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HANDCARRY (6)
5월 16일
5번 도로, 핀 뤙(Pinlaung) 외곽 4km 지점
샨 주, 미얀마
완은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한규호의 허리를 잡고 그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로 그들을 스쳐가는 어둠을 보고 있었다.
데이빗 박.
아니. 이제 그 이름은 버려졌다. 본명일리도 없고, 본명이어서도 안된다. 그가 요원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이름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완도 알고 있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녀를 괴롭히는 모순은 더욱 커져만 갔다.
먼저 그를 믿을 만한 근거나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그를 믿었다. 그 후에도 그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았지만, 미리 준비해 놓은 것처럼 모든 일들을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을만큼 차질없이 풀어나갔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칠흑같은 어둠이 온 천지를 뒤덮고 있다.
가로등은 커녕, 민가도 드문드문 있는 미얀마 중부 도로를, 아니 그냥 흙길을 이 남자는 오토바이로 달리고 있다.
전조등도 키지 않고서.
몇 시간 전,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빠르게 움직이자고 말했다. 해가 지고 최대한 빠르게.
로이코라는 도시, 다른 나라에서는 지방 소도시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지역의 중심지로 대접받는 로이코가 가까워지면서 작은 마을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그곳에서 차량을 탈취하겠다고 설명했다.
“시골이니 세단은 없어도 오토바이는 확실히 있을 거야.”
그가 말한 것처럼 숙영지를 벗어나 대략 두 시간이 조금 안된 지점에서 20여 호가 모여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밤 9시도 안된 시각이지만, 마을은 이미 조용했다.
완도 잘 알고 있다. 시골마을들이 얼마나 빨리 잠이 드는지.
그는 능숙하게 그곳에서 오토바이를 하나 끌고 왔다. 시동도 끄고, 두 손으로 천천히, 마치 양이라도 훔쳐오는 것처럼 은밀하게 끌고 왔다.
그리고 적당히 마을에서 멀어졌다고 판단하자,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바로 도로로 접어든 것이다.
그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완이 그였어도 그와 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남자는 전조등을 키지 않고, 불빛 하나 없는 칠흑같은 도로를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허리 꽉 잡고, 잘 수 있으면 자 두라고.”
로이코 북쪽을 벗어나자 포장상태가 점점 나빠지더니 5번 도로로 접어들자 여기저기 돌과 자갈이 노출된 비포장 도로로 바뀌었다. 도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그는 그러한 환경에서 전조등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바닥의 돌과 같은 장애물을, 보이지도 않는 장애물을 피해가면서 오토바이를 몰아갔다.
불가능하다. 완이 생각하기에, 지금 이 남자가 보여주는 능력은 불가능하다.
일반인이, 아니, 아무리 잘 훈련된 요원이라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은 불가능하다.
그가 이 불가능한 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내고 있다.
그가 그런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줄수록, 그가 더 믿음직한 모습을 보일수록, 그를 더 믿지 못하게 되는 모순이 그녀의 마음에서 피어올랐다.
푸루, 푸르, 프르르.
오토바이 엔진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 엔진에 실린더가 붙는 소리, 공랭엔진이 과열되면서 지르는 비명.
이미 몇 번이나 들린 소리였다.
남자는 천천히 오토바이를 도로가로 몰았다. 그리고는 멈추었다.
“흠... 이제 거의 맛 간 것 같은데. 어디보자, 지금 어디쯤 왔나.”
오토바이에서 내린 남자가 말했다. 어둠이 짙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손목에 있는 GPS겸 시계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어디쯤 왔나요?”
“칼로까지 대략 한 60km미터 정도 남은 것 같아. 오늘 칼로까지 가고 싶은데, 그 전에 이놈이 퍼질 것 같은데.”
“어떻게 알죠?”
완이 물었다.
“응? 뭘?”
“그 정도 남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남자의 고막을 두드렸다.
“..... GPS가 있잖아.”
남자는 손목을 내밀면서 말했다.
“.... 그게 있다고 해서 어떻게 알 수 있죠?”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군.”
“어떻게 제 얼굴이 보이죠? 지금 불빛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사람의 눈은 어둠에 익숙해진다.
어둠이 짙어지면 동공을 확장해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최대한 늘린다.
그러나, 가로등도 없고,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건물도, 없고, 달빛도 없는 지금 이 시간에 별빛만으로 그녀의 얼굴이 보일 수 없다.
“.... 좀 기분이 나빠지려 하는데.”
한규호가 말했다.
“.....”
완은 말이 없었다. 그저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을 노려볼 뿐.
물론 한규호는 완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시선은 맞지 않았다. 그녀는 한규호의 얼굴 어딘가를 보고 있을 뿐. 그의 눈을 찾지 못했으니까.
