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8화 (29/386)

MISSION 02 : HANDCARRY (5)

5월 15일

완 나몬(Wan Namon) 서쪽 14km 지점

샨 주, 미얀마

국경을 넘은 지 이틀이 지났다.

그 48시간 동안 완과 한규호, 두 남녀는 하루에 45km씩 90km를 걸었다.

첫날 힘들어했던 완은 자신의 몸이 서서히 여정에 적응해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이끄는 남자는 계속 일정한 걸음으로 걸었고,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휴식을 취했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사라진 그는 어떻게 구했는지 몰라도 과일이나, 작은 새알 등 먹을 것을 구해왔다.

완은 다른 것은 신경 쓸 필요 없이 두 걸음 뒤에서 앞서 가는 한규호의 뒤꿈치만 보며 걸어가면 됐다.

동일한 리듬, 동일한 보폭으로 그가 밟은 곳을 따라서.

다행스럽게도 국경에서 처음 목적지인 로이코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두 사람은 이틀 동안 아무런 어려움 없이 90km를 주파할 수 있었다.

“보인다. 저기.”

앞서가던 남자가 말했다. 그가 선 구릉 아래 넓게 평야가 보였다.

“뭐가 보이는 거죠?”

완은 걸어가 그의 옆에 섰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그냥 넓은 평야 이외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5번 도로. 저기. 쩌어기. 안보여?”

날씨는 맑았다. 해가 뜨면서 태양빛이 그녀의 등 뒤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비쳐주고 있었다. 가시거리는 충분히 20km는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눈에 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안보여? 뭐야. 실망인데. MSS 별거 없구만.”

한규호가 장난스럽게 그녀에게 말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지?

완은 지금 모순을 느꼈다.

그가 했던 말. “가능해.”

그녀를 데리고 나갈 수 있냐는 질문에 그가 한 대답.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고, 논리적으로 근거도 없는 그의 대답.

그 대답에서 완은 알 수 없는 신뢰감을 느꼈고, 그래서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는 완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어떠한 지원도 없고, 어떠한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즉흥적으로 계획을 짰고, 즉흥적으로 계획을 수정했으며, 즉흥적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한 것처럼 움직였다.

망설임. 그에게서 단 한번의 망설임도 느껴보질 못했다.

완은 모순을 느꼈다. 그와 그녀 둘 다에게서 모순을 느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하지만, 단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서 모순을 느꼈다.

그리고, 그를 믿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그를 믿었던 그녀 스스로에게서 모순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그가 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 줄수록 그를 믿지 못하게 되는 모순이 생겼다. 그런 마음이 크게 피어올랐다.

“자. 슬슬 해도 뜨니 자자고.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나서 차 한 대 후딱 훔쳐서 가자고. 발 아파 죽겠네.”

그 남자는 완에게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처럼 노숙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는 장소. 마치 준비되기라도 한 것처럼 적절한 장소를 그가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해가 질 무렵, 완이 깨어날 시간에 그는 어디선가 잡아온 고기를 굽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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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징춘, 표면적으로 프라이멀 카지노의 부지배인 왕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분노와 공포.

일이 이렇게 까지 어그러진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몰릴 것이라는 공포가 그를 죄어오고 있었다.

똑똑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딜러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몸을 드러냈다.

“부르셨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여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들어와.”

징춘이 건조하게 답했다.

징춘의 대답을 들은 여자는 조심스럽게 들어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섰다.

“앉읍시다.”

징춘이 말을 높였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그의 앞에 선 여자는 그저 직원 중 한명이었고, 자신은 부지배인 왕이었다.

그러나 단 둘이 같은 공간에 있을 때, 특히 지금처럼 각자 본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각국 정보기관의 요원과 요원으로 만났을 때에는 서로 말을 높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설명해주셔야겠군요.”

징춘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 저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문을 닫기 전까지 카지노에 고용된 딜러 직원, 문을 닫은 후에는 태국 국가정보부 소속 2급 요원으로 MSS직원 징춘과 마주앉은 야닌 윗미따난(ญาณิน วิสมิตะนันทน์)이 말했다.

꽝!

징춘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지금 장난합니까? 모른다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요원이 사라졌는데, 그리고 그 상황에 당신네가 관여하고 있는데. 모르겠다 하면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징춘은 분노를 터트렸다.

