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90화 (91/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37) >

3일차

카라카스 라과이라 고속도로(Autopista Caracas - La Guaira)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엘 푸에르토 카르텔의 수장 푸에르토의 오른팔 중 한 명이자, 푸에르토 카르텔의 처형부대를 이끄는 살비아노(Salviano)가 탄 미니밴은 행렬 중 제일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보스에게 그레이스 박사 일행을 습격하라는 지시를 받고 카라카스-라과이라 고속도로 한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목표인 밴을 발견하고는 무전기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자신도 그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시시한 일이었다. 고작 밴 하나를 습격하는 아주 시시한 일이었다.

삼두사가 결성되고 나서는 시원하게 총질을 할 일도 별로 없었다.

한때는 빈민촌의 가난뱅이들, 스스로를 기사라고 부르는 까바예로의 미친놈들과 목숨 건 총격전을 하며 스릴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도 있었지만, 삼두사의 체제가 자리 잡고 나서는 그런 스릴도 좀처럼 즐기기 힘들어졌다.

기껏해야 반항도 없이 겁에 질린 눈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는 재미없는 일 뿐이었다.

하품 나는 일이다.

살비아노에게는 마약, 술, 여자. 그런 것들보다 목숨을 걸고 서로가 총알을 주고받는 것이 더욱 즐겁고 짜릿했다. 드럼통 뒤에 몸을 숨기고 날아오는 총알들 사이로 상대방에게 총알을 되돌려 줄 때마다 그는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때마다 살비아노의 남근은 빳빳하게 발기하곤 했었다.

처형 팀의 팀장은 하늘이 그에게 내린 천직이자 축복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작 밴 하나를 처리하라니.

(어지간하면 한 둘은 살려 보내라고.)

그의 보스 푸에르토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살비아노는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이는 그런 귀찮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하게 다 죽여 버리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 시시한 일에 그가 몸소 나설 필요도 없었다. 반항도 하지 못하는 벌레들을 잡는 이런 일은 그가 직접 나서서 방아쇠를 당길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이었다. 그는 그저 맨 뒤에 앉아서, 그의 부하들이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볼 생각이었다. 눈요깃거리 정도는 되겠

지.

그가 탄 밴이 터널을 거의 빠져나갈 때쯤, 살비아노가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품을 하던 그때, 운전하던 부하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 뭐야 저거!”

하품하느라 눈을 감고 있던 살비아노는 부하가 왜 소리를 질렀는지 바로 파악할 수 없었다.

하품을 마저 하고,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 닦아 낸 후 그가 정면을 보았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제일 앞에서 달리던 시에나가 방향을 잃고 중앙분리대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었다.

살비아노는 순간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뭐야 저 새끼는!! 씨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부하도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살비아노의 눈에, 표적인 대형 밴이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우측방향으로 급커브를 틀고 있는 밴의 조수석 창문에 걸터앉아 그들 쪽으로 권총을 겨누고 있는 미친놈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저 돌은 놈은?”

살비아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 놈의 총구에서 발사 화염이 보였다,

달리는 차에 매달린 상태로 총을 쏜 것이다. 저 자식은 총알을 그냥 허공에 날려버리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병신인가?

앞에 달려가던 차량이 오른쪽으로 기우는 모습이 살비아노의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런 비현실적인 모습에 살비아노의 뇌는 빠르게 움직였다. 맞았나? 설마. 달리는 차량에서, 그것도 조수석 창문에 걸터앉아 있는 대로 똥폼을 잡고, 그저 권총을 한 발 발사했을 뿐인데, 맞췄다고?

아니, 맞췄다고 해도, 고작 9mm탄 한 발에 밴이 저렇게 흔들린다고?

살비아노의 후두엽은 복측 경로를 통해 우측으로 미끄러지는 두 번째 차량의 모습을 인지해 측두엽으로 보내서 관성과 반동에 의해 크게 튀어 올라 자신들을 향해 덮쳐 오는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재생했다.

살비아노의 의식이 끊기기 전, 그의 망막에 잡힌 마지막 시각 정보였다.

