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HANDCARRY (26)
5월 24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 동남동쪽 530m 지점.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한규호는 바위 뒤에서 숨을 골랐다.
출혈은 확실히 진정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고통은 여전했다.
고통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스무 번이 넘도록 바위그늘, 갈라진 틈, 거목의 뒤쪽을 옮겨 다니며 몸을 날렸다.
잔뜩 웅크렸다가 몸을 피면서 재빠르게 움직였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속도를 높여가면서. 그를 노리는 누군가를 경계하면서. 그렇게 스무 번이 넘게 몸을 날렸다.
방금 몸을 날리기 전 그는 언덕위에 있는 교회 십자가를 살폈다.
한규호는 저격수가 십자가가 있는 첨탑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스코프의 반사광.
저격총에 달려있는 스코프는 미약하지만 별빛이든, 달빛이든 반사해 낼 것이다. 그렇다면 한규호는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스코프의 반사광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일까? 더 은밀하게 숨어있는 것일까?
아니. 그들이 처음 그곳에 아직 있기는 한 것일까?
알 수 없다. 그저 스스로를 미끼로, 낚시를 할 수 밖에.
한규호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45m 정도 거리에 비석 모양의 커다란 바위.
비석일까? 아니면 자연이 우연히 만들어낸 직육면체일까?
우선은 저리로.
속도를 조금 더 높여서.
한규호는 몸을 날렸다.
***
5월 24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원 아이드 잭은 비석처럼 생긴 바위를 보고 있었다.
그가 몸을 숨긴 곳에서 대략 45m 정도.
다음은 저 곳이겠군.
남자는 대략 20~40m 정도를 움직였다. 그리고 원 아이드 잭이 예상한 지점으로 몸을 날렸다.
다음에는 저기로 오겠군. 그는 총구를 조정했다.
그가 뛰어나오고, 그 모습이 포착되고, 뇌가 그 사실을 인식하고, 총구를 움직이면서 동시에 그의 본능이 조준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을 만한 곳으로.
그리고 기다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 그를 감쌌다.
800m 바깥에서 크게 반원을 그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그를 놓치고, 그가 어디로 올 것인지 예상하고, 그의 움직임을 보고, 다음 장소를 또 예상하면서.
원 아이드 잭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소리 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저리로 가겠지? 그리고 갈 거야. 어떻게 그렇게 빠를 수 있지?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고. 이번에는 놓쳤군. 언제나 놓쳤지. 다음에는 잡을 거야. 해 볼 수 있으면 해보라고.
원 아이드 잭은 그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으로, 비석 모양의 다음 목표를 시야에 둔 채, 그가 이동할만한 곳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의 예상이동지점에 선을 그어 놓고, 그 선 위에 점 하나를 찍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 움직여봐 친구. 이번에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보자고.
그 순간 그의 친구가 몸을 움직였다.
언제나처럼 신속하게. 탄력있게. 날카롭게.
그 순간 원 아이드 잭의 본능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의 본능이.
이제는 친구와 작별할 시간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
5월 24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 동남동쪽 515m 지점.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한규호는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직감이 발동했다.
위험하다는 직감이.
한규호는 순간 온 몸에 힘을 다리에 불어넣었다.
뉴런이 자극을 전달하는 속도, 초속 120m를 뛰어넘는 명령이.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이 그의 온 몸에 전달됐다.
그 순간 그의 모든 신경이 가속했다.
그리고 시간이 멈추듯 주변이 천천히 흘러갔다.
한규호의 눈에, 교회 십자가가 서 있는 첨탑 위에서 터져나오는 화염이 보였다.
그리고 밝은 오랜지 빛 화염을 배경으로 회전하며 그에게 , 아니, 정확히 그가 뛰어갈 지점을 향해 날아오는 탄두의 모습이 들어왔다.
거기 있었군.