“뭐가 불만인데?”
“..... 불만이라뇨.”
“지금 불만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닌가? 데려다 달라고 한건 당신이고, 나는 당신을 ‘도와’ 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신은 다르게 알고 있나 보군.”
완은 남자의 목소리가 차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차가움.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
완이 말했다.
“당신의 행동, 당신의 결정.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완벽하게 딱딱 맞아.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아.”
한규호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녀가 어떠한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이 곳에서 살았어? 여기가 고향이야? 국경을 넘어 로이코까지 사전 답사라도 해둔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국경을 넘을 때도, 그래. GPS가 있다고 해도 지도도, 방향을 판단할 표식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움직였어. 방향이 1도가 어긋나면 1km를 걸어갈 때, 9m에 오차가 생겨. 고작 1도에.”
완의 목소리의 톤이 살짝 올라갔다. 소리도 조금 더 커졌다.
“우리는 100km를 넘게 걸어왔어. 그 손목에 달린 GPS 하나를 가지고. 그런데 로이코로 인근에 왔어. 처음 당신이 가겠다고 말했던 로이코 인근에. 지금도 그래. GPS가 있으니까 지금의 위치좌표는 알겠지. 그런데, 어떻게 칼로까지 60킬로미터가 남았다고 확신하지?”
한규호의 예상대로였다.
그와 그녀 사이를 매우고 있는 어둠 때문에, 그의 눈동자에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하면서도, 최대한 그의 눈동자가 있을 것 같은 쪽으로 강렬한 시선을 쏘아보며 심각하게 말하는 완의 모습을 보며 한규호는 속으로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이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빠져나오겠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조금 더 사람답게 움직였어야 했는데, 빨리 탈출하겠다는 생각에 너무 물 흐르듯 탈출한 것이 그녀에게 의심을 샀나보다.
이해는 갔다. 그녀는 절박했고, 걱정스러울 테고, 무엇보다 누구인지 정체도 모르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걸었을 테니.
“그러면.”
한규호가 입을 열었다. 속으로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
“미리 내가 준비 한 것일까? 카지노에 갔을 때, 당신이 나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고,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실도 미리 알았고, 그리고 나에게 데려가 달라고 할 것도 미리 알았으니까?”
“...............”
“그래서, 미리 루트를 짜 두고, 사전 답사를 한 다음, 주변의 지형 지물을 봐 두고, 그래서 아무런 거침없이 로이코까지 자연스럽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한규호는 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어도, 그는 완의 표정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런 의심이 든 당신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데려갈 수 있다는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제 나에게 당신의 의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해명을 하라고 말하는군. 맞나?”
한규호에게만 보이는 완의 얼굴은 잘못한 중학생 같은 얼굴이었다.
본인이 잘못한 것은 아는데, 사과는 하기 싫은 그런 얼굴.
“좋아. 그런 자연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를 믿지 못한다면, 떠나도 상관 없어.”
완의 눈이 커졌다. 놀라움이 드러났다.
완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표정에 드러냈다.
만약 낮이었거나, 적어도 한규호의 얼굴이 보였다면 그녀는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얼굴이 안 보이는 상황이 그녀의 요원으로서의 방어기제를 살짝 약화시켰기에, 이런 실수가 나온 것임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러고 싶은 마음이군. 나는 당신의 부탁을 받고 움직였을 뿐인데, 왜 당신은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거지? 불안해서 그런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온 불안감 때문이라면 이해는 가. 이해는 가지만,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군.”
한규호는 어둠 속에서 얼굴 가득 놀람과 불안함을 나타내는 그녀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당황해하는 그 표정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확실히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은 한규호는 더 낮은 톤으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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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징춘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 보았다.
말끔한 양복, 태국인 치고는 밝은 색의 피부 톤, 무엇보다 영국식 억양이 묻어나는 영어를 말 할 수 있는 이 남자는 분명 엘리트로 성장해왔음이 틀림없다.
“비공식적인 자리임을 양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방콕에서 왔다는 남자. 자신을 제이크라고 불러달라고 한 이 남자는 이번에 발생한 이번 사건을 ‘비공식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징춘을 찾아왔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저희 쪽에서도 매우 당황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찌되었든 귀국에게 의도치는 않았지만 오해의 소지를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고, 그에 대한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는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강한 어조로.
“사과 드리게!”
그러자 제이크라는 남자 뒤에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서 있던 여자, 딜러복장을 입은 야닌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이크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두 남녀를 징춘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가.”
제이크가 말하자, 야닌은 고개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가 완전히 빠져 나간 것을 확인 한 후 제이크라는 남자가 말을 시작했다.
