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61화 (62/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8) >

2일차

연방정부 청사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그레이스 박사 일행은 베네수엘라 여성부 장관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 놓인 찻잔 속의 커피는 마치 집무실 분위기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장관님.”

그레이스 박사가 장관에게 간청하듯 말했다.

“장관님께서도 이번 포럼이 얼마나 어렵게 성사됐는지 아시잖아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노년의 신사. 살바도르 발데즈 바렐라(Salvador Valdez Barela) 베네수엘라 여성부 장관은 애써 그레이스 박사의 눈을 피하며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박사. 상황의 여의치 않소. 어제 차관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소.”

장관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옆에 앉은 차관을 돌아보았다. 차관은 그의 눈빛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레이스 박사. 이미 결정된 일이오. 박사가 고생한 것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소.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라오.”

장관이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장관님...”

그레이스 박사는 눈앞의 의기소침한 바렐라 장관이 낯설게 느껴졌다.

10여 년 전, 그레이스 박사가 남미의 여성인권 관련 연구를 막 시작했던 당시, 보고타에서 열린 라틴 아메리카 인권 개선 학술대회에서 만났던 카라카스 자치대학의 에너지 넘치던 살바도르 발데즈 바렐라 교수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노인과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장관님. 이럴 때일수록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잖아요. 모두가 경제를 이야기하고, 모두가 돈을 이야기할 때, 그럴 때일수록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장관님 본인이시잖아요.”

그레이스 박사는 바렐라 장관이 교수이던 시절, 남미의 여성인권운동, 빈민 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던 바렐라 장관의 발언을 언급했다. 10여년 전 학술대회 만찬장에서 열정에 가득 차 외쳤던, 그레이스 박사를 감화시켰던 그의 말을.

“.... 박사. 상황이 바뀌었소. 지금은....”

장관은 노쇠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장관님.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이럴 때일수록! 이럴 때일수록!”

장관이 갑자기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장관의 외침에 한규호를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한규호 옆에 앉아 있던 앤 챔버는 무의식적으로 한규호의 팔을 잡을 정도로.

“박사. 꼭 내 입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소? 돈? 경제? 웃기는 소리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군. 지금 카라카스의 거의 모든 상점의 진열장은 텅텅 비어 있소. 왜 그런지 아시오? 물건이 없어서 그런 줄 아시오? 진열해 놓으면 사람들이 유리를 깨고 들어와 물건을 털어가기 때문이오. 총 들고, 마약에 취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오. 당신. 박사 당신과 같은 나이의 엄마들이 돌을 들어 유릴 깨고 물건을 약탈하고 있소. 왜 그런지 아시오?”

계속 그레이스 박사의 눈을 피하던 장관이 매서운 눈으로 그레이스 박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장 애들 먹일 음식이 없어서 그렇소. 자신들은 굶어도 애들은 먹이고 싶은 엄마들이 방법이 없어서 돌을 들고 상점 유리를 깨고 다니고 있소. 쓰레기통 뒤지는 건 못 봤소? 썩은 고기, 당신네 미국인들은 애완견에게도 주지 않을 썩은 고기가 암시장에서 팔리고 있소. 그것도 없어서 엄마들은 서로 머리채를 잡아가면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지. 당신 지금 지갑에 있는 1센트 동전을 가져가면 암시장에서 볼리바르 지폐 다발로 바꿔줄 거요. 인권? 여성? 인신매매? 가서, 직접 바리오에 가서 이야기해보시오.

인신매매를 멈춰야 한다고, 인신매매 범죄를 척결해야 한다고. 어린 자식을 먹이기 위해서 기꺼이 다 큰 자식을 팔아넘길 사람들 앞에서 그 말을 직접 해보란 말이오! 하고 오시오. 하고 오면 포럼이든, 연설이든, 방송이든 뭐든 다 해주겠소!”

그레이스 박사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입을 벌린 채로 평생 동안 남미의 인권을 위해 싸워온 노학자를, 부드러운 미소로 자신에게 남미의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같이 힘내자고 손을 내밀던 그 노학자의 분노에 찬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말이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노학자의 분노에 찬 눈빛은 체념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노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 내각에서, 여성부는 그저 명목상의 부처가 된지 오래되었소. 부처의 장관이라고 해도, 지금 내 위치는 상공부의 말단 직원보다도 못한 위치요. 나는 그저....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을 뿐이오.”

그레이스 박사는 장관의 마지막 말이 유언처럼 들렸다. 노인은 모든 것을 잃어 절망할 기운조차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돌아가시오. 호텔로 가서,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시오.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내일 떠나도록 하시오. 준비는 우리가 하겠소. 이것이 박사에게 해줄 수 있는 내 마지막 호의라 생각하시오.”

장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관은 멍한 모두를 두고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넥타이를 풀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 이만 일어나시죠.”

