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3 : La Mancha Negra (14) >
2일차
CIA 위장기업 Dover American Insurance Co.
시애틀, 워싱턴 주, 미국
CIA의 밀러 국장은 28층의 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층 전체가 보안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었고, 그 층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경영감사 부문 부사장의 집무실이었다.
위장기업 도버 아메리칸 인슈어런스의 경영감사 부사장실은 미국 전역에 있는 CIA 국장의 비밀 사무실 중 하나였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규호가 기프티드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생각에 국장은 잠시 흥분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머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기프티드임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증거들이 그가 기프티드일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확신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더 필요했다. 예를 들어 기프티드의 발현조건이라든가.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상황실에서 그의 옆에 서 있던 작전 팀장이 보고서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1차 작전이 끝난 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분석팀이 1차 작전이 끝나자마자 달려들어 빠르게 분석을 해서 정리했을 것이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팀장이 보고서 한 부를 국장 앞에 놓으며 말했다. 보고서 표지에는 ‘베네수엘라 제 5 방위군 대응 태세 점검 및 분석’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우선 베네수엘라 제 5 방위군의 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팀장이 표지를 넘기며 말했다.
그러나 밀러 국장은 방위군의 편제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저격은?”
국장이 말을 끊었다.
“네?”
“저격 위치, 목표, 저격수의 정체, 의뢰인은 알아냈나?”
팀장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아직입니다.”
작전은 일단 성공했다. 베네수엘라 주 방위군의 대응태세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은 이루어냈다. 하지만 작전의 성공여부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알 수 없는 저격이 발생한 것이다.
만약 어디선가 정보가 샜고, 그 정보를 입수한 누군가가 미국의 작전을 이용해, 그 작전에 편승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 상황이라면 문제가 커진다. 보안 문제가 생긴 작전 성공보다는 보안 이상 없는 작전 실패가 더 낫다.
“엘 프로페서와의 컨택은 어떻게 진행했나?”
국장이 물었다.
“남미에서 작전을 할 때 현지에 코디네이터 역할로 심어놓은 조직이 있습니다. 통상 절차에 따라 이번에도 그 루트를 이용했습니다.”
“오염됐을 가능성은?”
“절차에 따라 주기적으로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만 가능성이 제로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교체하도록.”
국장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삼두사와의 접촉은?”
“트리니다드 토바고 국적 위장기업 캐리비언 페트롤륨(Caribbean Petroleum)을 통해 진행됐습니다.”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례히 사용하는 통상적인 방법이다. 미국 영토 밖에 위치한 나라의 위장기업을 통해 더러운 일들을 처리한다. 범죄조직에 범죄를 의뢰하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이야기 해보지. 누굴 노렸다고 생각하나?”
국장이 물었다. 표면적으로 이번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한 책임자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 작전팀장이다. 그런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저격을 의뢰한 사람이 누구를 노렸나고 물었다.
물론 작전팀장은 그걸 알 길이 없었지만 이런 질문이 나올 것으로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장이 상황실을 나선 그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열심히 머리를 굴려 답변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국장의 질문에 모른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크게 두 가지로 예상됩니다. 그레이스 박사 일행을 노렸거나, 아니면 베네수엘라 정부 요인, 산타나 차관이 목표이거나. 먼저 저격을 그레이스 박사 일행을 노린 것으로 가정한다면 그들이 우리의 작전을 사전에 알고, 그래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활용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상황은 최악입니다. 정보가 샜다는 의미가 되니까. 정보가 샜다면 우리 쪽에서 샜는지, 아니면 현지에서 샜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우리 쪽에서 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작 이렇게 쓰기엔 아깝다?”
“맞습니다. 우리 쪽에서 정보를 얻었다면, 정보를 캐낼 라인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작은 일에 그 사실을 노출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레이스 박사 일행은 그 정도의 가치는 없습니다.”
