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3 : La Mancha Negra (13) >
2일차
JW 매리어트 카라카스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앤 챔버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제 공항에 도착하고 아직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일주일은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스즈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일 바로 귀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방안에 있던 누구도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앤 챔버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안심하는 자신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일주일 동안 이 도시에서, 이 호텔에서 지냈을 것이고 만약 아무 일이 없었다면 이 안락한 5성급 호텔에 정을 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레이스 박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녀가 이번 방문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앤 챔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단 하나의 결실도 거두지 못하고 내일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지금 상황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즈키, 아니,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내일 당장 떠난다고 말했을 때, 그레이스 박사도 나처럼 내심 안도감을 느꼈을까? 그래서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일까?
이곳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했다. 호텔은 방위군이 지키고 있고, 그들을 위협하는 범죄자들이 아무리 세력이 강하다고 해도 군대와 직접적으로 충돌할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다고 차관이 말했다.
제발 그렇기를 바랬다.
앤 챔버. 그녀는 떠나고 싶었다. 어서 빨리. 그녀의 집이 있는 머다이나(Medina)로 돌아가고 싶었다. 에버그린 포인트가와 워싱턴 호수 사이에 위치한 챔버가(家)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앤 챔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 방문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이, 그녀에게 부여된 임무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무부에 들어가서 처음 맡은 일이고, 임무였다. 첫 번째 임무가 이렇게 힘들다니!
앤 챔버는 침대 위에 놓여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만지작거리다 전화번호부를 스크롤해 원하는 이름을 찾아 낸 다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주 짧은 신호음이 울린 후 상대방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향해 흘러나왔다.
(우리 딸! 괜찮아?)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앤 챔버는 그 목소리를 듣자 잠시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여보세요? 앤? 앤?)
상대방이 앤 챔버를 불렀다. 앤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그 상태로 깊게 심호흡을 한 다음 말했다.
“네. 괜찮아요.”
(그래. 우리 딸. 엄마가 걱정되는구나. 괜찮은 거 맞니?)
양어머니의 자상한 목소리에는 걱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네. 전....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다. 나는 걱정이 되어서 한숨도 못자겠어. 우리 딸이 그 위험한 나라에 가서 얼마나 고생할까 하는 생각에 말이지.)
앤 챔버는 그저 말없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양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머. 나 좀 봐라. 너무 내 이야기만 했나보네. 그래. 우리 사랑하는 앤. 거기는 어때? 별 일 없었니?)
앤 챔버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 어제 이 시간 즈음에 공항에 도착했어요...”
앤 챔버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레이스 박사는 내일 떠난다는 스즈키의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서 안도감이 들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인간적으로 당연한 감정이라고, 오늘 오전 경험했던 끔찍한 일들을 생각한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가슴 한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자기혐오는 점점 그 형태를 분명하게 드러냈고 쉬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그레이스 박사를 괴롭혔다.
이번 방문을 위해 그녀가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공을 들인 이유가 그레이스 본인을 위해서였던가?
아니다. 그녀는 수녀는 아니었지만 평생을 남미의 고통 받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그 스스로에게 서원(誓願: 가톨릭용어 하느님에게 어떤 선행이나, 또는 헌물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행위)했다. 자신과 같은 핏줄을 타고 태어난 가난한 라티노들을 위해서 학자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그녀는 맹
세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공부하고, 남미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싸워가며 지금 이 자리에 올랐다. 이제야 그녀가 내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비판했다. 현실을 모르고 이상에 함몰됐다고. 남미와의 환경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의 룰과 스탠다드를 무리하게 적용한다고 그녀를 비판했다.
비난도 있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라티노를 이용한다고. 가장 만만하고, 또한 이야기하기 쉬운 주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라는 비난도 그녀는 받아 왔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고개를 저어 왔다. 아니다. 나는 그런 세속적인 것들을 위해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 때문에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아이도 없이 일주일에 70시간 이상 연구와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길 몇 번 반복했다. 이제는 마음이 거의 진정된 것 같았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얼마나 힘들게 얻은 기회인데, 이번에 베네수엘라를 이대로 떠나면 언제 이곳에 다시 올 지 기약할 수 없다. 이렇게 떠날 수는 없다. 방법을,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스즈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부터 상황을 통제하겠다고 말하던 그의 단호한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 미국 국무부로부터 소개받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스무 마디나 말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과묵한 남자. 군인이거나, 스파이거나, 아무튼 이번 방문의 중요성은 하나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의 임무만을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는 그레이스 박사를 도울 수도 없고, 돕
지도 않을 것이다.
