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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46화 (47/386)

MISSION 02 : HANDCARRY (24)

5월 24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원 아이드 잭(One Eyed Jack)은 어둠속에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첨탑에 오른 후  40시간 가량이 흘렀다.

몇 분에 한 번씩, 아주 찰나의 순간의 눈깜빡임을 제외하면, 그는 마치 동상처럼 처음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힘들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른쪽 눈과 함께 그런 감정들은 사라졌다.

그날.

소총 한 자루를 들고 자신의 고향을 떠난 그날 이후, 그는 전장에서 자라고, 사람을 죽이며 성장했다.

그는 조금씩 이름을 얻었다. 그가 사람을 하나씩 죽여나갈수록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원 아이드 잭. 어느 순간 그를 지칭하게 된 이름. 그는 의뢰인들의 부름을 받아 전 세계를 돌았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능력은 철저하게 숨겼다.

필요는 없지만 스코프도 항상 가지고 다녔고, 비상식량 같은 보급품도 항상 들고 다녔다. 일부러 쉬운 목표를 더 오래 기다렸다가 힘들게 저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그의 곁에 있다면 그는 총을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이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별한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른쪽 눈을 잃은 그날, 머릿속에 떠오른 자신의 능력. 그리고 일반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격에 특화된 그의 신체 능력은 그에게는 득이자 독이 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격수는 그리 드물지 않다.

그를 대체할 저격수는 널리고 널렸다.

그와 동일한 실력으로 목표를 제거할 수 있는 저격수는 없다고 해도, 그와 비슷한 실력으로 목표를 제거할 수 있는 저격수는 있다.

그의 능력을 알았다면 그를 전속으로 고용하겠는가? 아니면 그의 눈을 갈라 그 능력의 실체를 알려 하겠는가?

그는 스스로의 몸값을 낮췄고, 그의 능력을 숨겼다.

그리고 5년 전, 이 곳 미얀마로 흘러들어왔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독립운동을 벌이려는 북부 고산족 분리독립운동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는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하나씩. 하나씩. 목표가 정해지면 그는 총을 들고 나섰고, 그가 나서면 목표는 며칠 안으로 고혼이 되었다.

미얀마 북부에 산다는 악마. 단 한발의 총알로, 중요한 인물을 한 명씩 죽여나가는 악마의 공포가 미얀마 북부를 휘감았다.

그의 눈에 박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40시간 가까이 그의 눈에 몇 번이나 잡힌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수십 번 박새가 날아오르면 수십 번 그쪽으로 감각을 돌렸다.

마침내 그의 눈에 드디어, 날아오른 박새 뒤로 흐릿하게 두 남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원 아이드잭은 그의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분산시켰던 시각적 감각을 그곳으로 모았다. 2km가 떨어진 곳에서 천천히 바위를 오르는 그들이 그의 눈에 확실하게 포착됐다.

남자 한명. 앞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약간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민닷 입구 검문소에서 걸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있는 걸음걸이였다.

여자. 그 뒤를 따르는 여자. 등이 약간 굽어 있었다. 호흡이 거칠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 여자가 남자 뒤를 따르고 있다.

원 아이드 잭은 40시간만에 처음으로 몸을 살짝 움직여, 그의 몸과 그들이 나타난 방향을 일직선으로 만들었다. 그의 손 안에서 그를 단 한번도 배신하지 않은 Kar98k의 총구가 그들을 향했다.

s.S 파트로네 탄환(schweres Spitzgeschoß Patrone)으로 기록한 Kar98k의 최대사거리는 4700m.

그들과의 거리는 2km.

사거리 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원 아이드 잭은 방아쇠에 닿아있는 검지에 조금의 힘도 주지 않았다.

사거리는 단순히 총알이 날아가는 거리를 의미한다.

사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Kak98k의 총구발사속도는 초당 2500피트 정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초에 760m를 날아간다.

공기 저항에 의해 탄속이 줄어드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2km 밖에 있는 목표까지는 4초 가량이 소요된다.

총알이 목표로 가는 도중에 바람, 습도, 공기의 밀도, 중력, 지구 자전속도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명중률은 제로에 가깝다.

