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63화 (64/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10) >

2일차

CIA 위장기업 Dover American Insurance

시애틀, 워싱턴 주, 미국

네일 밀러 CIA 국장은 전면 스크린에서 투영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멀리서 카라카스 연방정부 청사 전면을 망원 촬영하는 UAV가 보내온 영상이 스크린 전면에 떠있었다.

청사 입구까지 연결되어있는 차량 진입로에는 검은색 리무진 차량이 군용 차량과 함께 일렬로 서 있었다.

“나왔습니다.”

상황실 요원의 기계처럼 단조로운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국장의 귀로 들어왔다. 화면에는 로비에 모습을 드러낸 그레이스 박사 일행이 차관과 함께 차량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밀러 국장은 고개를 돌려 스크린 한쪽에 떠 있는 현지 시간을 살폈다.

오전 10시 46분 이었다.

“예상보다 조금 더 빠르군.”

밀러 국장이 말했다. 네 시간 전 국장에게 작전에 대해서 설명하던 작전팀 팀장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 범위 안입니다.”

국장은 대답 대신 전면 영상에 보이는 그레이스 박사 일행 한명 한명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차관과 나란히 걷고 있는 루시아 그레이스. 여성과 아동 인권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여론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 중 한명인 그녀에 대한 보고서에는 현실감각이 부족한 표준형의 학자라는 주석이 붙어있었다.

그레이스 박사에게서 한 두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뒷짐을 지고, 배를 내민 채 걷고 있는 펠릭스 아고스토. 중고차 사업을 하며 벌어들인 돈과 라티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원에 진출할 꿈을 꾸고 있는 멍청이. 정치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역량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밀러가 신경쓸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 옆에 한규호.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이번 작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인사를 나누는 그레이스 박사와 차관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이번 작전의 관건은 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앤 챔버. 콜롬비아에서 온 입양아 출신 23살의 아가씨.

“차량 문 열렸습니다.”

기계 같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화면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검은색 리무진 차량의 뒷문이 여는 모습이 보였다. 차량을 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들이 차에 타기 전에 CIA가 고용한 독립요원이 그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할 것이다.

차관과 그레이스박사는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차량 문이 열렸음에도 인사가 길어지고 있었다. 그래봤자 몇 분이다. 조만간 작전은 시작될 것이다.

전체적인 모습을 보기 위해 멀리서 넓게 잡은 영상으로는 그들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지금 어딘가에서는 한규호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는 영상이 녹화되고 있을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이 떨어졌다. 밀러 국장 옆에 서 있던 작전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순간 한규호가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한규호는 세 사람을, 그레이스 박사, 산타나 차관, 그리고 앤 챔버를 끌어안았다.

밀러 국장의 눈이 커졌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얼굴에 놀람이라는 감정이 드러났다.

“흡!”

밀러 국장 옆에 서 있던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외침을 막아내려 숨을 삼켰다. 리무진 문을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이 끊어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고, 예상 못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 한 것이다.

“피격! 두 발입니다. 반복합니다. 두 발의 탄환이 발사되었습니다.”

항상 기계 같던 상황요원의 목소리에 흥분된 감정이 실려 있었다.

두 발.

계획대로라면 위협을 위한 단 한 발의 총알만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불명의 탄환이 한 발 더 발사된 것이다.

팀장의 맥박은 급속도로 빨라졌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고 작전이 어그러졌다. 그것도 국장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본능적으로 국장을 돌아보았다.

국장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전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국장을 보고 팀장은 정신을 차렸다.

작전에 변수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변수가 시작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나중 문제다. 지금은 그 변수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우선 생각해야 했다. 국장이 바로 옆에 있는 상황에서 그는 순간적으로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잠시 잊은 것이다.

그도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팀장은 이번 작전의 목적을 떠올렸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방위군의 대응을 살펴보는 것.

저격을 파악한 방위군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빠르게 은폐엄폐를 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평소 훈련량이 적지는 않은 듯 보였다. 특히 지휘관의 대응이 훌륭했다. 멍하니 서 있는 아고스토 이사를 빠르게 넘어뜨리고 자신의 몸으로 그를 보호하며 주위를 살폈다.

