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40화 (41/386)

MISSION 02 : HANDCARRY (18)

5월 23일

로얄 쨔욱 호텔(Royal Chauk Hotel).

쨔욱(Chauk), 마궤 주, 미얀마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복을 입은 상태로 자고 있던 루 륀 대령은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손목을 들어 시계를 봤다. 막 아침 6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들어와.”

루 륀 대령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대로 말했다.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중사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민닷(Mindat) 삼거리 검문소 전방 2km 지점에서 토요타 픽업트럭이 발견됐습니다.”

“언제?”

“검문소장 이야기로는 두세시간 전 차량을 버린 것 같다고 보고했습니다.”

“같다고?”

“검문소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검문소로 오던 교대병력이 발견했습니다. 발견 후 조사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좀 걸린 것 같습니다.”

“트럭 주인은?”

“등록지를 조사해 보니 수포콘(Supokon) 읍장 장남의 소유로 밝혀졌습니다. 지금 확인 중입니다.”

루 륀은 누운 채 생각했다.

맞을 것이다. 그들이다. 읍장 아들이 체크포인트 전방 2km 지점에 차량을 버리고 갔다?

아니다.

“민닷에서 마투피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산악도로를 타고 약 90km입니다.”

“직선거리는?”

“직선거리는 60km 정도 됩니다.”

그들은 차량을 버리고 산길로 향했다. 그럼 그들의 목적지는 한 곳 뿐이다. 아라칸 산맥의 동쪽 능선의 최고 고도 도시 마투피. 그 곳 뿐이다.

그냥 돌파한다? 아라칸 산맥을 보급없이 돌파한다? 그것도 며칠을 무리해서 걸어온 상태로?

불가능하다.

칼로에서 그들이 보급받은 장비 중 밤이 되면 온도가 뚝뚝 떨어지는 고산지대에서 숙영할 수 있는 장비는 없었다.

훔치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전문적인 장비를 갖춘 상점은 200km 내에 없다.

루 륀 대령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옆방에 있습니다.”

“헬기를 준비시켜. 마투피로 간다.”

대령의 말에 중사는 경례를 하고 방을 나섰다.

루 륀 대령은 욕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서 복장을 정돈했다.

예상대로다. 아시안 하이웨이 1, 아니면 마투피.

두 곳 중 검문소가 거미줄처럼 깔린 아시안 하이웨이 대신 그들은 마투피를 선택했다.

아라칸 산막을 넘고, 국경을 지나 바로 방글라데시로 빠지겠다는 생각이겠지.

복장 점검을 마친 루 륀 대령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창문 밖, 호텔 정원에 주기돼 있는 헬리콥터가 눈에 들어왔다.

마투피로 가서 그들을 기다리면 된다.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확보한다.

생각을 정리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대령의 뒤에 한 남자가 붙었다.

안대를 찬 남자가.

속칭 원 아이드 잭(One Eyed Jack). 또는 스레브레니차의 마지막 아들(Last Son of Srebrenica).

그가 루 륀을 따라 계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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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마투피 남동쪽 45km 지점

친 주, 미얀마

한규호는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이미 그 숨 소리는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들렸다.

몇 시간 전.

완은 전방에서 어떤 불빛을 발견했다.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보여선 안 될 빛이 그들의 전방에서 포착됐다.

서치라이트다. 한규호는 그 불빛의 정체를 알아챘다.

카준마에서 민닷으로 가는 유일한 도로에 설치된 검문소. 체크포인트. 그리고 그 곳이 지금 가동 중이라고 말하는 서치라이트.

짜욱에서 느꼈던 위험신호가 현실이 되었다.

한규호는 조용히 차를 멈췄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동을 껐다.

웅웅대던 자동차 엔진의 소음이 완전히 잦아들자 한규호는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감각을 확장했다.

약 2km 거리.

아직 걸리진 않았군

검문소에서 그들을 발견한 징후는 그의 감각에 포착되지 않았다.

“걸어 가야겠어.”

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불빛을 본 순간, 그가 차를 멈춘 순간, 그녀는 다시 걷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80km 정도 가야 할 거야. 괜찮겠어?”

한규호가 말했다.

완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규호. 발음이 부드러운 이름을 가진 그와 함께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규호는 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앙 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하루 90km는 농담이었는데, 젠장. 진짜 그 거릴 걷게 되는군. 말이 씨가 된다고, 말조심할걸 그랬어.”

한규호는 투덜거리며 산맥 북서쪽, 그들이 가야 하는 마투피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완은 그의 말에 살짝 미소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그 후로 약 8시간 동안 그들은 산맥을 오르고, 계곡을 넘고, 능선을 타면서 계속 움직였다.

