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3 : La Mancha Negra (11) >
2일차
우르다네타 애비뉴(Avenida Urdaneta)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플라자 라파엘 우르다네타(Plaza Rafael Urdaneta) 우측 골목에 숨어서 파비아노(Fabiano)는 왼손에 든 MAC-11 기관단총을 살펴보고 있었다.
카라카스 서부 바리오 중 하나인 바리오 엘 암파로(Barrio el Amparo) 출신인 파비아노는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관총의 총열을 검지로 문지르며 며칠 전 밤을 떠올렸다.
15년 그의 인생에서 처음 찾아온 행운이 찾아온 그날 밤을.
며칠 전 밤. 카르텔의 지역 간부가 그의 허름한 방, 방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파비아노가 몸을 누이고 잠을 자는 공간에 파비아노를 찾아왔다.
“축하한다. 너도 이제 정식 조직원이 되었다.”
정식 조직원. 평생을 바리오에서 살아온 빈민가 15살 소년이 꿀 수 있는 유일한 꿈. 가장 현실적인 꿈.
정식 조직원이 되면 따로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조직에서 생활지원금이 나왔다.
지원금이라고 해도 파비아노의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아주 적은 돈이었지만 빈민가의 15살 소년은 몸 파는 것 이외에는 그만큼의 돈을 만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니, 경제위기가 찾아온 지금 시기에 몸을 팔아도 그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정식 조직원이 되면 지원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라왔다.
조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의 큰 형도, 둘째 형도 그보다 어렸던 시절 어이없는 일로 죽음을 맞이했다. 바로 위의 형은 정식 조직원이 되기 바로 직전에서 별 것 아닌 시비로 촉발된 싸움에서 칼을 맞고 죽었다.
그런데 그가 정식조직원이 된다면, 카라카스 서부를 지배하는 카바예로 카르텔(Caballero Cartel)의 정식 조직원이 된다면, 이제 카르텔 조직원이 아닌 이상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게 된다.
아니,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조직에 충성하고, 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는다면, 직위가 계속 올라갈 것이고, 그에 따른 부와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축하한다고 손을 내미는 지역 간부 시리오(Sirio)도 파비아노처럼 형은 죽고, 여동생은 몸을 파는 편모가정의 생계를 걱정하던 소년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총을 가지고 있고, 독채로 된 집을 가지고 있고, 차를 가지고 있고, 그의 수발을 들어주는 수많은 똘마니와 그의 침대를 덥혀줄 여자들이 있다.
“파비. 아직도 네 형이 꿈에 나온다.”
파비아노의 지저분한 침대에 걸터앉은 시리오가 파비아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말했다.
시리오는 파비아노의 첫 번째 형과 친구사이였다고 했다.
7살이던 그의 첫 번째 형이 바리오에서 일어난 총격전을 피해 몸을 숙이고 있던 도중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복부를 맞고서, 병원은커녕 응급조치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엄마의 품에 안겨 죽은 그날은 아주 오래 전 이야기였고, 그들이 친구로 있던 시간보다 3배나 되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나는 항상 너를 보면 네 형이 생각났다. 파비. 그 녀석의 동생은 나의 동생이라고 항상 생각했었다.”
파비아노는 시리오의 말에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의 큰 형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파비. 어머니를 모셔야지. 그렇지?”
파비아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이 그 움직임에 따라 방울져 떨어졌다.
“파비. 네가 나의 과거이다. 그리고 내가 너의 미래이다. 나를 봐라. 파비.”
시리오가 양손으로 파비아노의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의 눈을 바라보게 했다.
파비아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미래를 바라봤다.
눈물 때문에 그가 흐리게 보였다. 팔을 들어 눈물을 닦아 내자 그의 미래가 웃음을 지으며 그를 자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좋아. 파비. 내 사랑하는 동생. 정식 조직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지?” 정식조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돈, 인맥, 공적 이 셋 중 적어도 하나는 필요했다.
파비아노, 각각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7남매의 4남은 이 셋 중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내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내가 힘을 썼다. 하지만 조직이 인정할만한 공적은 필요해. 그래서 너에게 쉬운, 아주 쉬운 임무를 주지.”
파비아노는 손에 든 MAC-11을 보면서 그날 밤을 떠올렸다.
쉬운 일이다. 시리오의 말대로 쉬운 일이다.
이제는 그의 것이 된 125cc의 스즈키 엔듀로 바이크를 타고, 이제 그의 총이 된 MAC-11을 지정된 목표에 쏘기만 하면 되었다.
“죽일 필요도 없어. 그저 갈기면 그걸로 끝이야.”