국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작전 팀장은 모르고 있지만 그레이스 박사 일행 중 두 명은 CIA에 심어놓은 파이프 노출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현지 쪽에서 정보가 샜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디네이터나, 위장기업, 그리고 거기에 연관된 수많은 레이어(Layer)들을 털어보면 정보가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곧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그레이스 박사 일행을 저격함으로써 사주한 세력이 어떠한 실익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현재 표면적으로 아무런 실익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베네수엘라 정부 요원을, 특정하면 산타나 차관을 노렸을 경우가 지금으로써는 가장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크리스탈 카스티요 산타나, 일명 ‘바리오의 어머니’를 노리는 적은 많습니다. 바리오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활동하는 범죄조직, 또는 그녀의 높은 인기와 빠른 성장에 위협을 느끼는 정치인. 어쩌면 그 둘 모두의 이익이 일치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장은 산타나 차관을 떠올렸다.
바리오의 어머니(Madre del Barrio)라는 별명을 가진 산타나 차관은 베네수엘라 여성연구센터(Centro de Estudios de la Mujer)의 전직 센터장이며, 빈민가인 바리오에서 빈민운동, 여성운동을 통해 다진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정계에 진출한 인물이었다.
그녀가 추진하고 있는 ‘빈민가의 어머니들(Madres del Barrio)’ 정책, 즉 바리오 여성들의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돕는 정책은 바리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카르텔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어머니들의 의식이 깨어나면 자식들을 보호하려 할 것이고, 이는 카르텔의 세력 축소로 연결 될 수 있으니까.
카르텔의 가장 큰 자산은 가난이었다. 가난한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이 그들의 중요 무기이며 방패였다. 그런 그들에게 산타나 차관의 활동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존 정치인들도 그녀의 등장과 성장에 위협을 느꼈다. 최근 그녀를 모델로 한 텔레노벨라(TV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차관의 인기가 더 올라간 것도 기존 정치세력에게는 기분 나쁜 일이었을 것이다.
“산타나 차관을 노렸다고 가정할 때, 왜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인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현재로서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작전팀장은 보고를 끝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두 시간동안 최대한 머리를 굴려 만들어낸 답변치고는 나쁘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물론 그의 평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보고서를 제출하게.”
국장이 팀장에게 말했다.
“삼두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지.”
국장이 주제를 바꿨다. 팀장은 준비하고 있었다.
“머리가 세 개인 뱀. Serpiente de Tres Cabezas라는 이름의 이 범죄 조직은 카라카스를 중심으로 성장한 3개의 범죄조직의 연합체입니다. 우선 푸에르토 카르텔(La Pureto Cartel)입니다. 카라카스 북부의 라과이라(La Guaira) 항만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라 푸에르토(La Puerto : the port)가 북부 지역 군소 조직들을 통합해 만들어낸 카르텔입니다. 항만과 공항, 관세국 등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불법적인 물품들을 반입 및 반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NVOCC(무선박 해운운송회사)를 매입해 그 규모를 확대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장은 레니 페레아(Leni Perea), 속칭 푸에르토, 올해 43세입니다.”
“젊군.”
“그의 삼촌이 카르텔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삼촌이 죽고 그 뒤를 이어 받았습니다.”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은 카라카스 서부 바리오를 중심으로 성장한 카바예로 카르텔(Caballero Cartel)입니다. 수장은 티노 토로(Tino Toro), 일명 더블 티입니다. 전통적 빈촌인 서부 바리오에서 난립하던 수많은 조직을 하나로 통일시킨 후 서부 전역을 통제하는 조직으로 상장했습니다.”
“군소 조직을 하나로 통일했다?”
“티노 토르, 49세. 일명 더블 티는 90년도 후반에 카라카스 중앙 자치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서부 바리오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던 빈민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베네수엘라 연방 정부기록에 따르면 놀라운 언변과 카리스마 덕분에 그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였고, 곧 정치세력화 하면서 주정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주정부는 그를 제거하려 했고, 이는 물리적인 제거를 의미합니다. 그는 서부 바리오의 빈민촌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을 때는 그를 따르는 충성스런 빈민출신 병사들을 가진 카르텔의 수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사(騎士)를 의미하는 카바예로 카르텔은 습격, 납치, 청부 살해 등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력을 담당하겠군.”