***

한규호는 두 번째 차량이 튀어 올라 세 번째 차량을 덮치는 것을 창틀에 걸터앉은 채로 보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춤을 추듯 휘감긴 두 차량이 강하게 충돌하며 나뒹구는 모습을 볼 때까지 한규호의 쭉 뻗은 왼팔은 여전히 그 쪽을 향하고 있었다.

두 차량이 완전히 난장판이 되면서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한규호는 팔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는 몸을 쭉 뻗어 다시 조수석 안으로 들어갔다.

한규호가 다시 조수석으로 들어와 앉자 도밍게즈가 반쯤 벌린 입으로 운전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밍게즈는 열심히 제동과 가속을 반복하면서, 차량이 전복되지 않도록 열심히 제어하면서도 사이드미러를 통해 그들을 추격하던 미니밴 3대가 박살이 나는 것을 보았다.

첫 번째 차량이 중앙분리대를 타고 반대편 차선으로 날아가는 것도, 두 번째 차량과 세 번째 차량이 서로 엉키며 충돌하는 것도 보았다.

도밍게즈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멀쩡히 추격해오던 차량들이 갑자기 음주운전이라도 한 것처럼 날아가고 충돌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도밍게즈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 누구도 지금 상황이, 저 차들이 왜 갑자기 날아가고, 그 자리에서 스핀을 하고, 충돌하게 된 것인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말이다.

곡선구간을 통과한 차량은 직선구간의 시작인 두 번째 터널로 진입했다.

차량이 터널로 진입하자 열려있는 조수석 창문으로 다시 강하게 풍절음이 들려왔다.

“제길!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도밍게즈가 풍절음에 묻히지 않도록 소리쳐 말했다.

지금 이 남자가 한 건가? 권총 한 자루로? 몇 발 쏘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달리는 차 안에서? 아니, 차에 매달려서? 뒤따르는 미니 밴 3대를?

도밍게즈는 물어보고 싶은 수많은 의문을 한마디에 담아 더 크게 소리쳤다.

“설명해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리에 앉은 한규호는 대답 없이 창문을 닫은 후, 왼손을 어깨 너머로 뻗어 안전벨트를 끌어와 버클에 끼웠다. 그리고는 도밍게즈의 권총에 안전장치를 걸고 대시 보드 위에 올려놓은 다음 속도계를 흘깃 보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과속.”

도밍게즈의 벌린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과속? 과속이라고?

“오 씨발. 과속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미 창문을 닫아 조용해진 차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소리쳤다.

한규호가 씩 웃었다.

도밍게즈는 여전히 전방을 주시한 채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 씨발... 성모 마리아시여....”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앤 챔버와 아예 바닥에 엎드려 있는 그레이스 박사와는 달리 아고스토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두더지가 땅위로 고개를 내밀 듯 머리를 내밀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밴이 두 번째 터널 출구, 성모마리아 포인트를 막 지나가고 있었다.

***

3일차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

마이케티아, 바르가스주(州), 베네수엘라 15인승 밴 한대가 천천히 공항 터미널 출국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밴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근처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짐을 옮겨주고 돈을 받기 위해서, 아니면 틈을 봐서 물건을 슬쩍하기 위해서. 몰려든 그들은 멈췄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 차량을 둘러싸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차문이 열려야 짐을 날라주든, 물건을 슬쩍하든 할 텐데, 굳게 닫힌 두꺼운 차문은 열릴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짙게 선팅된 창문 너머로 차 안쪽의 탑승객들이 앉아 있는 모습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이. 거기들! 다들 비켜! 거기서 물러나!”

눈치를 보고 있는 그들에게 공항경비대가 다가오며 외쳤다.

어지간해서는 공항 터미널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비대가 직접 나온 것을 보고 높은 사람들이 온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밴으로 몰려들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공항 경비대가 다가오자 그제야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갔다.

사전 연락을 받은 경비대원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자가 도밍게즈 소령임을 확인하고 경례를 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령님.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도밍게즈는 고개를 끄덕인 후, 뒤를 돌아보며 이제 내린다고 말했다.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바닥에 엎드려 있던 그레이스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아고스토와 앤 챔버를 밀치면서 제일 먼저 내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짐도 챙기지 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뛰쳐나가는 그레이스에게 발을 밟힌 아고스토가 잠시 얼굴을 찡그렸지만 바람처럼 공항 안으로 들어가 버린 그레이스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얼른 내렸다.