산타나 차관이 그레이스 박사 일행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그레이스 박사는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정말 아무런 소득 없이 이번 방문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걱정, 예상하지 못한, 변해버린 장관의 모습과 그가 내뱉은 말에 느낀 당혹감, 이대로 일어나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박사님. 일어납시다. 장관님도 많이 힘드신 것 같은데.”

아고스토가 다가와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웠다.

아고스토가 그녀의 허락 없이 몸에 손을 댄 실례를 저질렀음에도 그녀는 그것을 알아챌 정신도 없이 그의 손에 이끌려 몸을 일으켰다.

그레이스 박사는 비틀거리며 산타나 차관과 앤 챔버의 부축을 받으며 장관의 집무실을 나섰다.

그런 그녀의 귀에 장관의 말이 꽂혔다.

“잊지 마시오. 내일이오. 내일 떠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더 이상 방위군의 보호를 받지 못할 거요.”

***

“미안합니다. 박사님. 장관님이.... 여러 모로 힘든 상황이라서...”

1층에 도착하자 산타나 차관이 그레이스 박사에게 사과했다.

그레이스 박사는 차관의 말을 듣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레이스 박사는 눈물을 참기 위해 차관을 껴안았다. 차관은 그런 그레이스 박사를 안고,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앤 챔버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레이스 박사가 이번 방문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믿었던 장관에게 폭언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발을 돌려야 하는 그레이스 박사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미안해요.”

눈물을 감추기 위해 한동안 차관의 품에 안겨있던 그레이스 박사가 마음을 추스르고는 차관에게 말했다.

산타나 차관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우선 호텔에서 쉬고 계세요. 제가 다시 장관님께 말해 볼게요.”

그레이스 박사는 차관에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산타나 차관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스 박사는 장관을 만나기 전 차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연방정부 청사로 올 때, 그레이스 박사와 앤 챔버는 도밍게즈 소령이 제공한 군용 차량이 아니라 차관의 리무진을 타고 왔었다. 호텔에 그들을 데리러 온 산타나 차관이 여자들끼리의 데이트라며 그 둘만을 자신의 차량으로 이끈 것이다.

그리고 연방 정부 청사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차관은 그레이스 박사에게 스페인어로 속삭였다.

(No confies.)

(믿지 마세요)

차관은 장관을 믿지 말라고 했다. 그 의미가 무슨 말인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한규호는 그런 두 여자를 한 발자국 뒤에서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여자가 서로를 위로하며, 의지하며 서 있는 모습을 그저 무심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한규호는 지금 벌어진 상황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장관의 말에 더 공감이 됐다.

인권을 논하는 것은 적어도 기본적인 삶의 수준이 충족되었을 때야 가능한 일이다.

사람의 목숨 값이 소총 한 자루 값보다 못한 지옥에서, 칸다하르, 모가디슈, 시리아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을 소리 높여 외쳐봤자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과 머리로 향하는 총알뿐이다.

그는 많은 지옥을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 이곳, 카라카스도 어느 곳 못지않은 지옥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슬퍼하는 그레이스 박사와 그녀를 위로하는 산타나 차관 두 여자의 서로를 향한 감정의 교류가 한규호에게는 그저 싸구려감정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메마른 감정으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을 앤 챔버가 지켜보고 있었다. 차관은 결국 청사 로비까지 그들을 배웅하겠다고 나왔다. 돌아갈 때 불편함이 없도록 딱딱한 시트의 군용 차량이 아닌 자신의 리무진을 이용하라고 하면서 로비까지 나온 것이다.

그레이스 박사는 그런 차관의 따스한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꼈다.

“고마워요. 차관님 덕분에... 조금 마음이 풀렸어요.”

그레이스 박사가 차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박사님. 장관님에게는 제가 말을 다시 해볼게요. 아마 큰 차이는 없겠지만...”

차관이 박사의 두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차관님.”

두 여자는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산타나 차관의 차량을 선두로 도밍게즈 소령이 인솔하는 군용 차량들이 시동을 건 채로 로비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차관의 비서 중 한명이 리무진의 뒷좌석 문을 연 채로 잡고 있었다.

한규호는 그 옆에 서서 아직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 두 사람의 여성을 감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규호를 포함해 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레이스 박사가 차관의 손을 어서 놓고 차량에 탑승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듯 두 사람은 마주 잡은 두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저녁에 시간을 내서 찾아뵙도록 할게요. 그때 차라도 마시면서 다시 말해요. 아마 장관님도.... 거칠게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미안해하고 계실 거예요.”

“아니에요. 바쁘신데 일부러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이해해요. 장관님도 많이 힘드셨을 테니.”

두 여자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한규호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슬슬 짜증이라는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두 사람의 대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게 하는지 직접 그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 순간.

직감이 그를 찾아왔다.