2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휘관은 통제를 완벽히 확보한 듯 보였다. 일관성 없던 병사들의 움직임이 지휘관의 명령에 엘 프로페서가 있는 북쪽, 그리고 동쪽 방향에서 노릴 수 없는 사각지대로 엄폐해 들어가는 방향성을 보였고, 이후 총구를 그쪽으로 돌리며 대응사격자세까지 취했다.

베네수엘라 군의 정예인 제5 방위군이기에 오합지졸 같은 여타 남아메리카의 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2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당황한 부하들을 추스르고 신속하고 적확한 대응을 지시한 저 지휘관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뭐지 어떻게 저렇게 빨리 저격 지점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지?

잠시 대치하던 군인들이 빠르게 차량에 탑승하고 일사불란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총격을 입은 부상자만이 자신이 흘린 피웅덩이 위에 남아 있었다.

“1차 접촉 끝.”

기계 같은 상황요원의 목소리가 다시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계획과는 달리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어찌됐든 그레이스 박사 일행은 아무런 위협 없이 빠져나갔다.

“왜 두 발이지?”

아무 말 없이 화면만을 지켜보던 국장이 차량이 빠져 나가는 모습까지 보고난 후 말했다.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르게 했다.

“바로 분석에 들어가겠습니다.”

팀장이 말했다.

“다음 단계는?”

다음 단계는 그레이스 박사 일행이 돌아가는 도로에 위치한 공원에서 발생할 폭발과 그로 인해 우회하는 차량을 오토바이를 탄 지역 갱단이 습격한다는 계획이다. 첫 단계부터 예상 못한 변수가 발생한 지금 상황에서 다음 단계에서도 다른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멈추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팀장이 말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다음 단계를 멈추려면 작전을 시행할 삼두사와 연락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상황에서 연락이라는 단어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단순히 바로 전화를 걸어 시행을 중지시키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CIA와 삼두사 사이에는 몇 단계의 연락이 필요했고, 차량은 이미 출발해버렸다.

밀러 국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화면을 주시했다.

UAV는 빠른 속도로 카라카스 도심 주요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다.

***

2일차

볼리바르 애비뉴 (Avenida Bolivar)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한규호와 세 명의 여성을 태운 리무진은 빠른 속도로 볼리바르 애비뉴를 질주하고 있었다.

뒷좌석에 우겨지듯 태워진 세 명의 여성은 차량이 출발하자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았다. 차창 밖으로 카라카스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잔뜩 웅크려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가운데 좌석에 앉은 그레이스 박사가 공포에 물든 눈으로 차관을 보면서 말했다.

“나를.... 노린 건가요?”

어젯밤 현상수배 전단을 봤을 때도 체감되지 않던 생명의 위협이 오늘 이런 상황을 겪으니 뼛속까지 체감됐다.

“괜찮아요. 이제 안전해요.”

차관은 그레이스 박사의 손을 꼭 잡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괜찮아요. 박사님. 호텔에만 들어가면 그들...,. 그들이라 해도 어떤 방법도 취하지 못할 거에요.”

“그들에 대해서 말해주시오.”

조수석에 앉아 있던 한규호가 고개를 돌려 차관을 보며 물었다.  “그들은.....”

차관은 한규호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카라카스를 중심으로, 아니 베네수엘라 전역을 영향력 아래 두고 있는 3개의 범죄조직의 연합체를... 의미해요. 정치와 경제가 안정적인 시기에도 그들은 단순한 갱단이 아니었지만,  경제위기 이후로 치안력 부재를 기회삼아 세력이 급속도로 커졌어요. 그들은 머리 3개 달린 뱀을 표식으로 써요. 그리고 스스로를 삼두사(Three Headed Snake)라고 불러요.”

“그들이 연방정부청사 앞에서 현직 차관이 있는데 저격을 할 정도의 힘이 있습니까?”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 그들의 성장은 정치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얼마 전 드론테러사건도 그렇고.”

