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60화 (61/386)

< MISSION 03 : La Mancha Negra (7) >

2일차

JW 매리어트 카라카스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잠에서 깬 한규호는 제일 먼저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위아래로 1자를 이루고 있었다.

새벽 6시. 그가 일어나려고 한 시간에 정확히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간 뜨거운 물을 틀어 온 몸을 적셨다. 그의 온 몸을 기분 좋게 두드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한규호는 어제 일을 떠올렸다.

산타나 차관이 건넨 두 장의 사진. 그 사진이 일행에게 준 충격은 작지 않았다. 특히 그레이스 박사는 자신의 얼굴이 실린 현상수배 전단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레이스 박사가 원하는 것은 혼란에 빠진 베네수엘라에서 급증하고 있는 인신매매범죄를 공론화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조와 압박이 필요하다.

그레이스 박사가 원하는 것은 목소리다. 인신매매에 대해 증언하는 목소리, 우려하는 목소리, 그리고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

경고.

그리고 그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경고.

누군가가, 아마도 그레이스 박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누군가가 상반신의 1/3만 남아있는 시체를 고속도고 표지판에 걸어놓고, 그레이스 박사의 얼굴이 걸린 현상수배를 거리에 깔아놓음으로써 그녀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

한규호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자신의 현상수배 전단을 보고 있던 그레이스 박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빨리 끝나겠군.

당초의 예정은 일주일이었다.

둘째 날, 그러니까 원래대로였다면 오늘부터 3일간 포럼이 열리고,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성명서를 채택한 다음, 이를 UN 인권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포럼이 끝난 후에는 베네수엘라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고, 피해자, 관계자 인터뷰를 녹화해 언론에 공개해 공론화시킨다는 일정으로 그레이스 박사는 일주일간의 스케줄을 잡아 놓았다.

그러나 포럼은 취소되었고, 그레이스 박사에게는 현상수배가 걸렸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3일안에 그들에게 떠날 것을 권고했다. 아니, 경고했다.

한규호는 샤워기를 잠그고 커다란 수건으로 몸에 물기를 닦아 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머리서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천천히 온 몸의 물기를 빠짐없이 닦아 냈다.

한규호 입장에서는 일이 잘 풀렸다고 할 수 있다.

일주일의 체류 기간이 3일로 줄었고 당장 오늘 오전 장관 면담 이외에는 더 이상의 공식 일정도 없다. 면담이 끝나면, 호텔로 돌아와 그저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내일 베네수엘라 정부의 권고대로 출국하면 이번 경호작전은 끝이다.

샤워를 끝마치고 온 몸에 묻은 물기를 깨끗이 다 닦아냈음에도 한규호는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일이 너무 쉽게 돌아가는데.

그런 생각이 그에게서 닦여 나가지 않았다.

***

2일차

CIA 위장기업 Dover American Insurance

시애틀, 워싱턴 주, 미국

네일 밀러 CIA 국장은 미국 서부의 CIA 위장기업 중 하나인 도버 아메리칸 보험회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임원 전용 회의실을 가장한 상황실에 앉아 있었다.

공식적으로 텍사스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이곳 시애틀의 위장기업, 위장 상황실에서 18시간을 보낸 후 랭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밀러 국장 앞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레이스 박사 일행은 어제 예정대로 차관과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후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면 스크린에는 JW 매리어트 카라카스의 건물 외벽, 정확히는 한규호와 그레이스 박사의 방 창문을 비추는 영상과, 이그제큐티브 플로어 복도의 실시간 CCTV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4시간 후에 예정대로 작전을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점검하지.”

밀러 국장이 그 앞에 놓인 서류를 넘겼다.

CIA 로고가 그려져 있는 서류 표지가 넘어가자 첫 단락 맨 위에 Mission ‘la ciudad’라고 적혀 있었다.

미션 라 시우다드, 영어로는 the city.