항상, 그를 위험에서 지켜왔던 그의 직감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한규호는 앞으로 몸을 날렸다.

***

2일차

베네수엘라 주교좌성당(Panteon Nacional de Venezuela)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수사복을 입은 한 남자가 연방 정부청사에서 1.23km 떨어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주교좌성당 종루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M2010 ESR(Enhanced Sniper Rifle)에 장착된 Nightforce ATACR 7-35X56 F1 조준경을 통해 연방 정부 청사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4000달러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는 이 조준경은 1km가 넘어가는 거리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성능을 보였다.

코드명 엘 프로페서.

이제는 본명으로 불리지 않는 전직 해병대 상사 출신 독립요원은 자신의 옛 모국이자, 이제는 의뢰인인 미국의 의뢰를 받아 레밍턴社에서 만든 저격 소총을 들고 나이트포스社의 스코프를 통해 연방 정부 청사 앞에 서 있는 그들을 보고 있었다.

당초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했던 시간은 11시 전후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빠른 시간에 모습을 나타냈다. 몸을 지탱하고 있던 왼쪽 손목을 슬쩍 들어 시계를 살펴봤다. 11시까지는 약 14분이 남았다.

엘 프로페서는 지금 연방정부청사 앞에 서서 차량을 일렬로 늘어놓고서도 움직이지 않는 그들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저 의뢰를 받은 대로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총알 한 발을 그들에게 날려서 인식시키면 그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었다.

미국, 한때 그의 조국이자, 이제는 의뢰인이 된 그 나라는 가끔 알 수 없는 일들을 시키고는 했다. 이번이 바로 그랬다. 저격을 하되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할 것.

위협을 하겠다는 건가? 경고를 하겠다는 이야길까?

처음 의뢰를 받고 나서 그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금방 머리를 저었다. 그런 것은 중요한게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의뢰가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보수가 얼마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유효 사정거리 1200미터의 저격소총으로 1200m 밖의 목표를 저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엘 프로페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의뢰는 누군가를 저격하는 것이 아니라, 저격하는 척 하는 것이었으니까.

M2010 ESR. 미 육군이 1988년부터 사용한 M24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미 육군 제식 저격소총이 그의 손에 들린 채로, 그의 발사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면 .300 Winchester 탄을 개량한 MK.248 MOD.1이 1200m를 날아가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그는 조준경의 십자선을 차량과 일직선으로 위치하도록 고정했다. 그리고 거리를 감안해 총구를 살짝 올려 하측 십자선 세 번째 칸에 정차되어 있는 군용 차량의 조수석 창문을 맞췄다. 총알이 발사되면 총알은 1초 조금 더 되는 시간 동안 자유 비행을 한 다음 중력에 의해서 약간 아래로 내려가 창문에 명중될 것이다.

그는 조준점을 조금 더 아래로 낮췄다.

창문이 가장 좋다. 방탄 처리된 군용 차량의 창문에 총알이 박힌다면 시각적으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게 안 되면 문에다 탄두를 박아 넣는 것도 괜찮다. 두꺼운 철판에 박히는 .300 윈체스터 탄두의 충돌음은 경고를 하기에는 넘칠 정도로 충분하니까.

그저 총알이 차량 너머로 넘어가지만 않으면 된다. 혹여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는 수만 발의 총알을 쏘았다. 패리스 아일랜드의 부트캠프에서부터, 마지막 전역 전 사세보 기지에서까지 그가 쏘아온 총알은 수만 발이 넘었다. 그 안에는 M24로 쏘아올린 수천 발의 저격용 총알이 있었고, 숨을 곳 하나 없는 황량인 이라크 중부에서 1.5km가 넘는 거리의 적 저격수 머리를 터트린 한 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몇몇 사람들이 차량으로 몸을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으면 그들이 출발할 것이다. 그 전에 경고를 해야 한다.

그는 천천히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는 방아쇠에 얹은 그의 검지에 부드럽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익숙한 반동이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반동 때문에 몸이 흔들리며 조준경 너머로 집중되어 있던 시신경이 잠시 흩어졌다.

그는 다시 조준경 너머로 눈의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곧 그가 노렸던 차량 조수석 창문에 총알이 명중하고, 탄착점을 중심으로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임무 완수였다. 언제나처럼 그가 원한 곳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그런데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 계획한 것처럼 탄착점을 확인하고, 총을 챙겨, 가방에 넣고, 준비한 차량으로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대신,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린 채 눈을 조준경에 계속 고정하고 있었다.

그가 노린 군용 차량의 앞에 서 있던 리무진, 그 리무진의 뒷문을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이 피분수를 뿌리며 어깨에서 떨어져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의 총알은 그가 원한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와 목표를 잇는 일직선상에 위치하지 않은 한 남자의 팔이 날아갔다.

타앙

멀리서 들려오는 또 다른 격발음이 그제야 엘 프로페서의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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