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9화 (40/386)

MISSION 02 : HANDCARRY (17)

5월 23일

쨔욱(Chauk) 북서쪽 13km.

마궤 주, 미얀마

“식양은.”

완은 그의 손 안에서 그녀의 손의 떨림이 천천히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식양은 MSS의 대 동남아시아 핵심요원이에요. 단 한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죠. 하지만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해요. 중국 정부조차도.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손을 빼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정면의 어둠으로 시선을 향했다.

“단 한사람만이 식양의 정체를 알고 있어요. 중국정부가 동남아시아에서 작전이 필요하면 그에게 말해요. 그러면 유일하게 식양에 대해서 알고 있는 그가 식양에게 전달을 하는 것이죠.”

한규호는 그녀의 손떨림이 이제 완전히 멈춘 것을 알았지만 손을 떼지 않았다.

“그러면 식양이 일을 처리해요. 보통 경제 분야 일이 많죠. 단 한사람뿐인 식양이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작을 펼쳐요. 하지만 어떻게 하는지, 어떤 방법을 쓰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요. 다만 전설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요원. 이것이 알려져 있는 식양의 이야기에요. 당신도 여기까진 알고 있겠죠.”

한규호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아무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식양의 실체는 단순히 유능한 단 한명의 요원이 아니에요. 그 실체는 시스템과 노하우죠. 동남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화교네트워크를 운용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 노하우.”

시스템과 노하우.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모 주석, 그러니까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은 대기근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끝났어요. 이 참혹한 결과가 당시 총서기였던 등소평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죠.”

한규호도 아는 이야기다.

대약진운동에서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참혹한 현대사.

“모택동은 두려웠어요. 등소평이 아직은 살아있는 전설인 그를 떠받들고 있지만, 그가 죽었을 때, 자신도 스탈린처럼 될까봐 두려웠죠. 그렇게 격하될까봐. 그래서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을 시작하고, 중국 전체를 생지옥으로 만들었죠. 그리고 등소평에게도 지옥은 시작됐죠.”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이야기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당 총서기에서 시골 트랙터 생산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한 등소평의 이야기는.

“등소평은 77년 복직했어요. 그리고 그때 깨달았죠. 더 이상 이념으로 인민을 통제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변화가 있지 않으면 이대로 중국은 만리장성 안에서 굶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죠. 5년간의 노동자 생활을 통해서.”

한규호는 다시 완을 곁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대 위, 일인극 배우처럼 그렇게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문을 열었어요. 미국과 수교를 맺고, 경제특구를 지정했어요.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주목했죠.”

“동남아시아는 당시 중국만큼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는데.”

“맞아요. 당시 동남아시아는 어디할 것 없이 혼란 그 자체였어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대신 그곳에는 화교들이 있었고 화교 자본이 있었죠.”

“화교....”

“화교네트워크가 가진 화교자본을 중국 본토에서 주목했죠. 그걸 활용할 수만 있다면 이제 국제시장에서 막 태동한 중국경제는 든든한 주머니를 하나 얻게 되니까.”

“그들이 순순히 내어줄까?”

“당연히 아니죠. 화교들은 은행을 믿지 않아요. 은행을 찾을 때는 대출을 받을 때 뿐이라고 할 정도로 은행을 믿지 않죠. 그러니 모든 자금은 그들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내부에서만 돌아요. 그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면, 아니 적어도 그 흐름에 끼어들 수만 있다면 중국 정부는 대성공이라고 생각했죠.”

“재미있군. 그 일을 해낸 것이 식양이라는 존재이고?”

“..........”

완은 말을 아꼈다.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이미 충분히 많은 부분을 이야기 했다.

식양은 전설속의 존재이다. 안개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손에 잡지 못하는 그런 존재로 그 신비감을 유지하고 있다.

식양이 화교자본 네트워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흠.”

한규호는 그녀가 말을 아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섭섭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신이 모든 패를 다 내보였다고 해서 상대방도 모든 패를 다 내보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애들 사이에서나 통용될 논리이다.

“식양은.....”

완은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이미 모국을 등졌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 다시 그녀의 벽이 되어줄 누군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식양은.... 그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어요. 그리고, 지금 동남아시아의 모든 화교 자본은 식양이 구축한 시스템 안에서 흘러가요. 은행에 들어가고, 수출입 계약을 맺고, 부동산 개발이 추진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식양에게 돈을 보내고 식양에게서 돈을 받게 돼요. 자신도 모르게 식양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식양에게서 지시를 받게 되죠. 식양은 땅이고, 그들은 그 땅 위에 서 있으니까.”

“재미있군. 시스템. 그리고 노하우라.... 그걸 한명이 해낸 건가? 그 식양이라는 사람이?”

“....식양은.... 등소평의 명을 받아 동남아시아로 간 사람들. 아직 식양이라는 이름을 받기 전 막무가내로 간 사람들. 우리가 1대 식양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수는 200명이었어요.”

“200명이라.”

“반년이 지나기 전에 150명이 죽거나 연락이 끊겼고, 1년이 지난 후 그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 두명 뿐이었죠.”

한규호는 대충 상상이 갔다.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된 나라가 없었다. 그런 환경속에서,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그저 화교자본을 장악하라는 국가의 명은 자살명령과 다름이 없다.

“두 명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렇게 사람을 소모성 자원처럼 갈아 넣어서는 안되겠다고. 그리고 그들은 죽어나간 사람들이 쌓은 노하우를 들고 다시 본국으로 들어왔죠. 그리고 드디어 식양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이고. 살아남은 그 둘이 첫 번째 식양이 되었죠. 그게 1981년이었어요.”

