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42화 (43/386)

MISSION 02 : HANDCARRY (20)

5월 23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Matupi Seventh-day Adventist Church).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마투피 남동쪽 팔래와 스트리트 끝에 위치한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 첨탑 위에 한 남자가 엎드려 있었다.

핼리콥터에서 내려 이곳까지 걸어와 첨탑 위로 올라온 뒤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다. 정면에 위치해 있던 태양은 어느덧 반원을 그린 후 이제 그의 등 뒤에서 그를 비추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알 수 없다. 알 필요도 없었다.

처음 첨탑에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자세를 취한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속칭 원 아이드 잭(One Eyed Jack). 또는 스레브레니차의 마지막 아들(Last Son of Srebrenica). 이제는 아무도 기억 못하는 이름 미르(Miru), 슬라브어로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여전히 목표가 올 만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하나뿐인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동공도 확장하거나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끔, 일반인이라면 눈에 핏발이 설 정도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찰나의 깜박임을 보일 뿐, 그저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하나 뿐인 눈은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곳,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마치 곤충의 겹눈처럼, 그의 하나 뿐인 홍채는 시선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

곤충 하나가 그의 바지단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가늘고 가는 여섯 개의 다리가 그의 다리를 간질이고 있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닌다 해도 그는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온 몸의 모든 신경을, 그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눈과 두뇌, 그리고 방아쇠에 닿아 있는 그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에 집중하고 있었다.

2km 전방에서 새가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미르는 시선을 유지한 채 그곳에 살짝 집중했다.

시니치(сини́ца: 박새)군.

검은 털의, 배가 하얀 박새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 다른 무언가의 기척을 느껴 날아오른 것은 아니고 짝짓기를 위해 움직인 듯 보였다. 그의 시선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박새가 하늘로 솟아 올랐다.

2km 언저리에서 10cm가 조금 넘는 박새의 모습이 그의 망막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는 박새에 분산됐던 약간의 신경을 다시 시각범위 전체로 회수했다.

어제 저녁을 굶었고 첨탑에 오르기 전 소변을 봤다.

배변을 볼 필요는 없다.

첨탑에 오르기 전 물 두 모금을 마셨다.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다.

그저 극도로 날카롭게 확장된 시각으로, 자신의 앞을, 표적이 올 그곳을 지키고 있으면 된다.

적어도 3일은 이대로 버틸 수 있다. 조금 더 무리하면 5일도 가능하다.

그가 처음 눈을 잃어버린 그날, 아르칸의 민병대 중 한명이 술에 취해 그의 오른쪽 눈에 손가락을 박아 넣은 그날 이후.

그는 이 능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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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집무실

백악관,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 미국

“그럼 그렇게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데니스 맥카튼 국가안보 보좌관이 그렇게 말하곤 집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방 안에는 이제 둘 만이 남았다.

“좀... 과하지 않나 싶군.”

카키색 스웨터 셔츠를 입은 프랑크 보머 대통령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비상 훈련이라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이건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평양 7함대는 뱅골만으로, 중동을 담당하는 5함대가 서인도양을 커버하기 위해 인도양으로, 그리고 대서양 6함대가 비어있는 중동을 메우기 위해 키프러스 앞바다로 긴급기동을 하라고 지시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러나 찝찝함이 계속 남아있었다.

자신의 눈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네일 밀러 CIA 국장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기프티드는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기프티드일 가능성이 있다는 한규호라는 남자는 분명 중요하다.

그럼에도 3개 함대를, 어지간한 나라의 군사력에 필적하는 미해군 함대를 하나도 아니고 세 개씩이나 움직인 것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 드린 대로입니다. 중국과 관련이 있다면 조금 과한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밀러 국장의 설명에도 대통령은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이 옳기는 하다. 만리장성 안에서 서로 죽고 죽여가며 인구를 줄여가던 칭크 놈들이 어느새 G2라고 건방지게 구는 것도 마음에 안들지만, 건방지게 굴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으로 커졌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했으니까.

