알고 있으라고. 앤 챔버양에게도 말을 전해주게. 미안하다는 말도.)
“어떻게 하려고?”
(우리만의 방식이 있어.)
“그렇군.”
(이 번호가 내 직통 번호니, 미국에 도착하면 전화하게.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주지.)
“알겠네.”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그를 앤 챔버가 보고 있었다.
앤은 알 수 있었다.
베르나를 납치한 자들이 누구인지를 도밍게즈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규호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규호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앤 챔버가 한규호에게 말했다.
“구해야 해요.”
앤 챔버의 말에 한규호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구해야 해요. 베르나를 구해야 해요.”
앤 챔버가 한규호에게 말했다.
앤의 어깨를 잡은 손이 힘을 주어 그녀의 몸을 돌렸다.
앤의 몸이 돌아가면서 그녀의 고개도 같이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어깨를 잡은 손이 그레이스 박사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레이스는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앤 챔버의 말에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앤 챔버의 뺨을 때리기 위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녀의 오른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손은 앤 챔버의 뺨에 닫지 않았다. 앤 챔버에게 위해를 가하는 모든 물리력은 그녀의 염동력에 의해 막혔으니까.
그레이스의 오른손도 염동력에 의해 궤도를 바꿨고, 허공에 헛손질을 한 그레이스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주변 사람들은 방금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레이스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미친년.....”
바닥에 쓰러진 그레이스는 아픈 것도 모른 채 독기 어린 눈으로 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레이스가 앤 챔버를 때리려고 하다 헛손질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레이스는 아고스토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미친년. 감히 주제도 모르고. 구한다고? 그 계집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가야....”
그레이스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앤이 몸을 일으키는 그레이스의 뺨을 후려 쳤기 때문에.
앤의 오른손이 그레이스의 왼뺨에 작렬했다.
그레이스의 고개가 휙 돌아가고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아고스토 덕분에 그레이스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그녀에게는 불행이었다. 그녀의 왼쪽 뺨을 후려갈기고 지나갔던 앤 챔버의 오른손이 다시 돌아오면서 이번에는 손등으로 그레이스의 오른쪽 뺨을 후려쳤다. 손등으로 맞은 오른쪽 뺨은 더 작은 소리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그레이스는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당신 때문이야.”
앤이 쓰러진 그레이스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당신의 추악한 욕심이 베르나를 위험하게 만든 거야. 당신의 추악한 욕망에 동조한 우리가 베르나를 죽게 만든 거야.”
앤이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하게 말했지만 오히려 그 내용은 날카롭게 사람들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앤 챔버는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두고 한규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구해 주세요,”
한규호는 앤 챔버를 바라보았다.
앤 챔버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그녀는 전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베르나에게 집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드러내 보이면서까지 미국에 그녀를 데려가려고 했다. 도밍게즈에게도 몇 번이나 베르나의 안전을 당부하기도 했었다.
반지, 그녀가 항상 차고 다니던 목걸이에 걸린 반지도 베르나에게 주었다. 아마 앤 챔버 본인에겐 커다란 의미를 가진 반지였을 것이다.
베르나에게 집착하는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한규호는 앤 챔버를 데리고 사람들이 없는 출국장 구석의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서 말했다.
“침착하시오.”
그러나 앤 챔버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구해야 해요.....”
앤 챔버는 의자에 앉아 바닥을 주시한 채로 읆조렸다.
“침착해.”
한규호가 말했다.
“전 침착해요.”
앤 챔버가 바로 말했다.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우리가 가진 것은 그저 사진 한 장 뿐이고, 누가 납치해갔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설사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해도, 우리끼리 아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해.”
“가능해요!”
앤 챔버가 고개를 들면서 소리쳤다. 그 눈이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가능해요. 구할 수 있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베르나를 구해줄 수 있어요.”
“.........”
“저는 지킬 수 있어요. 저는 보호할 순 있어요. 하지만 구할 수는 없어요. 제 능력으로는 구출할 수는 없어요. 당신은 구해줄 수 있어요. 구해줘요. 제발... 힐베르타를... 베르나를 구해줘요.”
