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HANDCARRY (16)
5월 22일
샤아마나트 국제공항(Shah Amanat International Airport).
치타공, 치타공 주, 방글라데시
방글라-US 에어웨이즈의 봄바르디어 Q400 프로펠러 항공기는 치타공 샤아마나트 국제공항 활주로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 안에 있는 곽용신은 지금 이 상황이 하강과 추락 둘 중 어떠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세계 최대 다우지 방글라데시를 입증이라고 하듯, 기체 밖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내리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날개는 부러질 듯 위 아래로 흔들리고 있었고, 기체는 좌우로 마구 요동쳤다.
육로로 오는 것을. 그냥 좀 더 힘들어도 차를 타는 거였는데.
곽용신은 안일하게 비행기를 선택한 자신에게 욕을 거듭 퍼부었다.
코트라(KOTRA)의 콜카타 해외무역관의 물류담당관, 그리고 국가정보원 4급 남아시아 2팀장 곽용신은 갑작스런 명령에 이곳 치타공에 오게 된 것이다.
48시간 이내에 치타공으로 가서 대기할 것.
48시간. 조금만 무리하면 육로로도 올 수 있는 시간인데, 그는 비행기를 선택했다.
짧은 거리, 짧은 비행시간. 설마 괜찮겠지 그런 생각에.
항공기가 하강할수록 더욱 심하게 요동쳤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쿠란을 암송하던 소리가 중간중간 비명소리도 섞여 더 크게 들렸다.
프로펠러가 더 안전하다고 했어.
곽용신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얼마전에 읽은 신문기사가 떠나지 않았다.
방글라US에어웨이즈의 Q402기가 카투만두에서 착륙실패했다는 기사.
71명 중 51명이 죽었다.
그 기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요동은 점점 심해졌다.
곽용신은 확신했다. 이건 추락이다.
곽용신은 결심했다. 살아남는다면,
오늘 살아남는다면.
다시 인도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육로로 갈 것이다.
비행기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떨어져도, 무조건 육로로, 창문없는 버스라도 타고 72시간이 걸려도 육로로 갈 것이다.
그리고 사표를 쓰겠다.
이 지긋지긋한 남아시아를 벗어나, 사랑하는 두 딸이 있는 집으로 가겠다고 그는 결심했다.
덜컹
비행기의 바퀴가 땅에 닿으며 크게 요동쳤다.
비 전문가인 그가 랜딩기어의 유압장치 파손을 진단할 수 있을 정도의 충격에 비행기가 흔들렸다.
기내의 모든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40대 대머리 스튜어드(남자승무원)까지.
비행기는 몇 번 더 요동치더니, 드디어 활주로에 안착한 듯 했다.
그런 듯 했다.
미칠듯한 폭우에 창문 밖은 보이지도 않았다.
쿠란을 암송하다 비명을 질러대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며 환호성을 질렀다.
남아시아나 중동, 중앙아시아에서는 종종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지금 이건 평소 사람들이 치는 박수와는 달랐다.
살아남았다는 환희의 박수였다.
죽음도 신의 뜻이라며 인샬라를 입에 달고 다니는 무슬림들이 기쁨에 차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지들이 손해가 없을때만 인샬라지. 망할 놈들.
비행기는 천천히 택시웨이를 따라 움직여 터미널에 닿았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인들이 뒤섞인 승객들은 그래야하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무질서하게 문으로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곽용신은 다시 사표를 쓸 것을 결심했다.
근거리를 운항하는 프로펠러 항공기 전용으로 사용하는 1층은 입국하는 사람과 출국하는 사람이 뒤섞여 공항이라기보다 시장처럼 보였다. 아니, 시장 그 자체였다.
1층 입국심사장 모습을 보아하니 저 무질서의 표본들이 다 빠져나가기까지는 두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곽용신은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한번 쉰 다음 2층으로 올라갔다. 차라도 한잔 하면서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싶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처 치타공으로 가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
이번 명령은 냄새가 났다.
아주 개X같은 작전일 것 같은 그런 구린 냄새.
방글라데시 제 2의 도시 치타공의 관문 공항인 샤아마타느공항은 구렸다. 국제공항에 입점한 찻집도 구렸다. 차도 구렸고, 차맛도 구렸다.