“뭐. 긴급기동훈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대통령은 납득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생긴다 하더라도 세계 최강 7함대가 할 일은 별로 없겠지만, 7함대가 개입하면 된다. 아무 일도 없으면 그저 긴급기동훈련을 한 것 뿐이다.

“그렇습니다.”

밀러 국장이 말했다.

감각이 많이 무뎌졌지만, 그래도 뭐가 중요한지 정도는 아직 알고 있군.

“그나저나. 그 이야기를 해보지. 그.... 조건이라는게 뭐지?”

“발현 조건입니다.”

“그래. 발현 조건.”

밀러는 대통령을 보면서 말했다.

분명 대통령 인수위 시절 전직 대통령에게 넘겨받은 기밀 중 하나인데. 전직 대통령이 숨겼는지, 아니면 세계의 왕이 되었다는 기쁨에 취해 흘려들었는지, 다시 묻는 이 남자가 계속 이 자리에 있어도 될까.

“기프티드는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의 범주를 뛰어 넘는 능력을 가진 존재를 말합니다.”

밀러는 사람 대신 존재라는 표현을 썼다.

“기프티드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저희가 파악한 것으로 그렇습니다.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능력이 발현됩니다. 일종의 트리거, 방아쇠가 작동해야 되는 거죠. 그 트리거를 우리는 발현 조건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랬지. 기억나는군.”

이 자식이 문제였군.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기프티드가 둘 이었지?”

“맞습니다.”

“그들의 발현 조건은 뭔가?”

“모릅니다.”

의자에 등을 기대로 두 팔로 머리를 받치고 있던 보머 대통령이 의자를 빙글 돌려 밀러 국장을 바라보았다.

“인수인계 받으신 것처럼. 기프티드에 대한 사항은 단 한사람만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능력이 있는지, 발현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보머 대통령은 한동안 국장을 노려보았다.

“자네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가?”

밀러 국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젠장. 대통령은 꼬박꼬박 바뀌어도 국장은 안바뀐다 이건가. 뭐 좋아. 이야기해봐. 발현 조건이라는거.”

“지금가지 파악한 바로는 어떤 특정한 조건이 당사자에게 부합되면 능력이 발현됩니다.”

“구체적으로.”

밀러 국장은 대통령의 마음을 좀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전직 대통령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현직이 알아도 괜찮겠지.

“발현 조건이 부합되면 그 순간 당사자는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케이스 1의 경우, 그는 키가 5피트(150cm), 몸무게가 88파운드(40kg)에도 미치지 못한 왜소한 사나이였습니다. 그래서 유랑극단에서 저글링을 하거나 작은 통 안에 들어가는 재주를 보이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발현 조건이 발생한 그 순간 자신의 두 팔로 200마력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1930년대 유령극단의 단원이라는 그 말이군.”

“맞습니다. 미국전략사무국(OSS) 기록에, 지금은 봉인됐습니다만, 그 기록에 따르면 그는 발현 조건에 부합하는 그 순간 자신의 능력을 알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확보한 두명의 기프티드에게 동일한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발현 조건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냥 일반인이다. 그런데 그 조건에 부합하면 그 순간 능력이 발현된다.”

“맞습니다. 발현 조건이라는 것은 능력과 상관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케이스1의 경우 둘째 딸의 탄생이 발현 조건이었습니다.”

“흐음.....”

그 조건은 다른 말로, 발현 조건이라는 것이 무규칙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만약 둘째 딸의 탄생이 공통적인 발현조건이었다면 이 세상은 기프티드로 넘쳐 났을 것이니.

“그리고 우리가 세운 가설은 이렇습니다.”

대통령은 머리를 대고 있던 두 팔을 책상위로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턱을 고였다.