타국 정보기관의 요원, 양국 정보기관의 협약에 따라 이곳으로 파견된 태국 측 요원에게 징춘은 분노를 터트렸다.

14일. 어제까지 징춘은 데이빗 박과 완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치앙마이에서 돈을 가지고 오겠거니 하면서, 오히려 프랑스 쪽 요원으로 의심되는 다른 백인에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식이 들렸다. 나쁜 소식이. 그것도 두 개가 동시에.

처음 들려온 소식은 VIP를 모시는 헬기를 운용하는 팀에서 들려왔다.

완과, 그 한국놈이 머물기로 한 샹그릴라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체크 아웃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기별이 없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아무도 없더라는 것. 그러면서 혹시 카지노 쪽에 연락이 왔었냐는 문의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카지노, 정확히 MSS는 빠르게 대응했다.

당신들이 우리 손님을 모셨다. 그런데, 단순하게 없어졌다는 말은 무책임하다. 내용 있는 보고서를 빨리 보내라. 우리 손님과 우리 직원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호텔 측은 기다리라는 답신 이후 연락이 없었다.

더 나쁜 소식은 홍콩을 통해 들어왔다.

처음 완이 데이빗 박이라는 한국놈과 치앙마이를 간다고 했을 때, 샹그릴라를 숙소로 정한 것은 MSS의 의지가 아니었다.

첩보라인과 별개로 운영되는 VIP 전담팀에서 그 일을 처리했다.

그 한국놈이 요원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 다음부터는 징춘이, 부지배인 왕이 신경 쓸일이 아니기에, 다른 부지배인을 통해, 프라이멀 카지노 운영본부가 있는 중국에, 그리고 중국에서 홍콩 샹그릴라 호텔 본사에, 홍콩에서 치앙마이로 연락이 간 것이다.

통상적인 절차였고,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태국 멍청이들이 난동을 피우고 그 내용이 요청시의 역순으로 전달되었고, 특히 그 역방향의 끝이 프라이멀 카지노가 아니라 MSS 본부가 되면서 평상시라는 단어는 그 의미를 잃어 버렸다.

이게 불과 몇 시간 전 일이다.

“진정하세요.”

야닌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라고?”

징춘은 야닌을 노려보았다.

“좋소. 정리해봅시다. 우리 요원이 VIP를 데리고 당신 나라로 넘어갔소. 그리고 둘 다 사라졌지.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소.”

징춘은 야닌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지하로 끌고 가 새끼발가락부터 하나하나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선. 왜 당신네 요원들이 그 호텔에 가서 우리 고객과 우리 직원을 찾았느냐는 것. 왜 하필, 그 순간에, 그 타이밍에, 당신네 요원들이!”

야닌은 징춘이 격양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고객을 감시하려 했을까? 그것도 샹그릴라 호텔의 총지배인을 죽이네 마네 협박까지 하면서!”

야닌은 분노가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는 징춘 때문이 아니라, 일을 이런 식으로 망쳐버린 그 개자식들 때문에.

“두 번째로 그 VIP!”

한규호가 주제로 올랐다.

“데이빗 박이라고 당신들이 소개한 그 한국 놈. 그 한국 놈의 정체가 뭐지? 잊지는 않았겠지? 그 개자식을 이곳에 소개한 사람이 바로 당신. 당신이란 말이야!”

징춘의 말은 하대로 바뀌었다. 억양은 고함으로 변했다.

지금 저 뚱뚱한 돼지년의 머리통을 당장 후려갈기고 싶은데, 그런 욕망을 참는 것 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 말해도 될까요?”

야닌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그가 화를 내던, 울건, 웃건, 그녀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은 하나 뿐이었으니.

징춘은 야닌을 노려보다가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말........하시오.”

“저는 아는 게 없어요. 저는 그저 양국의 협의에 따라 이곳에 연락책으로 파견된 하급 직원일 뿐이고, 그쪽에서 말하는 의혹에 대해 해명할 수도 없고, 해명할만한 사실도 알고 있지 않아요.”

거짓말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데이빗 박이라는 인물이 위장신분이라는 것도, 그가 의도를 가지고 이곳에 왔다는 것도, 그가 철저하게 도박꾼의 모습을 위장 했다는 것도, 그리고 차논, 치앙마이 지부, 섹션 3의 그 개자식들이 왜 호텔에서 난장을 피웠는지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도, 고작 5급 요원에 불과한 저로써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전달할 메시지가 있으면 보고 체계를 통해 보고를 드리는 것 말고는 도와 드릴 수가 없네요.”