그렇군. 한규호는 이제야 이해가 갔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전설의 요원이라는 것은 소설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1대 식양은 81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죠. 그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화교 자본 흐름에 침투했어요.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10년의 시간이라고 해도 화교자본의 단단한 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랬죠. 같은 중화인이면 화교들은 우선 환영했어요. 하지만 핵심적인 이너서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죠. 그러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죠.

“방법?”

“200명 중 살아남은 두 사람은 여자였어요. 젊고 아름다운. 그들은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이용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너서클 안으로 들어갔어요.”

알 것 같았다.

“85년도에 그들은 두 번째 식양을 찾아냈어요. 아주 아름다운, 그리고 사상적으로 완벽하게 무장한 두 번째 식양. 그러나 2대 식양은 실패작이었어요. 누구였는지, 무엇때문이었는지 기록도 없고 전해지지도 않아요. 그저 실패작이었다는 것, 그래서 제거됐다는 사실만이 전해지고 있어요. 1대 식양은 다음해인 86년도에 3대 식양을 찾아냈죠. 그리고 10년을 키웠어요. 10년의 기간동안 육성된 3대 식양은 밀레니엄과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그 시스템과 노하우를 물려 받았죠. 그녀 나이 고작 스무살에.”

“스무살? 10년의 교육을 받았는데?”

“3대 식양은 10살에 선정됐어요. 구 교수가 10살 정도의 어린아이들을 찾아다녔죠.”

“구 교수?”

“중국미래국제관계연구원 구영호 교수. 그가 식양과 중국정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죠. 그가 10세 미만의, 아주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고, 아직 어려서 세뇌가 쉬운 여자아이들을 찾아다녔고. 3대 식양을 찾아냈죠.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어냈고. 만들어냈죠. 말 그대로 만들어냈어요.”

열살이라... 열살 먹은 아이를 10년동안...

한규호는 본능적인 역겨움을 느꼈다.

“3대 식양은 96년에 동남아에 데뷔했어요. 그녀는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죠. 사람마음을 알아채는 재능. 1대 식양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구축한 시스템과 누적한 노하우를 받아들였죠. 그리고 채 한해가 지나기도 전에 1대 식양을 뛰어 넘었어요. 거의 완전한 토대를 만들어 놓았죠. 그리고 98년에 그 사건이 터져요.”

“그 사건?”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대(對)화교 폭동 사건 말이에요.”

한규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May 1998 riots of Indonesia. 1998년 5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대(對) 화교폭동.

67년부터 거의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던 수하르토 정권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시위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특히 97년도 경제위기로 타격을 입은 수하르토 정부는 부정부패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을 옥죄어오는 젋은 지식인 반정부 계층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독재정권은 선택했다. 독재정권이 가장 선호하는 진압방법을.

발포.

5월 11일 자카르타 서부 트리삭티대학에서 일어난 규탄집회에서 진압군이 실탄을 발포하면서 6명이 사망하게 된다. 열흘 전 동부 자카르타 사범대학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공포탄에 의해 발생한 2명의 중상자로 인해 들끓던 민심은 트리삭티에서 전해진 소식에 결국 폭발해버린다.

그 결과 12일, 자카르타 전역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져든다.

자카르타가 통제불능에 빠져든 그 순간 수하르토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개발도상국정상회담 참석이라는 핑계로.

당시 수하르토의 사위인 수비안도 장군은 묘수를 생각해낸다. 민심을 돌리는데 최선은 분열이다.

그는 거짓 소문을 내 화교들에게 그 분노를 돌렸다.

(화교들이 반정부 시위를 조장했다. 그들이 인도네시아를 분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한 화교는 경제 전체 85%의 포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자와족, 15%의 순다족은 물론, 바탁족, 마두라인, 슬라웨시족, 브타위족 등 주요 인도네시아인들은 화교를 미워했고, 수비안도의 선동은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메단, 자카르타, 수라카르타 등 주요도시에서 화교들에 대한 약탈 및 폭동이 발생했다.

그리고 대규모의, 인류가 현대사회로 접어들고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대규모의 집단 강간이 발생한 것이다.

한규호는 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98년 5월 폭동이 발생하고, 3대 식양은 빠르게 본국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상점이 불타고, 남자는 폭행을, 여자는 강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새롭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빠르게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압박을 가해줄 것을 요청했어요. 그리고 중국정부는 그 요청을 무시했어요.”

완의 말투는 차분했다. 차분하고 담담했다.

“3대 식양은 겨우 싱가포르로 탈출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 화교들을 설득하고 전세기를 띄웠죠. 그래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탈출시킬 수 있었고요.”

한규호도 알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화교들이 급하게 전세기를 보내 화교들을 탈출시킨 사실을.

“10년 동안 단단하게 세뇌됐던 식양의 사상의 벽은 그날 금이 갔어요. 여러 명의 폭도들에게 깔려 모녀가 같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교와 정치라는 관점에서 돕기를 거부하는 조국을 보면서. 그 벽은 그날 균열이 생겼어요.”

“그런가.”

“그랬죠. 그녀는 그 균열을 메우지도 않고, 그저 벽에 간 균열을 들키지 않도록 잘 감춰놨어요. 그리고 중국 정부의 충성스러운 요원으로서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식양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어요.”

한규호는 다시 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2002년. 구 교수는 네 번째 식양을 찾아냈어요. 앞으로 15년을 키워낼 5살 소녀를 찾아 냈어요.”

한규호는 그 소녀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저건 뭐죠?”

한규호는 구 교수가 찾아낸 네 번째 식양의 말에 시선을 정면에 향했다.

그리고 저 멀리, 아주 멀리에서 보이는 어둠을 가로지르는 빛줄기를 보았다.

서치라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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