“기프티드의 능력을 받은 이가 있다고 해도, 스스로가 그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능력이 발현되기 전까지. 그리고 능력이 발현되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발현 조건은 어떠한 규칙성도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세상의 인류를 멸망시킬 능력을 잠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발현 조건이 캘리포니아에서 하와이까지 맨몸으로 헤엄쳐야 한다는 것이라면 그 능력은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능력을 가진 이가 별로 없을 터이고... 거기에 발현 조건에 부합할 가능성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의 확률이라.... 이건가?”

“둘째 딸의 탄생은 인생에서 단 한번 뿐입니다. 다른 기프티드의 경우에도 발현 조건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중에서 탯줄을 통해 마약을 일정량 이상 주입받은 상태에서 태어나 다섯 살을 맞이했다거나.”

대통령은 그 순간 밀러 국장이 자신이 아는 사실 하나를 공개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흠..... 찾기 힘들다. 그래서 그 한규호라는 한국놈이 중요하다.”

“그렇습니다.”

밀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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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마투피 제칠일 안식일 교회(Matupi Seventh-day Adventist Church).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23년전, 술에 취한 아르칸의 민병대원 하나가 그를 불렀다.

아직 소년병이던 미르는 잔뜩 취한 그가 두려웠지만 그의 부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갔다.

강간공장, 무슬림 여성들을 감금하고 인종개조라는 이름으로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의해 강간이 자행되는 그곳에서 나온 민병대원은, 미르가 알기로는 4거리 빵집의 둘째 아들이었던 그는 강간공장에서 막 강간을 마치고 나온 상태였다. 그런 그는 술에, 광기에 잔뜩 취해 있었다.

그리고 광기에 취한 그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그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미르의 오른쪽 눈을 찔러버렸다.

그 순간. 미르. 13살의 소년병이었던 그는 영원히 오른쪽 눈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오른쪽 눈이 불타는 고통 속에서 그가 여태껏 몰랐던 무언가가 있음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그의 남아있는 왼쪽 눈은 2km 바깥에 있는 캔의 상표를 알아볼 수 있고, 한모금의 물만으로도 갈증을 느끼지 않고 이틀간 아무런 움직임 없이 한 자리에서 버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말이다.

저격수.

하늘이 내린 저격수로써의 재능이었다.

오른쪽 눈을 감싸쥐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그를 빵집 둘째아들 출신의 민병대원은 발로 걷어 찬 다음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괴성을 내지르며 멀어져 갔다.

그리고 3일 후, 그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머리가 터져 죽었다.

어린아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에 사람이 죽어나가던 사라예보 저격수 거리에서처럼,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도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미르,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 아이는 Kar98k, 스코프 없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하던 단발식 볼트액션 제식 소총을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첨탑 위에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에 죽어나갈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뢰인은 여자의 시신을 최대한 온전하게 보전해 달라고 말했다.

신장.

복막 뒤에 위치한 신장을 맞으면 그녀는 죽는다. 총상에 의한 죽음이든, 과다출혈이든.

그는 그녀를, 그녀의 허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km 밖에 있는 박새의 짝짓기를 볼 수 있는 왼눈을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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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마투피 남동쪽 45km 지점

친 주, 미얀마

조금씩 한기가 몸을 파고 드는 것이 느껴졌다.

산에서는 햇님이 빨리 사라진단다.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감고 있는 눈꺼풀 위로 느껴지던 햇빛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남지 않았다.

완은 웃고 있었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가고, 그녀는 체념했다.

옳다. 이것이 맞다.

그녀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자신도 모르게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힘주어 감은 눈은 뜨고 싶지 않았고 뜨지 않을 수 있었다. 눈꺼풀은 그녀의 의지로 닫을 수 있으니.

그러나 열려 있는 그녀의 귀는, 살아있는 그녀의 청각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의 소리를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청각을 곤두세우고, 혹시라도 다시 들려올지 모를 발소리를 기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이 우스워 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는 떠났다. 그녀가 떠나보냈다.

새알을 먹지 말 껄. 하나는 거절할 것을.

