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7화 (38/386)

MISSION 02 : HANDCARRY (15)

5월 22일

Kung’s Tracking House

칼로, 샨, 미얀마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칼로의 중심가인 민 스트리트(Min St.)에서 트래킹 업체를 운영하는 쿵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몇몇 트래커들을 모아 밴을 태워 보냈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다음 모닝티를 마시며 티비를 보았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하루였다.

쿵은 티비 위에 달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10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11시가 넘어가면 밤새 맥주와 대마초로 파티를 벌였던 양키들이 슬슬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일 것이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거리로 나와 싸구려 베이컨과 계란으로 늦은 아침을 먹겠지. 그리고 그 중 부지런한 몇몇은 트래킹 일정을 잡기 위해 여기 민스트리트를 배회할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여기 쿵의 트래킹하우스를 찾겠지. 트립어드바이저 공인 별 4개반. 론리플래닛에도 실려 있는 전통의 트래킹 전문 업체니까.

이번 달에는 비수기임에도 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왠지 돈이 들어오는 기분이 들어 쿵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오전에, 평소보다 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문을 통해 들어오던 햇빛이 가려졌다. 누군가가 들어오고 있었다.

손님인가? 오늘은 재수가 좋군.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라니.

“Welcome. Need help......”

쿵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등 뒤로 햇빛을 받고 들어오는 사람은, 아니, 사람들은 검은색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었다.

머리위의 베레모부터 군화까지 검은색 일색의 군복.

만달레이주와 샨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루 바 장군의 직속 보안부대.

일명 루 바의 광견들.

절대 자신을 찾아올 일 없는 그들이 자신의 가게에 들이닥친 것이다.

당황한 쿵은 대응할 틈도 없이 제일 먼저 들어온 두 명에게 팔을 꺾여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혔다.

뭐지? 왜? 뭐가 잘못된 거지?

쿵의 심장은 사람의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고개 들어.”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자신에게 한 말을 들었음에도 자신을 구속한 두명의 군인은 꺾인 팔을 조금도 풀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쿵은 그 상황에서 최대한 힘을 줘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보안부대의 검은색 제복을 입은 다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양팔이 잡힌 채로 머리를 탁자에 처박힌 자세 때문에,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가슴까지였다. 그 가슴에 달려 있는 대위 계급장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에게 고개를 들라고 했던 남자는 그의 눈 앞에 두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대위가 너무 눈가까이 사진을 내밀어 쿵은 초점을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필사적으로.

그는 온 신경을 다 쏟아 그 사진들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사진 중 한명을 알아봤다.

여자.

그때 그 여자다.

자신에게 와서 이틀간 묵을 숙소를 달라며 300달러를 내밀었던 그 남자 뒤에 말없이 서 있던 여자.

쿵은 다른 사진으로도 눈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현재 구속된 자세로는 그 사진을 볼 수가 없었다.

“조금 풀어줘.”

쿵의 필사적인 움직임이 상대방에게 감흥을 줬는지, 대위가 말했다. 그의 꺾인 팔이 살짝 풀렸다.

쿵은 살기위해 두 번째 남자 사진을 확인했다. 약간 다르기는 했지만, 자신의 눈 앞에서 300달러를 흔들던 그 남자였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어르신!”

쿵이 외쳤다.

지금 이들은 사진 속의 두 남녀를 찾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왔다.

그들이 할 질문은 자명했다. 그가 할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맞습니다. 그들이 맞습니다.”

쿵은 소리쳤다.

보안부대, 일명 루 바의 광견들.

이 미친개들과 엮여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쿵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살아야 한다. 협조해서 살아야 한다.

“풀어줘.”

대위가 말했다.

쿵의 팔을 잡고 있던 두 남자는 쿵의 팔을 풀었다. 대신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 양쪽에서 두 팔을 결박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말해.”

대위가 말했다.

“며칠 전 그들이 찾아왔었습니다. 찾아와서...”