볼리바르 애비뉴, 지금 그들이 달리고 있는 이 도로에서 몇 달 전 드론을 이용한 테러가 있었다. 베네수엘라 국가방위군 창설 행사 당시 연설하던 고위급 인사를 노리고 폭발물을 매단 드론이 행사장을 덮쳤던 것이다. 당시 정보기관들은 이를 정치적인 테러로 분류했다.

한규호는 차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치집단이 계획하고, 범죄조직이 시행했다는 의미이다. 정치세력과 범죄세력이 서로의 이익에 따라 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장관님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레이스 박사가 말했다. 장관을 만나러 연방정부로 가는 차 안에서 산타나 차관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차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그레이스 박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침묵을 그레이스 박사는 긍정으로 받아 들였다. 더욱 어두워지는 그레이스 박사의 표정을 보고 차관이 다시 그녀를 달랬다.

“박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호텔에만 들어가면.... 도밍게즈 소령의 부대가 호텔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거에요. 그리고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내일 바로 떠나시면....”

콰광

차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차량 전방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한규호는 감각을 다시 활성화시켰다.

그들이 탄 리무진 앞을 선도하는 군용 차량 때문에 시야가 가렸지만, 폭발음의 크기로 볼 때 적지 않은 양의 폭약이 꽤 멀리서, 적어도 몇 백 미터 앞에서 폭발한 것 같았다. 한규호는 폭발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 거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규호만의 생각이었다. 폭발음에 놀란 운전사가 급하게 핸들을 꺾자 차량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한규호는 왼손을 뻗어 그 핸들을 잡았다. 중앙선을 넘을 뻔 한 차량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뒷좌석의 여성들은 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의 잔향을 지우고 여자들의 비명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선도 차량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폭발에 놀라 핸들을 좌우로 흔들던 운전기사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였다.

리무진이 멈추자 뒤따르던 군용 차량에 타고 있던 도밍게즈 소령이 빠르게 하차한 후 리무진으로 뛰어와 운전석의 창문을 두드렸다.

겁먹은 표정의 운전수가 손가락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창문을 내리자 도밍게즈 소령이 말했다.

“내가 운전한다.”

도밍게즈 소령의 말에 운전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뒤로 고개를 돌려 차관을 바라보았다. 차관은 그런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수는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밍게즈 소령이 몸을 날리듯 운전석에 탑승하고 문을 닫았다. 사이드 미러로 도밍게즈 소령이 타고 있던 군용 차량으로 몸을 굽히고 뛰어가는 운전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도밍게즈 소령이 룸미러로 뒤에 있던 여자들을 살피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차관의 모습을 거울로 확인한 소령이 말했다.

“전방에서 미상의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우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령이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가슴에 달려있는 무전기 버튼을 누르면서 말했다.

“루트 3으로 우회한다.”

치칙 소리가 난 후에 앞에 멈춰 있던 선도 차량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밍게즈 소령도 천천히 차량을 출발시켰다. 그리고 선도 차량을 따라 좌회전을 하기 위해 핸들을 돌렸다.

“어찌된 일이죠?”

뒷자리에 있던 차관이 차량이 출발하자 도밍게즈에게 물었다.

“전방에 있는 공원에서 폭발이 있었습니다.” 도밍게즈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은 레이더처럼 전방을 계속 스캔하고 있었다.

“저,,,,,,..를 노린 건가요?”

그레이스 박사가 물었다. 목소리에 공포가 묻어있었다.

“........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도밍게즈가 말했다.

“소령!”

차관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하느냐는 눈빛으로 도밍게즈에게 소리쳤다.

“사고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박사님을..... 일행을 노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조사는 나중에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일단 호텔로 복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밍게즈 소령이 말했다.

그 순간 한규호의 직감이 발동했다. 좀 전의 저격 때와 같은 강렬한 직감은 아니었지만 신경을 살짝살짝 자극하는 위협이 뒤에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

한규호는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골목에서 막 빠져나오는 오토바이 몇 대와 운전자의 손에 들린 M11A1, 일명 잉그램 MAC-11이 눈에 들어왔다.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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