수도 카라카스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켜 베네수엘라 수도 방위군의 대응 속도와 절차를 분석하기 위한 의도로 계획된 이번 작전은 CIA가 전 세계에서 진행하는 정보 수집용 통상 작전 중 하나였다.

밀러 국장은 천천히 인쇄된 활자를 읽어 갔다.

베네수엘라 연방정부와 주 방위군이 보호하는 VIP에 대한 작은 도발이 진행된다.

저격, 습격, 그리고 폭발에 대한 세부 내용과 타임테이블이 적혀 있었다. 카라카스 수도방위군의 대응 체계를 알아보는 정보수집이 주목적인 만큼 인명피해는 최소화한다는 내용도 쓰여 있었다.

“저격은?”

국장이 물었다.

“두 번 진행됩니다.”

밀러 국장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레이스 박사 일행은 장관과의 면담을 진행하기 위해 현지 시간으로 09시 30분에 연방정부 청사로 이동하게 됩니다. 호텔과 연방정부와의 거리는 5km입니다. 카라카스 방위군이 도로를 통제하면 실제 이동시간은 10분 내외로 예상됩니다.”

장관은 문서에 첨부된 지도를 살폈다.

“1차 저격은 면담을 끝내고 나오는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시간은 대략 오전 11시 전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격 위치는 베네수엘라 주교좌성당(Panteon Nacional de Venezuela) 종루이며, 연방정부청사까지의 거리는 1.23km입니다.”

“누가 하나?”

“맨 뒷장을 보시면 프로필이 있습니다.”

밀러 국장은 맨 뒤로 페이지를 넘겼다. 부드러운 인상의 라틴계 중년 남자의 사진이 나왔다.

“코드명 엘 프로페서(El profesor), 라틴계 미국인 1.5세대로 94년 해병대 입대 후 2003년까지 복무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13 해병 원정대 소속으로 저격수로 활동했고, 같은 해 전역했습니다. 최종 계급은 상사, 마지막 근무지는 사세보입니다.”

“엘 프로페서? 교수?”

“선생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전역 후 잠깐 PMC에서 근무하다, 이후 독립해 캐리비언을 중심으로 군사 코디네이터 겸 독립요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우리와도 여러 번 작전을 같이 수행한 바 있고, 미국에 호의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 코디네이터. 그래서 프로페서라는 코드명을 썼군.

“그가 골랐나? 저격 지점은?”

“현장 판단에 따라 그가 선택했습니다.”

밀러 국장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1.23km 밖에 있는 전직 미 해병대 출신의 저격수가 그레이스 박사 일행을 노린다.

그러나 누구도 다치지 않는다. 오직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저격, 그리고 한규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저격.

“다음은?”

밀러가 페이지를 앞으로 넘겼다.

“1차 접촉 이후, 호텔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로스 카오보스 공원(Parque Los Caobos)에서 폭발이 발생하면, 그레이스 박사 일행은 베네수엘라 적십자 병원 쪽으로 우회한 다음 주정부 사무소 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오토바이를 통한 습격이 진행됩니다.”

밀러는 턱을 문질렀다.  “위험하지 않나?”

“삼두사(serpiente de tres cabezas : three headed snake) 통제 하에 진행됩니다.”

“그러니까.”

일명 삼두사(三頭蛇), 머리 세 개 달린 뱀을 의미하는 serpiente de tres cabezas.

카라카스의 서부, 중부, 동부의 바리오(빈민가)를 기반으로 성장한 세 범죄조직이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혼란 상태의 카라카스를 점거하기 위해 연합한 범죄조직.

현재 카라카스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어둠의 지배자.

CIA가 그들을 통제하고, 그들이 습격자를 통제한다.

“방위군이 호위하고, 군용 방탄 차량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오토바이를 탄 어린애들 몇 명이 권총을 몇 번 쏘는 정도입니다.”

밀러는 잠시 생각했다.

몇 시간이 지나면 작전은 실행된다. 작전의 세부 사항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행하느냐, 중단하느냐 그 결정만이 남았다.