한규호는 그녀가 이성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말투는 차분하고 발음은 확실했지만, 말하는 내용으로 볼 때 그녀는 아이가 납치당했다는 충격에 근거 없이 그저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 차려. 아무 말이나 한다고....”
“기프티드.”
“....뭐?”
“기프티드인 당신은 구할 수 있어요.”
한규호는 등골에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기프티드(Gifted),
천부적인 재능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그리고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규호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능(異能).
한규호가 가지고 있는 이능.
“무슨 말이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미국은 그런 사람들을 기프티드라고 불러요. 당신처럼.”
한규호는 앤 챔버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능력은 육체적으로 특화된 능력이죠? 그래서 그 저격에서 우리를 구해 낸 것이고.... 당신은 구할 수 있어요. 베르나를 구해줄 수 있어요. 지금 여기서 당신만이 베르나를 구해줄 수 있어요.”
앤 챔버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갔다.
“기프티드.... 무슨 말인지 설명해.”
한규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미국은 기프티드란 존재를 알고 있고, 그리고 기프티드와 관련된 정보를 모으고 있어요. 기프티드로 분류된 사람들 중 일부는 확보하고 있어요. 나처럼.”
지금 이 여자는 자신이 그 기프티드라고 말했다. 한규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미국은 우연한 계기로 당신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기프티드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당신을 이곳 베네수엘라로 보낸 거예요.”
한규호가, 김형원이, 김훈이 의심하던 가설이 미국 측 사람을 통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저를 붙였어요. 확인하고 싶어서. 당신이 기프티드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기프티드끼리 접촉했을 때 어떠한 반응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절 여기에 보낸 거예요.”
한규호는 앤 챔버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당신이 가진 능력은 신체적인 능력이겠죠?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난 알 수 있어요.”
“그들?”
“CIA. 기프티드를 전담 관리하는 유일한 기관. 그들이 저를 확보했고, 키웠고, 그리고 여기에 보냈어요. 당신을 파악하라는 의도로.”
“증명할 수 있나?”
한규호가 물었다.
“증명? 무슨 증명을 말하는 거죠? 지금 당장 CIA 국장에게 전화라도 걸어주면 내 말을 믿어주겠어요?”
좋은 방법이었지만 지금 한규호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말하는 기프티드인지 뭔지. 당신이 그...... 거라는 주장에 대한 증명.”
“트리거.”
“트리거?”
“그래요. 트리거. 발현조건. 능력이 생겨나게 만드는 방아쇠, 그 조건을 발현조건이라고 불러요. 이 조건이 충족되면 본능적으로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요. 어떤 능력을 가지는지, 어떻게 그 능력을 쓸 수 있는지 바로 알게 되요.”
한규호 그가 십 수년 전, 눈보라 치는 겨울밤, 함경남도 용양의 백금산에서 겪었던 그 날의 그 경험을 지금 눈앞에서 앤 챔버가 묘사했다. 그랬다. 앤 챔버가 말하고 있는 트리거, 일명 발현조건이 발동되면 왜 발현했는지, 발현된 능력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발현된 능력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달려 있던 꼬리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한규호는 앤 챔버의 눈을 보았다. 그의 감각은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날카롭게 서 있었다.
“유지 조건!”
한규호의 눈이 커졌다.
“발현된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알게 되고 마지막으로 제한 조건,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조건도 따라서 알게 되요. 머릿속에 떠올라요. 마치 글자가 떠오르듯.”
유지 조건. 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의무적인 조건.
제한 조건, 강제로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조건.
한규호도 능력을 얻은 날 자연스럽게 알게 된 그것.
“저의 모든 조건을 전부 다 털어놓으면 믿어 주겠어요? 어떻게 능력을 얻었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해야 능력을 유지할 수 있고, 또 어떻게 하면 능력을 잃게 되는지 당신에게 전부 다 털어놓으면, 그래서 내가 기프티드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면, 그러면 당
신이 기프티드라고 인정하고 그 능력으로 베르나를 구해줄 수 있나요? 그래 줄 수 있나요!”
앤 챔버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간절함만이 그 눈동자에 가득했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4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