그에게 오토바이 키와 MAC-11을 건네주던 시리오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확실히 죽일 필요도 없이, 그저 접근해 총을 갈기면 그걸로 끝이 난다.
시리오의 말처럼 쉬운 일이었다.
“준비해.”
맨 앞에서 대기하던 이번 습격 리더의 말에 파비아노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다른 바리오 출신의, 파비아노보다 3~4살은 많아 보이는 그도 파비아노와 같이 이번 일을 통해 정식조직원이 될 사람이었다.
지금은 동료지만 나중에는 결국 파비아노의 경쟁자가 될 사람이다.
파비아노는 그가 이번 습격을 지시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주지.
그렇게 생각하며 파비아노는 MAC-11을 품에 갈무리한 다음 왼손으로 클러치를 잡고 오른손으로 엑셀을 살짝 돌렸다. 125cc의 공랭엔진이 그의 손에 따라 우르릉 거리며 가벼운 울음을 내뱉었다.
“온다.”
긴장이 역력한 리더의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사이렌을 울리며 군용 차량이 빠른 속도로 그들의 시야를 지나쳤다. 그리고 바로 그들의 목표인 검은색의 리무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자!”
리더가 말하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파비아노도 왼발로 기어를 넣고 클러치를 놓으며 엑셀을 당겼다. 이제는 그의 소유가 된 오프로드용 바이크가 날카로운 엔진음을 내며 튀어나갔다. 파비아노는 관성에 따라 몸이 뒤로 당겨지는 것을 이겨내면서 왼손으로 가슴에 품었던 MAC-11을 꺼냈다.
그저 정식조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심부름이나 하다가 뒷골목 어디에서 총을 맞고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그의 인생에 새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한규호는 골목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 나오는 오토바이와 그 운전자의 손에 들린 기관단총을 보았다.
“고개 숙여!”
한규호가 빠르게 외쳤다.
그의 말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3명의 여자들이 빠르게 머리를 숙였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긴장하고 있던 여자들은 한규호의 외침에 훈련받은 군인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도밍게즈 소령은 핸들을 재빨리 왼쪽으로 꺾으며 차선을 하나 변경했다. 선두에 선 차량이 뒤에서 쫒아오는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반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뭡니까? 총기는?”
운전을 위해 전방만을 주시하던 도밍게즈 소령이 한규호에게 외치듯 물었다.
“아마도 MAC-11. 9mm는 확실한 것 같소.”
도밍게즈 소령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9mm 파라벨럼(Parabellum)탄환.
‘전쟁에 대비하라(para bellum)’라는 라틴어를 가진 자동권총용 9mm탄환은 적절한 위력에 낮은 반동, 그리고 무엇보다 싼 가격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지만, 약 500줄(J)에 불과한 운동에너지로는 고강도 페널 여러 장을 특수 처리한 레진으로 붙여 만든 이 리무진의 방탄유리를 뚫을 수 없다.
다가온 첫 번째 습격자가 왼손에 든 총을 들어 리무진 뒷좌석을 향해 발사했다.
분당 12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MAC-11은 2초도 안 되는 시간에 30발 탄창을 전부 비워냈다. 초탄 몇 발은 사격자의 의지대로 리무진 뒷유리에 닿았다.
그러나 리무진 뒷유리의 비스듬한 각도에 의해 총알은 운동에너지를 창문에 쏟아내지 못하고 하늘로 치솟았고, 그중 한 발만이 뒷유리에 아주 미세한 금을 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총알들은 리무진을 빗겨 나갔다.
오토바이를 탄 초심자가 반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총을 발사한 첫 번째 오토바이가 옆으로 빠지자 두 번째 오토바이와 세 번째 오토바이가 다가와 뒷창문에 총알을 토해냈다. 그러나 결과는 비슷했다.
그러나 남아있던 마지막 오토바이는 앞 사람의 행동을 답습하지 않았다.
마지막 습격자는 더 빠른 속도로 접근해 리무진의 오른쪽 뒷문으로 붙었다.
자신이 원하던 위치에 도달한 마지막 습격자는 왼손을 뻗어 총구를 뒷좌석 창문으로 겨눴다. 그가 손가락만 까딱하면 1.5초의 시간 동안 30발의 총알이 뒷좌석 창문을 박살내기 위해 쏟아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마지막 습격자는 달랐다. 총을 쏘고 빠르게 몸을 빼는 다른 습격자와 달리 앞의 습격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자신은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다.
한규호는 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9mm 파라벨럼 탄이라고 해도, 아무리 방탄유리라고 해도, 500줄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한 점에 집중되면 위험할 수 있다.