“통제는?”

“완벽합니다.”

“완벽해야 하지. 다음은?”

밀러가 페이지를 넘겼다.

“마지막으로 자정에 호텔에서 2차 저격이 실행됩니다. 저격은 지사에서 직접 시행합니다. 장소는 호텔 남쪽의 고가도로, 거리는 290m, 대상은 스즈키의 방입니다.”

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저격은 CIA 특작팀에서 직접 시행한다는 이야기다.

오전에 한 번의 저격, 그리고 폭탄테러와 오토바이를 이용한 습격을 받은 그레이스 박사 일행은 오후 내내 호텔에 틀어박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정이 막 지난 시간에 프란시스코 파하르도 도심고속도로에서 밴 하나가 고장을 일으키고, 비상등을 켠 채로 잠시 정차할 것이다. 운전사가 나와서 차량을 살펴보는 사이 차량 우측 창문이 잠시 열리고, 한발의 총알을 쏠 것이고, 그 총알은 인류학자 스즈키의 방 창문을 뚫고 벽에 박힐 것이다.

그 상황에서 호텔을 방위하는 주 방위군이, 카라카스에서 운영되는 몇 안 되는 고급호텔인 JW 매리어트 카라카스 호텔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수집될 것이다.

밀러 국장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국장 직속 작전팀 팀장 중 한명인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은 여기까지다.

하루 안에 펼쳐지는 3번의 도발,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방위군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한 통상 작전으로 그는 알고 있다.

이번 작전을 총괄하기 위해 UAV가 뜰 것이다. 그리고 실시간 영상을 이 곳, 위장 상황실로 송출할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기프티드로 의심받고 있는 한규호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한 작전이고, 한규호 만을 클로즈업 하는 용도로 또 다른 UAV가 동원된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다.

물론 또 다른 UAV를 가동하는 팀도, 어떠한 이유로 한규호라는 남자를 클로즈업 촬영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영상을 받아 저장하는 팀도, 그리고 그 영상을 보고 한규호의 행동을 분석할 팀도, 지금 카라카스에 잠입한 특작팀도, 조금 멀리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구출팀도, 그리고  세 곳으로 분산된 상황실 요원들도, 조각처럼 쪼개진 자신의 임무만을 수행할 뿐이다.

이 작전의 진짜 의미를, 전체적인 그림을 아는 사람은 현재로써는 오직 두 사람 뿐이었다.

하루.

단 하루 동안 한규호를 중심으로 3번의 도발을 진행하고,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진짜 목적이다..

CIA는 한규호라는 늑대를 관찰할 것이다. 관찰하고 파악할 것이다. 그를 파악하는데, 오랜 시간을 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작전이 그 서막이 될 것이다. 종국에 늑대를 포획할지, 아니면 사냥할지는 모르지만. 이번 작전이 늑대에 대한 첫 번째 공식 작전의 시작이다.

간단한 작전이다.

저격이라는 두 번의 쇼, 폭발 한번, 습격 한번. 그 어떤 것도 그레이스 박사에게 실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구출팀은?”

“퀴라소(Curacao)에 대기 중입니다.”

최악의 경우를 위해 네덜란드의 협조를 얻어 퀴라소에 특수 구출팀도 대기 중이다. 명령이 떨어지면 한 시간 반 안에 250km를 날아가 그들을 구출해 올 것이다.

“시행하게.”

밀러 국장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특별히 지시할 사항은?”

“인명 피해가 없도록 하게. 그리고. 국무부 옵서버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국장이 말했다. 국장 직속 작전 팀장 중 한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 박사 일행이 장관을 만나러 출발하기 2시간 전에 맞추어, 베네수엘라 수도 방위군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작전 ‘la ciudad’가 개시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써는 두 사람만이 아는 작전 ‘늑대 추적(Chasing Wolf)’도 동시에 시작될 것이다.

***

2일차

JW 매리어트 카라카스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준비를 마친 한규호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 30분이 되기 조금 전 먼저 호텔 로비로 내려와 있었다.