“며칠 전?”

대위는 쿵의 말을 끊었다.

“그... 그게... ”

쿵은 잠시 주저했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금 당장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처음 그가 내밀었던 300달러, 여권 대신 내밀었던 300달러, 그리고 약간 지저분했지만 꽤 예뻤다는 여자의 인상만이 떠올랐다.

그 순간 그의 두 팔을 잡고 있던 군인들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십육...일. 16일 입니다!”

그 덕분에 쿵은 다시 기억 속에서 날짜를  찾아 낼 수 있었다.

5월 16일, 새벽 출발팀을 막 보내고 아침 뉴스를 보던 그 순간을.

“말해.”

대위가 말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16일입니다. 새벽에 유럽과 일본인들로 구성된 트래킹팀을 보내고 아침에 뉴스를 보고 있는데, 그가, 이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쿵은 빠르게 말했다. 빨리. 최대한 자세하게.

절대 눈 앞의 이 분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돼!

“들어와 300달러를 내면서 2박할 곳을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호텔이 필요하냐 물으니, 빌라나 방갈로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자, 이틀간 두명이 쓸 생필품이 필요하다고 해서 구해 줬습니다.”

‘여권은?“

“그...그게....”

쿵의 가장 큰 약점은 이 부분이었다.

여권의 확인도 없이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것.

정확히는 300달러의 추가비용 때문에 불법을 저지른 것. 그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바보같이 말을 아꼈다.

오른팔을 잡고 있던 군인이 팔을 풀었다. 순간 쿵은 오른팔의 자유를 되찾았다는 생각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강력한 펀치가 그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꽂혔기 때문에.

쿵은 그 펀치를 맞고도 쓰러질 수 없었다. 그의 왼팔을 잡고 있는 군인이 단단하게 버텨 준 덕분에. 그는 쓰러져 정신을 잃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여권은?”

다행스럽게도 온 세상을 뒤덮는 웅웅거리는 소리 속에서 대위의 목소리가 쿵의 귀에 들어왔다.

“300달러를 받았습니다! 여..여권대신. 300달러를 받았습니다.”

“언제 떠났나?”

“그..그날. 그날 바로 떠났습니다. 새벽에 체크인 하고, 2박을 묵는다고 해서 이틀치 생필품을 사다줬는데, 다음 날 아침에 찾아가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새벽에, 몇시인지는 모릅니다만 분명 새벽에 떠났습니다.”

“어디로?”

“모릅니다. 그저. 그때 떠난 것만......”

“어디로?”

“정말 모릅니다. 그런...”

“어디로!”

계속 차분하게 말하던 대위가 소리질렀다.

“저... 정말 모릅니다. 살려주십시오. 정말 모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쿵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본 대위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대령 계급장을 단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가.”

대위가 말했다. 그러자 그를 구속하고 있던 두 명의 군인이 힘을 줘 그를 끌어올렸다.

“으아! 사..살려 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살려! 제발 살려주세요! 으아악.”

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모아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갔다.

악명높은 루 바의 광견들. 그들과 엮여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는 소문의 진위여부를 그가 직접 확인하게 됐다.

“어떻게 할까요?”

끌려나가는 쿵을 보던 대위는 자신의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루 륀 대령에게 물었다.

“일단은.... 뭐 최대한 많이 알아내게.”

대위는 그 말을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도 몸을 돌려 가게를 나가려 했다.

“잠시만.”

그런 그를 루 륀 대령이 멈춰 세웠다.

“네.”

“음....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게.”

“네?”

“협조를 잘 할 것 같으니... 겁은 좀 많이 주되, 너무 심하게 몸을 상하게 하지는 말도록”

루 륀은 그렇게 말했다. 너무 다치게 하지는 마라.

“...... 알겠습니다.”

루 륀보다 5살이 많고, 군경력은 15년이 더 긴 대위는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나섰다.