“이번의 오토바이 습격도 그들이 담당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생각된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은 엘 오로(El oro) 카르텔입니다. 카라카스 동부의 상업중심지를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저희 측 분류에 따르면 금융 마피아(Financial Mafia)입니다. 석유자본에 깊숙하게 침투해있고, 금융, 사채, 주식과 선물옵션 조작, 환치기 등 자본과 금융 관련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은 다 하는 집단입니다. 수장은.”
(오르테스 마르코스 라미레즈)
국장이 속으로 그 이름을 말했다.
“오르테스 마르코스 라미레즈(Orestes Marcos Ramirez)입니다. 일명 황금을 의미하는 El Oro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밀러 국장도 알고 있는 남자였다.
예일대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투자은행 러셀 앤 컴퍼니의 최연소 디렉터 자리에 올랐던 남자. 그리고 지금은 경제위기하의 베네수엘라에서 유일하게 금융으로 이익을 올리고 있는 자본주의 괴물.
“그렇게 셋이 모여 삼두사를 이루었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각각 무역과 물류, 인력과 무력, 그리고 자본과 정치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상적이군.”
기업으로 치면 이상적인 협업형태이다. 각각의 다른 분야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보며 하나의 기업을 구축한다. 1+1+1이 3이 아니라 5, 6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차관의 정적(政敵)은 누가 있지?”
차관을 노릴만한 정치적인 라이벌에 대해서 국장이 물었다.
팀장은 어떻게 대답할까 잠시 고민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산타나 차관을 노릴 만한 사람이 누가 있냐고?
대통령부터 여성부 말단 직원까지 모두가 다 후보가 될 수 있다.
“리스트를 추리겠습니다.”
밀러 국장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았지만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정도로 넘어가도 된다. 추가적으로 알아야 될 사항이 있으면 보고가 들어올 것이다. 국장 자리란 그런 것이다. 그가 알아야 할 것들은 다 알게 된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된다.
국장은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시간부로 1차 작전에 참가한 요원들은 모두 대기,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든 작전에서, 아니 일반적인 행정업무를 포함해 모든 업무에서 전부 제외시키도록. 자네를 포함해서.”
“알겠습니다.”
팀장이 말했다. 예상한 결과였다.
***
2일차
앰베서더 스위트 호텔 카라카스(Ambassador Suites Hotel Caracas)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그레이스 박사 일행이 있는 JW 매리어트 호텔에서 북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앰베서더 스위트 호텔 카라카스 17층에 위치한 라운지 클럽 입구는 몇몇 험상궂은 사람들로 막혀 있었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답지 않게 고급 양복을 차려 입은 남자들은 각자의 손에 경기관총을 든 채로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단 하나였다.
라운지 안에 있는 귀한 분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라운지 안에 있는 그 사람들을 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온 몸을 문신으로 도배하고, 도배한 몸에 고급 양복을 두르고, 래이밴에서 나온 1000달러짜리 한정판 선글라스를 똑같이 맞춰 쓴 남자들은 라운지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경호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베르만이었다. 갱스터들이 본래의 용도인 사냥 용도 보다 주인의 품격을 높여주는 과시용 도베르만 핀셔(Doberman Pinscher)처럼 주인들을 높이기 위해 비싼 옷으로 몸을 감싼 과시용 사냥개 들이었다.
과시용이라고 해도 그들은 사냥개였다. 사냥개들은 무서운 표정으로 라운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개 이빨의 무서움을 아는 호텔 직원들은 17층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라운지 클럽 한가운데 위치한 삼각형의 테이블, 경제 위기 이전에 이 라운지가 카라카스의 밤문화를 대표하던 시절, 돈 있는 사람들은 이 삼각형의 테이블, 일명 트라이앵글을 차지하기 위해 2만 달러의 샴페인 세트를 주문했어야 했다. 한때 돈과 샴페인과 여자들로 넘쳐나던 VIP 테이블을 단 세 명의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삼두사,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와 그 주변 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이 삼각형의 각 변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거 우습게 보이는 거 아닌가?”