한규호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도밍게즈 소령이 이 사실을 눈치 채고 차량으로 마지막 오토바이를 밀어내길 바라면서 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
한규호의 눈에 광기어린 웃음을 보이는 앳된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
왼손에 MAC-11을 든 파비아노는 자신의 앞에서 달리던 세 명의 습격자가 리무진의 뒷유리를 향해 총을 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리더를 비롯해 두 번째와 세 번째 동료들이 90발이나 되는 총알을 퍼부었지만 대부분의 총알이 빗나갔고 맞힌 총알도 거의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고자새끼들 같으니. 파비아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겁쟁이들은 빠르게 달려가 그저 총알을 퍼붓고 도망칠 생각만 하는 남자도 아닌 고자들이었다.
파비아노는 자신을 따르라던 리더의 말을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고자가 아니야.
그리고 엑셀을 살짝 풀었다. 회전수가 느려지며 발생하는 유격에 맞춰 클러치를 잡지 않고서 기어를 한단 올렸다. 그리고는 속도를 높여 빠르게 달려 리무진의 오른쪽으로 붙었다.
그의 심장은 더 이상 빨라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반면에 주변의 풍경은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흘렀다.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시각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바람의 방향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매쓰(Meth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흡입한 날 느꼈던 강렬한 경
험이 재현되는 느낌이었다.
파비아노는 총을 든 팔을 뻗어 뒷좌석 유리를 겨눴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여자가 금이 간 창문을 통해 똑똑히 보였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주려는 순간 그의 의식이 끊겼다.
***
리무진이 습격을 받는 것을 보고 리무진을 뒤따르던 군용차량 운전병은 속도를 높였다. 군용 차량이 으르렁 소리를 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뒷좌석에 있던 아고스토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앉아 있던 리무진 운전자의 팔을 꽉 잡았다.
6200cc 논터보 디젤엔진의 회전수가 급속도로 올라갔지만 육중한 군용차량은 125cc의 재빠른 오토바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3대의 오토바이가 리무진을 습격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봐야만 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병사가 창문을 열고 상체를 밖으로 빼내 총을 겨눴다. 그러나 빠르게 달리는 차량에서 더 빠르게 달리는 표적을 향해 도심 한가운데에서 쉽사리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 3대의 오토바이는 자신들의 임무를 끝내고 골목으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남아있던 한 대의 오토바이가 리무진의 오른쪽으로 붙었다. 운전병은 마지막 습격자가 팔을 뻗어 그의 총을 유리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가져다 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밟아지지도 않는 액셀을 더 힘껏 밟았다.
탄력을 받은 군용차량과 오토바이와의 거리가 조금 줄어들었다. 그 순간 조수석에 있던 병사가 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습격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습격자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오토바이에서 떨어졌다. 운전자를 잃은 오토바이도 넘어진 다음 불꽃을 튀기며 도로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운전병도 오토바이와 운전자가 도로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핸들을 꺾지 않으면 습격자를 깔아뭉갤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
오토바이를 따라잡기 위해 풀 엑셀을 밟은 상황에서 방향을 급하게 바꾸는 것은 아무리 안정성과 조향성이 강조된 군용차량이라고 해도 권장되는 행위는 아니었다.
“씨발!”
운전병은 소리 지르며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덜컹.
무언가를 밟은 차량이 튀었다.
운전병은 차량이 밟은 그것이 오토바이이길 바라며 소리쳤다.
“개씨발!”
***
한규호의 눈에 광기어린 웃음을 보이는 앳된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빠른 속도, 오토바이, 추격과 총격, 그리고 왼손에 든 기관단총. 그리고 이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려는 의지.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어린 소년의 얼굴에 광기어린 웃음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한규호는 창문을 깨기 위해 손을 들었다. 조수석 창문을 내려 그를 제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깨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총을 발사하려던 습격자의 머리가 터져 나가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피와 뇌수의 일부가 창문에 튀었다가 차를 스쳐 지나는 바람에 의헤 뒤쪽으로 천천히 흘렀다.
사라진 습격자의 모습이 뒷창문을 통해서 다시 보였다.
한규호는 관성에 의해 불꽃을 튀기며 도로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오토바이와 머리가 터져나간 시체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신을 군용차량이 밟고 넘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한규호는 그 모습에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한규호는 창문을 깨려고 들었던 팔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면에 곧게 일직선으로 펼쳐진 도로를 보면서, 머리가 터져나간 마지막 습격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헬멧도 쓰지 않고, 마스크도 없이, 잔뜩 핏발 선 눈으로 총구를 겨누던 습격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열다섯? 아니면 열여섯?
광기어린 웃음을 띄던 습격자의, 아니, 소년의 얼굴을 그는 떠올렸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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