그는 로비 소파에 앉아서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여느 5성급 호텔 로비와 다름없이 이곳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한규호는 이질적인 모습이라고 느꼈다. 로비를 오가는 투숙객들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우려,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의 친절함 속에 숨겨진 경계심, 그리고 호텔 측 무장경비원과 카라카스 방위군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은은한 클래식 음악과 뒤섞여 이질적인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규호는 생각을 전환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도 남아있던 찝찝했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미국은 왜 그를 이곳에 보낸 것일까?

일주일의 시간 동안 그들이 한규호에게 원한 것은 단순한 경호만일까?

일주일의 기간이 3일로 줄어든 것을 그들도 예상했을까? 그들이 계획한 것은 아니었을까?

차라리 이라크나, 시리아로 보냈다면, 그랬다면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김훈의 말처럼 미국이 한규호의 비범한 신체능력을 눈치 채고, 그 능력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서 그를 전장의 한가운데로 보냈다면 한규호로서는 그들의 의도를 훨씬 빠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곳에?

정말 그레이스 박사의 경호만을 위해서?

그걸 단순히 믿을 정도로 한규호는 바보가 아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미스터 스즈키.”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한규호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단정한 바지 정장을 갖춰 입은 앤 챔버가 서 있었다.

“좋은 아침이군요. 미스 챔버.”

한규호가 그녀에게 인사했다.

실질적으로 이번 작전에 국무부의 옵서버 역할을 맡고 있는 앤 챔버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약간의 어색함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한규호는 앤 챔버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를 살폈다.

한규호는 그녀가 국무부의 옵서버임을 알고 있었다. 처음 작전을 맡을 때, CIA로부터 설명을 들을 때, 대학생 같은 그녀가 국무부의 옵서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미 언질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전혀 정부 측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청바지에 가벼운 티셔츠 차림이었던 첫 만남 때의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은 대학생처럼 보이는 그녀의 동안 때문인지, 그녀는 그렇게 중요한 인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장관을 만나기 위해 정장을 갖춰 입은 지금의 모습도 그렇게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레이스 박사, 아고스토 이사, 한규호 그리고 그녀의 이 4명의 일행 중 지금 이곳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앤 챔버, 그녀인 것 같았다.

“아침은 드셨어요?”

어색함을 깨고 앤 챔버가 한규호에게 말을 건넸다.

“먹었습니다. 챔버 양도 아침 식사 하셨나요?”

한규호가 물었다.

“아니요... 저는....”

앤 챔버가 말끝을 흐렸다.

“어제 박사님과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한규호의 말에 앤 챔버의 몸이 움찔했다.

“......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앤 챔버는 어제 차관이 보여준 사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레이스 박사가 설명을 했을 것이다.

(그녀도.... 알아야겠죠.)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앤 챔버의 방을 노크하는 그레이스 박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가 사진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했을까?

“아고스토.... 이사님께서....”

앤 챔버가 말했다. 아고스토가? 그레이스 박사가 아니라?

“아침에 아고스토 이사님께서.... 사진에 대해서..... 말씀해.....”

“아침에요?”

한규호가 물었다.

“이사님께서.... 아침에.... 제 방에 노크를....”

한규호는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레이스 박사는 최대한 말을 조심해서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그녀의 방을 노크한 아고스토는 최대한 적나라하게, 아니, 어쩌면 과장을 섞어서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한규호에게는 그들의 속내가 뻔하게 보였다.

어떻게든 이번 방문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 그레이스 박사는 최대한 순화해서.

20대 아가씨가 고통스러워 하는 얼굴을 보고 싶은 아고스토는 최대한 과장해서 같은 상황을 설명했을 것이다.

둘 다 앤 챔버 그녀를 위한 선의의 발로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들 자신의 입장, 이익, 욕망이 투영됐을 뿐.

한규호는 생각했다.

각자 속셈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있다고.

한규호, 그 자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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