꽁지머리를 한 남자가 말했다. 삼두사를 이루는 머리 중 하나인 라 푸에르토 카르텔의 수장 레니 페레아, 별칭 푸에르토가 눈앞에 있는 민머리 남자에게 말했다.
기형적인 문신이 뒤덮인 민머리에 선글라스, 그리고 터질 것 같은 근육을 가진 남자. 카라카스 서부의 바리오를 지배하는 카바예로 카르텔의 티노 토로, 일명 더블 티는 자신을 향하는 북부 카르텔의 수장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새끼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파고 있었다.
“위협을 주라고 했는데, 겨우 이 정도로는 우릴 별 것 아닌 놈들이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되는데,”
푸에르토는 그런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계속 투덜거렸다.
더블 티는 귀를 파던 새끼손가락을 꺼내 후 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죽이지 말라고 했으니까. 이정도면 딱 적당해”
그 말에 푸에르토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푸에르토가 말했다.
“알아. 무슨 말인지. 하지만 이 정도면 미국에서 오신 귀한 손님들이 바지에 오줌 좀 지리게 하기엔 충분해”
더블 티가 두 팔을 소파에 걸치면서 푸에르토에게 말했다.
“그리고 우습게 알라고 하지 뭐. 그러면 잡아다가 고속도로에서 예수님 체험을 시켜주면 되니까.”
베네수엘라 아동복지 재단의 무리요 레온의 시신을 고속도로 표지판 위에 걸어놓은 당사자가 더블 티였다.
“기분 나빠하진 말았으면 좋겠어. 나는 그냥 우리가 우습게 보일까봐.”
푸에르토가 더블 티에게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알아. 무슨 말인지. 그런 말을 해주는 게 형제의 의무지. 고맙게 생각한다고.”
더블 티는 푸에르토의 사과를 받아주기로 했다.
삼두사가 결성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자웅을 겨루어야 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내부 결속이 중요한 단계다. 최근 들어서야 슬슬 삼두사라는 이름 아래 호흡이 맞아가고 있는데,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다른 한 남자.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마피아보다는 대학 강사가 어울릴 것 같은 말끔한 모습의 남자가 둘을 보고 싱긋 웃었다.
“두 형제의 모습을 보니 참 좋군요.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서로 싸우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말이죠.”
그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삼두사를 만들자고 처음 제의한 남자, 황금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엘 오로가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뭐. 우선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푸에르토 형제가 물건을 구해오고, 더블 티 형제가 사람들을 동원하고. 어찌되었건 의뢰인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었으니 그 쪽에서도 불만은 없겠죠.”
“잔금이 언제 들어온다 했지?”
푸에르토가 물었다.
“이번 주 안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약속대로 필요 경비를 제외하고 4대 4대 2로 배분하도록 하지요.”
엘 오로가 2를, 나머지 둘이 4씩 가져간다. 엘 오로의 지금과 같은 양보로 삼두사는 돈과 관련해서 쓸데없는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
비단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삼두사는 범죄 조직의 연합체치고 사이가 좋았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한다. 범죄조직의 연합과 성장이라는 과목이 있다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훌륭한 모델을 삼두사는 만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교과서 2장에 나올 범죄조직의 해체 부분에 가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언젠가는 세 개의 머리 중 한 개의 머리만 남을 때가 온다. 한 몸을 이룬 세 개의 머리는 각각 다른 생각들을 하면서 언젠가 올 그 때를 위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뭐. 고마운 마음이 드는군. 항상 엘 오로 형제가 양보를 해주니.”
푸에르토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괜찮습니다. 다음에는 형제들이 양보할 일이 있겠지요.”
엘 오로가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은 대답 없이 그저 서로를 바라만 보았다.
“그나저나. 이러면 이제 끝인가?”
푸에르토가 물었다.
“더블 티 형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이라고 한 것 아닌가요?”
엘 오로가 더블 티를 바라보았다.
“형제들의 의견을 묻고 싶어서 말이지. 의뢰는 끝났다고 해도, 내 입장에서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서.”
더블 티가 다른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1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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