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80화 (81/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27) >

16년 전

라 그레시아(La Grecia)

안티오키아, 콜롬비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과 싸우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에 고용된 미국인 용병 로버트는 야간 경계를 위해 낮 동안 은신처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콜롬비아 정부군, 무장혁명군, 자신과 같은 용병, 그리고 마약 카르텔까지 모두가 이 지역을, 현지인들은 폐허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이 지역을 원했다. 안데스 산맥에서 보고타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이 지역은 물자와 돈과 사람과 마약이 움직일 때 꼭 거쳐야 하는 물

류 거점이었다.

최근에 자신이 속한 용병부대가 FARC로부터 이 지역을 탈환했지만, 언제 어디서 누가 이 언덕을 먹겠다고 또 덤벼들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로버트의 부대, 콜롬비아 정부에 고용된 용병부대의 공적을 가로채겠다고 콜롬비아 정부군이 공격해 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가능한 일이었고.

아무튼 로버트는 잠결에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을 때, 꿈인 줄 알았다. 어른들 소리도 아니고 아이들 소리가 들릴 만한 장소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 소리는 계속되었고, 그가 잠에서 깨어나서, 은신처에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뛰어 노는 두 명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로버트는 신기했다. 전장 한가운데를 뛰노는 어린아이들이라니.

“뭔데?”

옆자리에 누워있던 수염이 더부룩한 다른 용병이 로버트에게 물었다.

“애들.”

“애들? 네가 드디어 미쳤군.”

“봐봐.”

로버트가 말하자 동료도 은신처에서 머리를 빼고 밖을 보았다.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귀신인가?”

“대낮에?”

“우리 고향에서는 낮에도 귀신이 나온다고.”

수염 남자의 말에 로버트는 피식 웃었다.

“귀신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지.”

로버트는 자신의 M16A2를 꺼내 자신과 가까운 쪽에 서 있는 아이를 겨눴다. 두 팔을 허리에 얹고 앞에 서 있는 작은 아이에게 뭔가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와의 거리는 약 50m.

“쏠라고?”

동료가 말했다.

“뭐 겸사겸사.”

로버트는 사격연습을 겸한다는 생각으로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가 미군에 있을 때의 사격훈련까지 감안한다면 10만발은 넘게 발사한 총이었다. 거리는 50m, 고정된 목표, 빗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총알은 빗나갔다. 아니. 맞추긴 했는데, 로버트가 노린 목표가 아니었다.

“허. 정말 귀신인가?”

로버트는 두 눈을 껌뻑였다.

자신은 분명 그에게 가까이 있는 아이를 향해 총을 쐈는데, 그 아이 앞에 서 있는 작은 아이가 맞았다.

아니 맞은 것 같았다. 핏물이 터져 나가는 것이 보였는데, 아이는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뭐야? 안 맞았는데?”

옆에 서 있던 동료가 말했다.

“진짜..... 귀신인가?”

로버트는 총구를 내리지 않고 중얼거렸다.

그 순간 핏물을 쏟아낸 소녀가 허물어지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핏물이 터지고도 몇 초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맞았네?”

동료가 말했다.

“맞긴 맞았는데.....”

로버트가 말했다.

“가보자고. 뭔가 이상해.”

로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은신처에서 몸을 일으켰다.

***

라나는 힐베르타의 등에서 핏물이 터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행동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막내 동생을 붙잡고 있던 염동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힐베르타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에 놀라 라나가 힘을 풀자 힐베르타의 몸이 짚단처럼 땅에 쓰러졌다. 등에서 흘러내린 피가 땅을 천천히 적셨다.

라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울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뒤돌아 뛰지도 못했다. 그저 피 흘리며 쓰러진 막내 여동생의 모습을 보며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타앙.

라나가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무언가가 라나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어? 이상한데?”

라나의 뒤에서 성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나는 천천히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자신을 총구로 겨누고 있는 수염 난 남자와 그 옆에 서 있는 다른 남자를 보았다.

총을 보았음에도 라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지 못한 채로 여전히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을 향해 조금씩 걸어오는 남자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치? 이상하다니까?”

다른 남자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라나에게 총을 발사했다. 라나와 남자들과의 거리는 불과 30여 미터, 그런데도 총알은 맞질 않았다.

“뭐지 씨발? 진짜 귀신인가?”

로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에 총구를 붙이고 쏴보자고. 그래도 안 맞나.”

그렇게 말하고는 뚜벅뚜벅 걸어왔다.

“아니.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말했다.

“어떻게?”

로버트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한 발자국씩 걸어가면서, 누가 먼저 맞추나 어때?” “얼마?”

“100달러, 담배 한 박스, 보고타에서 위스키 한 병과 여자.”

“콜.”

그들은 라나를 앞에 두고 이런 잔인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나는 그들이 영어로 나누고 있는 대화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자. 내가 먼저.”

내기를 제안한 동료가 한 발자국 더 다가와 라나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총구가 불을 뿜었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충격파가 라나를 스쳐 지나갔다.

“씨발!”

남자가 외쳤다.

“아싸! 그럼 이번에는 나.”

라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중심으로 총성과 화연과 충격파가 가득했는데, 마치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지금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이 전혀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뚜루루. 자. 나는 몸을 노린다. 가슴 한 복판!”

로버트가 한 발자국 더 걸어와 무릎을 꿇었다. 보폭을 크게 잡아서 라나와의 거리는 25m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자. 준비하시고.”

로버트가 호흡을 멈추었다. 100달러와 담배 한 박스와 보고타에서 위스키 한 병, 그리고 끝내주는 콜롬비아 창녀와의 하룻밤이 달린 귀중한 한 발이다.

“쏩니다!”