이제 가게에는, 점심 손님을 기다리던 쿵의 트래킹 하우스에는 루 륀과 그를 지키는 중사 한 명 만이 남아 있었다.

루 륀은 천천히 걸어가 쿵이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았다. 중사는 문으로 걸어가 그를 등지고 문을 지켰다.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들은 생각보다 빨랐다.

16일. 그들이 이곳 칼로에 도착한 날짜가 16일 새벽이라고 했다. 그들이 태국-미얀마 국경 인근에 트럭을 버린 날이 13일이다.

3일, 72시간 만에 그들은 직선거리로 150km를 돌파했다.

로이코에서 오토바이가 없어진 날이 15일 저녁이라고 한다면, 이틀동안 90km를 이동한 것이다.

태국의 요청을 받자마자 루 륀은 예상루트에 검문소 설치를 지시하고, 루트 인근에서 차량 도난을 조사했다.

그게 야닌이라는 태국 요원을 만난 18일이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로이코 인근에서 110cc 오토바이 한 대가 도난당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루 륀은 쿵의 책상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살폈다.

로이코에서 오토바이를 탈취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 쪽으로 간다. 그럼 그들이 갈 방향은? 핀뤙(Pinlaung) 아니면 칼로(Kalaw) 뿐이다.

19일 저녁 루 륀은 직속보안부대를 이끌고 헬기를 타고 핀뤙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칼로에서 하룻밤에 600달러를 벌어들인 트래킹 업체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곳에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17일 새벽에 그들이 떠났다 가정하고, 대략 5일이 지났다. 시간상으로 6일,

어디로 향할까?

한 곳 뿐이다. 메이크틸라(Meiktila).

그들의 이동속도는 하루에 40km, 아니, 50km로 가정하면 250km가 범위가 된다.

메이크틸라까지 80km니까 걸어서 이틀.

밤에만 걷는다고 가정하면 19일 새벽에 도착.

그곳에서 차량을 탈취할까?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루 륀 대령 자신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만달레이와 네피도를 연결하는 중심도시 메이크틸라에서 차량을 얻기는 쉽겠지만 그만큼 발각될 가능성도 높다.

더군다나 메이크틸라는 미얀마 중부 공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다른 지역보다 보안이 철저한 도시다.

거기서 차량을 훔친다고?

바보같은 선택이다.

그런 바보같은 선택을 해줬으면 좋겠군.

“메이크틸라에 비상경계. 반경 100km에, 아니, 200km 주요도로에 검문소 설치하고, 차량도난 신고 확인하고. 지금 당장.”

루 륀 대령은 문앞을 지키고 있는 중사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중사는 짧게 대답하고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루 륀 대령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확인할 필요도 없다. 메이크틸라에 있는 만달레이 주둔군은 빠르게 움직일 것이니까.

지시를 내린 루 륀은 다시 생각했다.

어디로 갈까?

아시안하이웨이1을 타고 북으로? 아니면 2번 국도를 향해 서쪽으로?

둘다 힘든 길이다.

AH1은 평탄하지만 평시에도 검문검색이 활발한 주요 도로이다. 더군다나 네피도-만달레이 구간은 미얀마 물류의 젖줄 중 하나이다.

훔친 차량으로 이리로 갔을까?

2번 국도를 향해서?

그러면 상대적으로 지역군의 눈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 놓인 거대한 벽이 그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라칸 산맥(Arakan Mountain Range) 이라와디 강과 라킨 해안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자연의 벽.

인도와 미얀마 문화권을 나누는 거대한 장벽과 마주하게 된다.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쉬운 길이 없다.

생각하자.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나라면 어떠한 어려움을 선택할 것인가?

“중사.”

중사는 말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루 륀은 그의 과묵함이 좋았다.

“AH1에 병력을 더 투입하도록 지시하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리고.”

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 아이드 잭을 호출하게.”

“그를 말입니까?”

과묵함이 장점인 중사가 놀란 어투로 말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