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3 : La Mancha Negra (33) >
하루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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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차관이라든가?”
한규호가 말했다.
도밍게즈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이 남자는 도대체 뭐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오전에 있던 저격은 북쪽과 동쪽 두 곳에서 이뤄졌습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대상을 노리고 말이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밍게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격의 핵심은 은밀함과 확실성이다. 은밀함을 통해 저격에 대비할 수 없도록 해야 하고, 저격이 시행되면 확실히 목표를 맞춰야 한다.
첫 발로 목표를 맞추는 것을 상정하고 두 발 째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도 전혀 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발 씩이 발사되었다.
이상한 점은 동시간대에 발사되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두 곳에서 저격수가 같은 목표를 조준하고 동시에 저격을 시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저격은 카운트다운에 맞춰 신호음이 울리면 출발선에 서 있는 달리기 주자들이 일제히 달려나가는 것처럼 동시에 이
뤄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저격수 개인의 루틴과 패턴, 저격 당시의 미세한 환경의 차이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나란히 쏜다고 하더라도 어려울텐데 하물며 지금처럼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곳에서의 동시 저격이라니. 도밍게즈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즉 정부청사 앞에서 발생한 두 건의 저격은 한 주체에 의한 동시 저격이 아닌 각각의 저격이 다른 주체에 의해서 계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한규호가 짚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결과는 더 이상합니다. 두 발의 총성이 울렸는데, 한 발은 차량에, 다른 한발은 경호원의 팔을 끊어 내는데 그쳤죠. 둘 다 의도된 결과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말은?”
“차량을 맞힌 한 발은 사람을 노리지 않고 애초에 차량을 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각도로 봐도 그렇고, 살상보다는 경고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소령님이 아시는 그 마피아들은 경고라는 번거로운 일을 할 놈들일까요?”
도밍게즈는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은 ‘경고’라는 단어를 모른다. 그들이 경고를 하고 싶다면 시체를 걸어놓았을 것이다. 항상 해오던 것처럼.
“차관 비서의 팔을 끊은 저격을 생각해봅시다. 그쪽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동쪽에서 날아왔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아냈습니까?”
“1km 떨어진 Torres, Parque Central, 센트럴 파크 타워의 빈 사무실 중 한 곳에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도밍게즈가 말했다.
“그렇군요. 그쪽의 저격은 북쪽보다 훨씬 더 살상의 기운이 강합니다. 뭐, 설명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 지금으로서는 그런 느낌이라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군요.”
스즈키라는 이 남자는 현역 군인이거나, 아니면 군인이었을 것이라고 도밍게즈는 확신했다.
“차관이 저격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도밍게즈가 물었다.
“시간을 끌더군요.”
“..........”
“차관이 정부청사 앞에서 그레이스 박사의 손을 잡고 시간을 끌더군요. 마치, 저격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라도 하듯.”
“..........” “시선은 불안했고.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장관의 무례를 자신이 대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시간을 계속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치 지정된 시간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확실합니까?”
도밍게즈가 물었다.
“소령님도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한규호가 답했다.
그 질문에 도밍게즈는 침묵을 지켰다.
“그레이스 박사의 손을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와 안아 주면서 박사의 뒤에 서 있는 앤 챔버나 아고스토와의 거리를 벌리고, 각도를 조정하던 품이 동쪽의 저격수가 행여 실패했을 때 피해를 입지 않는 위치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오해 사기 딱 좋은 모습 아닙니까?”
도밍게즈는 한규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뜯어보았다.
“뭐 우선은 이 정도입니다. 일종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이죠. 증거는 없습니다. 비단 차관뿐만 아니죠. 플로어 매니저만 해도, 에스코베도라고 했던가요?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군요. 그 여자만 해도 정보를 흘리기에는 아주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죠. 총지배인 앙헬
도 그렇고. 그리고 여기 소령님도 마찬가지고.”