곽용신은 그런 감각적인 구림 속에서, 이번 작전의 구린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쉬고, 왜 지난번에 그만 두지 않았는지 후회했다.
사표는 냈었다.
사표를 냈고, 그래서 당분간 편안한 자리로 가 있으라는 사탕발림에 회유돼 코트라 무역관으로 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고.
“젠장.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조금 더 잦아들었다.
기장놈은 하필 가장 비가 많이 올 때 착륙을 감행했을까?
무슬림일까?
착륙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활주로를 향해 돌진하면서 인샤아아아알라! 하고 외치는 모습이 상상됐다.
인도에 돌아가게 되면 누군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죽여버려야지.
곽용신은 중얼거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그 구린 맛에 얼굴을 지푸렸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찻잔을 내려놓는 곽용신의 눈에 비즈니스젯트가 폭우를 뚫고 활주로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걸프스트림인지 나발인지, 비싸 보이는 전용기가 부드럽게 활주로에 착륙했다.
그리고 활주로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밴들이 전용기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젠장. 어디서 귀한 분들 오셨구만.”
곽용신은 창밖의 전용기와 전용기를 향해 다가가는 차량을 보면서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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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샤아마나트 국제공항(Shah Amanat International Airport).
치타공, 치타공 주, 방글라데시
로건의 전용기인 걸프스트림 G650을 조종하는 기장은 마치 이 치타공 샤아나마트 공항에 여러번 착륙이라도 한 것처럼 부드럽게 착륙했다.
기내에 앉아있던 트레이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바람에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비행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착륙했다.
활주로에 완전하게 안착한 비행기는 천천히 활주로를 따라 움직였다. 창문 밖으로 비행기를 따라오는 검은색 밴이 보였다.
이 비행기는 터미널로 가지 않을 것이다. 공항 한쪽에 마련된 전용기 전용 주기장에 주기하고, 그곳에서 트레이시 일행은 이 검은 밴을 타고 바로 공항을 빠져나갈 것이다.
16일 로건을 만났던 트레이시는 로건의 말과 달리 바로 치타공으로 향하지 못했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기본 장비를 지급받고 나서 그녀에게 내려진 명령은 이륙이 아니라 대기였다.
도쿄에서 온 아이작 페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이번 작전을 랭글리에서 직접 주관한다는 것이었다.
오키나와 상황실에서 아이작 페리 지국장이 직접 주재하고, 트레이시가 현장 최고 권한 책임자로 치타공으로 가게 됐다. 그리고 로건은 워싱턴으로 향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작 페리는 네일 밀러 CIA 국장과 직접 핫라인을 구축하고 그의 지시만을 받는다. 국장(Director)급 권한으로.
“7함대가 뱅골만으로 가고, 5함대가 비상대기하게 된다는군.”
아이작 페리 지국장의 말에 트레이시는 쇼크를 받았다.
전화 한 통. 고작 전화 한 통 뿐이었는데, 동북아시아 지부장이 국장급으로 권한이 상승하고, 국장이 직접 작전을 주재하고, 세계 최강 해군이라는 미군 함대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서태평양을 관할하는 7함대가 뱅골만으로, 중동을 담당하는 5함대가 서인도양으로, 그리고 대서양 관할 6함대가 지중해로 이동해 비상대기를 한다는 말이다.
고작 전화 한통, 고작 한 사람 때문에!
트레이시 테일러. 불과 얼마 전까지 CIA에서 목이 잘려나갈 예정이었던 요원이 단 한다리를 거쳐 네일 밀러 국장과 같은 작전을 하게 됐다.
그녀가 건넸던 전화번호 하나가 이렇게 큰 나비효과를 만들어 낼 줄이야!
이번 작전에서 큰일을 하고 싶었던 로건은 그날 바로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바로 치타공으로 갈 줄 알았던 그녀는 이틀을 오키나와에서 대기한 다음 로건의 전용기, 아니 당분간은 그녀의 전용기가 될 걸프스프림을 타고 괌의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가서 필요 인원을 태우고, 필리핀에 중간기착 한 다음, 이 곳에 온 것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갑작스러운 국빈 방문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급하게 의전을 준비하네 어쩌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 정부가 보내온 특사, 그녀가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픽업한 해군준장이 방글라데시 정부를 상대하면서 연막을 칠 것이다.