“부하가 무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5급 요원인지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장 교체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징춘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볼 뿐.
제이크는 그런 징춘의 무반응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가방에서 서류를 찾아 뒤적거렸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고 저희 헤드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했습니다. 그에 관해 해명을 해드리라는 지시를 받고 제가 온 것입니다. 저희는 귀국과 귀하의 소속기관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징춘은 속으로 생각했다.
고작 태국 따위가. 고작 태국의 정보기관 따위가 중국에, MSS에 감히.
“저희 헤드는 저에게 귀 측에서 가지고 계실 의구심을 최대한 풀어드리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공식적인 수준에서 최대한의 전권을 받아 이 자리에 찾아 온 것입니다.”
“한국인이 맞소?”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징춘이 물었다.
“맞습니다. 저희가 아는 한.”
제이크가 답했다.
“아는 한?”
“데이빗 박이라는 위장신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은 한국에서 들어온 것이 확인 됐습니다. 한국이 다른 곳에서 의뢰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저희가 아는 한 한국 측에서 요청한 위장 신분입니다.”
“...... 그렇군.”
데이빗 박이라는 인물의 사진은 이미 본토로 넘어갔다. MSS 정보분석실에서 지금 그의 사진을 열심히 돌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한국 측 요원이라면 그 결과는 분명히 나오겠지.
“왜 그들이 위장신분을 원했소?”
“... 그 부분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의구심을 최대한 풀어준다고 하지 않았소?”
“최대한은 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징춘은 그 말을 이해했다.
그가 헤드라는 사람으로부터 해명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속내를 모두 보일 수는 없겠지.
“괜찮으시다면 제가 우선 브리핑을 해도 괜찮을까요? 추가로 궁금하신 사항은 브리핑이 끝나고 말씀 나누시는 것으로.”
제이크가 말했다.
징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는 징춘의 허락을 확인한 후,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진을 몇 장 꺼냈다.
호텔 옥상 헬리포트에서 CCTV로 찍은 영상으로 만든 사진이었다.
헬기에서 내리는 두 남녀가 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을 맞이하는 몇 사람의 모습도 구석에 나와 있었다.
“두 남녀는 12일 오전 11시가 좀 넘은 시간, 정확히 11시 07분. 샹그릴라 호텔 치앙마이에 도착했습니다. 항공운항국에서 귀 리조트의 헬리콥터 운항 항로를 받아 확인한 결과, 이곳에서 출발해 바로 호텔로 도착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을 건넸다.
방으로 들어가는 두 남녀의 모습이 찍힌 복도 CCTV 화면이었다.
“도착한 두 남녀는 바로 총지배인의 인도를 받아 14층 로터스 스위트룸에 투숙했습니다. 14층은 이그제큐티브 플로어입니다.”
“그렇군요.”
징춘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조트 VIP니까, 100만달러를 들고올 아주 귀한 호구님이시니까, 최고급으로 마련해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그 다음 사진은 접시가 든 트레이를 밀면서 방을 빠져나오는 호텔 직원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간 그 둘은 바로 룸서비스를 시켜 먹었습니다. 그리고 대략 13시간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사진이 징춘에게 건네졌다.
두 남녀, 트래킹 복장을 입은 두 남녀가 다정하게 팔장을 끼고 있는 사진이었다. 엘리베이터 CCTV에 찍힌 사진이다.
“새벽 한시 반 정도에, 두 사람은 트래킹 복장으로 갈아입고, 방을 나왔습니다. 이그제큐티브 플로어 전담 직원은 알지 못했고, 호텔 로비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직원은 두 사람을 봤습니다만 특별한 점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시간에 저런 복장을 입고 있었는데도 말이오?”
“치앙마이에서 트래킹 복장은 그리 눈에 띄는 차림새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트래킹은 치앙마이의 대표적 액티비티 중 하나입니다. 직원은 복장보다 그쪽 직원의 미모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징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사진을 보시죠. 호텔을 나온 두 남녀는 동쪽으로 걸어가 핑강(江)을 건넜습니다.”
건네진 사진은 흑백이었다. 핑강을 가로지르는 교량과 그 위에서 두 남녀가 서로 껴안고 걸어가는 흐릿한 모습이 잡혀 있었다.
“호텔 주변에 있는 모든 CCTV를 확인했는데, 그 사진이 가장 두 사람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판단됐다라. 확인은 안 됐다는 말이군요.”
제이크는 말없이 다음 사진을 건넸다.
구불구불해 보이는 산악도로, 그리고 여기저기 지워진 스즈키 로고가 박혀 있는 트럭 한 대가 찍혀 있었다.