(내일 바로 출국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공항으로 떠나기 전까지 호텔 밖으로, 아니 이 층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딱딱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던 그의 표정이 떠오르자 그레이스 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면 처음 저격도, 그 다음의 습격도 별 것 아니었는데, 그 남자가 유난을 떨어서 더 일이 커진 것일지도 몰라. 미국 정부의 명령을 받았을까? 최대한 빨리 데려오라고?
(이제부터 상황은 제가 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이번 방문의 목적을 모른다. 그 중요성을 모른다. 그저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개처럼 명령을 수행할 뿐 이번 방문이 남미의 고통 받는 여성과 학대받는 아동들의 인권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전환점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충실하게 명령만 따르는 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레이스 박사는 마음을 먹었다. 이대로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방문의 주체는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강조하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
아고스토는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일행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자 아고스토는 피 묻고 찢어진 제냐 양복을 벗어 던지고는 샤워를 한 다음 침대에 누워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침대에 눕자 자연히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이 생각난 것이다.
저격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만 보호받지 못했다. 스즈키, 그 망할 놈의 잽이 자신만 빼놓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자신만 경호받지 못한 것이다.
도밍게즈. 그 자식이 거칠게 태클하는 바람에 비싼 제냐 양복이 찢어졌다. 피야 닦아낸다고 해도, 찢어진 양복을 어떻게 수선할 것인가. 그것도 그냥 양복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원단을 고른 제냐다. 도밍게즈 저 무식한 군인이 일 년간 월급을 모아도 살 수 없을 비싼 양복을 찢어 놨다.
생각하니 다시 화가 치솟았다.
감히 나를. 이번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나를 감히 천박한 놈들이....
아고스토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소송을 걸 것이다. 미국에 돌아가자마자 소송을 걸어서 이 울분을 풀어낼 것이다. 국무부, 베네수엘라 정부, 스즈키, 그레이스 박사 아니면 그 멍청하게 그레이스 박사만 졸졸 따라다니는 앤 챔버든 누구든 상관없이 소송을 걸어서 괴롭힐 것이다.
이번 방문에 아고스토는 미-베네수엘라 협력재단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런 그를 홀대한 것은 재단은 물론, 미국 내 있는 모든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홀대한 것이다. 또한 미국시민을 무시한 처사이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아고스토는 맹세했다.
딩동
그 순간 그의 객실 초인종이 울렸다. 아고스토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 가운을 걸치고 문에 달린 방범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레이스 박사였다. 아고스토는 문을 조금 열며 말했다.
“어쩐 일이오.”
아고스토의 말투는 차가웠다. 그는 화가 나 있었고,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레이스 박사가 말했다.
아고스토는 잠시 주저했다. 이 여자가 왜? 이미 다 끝난 상황인데? 포럼은 취소됐고, 그들은 위협받고 있고, 지금까지 그들을 감쪽같이 속여 온 노란원숭이는 내일 귀국하겠다고 선포까지 한 상황에서 그레이스 박사가, 알게 모르게 그를 무시해온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들어오시오.”
아고스토가 그레이스 박사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문을 열며 한 발자국 비켜섰다. 그러자 그레이스 박사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아고스토의 객실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거실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어쩐 일이오?”
아고스토가 마실 것 하나 내놓지 않고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그를 보고 그레이스 박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평소였다면 절대로 같이 의논을 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폰(Pawn : 체스에서 사용하는 말, 장기의 졸(卒)에 해당)이라도 써먹어야 하
니까.
“도와주세요. 이사님.”
아고스토는 갑작스런 그레이스 박사의 말에 순간 화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을 그저 바지사장처럼 대해 놓고서 이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그녀의 뻔뻔함에.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줍니까?”
아고스토는 몸을 뒤로 젖히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레이스 박사가 말했다.
“안 돌아가면?”
“이사님은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하지 않나요?”
그레이스가 말했다. 그레이스는 아고스토의 방문을 두드리기 이전에 어떻게 말을 꺼낼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의 욕망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철학자에게는 철학자의 대화가, 돼지에게는 돼지의 대화가 필요한 법이다.
“.......”
아고스토는 직선으로 찔러오는 그레이스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저도, 그리고 아고스토 이사님도 실패를 짊어지고 돌아가게 되요. 저야 학계에 있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아고스토 이사님은 큰일을.... 앞으로 의회에 진출하셔서 미국 내 라티노 커뮤니티를 위해 큰일을 하실 분이신데, 이대로 돌아가면 경력에 오점을 남길 수 밖에 없어요.”
그레이스는 돼지의 대화로 그를 대했다.