잠깐잠깐 쉬기는 했지만, 길어도 5분을 넘지 않았다. 그렇게 무리하게 그들은 걷고, 산맥을 올랐다.

이제 완의 숨소리는 과호흡 환자마냥 빠르고 거칠었다.

쉬어줘야 할 때가 됐다.

태양은 거의 땅과 수직을 이루고 있었다.

“쉬었다 가자.”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완은 대답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8시간 동안 35km. 힘들지 않은 거리다.

산지가 아니라면.

그러나 산지라면 에너지 소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더군다나 제대로 된 영양보급을 받지 않은 상태로, 거의 쉬지 않고, 산길을 올랐다?

일반인은 이미 탈진해 쓰러졌을 것이다. 생명까지 위독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요원교육을 받은 그녀라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잠시 쉬고 있어.”

한규호는 그런 그녀를 두고 어디론가 몸을 날렸다.

먹을 것을 구하러 갔겠지.

그녀가 힘들면 그도 힘들다.

아무리 일반인 보다 월등한 체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8시간동안 거의 쉬지않고 걸어오면서, 그것도 앞에 서서 끊임없이 어디를 밟을지 발밑을 살피고, GPS좌표를 확인하면서 오차를 수정하는 등 신경을 써가면서 걸어왔기에, 체력소모는 그가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그녀를 두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완은 그에게 미안함을 느낄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도 안다.

그가 왜 이렇게 무리하게 움직이는지.

산맥의 밤은 급속도로 온도가 내려간다.

지금 그들이 입은 옷으로는 버틸 수가 없다.

이대로 밤을 맞이하고, 그리고 움직이지 못한다면 동사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마투피로 들어가야 한다.

하루에 90km.

그가 물었을 때, 그녀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평지였다면 그녀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갈 수 있다.

완은 알 것 같았다.

그는 갈 수 있다.

그녀는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뿐이다.

그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다.

완은 마음먹었다.

한규호는 근처를 뛰어다니며 최대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그러나 황량한 고지대에선 제대로 된 먹을 것들을 찾기 힘들었다.

흔하게 보이던 뱀마저 보이지 않았다.

한규호는 포기하지 않고 주변을 샅샅히 뒤져 먹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은 모두 모았다.

부실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먹을 거리를 구한 그는 다시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흠... 그냥 업고 뛸까.”

한규호는 중얼거렸다.

남은 거리는 대략 45km.

체력이 방전된 그녀를 업고 뛰어간다면, 그리 힘들지 않은 거리이다. 해가 지기 전까지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지금 이렇게 먹을 것을 챙겨오는 것보다, 차라리 그녀를 재우고, 그 상태로 업고 뛰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다.

소말리아 때처럼 정신을 잃게 한 다음 적당히 업든 안든 열심히 달려가면 편할 텐데.

그러나 그는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세포 하나하나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최선의 방법을 쓴다면 그녀가 설명을 요구할 것이다.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그의 능력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은 인간의 범주다.

그러나 그녀를 업고, 네다섯시간만에 45km를 뛰어간다면 그것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다.

그녀를 못 믿어서?

아니다.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가 구출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녀는 정보기관의 관심을 끌 것이다.

한국이라면 원청인 정보위원회에서, 그녀가 원해서 CIA로 인도한다면 그곳에서 그녀를 상대로 정보를 캐내려 할 것이고, 그러면 자신의 능력이 알려질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소말리아 작전에서 미국놈들의 행동이 조금 신경쓰였는데, 확신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좋아. 우선은 지금 이대로.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면 그때 해도 늦지 않으니까.

한규호는 마음을 굳혔다.

그의 눈에 경사진 나무 그늘 아래 누워있는 그녀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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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마투피 중앙 경찰서(Matupi Central Police Station).

마투피(Matupi), 친 주, 미얀마

쨔욱에서 이륙한 헬리콥터는 최단거리로 73분을 비행한 후 마투피 중앙 경찰서 헬리포트에 다다랐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헬리포트에는 마투피 경찰서장을 비롯해 친 주방위군 참모 등 군경 주요 인사가 모여 착륙하는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헬기가 착륙하자 로터의 속도가 채 줄어들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습을 보인 두 사람, 만달레이 지방군 사령부 참모부 부부장이면서 또한 사령관의 장남인 루 륀(Lu Lwin) 대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안대의 수장이라고 복장으로 말하는 것처럼 그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통일된 제복을 차려입은 상태로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그 뒤로, 칙칙한 올리브그린의 야전상의를 입은 남자가 커다란 낚시가방 같은 것을 들고 따라 내렸다.

“어서 오십시오. 대령님.”