10억달러 규모의 치타공 항만재개발사업이라는 연막이 터지면 방글라데시 정부의 모든 눈이 그 곳으로 향할 것이다.
얼마를 빼먹을 수 있을지, 자신들의 주머니에 들어갈 돈이 얼마인지를 계산하면서.
그 동안 트레이시는 한규호를 맞이할 준비를 할 계획이다.
치타공에 도착한 오늘이 22일.
그가 말한 날이 30일.
앞으로 남은 시간 8일.
페닌슐라 치타공(The Peninsula Chittagong) 최상위 두 개 층을 통째로 빌렸다.
3일 안에 CIA 정보팀, 특작팀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5일 안에 CIA 응급의료팀이 페닌슐라에 수술실을 만들 것이다.
그곳에서 그를, 그와 함께 올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이다.
그녀가 최고 책임자가 되어서.
손에 휴대 전화를 꼭 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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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쨔욱(Chauk) 북서쪽 13km.
마궤 주, 미얀마
한규호는 토요타 픽업 트럭을 운전하고 있었다.
이라와디 강을 건너 처음 보이는 마을에서 이 트럭을 건진 것이다.
토요타 하이럭스.
AK-47, RPG-7과 더불어 테러리스트의 삼신기(三神機)라고 부르는 토요타 픽업트럭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라칸 산맥의 초입에 위치한 마을이니, 픽업트럭이 있어도 이상할 것 없지만, 미얀마의 경제수준을 생각한다면, 지역 유지의 귀한 재산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역 유지의 재산은 도난당했을 때, 공권력이 빠르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한규호가 무리해서 이 트럭을 선택한 이유는 불쾌한 예감 때문이었다.
불쾌한 예감.
이라와디 강을 건너기 위해 이 근처에서 유일한 교량이 있는 쨔욱으로 진입하려 했다. 그러다 시내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쨔욱 시내를 앞뒤로 막고 있는 검문소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마궤주와 만달레이 주의 경계이며, 이라와디강이라는 미얀마의 젖줄에 위치한 주요 도시인만큼 검문소가 있을 법도 했다.
그러나 한규호의 눈에는 일반적인 검문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 멀리서 들려오는 헬리콥터 로터 소리. 길게 늘어선 차량들과 사람들.
위험 신호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다리를 건너길 포기하고 남쪽으로 내려가 쪽배를 탈취한 다음 강을 건넜다. 그리고 무리해서 픽업 트럭을 훔친 것이다.
지금은 은밀함보다 신속함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마투피까지 약 150km. 아라칸 산맥의 초입인 민닷까지 약 100km의 거리를 최대한 빠르게 주파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픽업트럭을 손에 넣었다.
출시한지 20년 가까운 6세대 하이럭스는 많이 낡았지만, 그럼에도 그 튼튼한 심장은 여전했다.
한규호는 전조등을 끄고, 감각을 최대한 살려서 아라칸 산맥을 향해 차를 몰아갔다.
불빛이 있건 없건 그는 상관없었으니.
그러나 완은, 조수석에 앉아있는 완은 상관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움, 그녀의 눈에는 그저 지옥으로 가는 어둠 그 자체로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이미 칼로를 향해 갈 때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경험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뒷좌석에서 그의 등에 기댄 채, 옆을 바라보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방 1m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달려 가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시각이 차단당한 채로 산맥을 향해 달려가는 차량 조수석에만 느낄 수 있는 공포와 이런 상황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몰아가는 한규호에 대한 놀라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좀 자두라고.”
완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규호는 무심한 듯 말했다.
자라고요? 잘 수 있겠어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완은 그 말을 꾹 눌러담았다.
“..... 괜찮나요?”
“뭐가?”
“...속도. 좀 빠르지.... 않나요?”
완의 말에 한규호는 살짝 웃었다. 완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음... 그런가? 불안하면 눈감고 자라고. 일어나면 도착할 그 곳이 마투피인지, 천국인지, 지옥인지 생각해보면서.”