“어쩌란 말....입니까. 지금 밖에는 우리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갱스터들이 가득한데. 더군다나 베네수엘라 정부도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이렇게 호텔에 감금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고스토의 말투가 예의와 격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포럼이 예정대로 진행됐으면.”
그레이스는 떡밥을 더 풀기로 했다.
“포럼 결과를 가지고 뉴욕에서 발표할 생각이었어요. 유엔 인권위원회에 상정하고, 나중에 본회의장에서 발표할 계획이었어요. 이미 유엔과 이야기가 다 끝나있었어요. 바티칸에서도 지지성명을 내기로 되어 있었죠.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물론 아고스토는 알 수 있었다. UN 본회의장. 그곳에서 그녀가 베네수엘라에서 만연한 인신매매의 현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발표를 한다면, 전 세계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전 세계 언론이 그녀의 이름을 방송에, 신문에, 잡지에 올려놓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포럼은 이미 취소되어버렸는데.”
아고스토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날 더러 어쩌라고.
“이사님.”
그레이스가 아고스토를 간절한 눈으로 보면서 말했다. “베네수엘라에 인맥이 있으시죠?”
그 말에 아고스토는 그레이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가득 담긴 간절함이 보였다.
“제... 네트워크가 있기는 하지만....”
아고스토는 순간 거짓말을 했다. 사실 그가 가진 인적 네트워크라는 것은 별 대단할 것이 없었다. 불법 이민자 출신으로, 중고차 사업으로 조금 돈을 만진 그가 가진 인맥이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지역 카톨릭 교회 레지오 모임, 라티노 커뮤니티의 지역 위원회, 베네수엘라 출신 사람들로 만들어진 볼링 모임 정도였다.
“인터뷰. 인터뷰 하나만 하면 되요.”
“인터뷰?”
“네. 이사님 인맥을 동원해서, 인터뷰 대상 하나를 찾아주세요. 가족 중 누군가가 인신매매 당했거나, 적어도 실종된 사람을. 엄마들은 안 돼요. 너무 감정적이 되니까. 어린아이, 기왕이면 여자애가 좋아요. 그런 아이를 한명 찾아주세요. 그리고 여기에서, 안전한 이 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영상으로 찍는 거예요.”
“그... 그런데, 그 스즈키인가 하는 놈이 내일 떠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그 부분도..”
“저와 이사님이 반대하면 그 남자도 어쩔 수 없어요. 그는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기계에 불과해요. 앤 챔버도 우리 쪽에 설 거예요. 그녀에게도 실적이 중요하니까. 우리 셋이 반대하면 그도 어쩔 수 없어요.”
“베네수엘라 정부도... 그들도 설득해야 하는데. 장관의 태도를 봐서는.”
그레이스는 짜증이 났다. 욕심과 의심은 많고 용기는 없는 멍청이 같으니!
그레이스는 아고스토의 손을 잡았다.
“이사님.”
아고스토는 그레이스가 자신의 손을 잡자 순간 움찔했다.
“우리가 촬영한 인터뷰는 유엔 본회의에서 상영될 거에요. 본 회의장에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그 영상이 상영되면 그곳에 모인 모든 유엔대사들이, 유엔 직원들이, 미국 정치인들이, 신문과 방송국에서 온 기자들이 작은 소녀가 사라져버린 언니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는 영상을 볼거에요. 그리고 영상이 끝나면 다시 본 회의장
에 불이 켜지겠죠? 불이 켜지면 스크린을 향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발언대로 향할거에요. 유엔대사, 직원, 정치인들, 로비스트, 언론, 카메라 모두가 발언대로 옮겨저, 거기에 서 있는 ‘우리’를 볼거에요. 남미의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베네수엘라를 다녀온 미-베네수엘라 협력재단의 펠릭
스 아고스토 이사와 저를 말이죠.”
아고스토는 그 모습을 상상했다. 뉴욕에 있는 UN 본회의장. 그곳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전 세계에서 참석한 유엔 대사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그 모습을.
(인권은 단순한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순간적으로 연설문의 일부도 떠올랐다.
자신이 말을 마치면 모두 기립해서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는 유엔 대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전 세계에 동시 방영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뒤로 캐피틀 힐에 위치한 의회의사당에 당당히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도 얼핏 보이는 듯 했다.
“아는 기자가 있어요.”
아고스토가 말했다.
같은 성당에 다니는 술 친구 중 한명의 사촌이 카라카스에서 기자일을 한다고 했다. 몇 년 전에 그가 미국으로 여행을 올 때, 아고스토가 신원 보증을 섰었다.
그래. 기자가 있다.
그를 하원의원으로 만들어 줄 기자가 있었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1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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