마투피 중앙경찰서장은 정중히 나아가 루 륀을 맞이했다.

마투피는 친(Chin) 주에 속해 있는 곳으로, 만달레이 주 사령부 소속 루 륀은 공식적으로 이곳에서 활동할 수 없다. 관할이 다르기 때문에.

그럼에도 경찰서장은 그보다 스무살은 어릴 것 같은 젊은 대령을 깍듯하게 맞이했다.

그는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니까.

“감사합니다. 서장님.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 륀 대령 또한 상대방에 대한 예를 갖추며 감사를 표했다.

군부의 정점에 선 아버지, 그리고 그의 장남이라는 지위, 싱가폴 유학경험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향후 미얀마의 새로운 리더가 될 사람.

경찰서장은 세간에서 말하는 그에 대한 평가가 새삼 떠올랐다.

“부탁드렸던 준비는 다 되었는지요?”

루 륀은 경찰서장과 함께 걸어가면서 물었다.

“네. 지금 동원가능한 최대한의 인원을 전부 모아 모든 검문소마다 배치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사령관님은 서장님의 노고를 기억할 것입니다.”

루 륀의 말에 경찰서장의 얼굴이 확 펴졌다.

루 바 장군, 그리고 루 륀 대령.

지금 권력의 정점과 미래 권력의 정점이 자신을 기억해 준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누추하지만 저희 집을 숙소로 잡아놓았습니다”

경찰서장은 자신의 집, 마투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화려한 집에 루 륀 대령의 방을 준비시켜 놓았다.

“아닙니다. 경찰서에 있겠습니다.”

루 륀은 단호하게 말했다.

예상대로였다. 자신에게 환심을 얻기 위해 마련된 화려한 숙소, 맛있는 음식, 그리고 여자들.

“그... 그러시겠습니까?”

소장은 실망한 기운을 담아 말했다.

지금 자신에 집에서 대기중인 손녀딸을 경찰서로 데리고 와야 하나? 어떻게 만나게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먼저 가겠소.”

말없이 그 둘의 뒤를 따르던 남자가 말했다.

경찰서장은 뒤를 돌아 그를 보았다.

짧게 자른 머리, 굳게 다문 입술, 사람들에게 말 걸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거친 표정. 그리고 안대.

안대?

“그래. 부탁하지.”

루 륀 대령이 그에게 말하자, 안대를 찬 남자는 낚시 가방 같은 검고 길쭉한 가방을 매고 다른 방향으로 홀로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가실까요?”

루 륀 대령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네?... 아. 네!”

경찰서장이 등을 돌리고 멀어져가는 안대를 낀 남자에게서 눈을 떼며 황급하게 말했다.

루 륀 대령에게 등을 돌린 남자는  곧장 헬리포트의 남쪽으로 몸을 돌려 걸었다. 어젯밤 그가 봐 둔 장소로 가기 위해서.

어젯밤 그는 쨔욱 로얄 호텔 방에서 지도를 펴 놓고 생각했다.

그들은 어디로 올 것인가?

나라면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들의 방향은 일관되게 방글라데시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루 륀 대령의 말처럼 마투피를 지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차를 버린 곳에서 마투피까지 80km, 그리고 마투피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싸매에(Samee)까지 40km이다. 마투피를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디로 올 것인가?

민닷-마투피 산악도로를 타고?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가 없지.

그렇다면 한 곳 뿐이다.

도로에서 벗어나 평행하게 산을 타고 올 것이다. 그리고 팔래와 스트리트의 남쪽 끝을 목표로 잡겠지.

마투피 외곽에서 적당히 보급을 취하고, 어쩌면 휴식도 취하고, 싸매에까지 40km를 한번에 주파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면 된다.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전투불능.

그는 축구장을 지나 팔래와 스트리트 남쪽 끝에 있는 교회 건물로 다가갔다.

제칠일 안식일 교회.

친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웬만한 지역의 읍 단위보다 규모가 작은 이 마을에만 10개의 교회가 있다.

그리고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교회가 바로 이곳 제칠일 안식일 교회다.

그는 교회 건물 바깥을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첨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하고 그곳을 통해서 첨탑 정상으로 올라갔다.

남동쪽 방향, 그들이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 모두 한 눈에 들어왔다.

이제 기다리면 된다.

그는 낚시 가방처럼 생긴 검은색 직육면체 가방을 열고, 그곳에서 Kar98k를 꺼내 조립했다.

일명, Kar98k 정식명칭 카라비너 98K(Der Karabiner 98k).

장전 노리쇠를 당겨 7.92mm 마우저 탄환 5발이 들어있는 클립을 삽입했다.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전투 불능”

그는 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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