찰나의 순간, 지구상의 생명체는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수 없는 그 짧은 순간에 한규호는 이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한 다음 저장하고 반응했다.
0.3초 이내에 총알이 그가 발 디딜 위치에 다다른다.
잔뜩 긴장된 한규호의 신경은 그의 온몸을 돌아다니며 신경전달물질을 자극하고, 나트륨이온과 칼륨이온, 염소이온 등이 세포막을 두드려대며 전기신호를 마구 뿜어냈다.
그는 미세한 틈을 만들고, 그의 머리를 조금 뒤로 빼내어, 그의 머리를 뚫고 지나갈 총알을 피해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직감.
그에게 위협이 찾아오면 발동되는 직감. 그리고 인간의 신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신경가속. 그의 능력이, 원 아이드 잭의 능력인 본능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는 비석 모양의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거기 있었군.
한규호는 숨을 골랐다.
40m의 거리 중 20m를 짐승의 속도로 움직였고, 총알이 발사되는 그 순간 남은 20m를 순간이동과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거기 있었군.
스스로를 미끼로 건 낚시대에 물고기가 걸렸다.
이제 낚아 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는 옆구리를 만져보았다.
통증이 다시 미미하게 퍼져갔다.
멀리서 소리 하나가 잡혔다.
노리쇠뭉치가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탄피가 튕겨 나오는 소리. 마지막으로 약실에 탄이 삽탄 되는 소리.
“거기 있었군.”
한규호는 다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
5월 24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원 아이드 잭은 지금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경악에 찬 얼굴로 500m 밖에 비석 모양의 바위를 보고 있었다.
본능이 말했다.
쏘면 된다고. 아니. 그에게 지시하기도 전에 본능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탄두가 총구를 벗어났다.
500m.
탄두가 발사되고 0.5초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서, 그가 이동할 만한 예상지점을 포착하고, 단 한 번도 그를 배신하지 않은 그의 본능이 시키는대로 총구를 당겼다.
그런데 실패했다.
실패했다?
그 순간.
총을 발사한 그 순간. 그가 총에 맞아야 하는 그 순간.
그가 사라졌다.
500m 눈앞에서 그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몸을 날리고, 대략 20m 쯤 이동한 그 순간에, 그가 사라져버렸다.
남은 20m를 남겨놓고, 목표가 그의 눈에서, 2km 밖에서 날아오른 박새의 깃털 색깔을 알아볼 수 있는 그의 눈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는 노리쇠뭉치를 당겨 탄피를 뽑아내고, 다음 탄을 장전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로 경악에 짓눌려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제 친구와 작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친구는 사람이 아닌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노리쇠뭉치를 당겨 탄피를 뽑아냈다.
아직 장약의 열기를 담고 있는 탄피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다음 탄환. 5개들이 클립의 세 번째 탄환이 약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는 그런 생각을 지우지 못한 채 다시 비석으로 시선을 모았다.
심장소리가 빨랐다. 80. 아니. 90을 넘긴 심장박동소리가 온 천지를 가득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침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침착하자. 그는 애써,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늦줬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귓속을 꽝꽝 울리는 것 같은 그의 심장 박동이 천천히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기다리자.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자.
조용했다. 산속으로 메아리치던 총소리가 멀어져 가고, 그의 전신을 울림통삼아 증폭되어 들리던 심장소리가 잦아들자, 다시 온 사위는 고요함 속에 묻혔다.
집중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총구가 도달하는 시간은 짧아진다.
아직 클립에는 3발의 탄환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는 단 한 번도 그곳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올 것이다. 그가 올 것이다.
그렇게 전방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는 와중에 뒤에서 박새들이 날아 올랐다.
그러나 원 아이드 잭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옷 속으로 기어오르는 벌레를 눈치 채지 못했던 것처럼, 그의 모든 신경과 감각은 전방만을 향해 있었다.
나올 것이다. 그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막 첨탑에 올라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한규호를 눈치 채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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