그가 아무리 일반인을 뛰어넘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를 위해서 새알 하나는 먹지 말 것을.

오늘 밤이 지나면 그녀는 죽을 것이다.

혹독한 요원의 훈련과정도,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식양의 훈련과정도, 고산의 밤에 찾아오는 추위는 어찌 할 수 없다.

죽기 전 마지막 기대가 들리지 않을 발소리라니. 마지막 후회가 그 새알 하나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라니.

그녀는 웃음 지었다.

처음 방콕공항에서 그를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게이트 앞에 서서 그를 기다릴 때, 조그마한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나와 그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보고 I am 이라 말하던 그의 얼굴이.

자신을 기다리던 나를 보고 내심 좋아하던 그의 얼굴이.

개인 비서라고 생각하라는 그녀의 말에, 재빠르게 기분 좋음을 감추고 뚱한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이.

헬리콥터 안에서, 자신의 허벅지를 보던 그의 응큼한 얼굴이.

스위트룸에 체크인 하고, 침대에 걸터 앉아 손톱으로 침대 끝을 툭툭 치면서 거만하게 말하던 그의 얼굴이.

첫날 10만달러를 잃고 분노에 찬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이.

위스키를 병나발 불던 그의 얼굴이.

자신에게 히비키를 따라주던 그의 얼굴이.

마비된 상태로 누워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페트병을 내밀며 소변을 받아주겠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이.

뻔뻔하기도 하지. 그렇게 말하며 두 팔로 머리를 베고 눈을 감던 그의 얼굴이.

트라이앵글에 있던 바(BAR) 펜타닐(Fentanyl) 2층 테라스에서 메콩강변을 따라 늘어선 불빛을 보면서 자신의 가슴을 만지던 그의 얼굴이.

옷을 갈아입는 자신을 보면서 옻나무 이야기를 하며 웃던 그의 얼굴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일어났어? 하며 재 속에서 구운 토끼를 꺼내던 그의 얼굴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당신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화내며 설명하던 보이지 않던 어둠속의 그의 얼굴이.

한 손에 백 달러를 들고, 트래킹 사무소 주인의 시선을 따라 자신을 바라보고 작게 한숨짓던 그의 얼굴이.

빌라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에게 크로와상을 건네주던 그의 얼굴이.

초코바를 다 먹고, 아쉽네. 소금이라도 챙겨올걸 하고 중얼거리던 그의 얼굴이.

용맹한 호걸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려주던 그의 얼굴이.

어떻게 죽이려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던 그의 얼굴이.

그리고 팔에 새알을 쓱쓱 닦아 건네주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 이상 웃음 지을 수 없었다.

눈물이 나오려 했다.

마지막으로 언제 울었더라.

전대 식양. 자신에게 담담히 이제 쉬게 해달라고 말하던 그녀에게 영원한 휴식을 안길 때도, 슬프긴 했지만 울진 않았다.

언제 울었더라.

식양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상해 KTV에서 속옷 차림으로 남자들 앞에 섰을 때에도 울지 않았다.

언제 울었더라.

7살이 되던 해.

구 교수가 처음 그녀를 자신의 침대로 이끌었던 그날.

그날은 울었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언제 울었더라.

울기는 했었던가.

나는 울기는 했었던가.

소리가 들렸다.

몇 시간 동안 그녀가 신경을 곤두세운 채 기다리던 소리.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그녀 자신이 기다리던 소리.

그의 얼굴을 떠올리던 그 순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 소리.

발소리.

그녀에게 다가오는 발소리.

그 소리가 들렸다.

환청?

그를 생각해서 느껴지는 환청?

발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멀어져갔던 그 때와 반대로, 조금씩 가까워졌다.

확실했다.

그녀는 눈을 떴다.

이미 어둠이 그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계속 감고 있던 눈은 사물을 분간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소리가 나는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의 형태가 그녀의 아린 눈 속으로 들어왔다.

“아.. 젠장. 드럽게 머네.”

그가,

규호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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