한규호의 도발에 도밍게즈는 고개를 들어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가능성만으로 따지자면 소령님은 빼도 되겠군요. 해하고자 했다면 혼란한 상황에서 언제든 가능했을 테니 말이죠. 예를 들어, 오토바이가 습격했을 때라던가. 플로어 매니저 에스코베도는 아주 훌륭한 쥐 후보가 되겠지요. 호텔 내부의 정보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고, 전달하기도 쉬운 사람이니까. 앙헬도 비슷하고요. 그 외에 청소부, 도어맨, 소령님의 부하들 모두 그러한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도밍게즈는 침을 삼켰다.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제가 보기에 가장 유력한 쥐는 차관입니다. 저격을 위한 판을 만든 행동을 한 유일한 사람이니까.”
“........... 다른 분들도 이 이야기를 아십니까?”
“모릅니다.”
“왜 말씀 안하셨습니까?”
“신뢰하지 않으니까요.”
한규호가 말했다.
“저는 믿습니까?”
“물론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그들과는 다르니까요.”
“다르다?”
“다릅니다. 그들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령님은 다르죠. 안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요.”
“만약 제가 쥐라면 어쩌시겠.....”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
“상관없습니다. 소령, 당신이 차관에 편에 서 있는 또 다른 쥐라면, 그래서 우리를 해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면 제가 막으면 됩니다.”
도밍게즈는 스즈키의 눈을 보았다.
군인이라면 무엇보다 냉철한 판단력이 중요하다. 특히 지휘관이라면. 잘못된 판단에 부하들의 목숨이 위험에 처한다.
그의 눈은 냉철했다.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남자의 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차관측이 아니라면... 쥐가 아니라면?”
한규호는 도밍게즈의 질문에 씩하고 웃었다. 그리고 등을 천천히 의자에 기댔다. “소령님. 솔직히 말하면.”
“...........”
“저는 소령님의 부대가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솔직히 제가 생각했던 오합지졸 같은 남미의 군대와 너무 달라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
“사과는 나중에 드리도록 하고, 우선 물어보죠. 왜 절 찾아왔습니까?”
“여러분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규호는 도밍게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진실을 끄집어 내라고 눈으로 말했다.
도밍게즈도 그의 눈빛을 읽었다.
“그런 것이라면 일부러 저를 찾아올 필요는 없었습니다. 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왜 찾아왔습니까? 왜 저에게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는 겁니까?”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도밍게즈는 말없이 한규호를 계속 보고 있었다.
“목적이 뭡니까? 미국과 선을 만들어두고 싶어서입니까?”
한규호가 직구를 찔러 넣었다. 몸 쪽 꽉 찬 공이었다. 그리고 그 직구를 받은 도밍게즈의 눈에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선 따윈 필요 없습니다.”
도밍게즈가 답했다. 한규호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꼈다.
“다행이군요. 저도 선 같은 건 만들어 줄 수 없는데.”
한규호가 그렇게 말했다. 도밍게즈는 한규호의 대답에 김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담배 피워도 되겠습니까?”
도밍게즈가 말했다.
“나도 한 대 주신다면.”
한규호가 답했다.
두 사람은 담배를 나눠 피면서 잠시 연기를 뿜었다.
폐점막을 통해 들어온 니코틴이 신경을 자극했다. 흡연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극이다.
“당신은.... 알 수 없는 사람이군요.”
도밍게즈가 한규호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한규호가 빙긋 웃었다.
아마 자신도 계속 군대에 있었다면 도밍게즈 같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비벼 끈 도밍게즈는 차관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타나 차관이 범죄조직, 특히 카르텔과의 연관이 있다는 첩보가 있다는 것이였다.
정부 내각과 범죄조직과의 광범위한 연계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특히 석유부나 금융부 등이 이런 부분에서 아주 유명했다. 사실 돈 될 것이 없는 여성부나 복지부처는 마피아들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바리오의 어머니’ 정책으로 일약 빈민들의 구세주로 떠오른 산타나 차관이 실제로는 바리오를 지배하는 카바예로 카르텔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특히 카르텔 수장인 더블 티와는 서로의 목적을 위해 예전부터 협력하고 있는 사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도밍
게즈는 설명했다.