그나마 그는 자신의 캐리어를 챙길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자신의 캐리어를 꺼내들고 터미널로 향하던 아고스토는 고개를 돌려 도밍게즈를 잠시 보았다.

“고맙소. 소령. 이 은혜는.....”

아고스토는 쭈뼛거리며 말을 흐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터미널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앤 챔버도 도밍게즈에게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소령님. 덕분에 안전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앤 챔버의 말에 도밍게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챔버 양. 안녕히 돌아가시길.”

“베르나를.... 부탁드립니다.”

앤 챔버가 다시 말했다. 도밍게즈는 고개를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끄덕여 보였다.

앤 챔버도 캐리어를 끌고, 경비대의 호위를 받으며 터미널로 들어갔다. 텅 빈 커다란 밴에는 도밍게즈와 한규호 둘만이 남아 있었다.

“여기.”

한규호가 대시 보드 위에 놓여 있던 도밍게즈의 글록을 집어 도밍게즈에게 돌려주었다. 도밍게즈는 자신의 애병을 들고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탄창을 꺼내 몇 발의 총알이 남아있는지를 확인했다. 약실의 한발을 포함해 12발이 남아 있었다.

“다섯 발로 세 대라.....”

도밍게즈의 시선이 한규호에게 옮겨졌다.

“어떻게 했는지 듣고 싶군.”

그 말에 한규호가 어깨를 조금 으쓱인 후 말했다.

“본 대로”

한규호가 말했다.

도밍게즈는 권총을 가슴의 홀스터에 꽂아 넣고는 담뱃갑을 꺼내 내밀었다.

“피울 텐가?” 한규호는 대답 없이 손을 뻗어 담배 한 대를 끄집어내 입에 물었다.

도밍게즈가 불을 붙여준 다음 자신도 불을 붙이고는 깊숙하게 빨아들이고 다시 천천히, 그러나 깊게 내 뱉은 다음 말했다.

“참 길었던 3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그렇지도 않군.”

그 말에 한규호는 피식 웃었다.

“소령, 당신을 보면.”

한규호가 연기를 내뿜으려 말했다.

“당신을 보면, 예전 내 상관이 떠올라.”

한규호의 말에 도밍게즈가 고개를 돌렸다.

“군인인가?”

“였었지.”

“역시.”

“뭐. 그랬었지. 그나저나 걱정이군.”

“뭐가?”

“당신 같은 군인은 드물고,”

“드물고?”

“그런 군인은 승진과는 거리가 있지.”

그 말에 도밍게즈가 씩 웃었다.

“목숨도 아니고 고작 승진 따위를 걱정해주는 건가?”

그 말에 한규호도 웃었다.

“목숨이야. 군인이 되었으면 그때부터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거 아니겠나?”

도밍게즈는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담배가 다 탈 때까지 서로를 바라보았다.

“잘 가게.”

도밍게즈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고맙군.”

한규호가 그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다음에 베네수엘라에 오게 되면 연락하게. 내가 진짜배기 베네수엘라 음식인 까차빠를 대접해주지. 이상한 그리스 음식이 아니라.”

그 말에 한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해지는데. 목숨을 걸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니.”

“목숨을 걸 만하다고 내 보장하지.”

도밍게즈의 말에 두 사람은 다시 웃음을 주고 받았다.

“그럼 이만.”

한규호는 문을 열고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캐리어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경비대원을 따라 터미널로 들어갔다.

도밍게즈는 터미널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규호의 몸이 터미널 안으로 완전하게 사라지자 도밍게즈는 담배 한 대를 더 꺼냈다.

왠지 모르게 섭섭한 기분이 들어서 바로 출발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도밍게즈의 전화기가 울렸다.

벨소리를 들은 도밍게즈는 자신의 전화로 시선을 돌렸다.

액정에 떠오른 것은 익숙한 부관의 번호였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3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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