한규호는 여유있게 말했다.
완은 그의 말 속에 담겨있는 여유가 조금은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향해 달려가는 차량안에 있다는 공포는 실재했고,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의 말은 믿을 만한 근거따위 없었지만.
그녀는 실재하는 공포보다 근거 없는 그의 말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을 느꼈다.
괜찮겠지. 그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잠들 수는 없었다. 공포는 실재하니까.
“음... 저는 한국으로 가게 되나요?”
완은 잠 대신 대화를 선택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힘이 되지 않을까?
“흠... 아마도? 왜 불안한가?”
완은 답이 없었다.
한규호는 그녀를 힐끗 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표정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호해 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드나?”
한규호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 당신은.... 네. 그런 걱정이 드네요.”
“나도 그런 걱정이 드는 군.”
“네?”
“당신이 가진 정보가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확답을 못해주겠군.”
한규호의 말에 완은 고개를 돌려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통은 괜찮아. 걱정 마. 다 잘될 거야. 안전할 거야. 믿어봐.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나요?”
“흠... 그랬어야 했나? 알겠어. 괜찮아. 걱정 마. 안전할 거야.”
“..... 고맙네요.”
“고맙긴 뭘. 그 정도 가지고.”
그의 말에 완은 살짝 웃었다.
“이거 하나는 약속하지.”
“뭘요?”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줄게.”
“선택이요? 무엇을?”
“미국으로 가고 싶다면 연결해줄 수 있어. 한국에 있겠다면 새 신분과 거처는 마련해주고.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완에게는 한규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제 정보의 질이 중요하겠네요.”
완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려, 여전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보며 말했다.
“정보의 질. 중요하지. 중요하겠지.”
한규호가 긍정했다.
“하지만 뭐. 거래를 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군. 이번에는 대출혈 서비스 해주지. 정보와는 상관없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거야.”
한규호는 그렇게 완에게 말했다.
“....왜.....”
“응?”
“왜 저에게 잘 해주죠? 왜 절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주죠?”
완이 물었다.
“그러게.”
한규호가 답했다.
“그러게 말야.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고. 아.. 아직 못 물어봤군. 어떻게 한 건지. 타액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큰데. 뭐. 그건 차차 알게되겠지. 중요한건 아니니까.”
“중요한게.... 아닌가요?”
“뭐.이 생활을 시작했으니.... 죽을 뻔한 경험이야 그리 드문 것은 아니지. 하지만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과 이처럼 몇날며칠을 동고동락하는 것은 드문 경우군. 안그래?”
“.......”
완은 말이 없었다.
“그러게 말이야. 참 나는 속도 좋아. 날 죽이려 했던 사람을 구출해 주겠다고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를 걷어차고 말야. 또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고 말이지. 거짓말도 하는데 말이지.”
한규호의 말에 완의 눈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거짓말이요?”
한규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큰 눈을 흘깃 봤다.
“옻나무라는 것은 말이지, 정확히 옻 수액이라는 것은 동남아시아, 특히 북부지역에서는 아주 중요한 방충제 역할을 한단 말이야. 그래서 어지간한 곳에는 수액을 두 번 세 번 덧발라서 방충처리를 하지. 그동안 아이들이 거기에 달라붙지 못하게 엄청나게 경고하고. 보통 고통을 통한 경고를 하지. 뭐. 몇 대 쥐어박히는게, 옻중독으로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좋겠지. 뭐. 그래도 여기저기 워낙 많이 쓰니 한번씩은 다 올라보지. 가구에서도 오르고.”
완의 눈이 더 커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매홍손의 화교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완이라는 아이는 옻중독 경험이 있을 가능성이 높지. 더군다나 100%의 확률로, 집에 옻칠한 가구가 있었을테고.”
한규호가 말했다.
“...........”
완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놀랄 뿐.
“솔직히 말하지. 상관없어. 나는. 당신이 가진 정보가 한국에 도움이 되건 말건.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박살이 나건 말건. 나는 크게 상관 안해. 그저.”
그리고는 손을 들어 완의 떨고 있는 손을 잡았다.
“그저. 영혼이 뜯겨져 나가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당신을 두고 오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 그건 진심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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