원 아이드 잭. 그가 아무리 일반인을 뛰어넘는 저격수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다양한 변수를 모두 감안해 2km 거리에 있는 목표에 총알을 박아 넣은 것은 불가능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정보부가 분석한 Ka98k의 유효 사정거리는 1000야드, 약 1km로 보고 있고, 이 또한 명중률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독일군도 500~700m를 최대 유효 사정거리로 보았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500m 안쪽에서 초탄을 발사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800m.

그가 선호하는 저격거리는 800m 였다.

800m 안쪽에 목표가 들어오면 그는 느껴지는 감각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바람의 방향과 속도, 지형적인 특성을 감안해 도출되는 그의 감각에 따라 그는 검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1초 후, 그는 쓰러지는 목표를 확인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그가 생각하는 최적의 지점.

그의 눈 앞에서 직선거리로 800m 가량 떨어진 위치를 살폈다.

그와 그들을 연결하는 일직선 중 한 점.

그곳에서 발을 딛는 순간, 여자는 총알을 맞을 것이다.

그들은 천천히 다가왔다.

어둠은 이미 온 사위를 감쌌지만, 그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끔씩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면서 천천히 그에게, 그의 총구가 겨누고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1500m.

1000m.

900m

850m.

원아이드잭은 심장박동이 살짝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빨라진다고 해봤자 분당 심박수 55 언저리다.

언제나 해왔던 절차고, 매번 경험했던 느낌이다.

이번에도, 그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 총을 들고. 빵집 둘째 아들의 머리를 날려버린 그날처럼 바람도, 습도도, 기온도. 위치도  완벽하게 느껴졌다.

그는 총구를 우측 상단으로 약 20밀(mil :약 1.125도) 조정했다.

그리고 검지에, 아주 미세하게 힘을 주었다.

***

5월 24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 동남동쪽 800m 지점.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한규호는 샤오메이를 밀쳐내면서 주변을 살폈다. 약 3~4m 후방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를 발견했다.

한규호는 그녀를 껴안으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땅에 떨어지는 힘을 회전력으로 전환해 그 곳으로 몸을 굴렸다.

바위 뒤로 들어간 한규호는 쇼크에 의해 커진 샤오메이의 눈을 무시하고 재빠르게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머리부터 내려간 그의 시선이 그녀의 허벅지에서 멈췄다.

왼쪽 허벅지 바깥쪽. 정확히는 넙다리곧은근 부위에서 나온 피가 그녀의 바지를 적셔가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두 손으로 그 부위를 찢어냈다.

바지를 찢기 위해 힘을 주자,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울컥하고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젠장. 복막이 찢어졌군.

그러나 한규호는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바지가 찢어지자 피범벅이 된 맨살이 드러났다. 그는 재빠르게 손으로 뒤쪽, 넙다리두갈래근 인근을 더듬었다. 그 쪽에서도 출혈이 있었다.

관통했다.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는 총알은 그의 왼쪽 옆구리로 들어와 복막을 찢어낸 후 몸 안에서 궤도를 바꿔 그녀의 허벅지로 날아간 다음 관통했다.

그는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최대한 붕대모양으로 길게 찢어 그녀의 허벅지에 묶었다.

“아아....흐으으읍!”

샤오메이는 갑작스럽게 온몸을 관통하는 고통에, 허벅다리에서 시작해 척추를 타고, 뇌를 강하게 때리는 고통에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참아냈다.

한규호는 그녀의 손톱이 어깨를 파고 드는 것을 느꼈다.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터져나오는 비명을 참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붕대 대신 묶어놓은 한규호의 상의가 천천히 뻘겋게 물들었다.

다행이다.

총알이 5cm만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그래서 동맥이 끊어졌다면.

그녀는 살지 못했을 것이다.

한규호는 샤오메이의 귀에 입술을 댔다.

“내말 들려?”

눈을 감고 고통을 참아내던 샤오메이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관통했고, 뼈도, 주요 동맥도 피해갔어.”

샤오메이는 다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다.

“출혈이 조금 있지만 금방 멎을 거야. 괜찮아.”

한규호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괜찮지 않다.

임시 붕대 대용으로 묶어놓은 상의는 며칠간의 강행으로 오염돼 있었고, 원래 그녀의 다리를 감싸고 있던 바지도 마찬가지로 오염돼 있었다.

상처는 바깥쪽 허벅지를 관통했고, 그리고 그 관통된 부위로 오염물질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처 오염, 세균감염. 그리고 패혈증의 위험이 있다.