그 순간 로버트의 오른팔이 떨어져 나갔다. 오른팔이 마치 인형의 팔이 날아가는 것처럼 어깻죽지 부분에서 끊어지며 멀리 날아갔다.

너무 찰나에 벌어진 상황에 로버트는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끊어진 어깨를 통해 분수처럼 뿜어 나오는 피의 움직임을 보고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크으아아아아아아아악!”

어깨가 끊어진 로버트는 고통에 의해 이성을 찾았고, 이성에 의해 행동력을 회복했다. 그는 왼 손으로 끊어진 어깨를 감싸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왼팔도 날아갔다.

한 발 뒤에 서 있는 수염 난 동료는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총을 못 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25미터면 못 맞추기도 쉽지 않은 거리라 내기에서 지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총에 맞은 소녀가 아니라 로버트의 팔들이 날아가는 모

습이었다. 그는 재빠르게 총을 던지고 몸을 뒤로 돌려 뛰었다.

생각하기 전에 행동하는 용병으로서의 본능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채 다섯 걸음을 뛰기도 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중심을 잃은 그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리고 다리 쪽에 불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의 두 다리가 무릎 아래에

서 찢겨져 나가 있었다.

수염 난 남자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자신과 로버트를 이렇게 만든 귀신을 바라보았다.

귀신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면서, 처음과 같은 눈으로,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3일차

CIA 국장 전용기

랭리 공군기지 서측 100마일 상공, 버지니아 州

“100 마일 남았습니다.”

정보비서관이 밀러 국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22시 40분에 루이스 맥코드 합동기지 활주로에서 이륙한 CIA 국장 전용기는 3시간 40분 동안 미국 영토를 관통해 버지니아 주 랭리 공군기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약 100마일(160km) 정도가 남아 있었다. 대략 15분 후면 착륙할 예정이었다.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비서관은 밀러의 고갯짓을 본 후 자신의 자리로 가 앉은 다음 안전벨트를 채웠다.

밀러 국장은 거의 24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여전히 무뎌지지 않았다. 기프티드에 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의 정신은 날카로운 칼처럼 날이 서고 있었다.

(어머. 참 진짜 무슨 농담을 못해요. 그냥 하는 말이에요. 아니. 위험하기는 하지. 사람이 그렇게 죽어나가는 곳에 딸을 보낸 내 마음은 어떤지 알기나 하는지. 참나.)

몇 시간 전,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도버 아메리칸 인슈어런스의 경영감사 부사장인 신시아 챔버(Cynthia Chamber), 그리고 CIA 기프티드 전담 요원이 했던 말을.

그녀는 자신의 양녀를 베네수엘라로 보낸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어떤지 알기나 하냐고? 당연히 모른다. 밀러는 양녀는커녕 친딸도 없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미국이 보유한 두 명의 기프티드 중 한명인 앤 챔버, 코드명 빌릿(Billet)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앤 챔버, 미국이 확보하기 전에 라나 아마도르(Lana Amador)라고 불리던 소녀를 미국이 확보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아니, 행운이었다.

16년 전, 군사 코디네이터 역할로 콜롬비아에 위장 잠입해 있던 CIA 요원 중 한 명이 안티오키아 주(州)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전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고지 중 한 곳에서 한 명의 어린 소녀는 총에 맞아 죽어 있고, 다른 한 명의 소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온 몸이 찢겨진, 말 그대로 종이처럼 온 몸이 찢겨나간 남자의 시신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그는 그 장소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소녀를 확보한 후, 은밀히 미국으로 이송한다. 자세한 보고서와 함께.

바로 그 부분이 행운이었다. 매일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용병 둘의 죽음과 현지인 소녀의 죽음 같은 것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콜롬비아에서, 마침 그곳에 파견된 요원이 그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아이를 확보했다는 부분이 행운이었다.

두 번째 행운도 이어졌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CIA와 FBI는 세간에 떠도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을 추적하거나 조사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지는 않는다. 물론 신경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은밀한 비밀을 전담하는 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임 CIA 국장이었던 그가 우연히 그 보고서를 보게 된 것이고, 국장 인수인계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 ‘기프티드’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 미국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행운이었다.

밀러 국장은 은밀하게 아이를 만나러 갔다. 아이는 미국으로 이송된 지 몇 주가 지났지만 아동복지병원 중 한 곳에 방치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누워있는 아이를 보면서 밀러는 이 아이가 진짜 기프티드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기프티드임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대상자가 조건을 충족시키면 능력이 발현되고 자연히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그것.

발현조건, 일명 트리거, 국장 자리에 오르자 열람이 허락된 문서 중 OSS가 작성한 1930년대 유랑극단원, 일명 케이스 원(Case One). 케이스 원의 발현조건은 둘째 딸의 탄생이었다.

케이스 원을 포함해 미국이 알고 있는 기프티드에 대한 정보는 다섯 건, 그 중에 네 명은 사망하고 오직 한 명만이 미국 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케이스의 유일한 공통 특징 하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무엇이었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밀러 국장은 아이에게 물었다. 너의 능력은 무엇이지? 발현조건이 무엇이지? 언제부터 능력이 발현되었는지를 전부 포괄하는 질문이었다. 오직 머릿속에 문장이 떠오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밀러 국장의 질문에, 이 병원에 오고 나서 단 한 번도 초점을 찾지 못했던 아이의 눈이 처음으로 움직여 밀러국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아이가 기프티드라는 것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파악한 6번째 기프티드 라나 아마도르, 그녀의 다른 이름 앤 챔버.

태중에서 모체를 통해 일정량의 코카인 성분을 흡수한 후 5살 생일에 능력이 발현되는 이 기프티드는 의지만으로 물체를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염동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염동력은 단순히 물체를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염동력은 그녀를 ‘완전 보호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위험한 곳이라고?

그것에서 그녀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2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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