“정적에 대한 투서야, 정계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바리오의 어머니라고 칭송받는 여자가 바리오를 기반으로 하는 범죄조직과 실제 연관이 있다면 이건 단순한 모함으로 치부할 수 없는 큰일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은밀하게 내사를 진행했습니다.”
도밍게즈가 ‘우리’라고 말하는 것을 한규호는 놓치지 않았다. 한규호는 도밍게즈 소령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사람은 단순한 소령 계급의 군인은 아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드릴 수 없군요. 필요도 없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드리면, 차관이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해두죠.”
한규호는 도밍게즈가 정치놀음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정치적인 관점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단순히 정치나 권력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군요.”
도밍게즈가 말했다. 사실 한규호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군요.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지요. 전 차관을 잡고 싶습니다. 당신들 일행을 해하려는 놈들과 차관이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당신들을 지키는 것이 제 이해관계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쁠 것 없는 이야기이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당신들 일행을 해치려면 선결 과제가 있습니다.”
도밍게즈가 말했다.
“우리를 지키고 있는 방위군이 없어져야 하죠,”
한규호가 답했다.
도밍게즈는 한규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알면 알수록 정체가 궁금해지는 남자다.
“맞습니다. 물리적으로 방위군을 제거할 순 없으니 아니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피해가 막심하겠죠. 현실적으로는 저희를 철수시키려 할 겁니다. 저희를 철수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힘이 필요하고요.”
“낌새가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을 생각해 둘 필요는 있겠지요.”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위군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다면 그 시기는 내일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일 것입니다. 저희를 일찍 철수시키고 호텔을 습격할 수도 있겠지만 저 같으면 그러지 않을 겁니다.”
말을 멈추고 도밍게즈는 한규호의 생각을 물어보듯 쳐다보았다.
“공항으로 이동할 때를 노린다?”
“맞습니다. 굳이 보는 눈도 많고 습격하기도 힘든 이곳을 노릴 필요가 없죠. 저라면 여러분들이 아무런 경호 없이 공항으로 이동할 그 때를 노릴 겁니다. 특히 여러분에게 문제가 될 부분은 공항까지 이용할 교통편입니다. 차량을 구하기 힘들 겁니다”
“현상금이 걸렸으니까.”
“맞습니다. 거기다가 밉보이고 싶지 않겠죠. 이 도시의 지배자들 중 일부에게.”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냐고 묻지 않는 부분이 마음에 드는군요. 달러 뭉치를 흔들어대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목숨 값을 넘어서는 돈은 없으니까요. 저라면 그럴 겁니다. 아무튼, 방위군은 철수하고, 공항까지 가기 위한 차량은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신들을 해하
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차량을 보내겠군요.”
도밍게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량을 보낼 겁니다. 아니면 직접 오든지.”
“그리고 인원을 나누겠죠.”
도밍게즈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누굽니까? 당신은?”
“인류학 박사 노아 스즈키입니다.”
“집어치워요.”
한규호는 씩 웃었다.
“왜 인원을 나눈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밍게즈가 다시 물었다.
“살려서 돌려 보낼 사람과, 돌려 보내지 않을 사람을 구분하려고.”
한규호가 답했다.
도밍게즈의 생각과 동일한 답이었다.
***
3일차
JW 매리어트 카라카스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개인 택시라 할 수 있겠군요. 지금 막 도착했네요.”
차관은 한규호의 시선이 호텔 정문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한규호의 시선을 따라 몸을 돌려 정문으로 시선을 돌리자 짧은 머리의 건장한 남자 한 명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복을 입은 도밍게즈 소령이었다.
“가시죠.”
도밍게즈 소령이 호텔 로비로 들어와 한규호에게 말했다.
이글거리는 그의 눈은 산타나 차관에 고정되어 있었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3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