소독, 대량의 수액, 그리고 항생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곳을 벗어나야 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날아온 총알의 시작점을 알아내야 한다.

출혈이 있지만 금방 멎을 것이란 말에 샤오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힘겹게 눈을 떴다. 눈을 떠서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힘겹게 눈을 뜨자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래. 눈.

저 눈.

자신을 데려갈 수 있다고 말한 그의 근거없는 말을 그녀는 왜 믿었는지 이제 기억이 났다.

눈.

그녀를 바라보는 저 흔들림없는 눈.

그녀는 그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를 믿기로 마음 먹었다.

“괜찮아.”

그가 다시 말했다.

그 말에 샤오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기 위해 아래로 내린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울컥.

그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무언가.

어둠 속에서도 충분히 느껴지는 무언가.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뜨겁고 검붉은 액체가 다시 한번 울컥 쏟아져 나왔다.

“아....아...안.......안돼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

5월 24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원 아이드 잭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40시간을 기다린 검지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자, 어김없이 그의 애병(愛兵)은 화염과 함께 7.92mm의 마우저 탄환에서 분리된 탄두를 뿜어냈다.

탄환은 2초가 안 되는 시간 동안 자유비행을 한 후 뒤따르는 여자의 신장을 약 4000줄(J)의 에너지로 박살 낼 예정이었다.

원 아이드 잭에게는 그 예정은 미래이자, 현재이며, 과거였다.

그가 트리거에 힘을 준 순간 언제나 미래는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의 눈에 미래가, 현재가, 그리고 과거가 바뀌는 모습이 보였다.

총을 쏘는 그 순간 앞에 있던 남자가 여자를 감쌌고, 그리고 안은 상태로 뒤로 굴러 숨는 모습이 그의 눈에 보였다.

2km 밖에 박새의 배 깃털 색도 알아볼 수 있는 원 아이드 잭의 왼 눈에, 남자의 옆구리에서 터져나오는 핏물이 보였다.

남자에 가려 여자가 맞았는지는 볼 수 없었다.

과거가 바뀌었다.

원 아이드 잭은 당황했다.

그리고 당황한 자기 자신에게 더욱 당황했다.

어떻게?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려는 몸짓이었다. 그녀를 감쌌고, 대신 총을 맞았고, 몸을 굴려 바위 뒤로 숨었다.

덮치려 했다? 그런데 우연히 총알이 날아와 맞았다? 그리고 넘어지는 반동으로 바위 뒤로 굴렀다?

말도 안 된다.

그는 알 수 있다.

말도 안 된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려 했다.

어떻게?

소리가 총알보다 늦게 도착했을 텐데.

초당 760m를 날아가는 총알이, 초당 340m의 속도로 전달되는 소리보다 빠르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이 총의 방아쇠를 처음 당긴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상황이 일어났다.

실패.

그가 원하는 목표가 맞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았다.

그러나 그가 원하지 않던 목표가 맞았음은 확실했다.

그가 원하지 않은 표적에 총알이 맞았다.

처음으로 그는 실패했다.

이 능력을 얻고, 처음으로 그가 실패한 것이다.

그는 살짝 머리를 흔들었다.

진정하자. 침착하자. 냉정해지자.

그러나 그의 심장박동은 여전히 빨랐다.

65

66

65

평소 저격시보다 10이나 빨랐다.

신체건강한 남성의 휴식기 심박수와 비슷했지만, 그가 총을 들고 누군가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심박이었다.

진정하자. 침착하자. 냉정해지자.

그는 생각했다.

아무런 장비도 없는 그들과의 거리는 800m.

그들이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남자는 총을 맞았다. 옆구리에서 핏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분명히 봤다.

운 좋으면 복막이 찢어지고 뱃속이 헤집어지는 것으로 끝났겠지만, 장기가 다쳤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동맥, 신장 어느 것이 문제가 생기든, 그는 죽는다.

실패는 나중에 생각하자.

남자는 바위 뒤에서 죽는다. 여자는 총에 맞지 않았다면 바위 뒤에서 나올 것이다.

땅을 파지 않는 이상, 땅굴을 파서 그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 이상, 여자는 바위의 그늘에서 나와야만 한다.

그러면 여자는 죽는다.

생각을 정리한 후 그는 다시 시선을 한 곳에 모았다.

약 800m 떨어져 있는 바위로.

그 순간 멀리서 공기를 타고 전해오는 미약한 비명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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