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HANDCARRY (13)
5월 18일
만달레이 지방군 사령부
만달레이. 미얀마
태국 국가정보부 2급 요원 야닌 윗미따난(ญาณิน วิสมิตะนันทน์)은 만달레이 지방군 사령부 사령관실을 향했다.
만달레이주와 샨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달레이 지방군 사령부의 가장 중요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녀의 앞에서 걸어가는 남자가 누구인지 모두 다 알기 때문이다.
루 륀(Lu Lwin) 대령.
만달레이 지방군을 지휘하는 루 바(Lu Ba) 장군의 장남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령부, 아니 만달레이 전체에서 아무도 없었다.
사령관실 앞에 다다른 루 륀 대령은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그리고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야닌은 아버지를 잘 만난 이 젊은 대령을 따라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눈에 풍채 좋은 노인이 들어왔다.
루 바 장군.
버마 간부학교 11기 출신으로 9기 출신인 탄슈웨를 도와 독재정권의 정점에 오른 인물.
20년 넘게 미얀마를 공포로 지배했던 탄 슈웨가 권력의 최정점에서 물러났음에도, 아직 만달레이주와 샨주에서 지배력을 잃지 않은 영주가 책상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루 륀 대령, 영주의 아들은 그녀를 아버지에게 안내한 후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 방을 나갔다.
이제 이 방에는 단 둘만이 남아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장군님.”
야닌이 자연스러운 미얀마 어로 말했다.
그녀의 인사를 받은 루 바 장군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루 바 장군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세월이 지난만큼 당신도 변했군. 우선 앉지.”
루 바 장군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응접용 소파에 앉았다. 야닌도 그 앞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몰라 보겠는데.”
루 바 장군이 야닌을 보며 물었다.
그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나이가 좀 들기는 했어도, 그녀는 묘한 매력을 가진, 흑표범이 연상되는 관능적인 여자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야닌은 그냥 시골 촌락에서 볼 수 있는 촌부(村婦)같아 보였다.
“호호호. 여자는 항상 변한답니다.”
야닌은 장군의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아직 20대 초반에 불과할 것 같은 여군이 두 잔의 차를 들고 들어왔다.
약간 살집이 있기는 했지만 루 바 장군의 취향이겠지.
“변한다라. 좋은 쪽은 아닌 것 같군. 그건 그렇고. 도와줬으면 한다고?”
루 바 장군은 차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네. 사람을 좀 찾아 줬으면 싶어서요.”
그러면서 야닌은 두 장의 사진을 꺼냈다.
한 장은 위장신분을 만들 때 사용했던 데이빗 박의 여권사진, 또 하나는 카지노에서 가지고 있던 완의 증명사진을 확대한 것이었다.
루 바 장군은 역시 데이빗 박의 사진 대신 완의 사진을 먼저 집어 들었다.
“미인이군.”
그러면 그렇지. 발기가 될까 의심스러운 이 노인네는 끝까지 자신이 수컷임을 잊지 않았다.
“태국에서 미얀마로 국경을 넘은 것으로 생각돼요. 미얀마로 왔다면 방글라데시나 인도 쪽으로 갈 것 같아요. 찾아 주세요.”
“중국 쪽은?”
루 바 장군은 여전히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고서 말했다.
“그 쪽으로는 안가요.”
야닌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흠..... 미인이군.”
루 바 장군은 다시 한번 완의 얼굴을 본 다음 사진을 내려놓았다.
“값은 어떻게 지불할텐가?”
루 바 장군이 야닌에게 물었다.
일을 부탁할 때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성의가 어떠하냐에 따라 일을 얼마나 어떻게 할지가 결정되니까.
“밀수 루트를 몇 개 막아 줄께요. 태국 내 불법 거주 미얀마인들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대대적으로 추방도 진행하고. 매흥손과 매솟에 국경검문을 강화하고요. 특히 수출입을 좀 쪼아보도록 하죠.”
야닌이 말했다.
“우리 국민들이 힘들어지겠군.”
루 바 장군은 야닌의 제안에 감정없이 답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재빠르게 계산기를 돌렸다.
야닌은 지금 태국 정부가 미얀마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십년이 넘는 독재가 끝나고 민심의 지지를 받아 민정정부가 들어섰다.
그 민정정부를 훼방 놓겠다는 이야기다.
국경검문이 강화되고 밀수 루트가 막히면 미얀마 경제는 바로 반응을 한다. 태국에 대한 생필품 의존도가 높고, 인력 수출이 많은 미얀마 경제는 바로 감기에 걸린다.
민심은 혼란해지고, 지지율은 내려간다.
민정 지지율이 내려가면 군부, 또는 군부와 한 몸인 통합단결발전당의 지지율은 올라간다.
단순한 시소게임이다.
2015년 총선에서 참패한 통합단결발전당은 반등이 필요하다.
태국에서 그걸 돕겠다는 의미이다.
루 바는 머리를 굴렸다.
고작.
고작 두 사람을 찾아 주는데, 이 정도까지 해준다고?
이 제안은 무조건 받아야 하는 제안이다. 절대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군. 나이를 먹으니 함부로 움직이는 것이 겁이 나서.”
루 바 장군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야닌은 말과는 다르게 루 바 장군의 얼굴에서 살짝 드러나는 탐욕을 보았다.
“물론 장군님에게도 섭섭하지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장군님 계좌는 저희가 알고 있으니까요.”
야닌이 그렇게 말하며 루 바 장군을 보며 웃었다.