“핑강 다리 건너 300m 즈음에 위치한 주택에서 트럭 한 대가 도난당했습니다. 트럭 주인은 아침이 되어서야 도난 신고를 했고, 치앙마이 경찰은 그리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진은 그제, 빠이와 메흥손을 연결하는 메흥손 주에서 발견된 그 트럭의 사진입니다.”
제이크는 지도를 꺼내 테이블에 펼쳤다. 그리고 한 지점을 가리켰다.
“위도. 19.53, 경도 98.10. 1095번 도로에서 미얀마 국경에 가장 인접한 곳입니다.”
“미얀마!”
“복장이나, 트럭이 발견된 위치로 판단할 때, 그 둘은 미얀마 쪽으로 향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에 호메인(Homein)이라는 마을이 위치해 있습니다만, 그곳에 들렀는지는 아직 확인이 안된 상황입니다.”
징춘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지금 확인된 것은 몇 개 없었다.
그 개자식이 진짜 한국에서 왔다는 것. 한국을 단지 경유만 했을지는 몰라도, 분명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한국 측을 통해서 왔다는 것. 그리고 완벽하게, 그 뿐만 아니라 완도 속일만큼 완벽하게 도박꾼으로 위장했다는 것. 세 번째는 미얀마 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
“한국에는...... 문의 해 보셨소?”
징춘은 제이크에게 물었다.
사실 이건 그가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태국이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그 문제는 중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징춘은 물었다.
“그 부분은..... 원래는 답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제이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
“비공식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드리면서 이번에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강도로 한국에 항의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답변을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징춘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더러운 빵즈 놈들.
“추가로 설명드리자면, 호텔에 들이닥쳤던 저희 측 요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이크가 주제를 바꿨다. 징춘은 글로벌 호텔 체인에 들어가 총지배인을 협박했다는 그 병신들을 떠올렸다.
“샹그릴라에 난입한 우리 직원들의 행동은 상부 지시가 아니라 그들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독단적인 행동?”
“이게.. 참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호텔의 직원 중 하나가 우리 측 정보원이었는데, 샹그릴라 호텔에 VIP가 왔다는 정보를 누설했습니다. 그 정보를 들은 우리 요원이 개인적으로 접근해 금품을 갈취할 생각으로 호텔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징춘은 헛웃음이 나왔다.
아주 개판이구만. 요원이 부자 돈을 뜯으려고 호텔에다가 감시하겠다는 요구를 해?
“훌륭한 요원들이군요.”
징춘이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 우연치않게 그 직원의 개인 일탈로 발생한 사안이고, 저희 측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 드립니다.”
제이크는 똥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징춘이 다시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그래도 당신들이 한국 쪽 위장신분임을 알면서도 여기에 사람을 심었다는 이야기는 해명이 안되는데.”
제이크는 사진 한 장을 더 내밀었다.
의자에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50대 남성의 사진이었다.
“우리 쪽 1급 국장 중 한명입니다. 위장신분을 지시한 인물입니다.”
"............."
징춘은 말 없이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거기서 끝이 아닐 텐데... 하는 표정으로.
"돈을 받았습니다. 한국 측에서."
징춘은 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한심한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부패하고 멍청하기가 위 아래 구분이 없는 나라다.
그러나 그런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한 개인의 일탈로 무마하기엔 너무 잘못이 크지 않소?”
“그것이 사실입니다.”
“...........”
징춘은 그의 말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믿지 않았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요원이고, 그 앞에 있는 남자도 요원이다. 그렇기에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 우선은 알겠소. 본국에 보고하겠소.”
징춘이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뒤집어 쓸 모든 책임을 어느 정도는 태국에 전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의 대화는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태국 측 요원이 자신에게 거의 ‘보고’하다시피 말한 이 상황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나 더 드릴 말씀이 있는데....”
거진 대화가 다 끝났다. 그런데 제이크라는 남자가 또 다른 대화 주제를 꺼내들려고 하고 있었다.
“비공식적인 이 자리에서, 이건 더 비공식적인 이야기로 했으면 합니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더 비공식적인 이야기. 둘만이 아는 이야기. 둘이서만 하는 이야기.
“무슨 말인지....”
징춘은 그 의미를 알았으면서도 모른 척 했다.
“..... 둘 만 아는 이야기를 하자는 말입니다.”
“둘 만 아는 이야기라.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과 내가 아는데, 어찌 둘만 아는 이야기가 비밀이 될 수 있겠소?”
징춘이 말했다.
“하늘과 땅은 알아도 상관없습니다. 입이 없으니까요.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가 귀하에게 득이 됐으면 득이 됐지, 실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이크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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