탐욕스러운 인간이다.
탐욕스러운 인간이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나라에 독이 된다.
미얀마에 독이 되는 이 인간은 우리에겐 득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의도적으로 힘을 줘서.
“뭘. 그렇게까지. 그냥 난 조금 조심스럽다. 그런 의미지.”
루바 장군도 웃음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힘을 빼서.
루 바 장군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시겠지. 야닌은 생각했다.
“항상 장군님의 협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뭐. 다 좋은게 좋은거니까. 그건 그렇고.”
장군은 다시 완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둘 다 살아 있어야 하나?”
그의 눈이 완의 사진에 머물렀다.
어두운 계열의 정장을 입고, 살짝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태국계? 아니, 중국인 같기도 하고, 고산족 느낌도 나고.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였다.
그의 취향이라면 살이 조금 더 붙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여자였다.
“남자만. 여자는 상관없습니다.”
“여자는 상관없다?”
장군은 처음으로 남자의 사진에 시선을 뒀다.
“중국인?”
“한국인입니다. 아마도.”
“아마도?”
사진 속 남자는 놀기 좋아하는 한량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루 바 장군의 막내 아들이 떠오르는 분위기였다.
“온전하게 살아있어야 하나?”
“......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야닌이 말했다.
“노력하지. 알다시피 우리 애들이 좀 거칠어서.”
“부탁드립니다. 최소한 목숨은 붙어 있도록.”
“뭐 그러지.”
장군의 시선이 다시 완의 사진으로 옮겨갔다.
“여자는 다른 시체를 넘겨줘도 되나?”
야닌은 순간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이 늙은 변태 살인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기 때문에.
“안됩니다...... 장군님께만 드리는 말씀인데, 중국 정부에서 신원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얼굴을 망가트리면....”
“안됩니다.”
야닌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번만 더 씨부려봐. 이 색마 늙은이.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어.
“..... 그런가.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루 바 장군은 아쉬운 눈빛으로 사진을 내려놓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 아들과 이야기하게.”
장군은 축객령을 내렸다.
야닌은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장군님.”
그러자 루 바는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야닌에게 웃으며 말했다.
“뭘. 이웃 사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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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흔적을 찾았다고요?”
징춘은 자신의 앞에 앉은 제이크라는 남자의 말을 반복했다.
“그렇습니다. 현재 미얀마 중부에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제이크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거짓말을 했다.
이제 막 야닌이, 그의 상관이자 스승인 야닌이 미얀마 군부를 지배하는 군벌 중 하나인 루 바 장군을 만나 탐색을 부탁했을 뿐이었다.
방금 그 소식을 방콕에서 받았다.
하지만 그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때로는 참혹한 진실보다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고,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발견한 건 흔적이지. 그 년놈들이 아니지않소.”
누가 들으면 바람핀 마누라를 찾아 달라는 것처럼 상스럽게 말하는 징춘을 보면서도 제이크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미얀마 군부의 지역 장악력은 상상이상입니다. 중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미얀마에서 군부라는 것은 한 지역의 왕, 그 이상입니다.”
며칠간 제이크는 철저하게 저자세로 나갔다.
나는 당신네 나라에 감복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로. 이런 마음으로.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징춘은 거만하게 물었다.
제이크는 서류가방에서 지도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한 지점을 검지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가 메이크틸라입니다. 수도인 네피도와 미얀마 중북부의 중심도시인 만달레이를 연결하는 아시안하이웨이1(AH1)의 딱 중간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차량을 탈취하려 하다 발각되면서 도주했습니다. AH1을 타고 임팔로 향하려 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징춘이 생각한 루트와 비슷했다.
만약 내가 탈출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돈은 있다고 가정하고, 그러나 여권도, 신분을 증명할 어떠한 서류도 없다면?
그런 상황에서 몇 백km를 움직여야 한다면?
답은 하나 뿐이다. 차량을 탈취한다. 중간중간 걸으면서 흔적을 지운다. 이 방법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가장 좋은 루트, 아시안 하이웨이, 일본 도쿄에서 시작해 터키와 불가리아 국경인 카프쿨레까지 연결되는 AH1의 미얀마 구간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차량을 탈취하다 발각당했습니다. 경계가 강화됩니다. 다시 차량을 탈취하려 할까요? 아닙니다. 흔적을 지우기 위해 도보로 이동하려 할 것입니다. 메이크틸라 인근에서 숨기 위한 큰 도시라고는 만달레이와 네피도가 유일합니다. 거리는 100km가 넘습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죠. 그들이 100km를 걸어가는 것이 빠를까요? 아니면 미얀마 군부가 검문소를 거미줄처럼 까는게 빠를까요?”
제이크는 여기까지 말하고 더욱 짙게 웃었다.
“흠......”
징춘은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됐소. 그런 이야기는. 그저 두 년놈이 잡혔다는 소식. 그게 필요할 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이크는 징춘의 무례한 태도에도 변함없이 정중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네 나라에 감복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되내이면서.
“더 노력해야 할꺼요. 본국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당신들은 감당하지 못할 테니까. 나도 막아줄 수 없고.”
징춘이 말했다. 마치, 본국에서는 태국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했고, 뭔가 수를 쓰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신이 막아주고 있다는 투로.
제이크는 징춘의 말을 듣고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얕보이면 앝보일수록 좋다. 제이크에게도, 그의 조국에게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제이크는 고개를 숙였다.
평소보다 더 깊이, 더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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