그녀는 또 거짓말을 했다.

2급요원, 각 부처의 장인 1급 바로 밑에 위치한 그녀가 바로 치앙마이의 바보들에게 감시를 지시한 장본인이었다.

그녀의 담당지역은 섹션 0. 태국 전역과 해외 전역.

모든 지역을 담당하는 2급 요원. 현장에서 근무하는 최고 책임자가 바로 그녀였다.

“........ 지금 그걸 믿으란 말이오?”

징춘이 그녀를 노려보면서, 살심을 억누르는 듯 씹어삼키듯 말했다.

“저는 지시받은 내용을 전달할 뿐입니다.”

“....... 데이빗 박이라는 그 개자식은 한국 놈이오?”

“저는 지시받은 내용만을 전달할 뿐입니다.”

“태국 측에서 감시하는 대상은 그 개자식이었소? 아니면 우리 요원이었소?”

“저는 지시받은 내용만을 전달할 뿐입니다.”

“........ 그들의 행보를 파악하고 있소?”

“저는 지시받은 내용만을..”

징춘이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테이블 위에 있던 찻잔이 떨어지며 박살이 났다.

“개 좆까는 소리! 지금 이 일에서 당신들의 책임은 분명해. 그 개자식을 초청한 것도 당신들이고, 사라진 곳도 당신네 지역이야! 그런데, 그냥 모른 척 하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가 개병신으로 보이나!”

“....... 타국 요원에게 적절치 않은 언행이네요. 이런 무례한 행동은 양국 정보기관의 공조 체계에 좋지 않은..”

“공조! 좆까는 소리 하지 마! 공조는 끝났어. 이번 일이 그냥 넘어갈 것 같아? 당신들의 멍청한 선택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거야!”

징춘은 숨을 씩씩 거리며 분노했다.

“전달할 메시지가 있으면 말하라고 했지? 좋아. 이렇게 전달해. 당신들은 이제 중국을 적으로 돌렸어. 당신들의 바보같은 선택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불러올지 기대하라고 전해. 그리고 당장 꺼져. 죽여버리기 전에.”

징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끝난다. 단순히 정보요원으로서의 경력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수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정말, 위에서 납득할 정도로 잘 마무리한다면 모를까, 그의 경력은 끝났고, 목숨까지 끝나가려 하고 있다.

“............”

야닌은 말없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깨진 찻잔의 잔해를 피해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이 곳에 있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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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사랑의 도피?”

주 선생, 실제로는 의뢰를 받아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을 하는 사설정보기업 ‘박물관 연대’의 데니얼 양은 놀라서 반문했다.

그에게 직원과 손님의 사랑의 도피라는 로맨틱한 이야기를 전한 직원은 놀라는 그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 앞에서 저렇게 감정을 보이는 일은 드물었기에.

“네. 접객팀에 완이라는 여자가 있는데, 그녀가 손님이랑 도망간 것 같다고 해요. 선생님도 아시죠? 데이빗 박 이라고 그 한국인.”

한국인? 그 완벽한 호구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 한국인이 직원하고 사라졌다고?

데니얼 양은 그를 떠올렸다. 그의 얼굴을 기억해내려 평소보다 더 힘을 주었다.

“어떻게?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

데니얼 양은 자신을 담당하는 여자를 앉혔다.

여자의 이야기는 이랬다. 데이빗 박이라는 한국인이 돈 잃은 것 때문에 이성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난동을 피웠다는 것이다.

돈 잃고 난동부리는 것쯤이야 카지노에서 흔한 이야기니까, 그럴 수 있는데, 완이라는 직원이, 접객팀 에이스라는 직원이 귀국하겠다는 그를 달래서 어찌저찌 잘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마음을 돌리고, 총알, 도박자금을 가져오기 위해 VIP용 헬리콥터를 타고 치앙마이로 갔는데, 돌아오기로 한 날 빈 헬기만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치앙마이에서 사라졌다고?”

“그렇대요. 둘이서 갑자기 연락도 없이. 직원, 특히 저희 접객팀에게 가장 중요한 게 연락이거든요. 다른 직원들에 비해서 제약은 좀 적은데, 고객에 일정에 맞춘다면 뭘 해도 상관없어요. 보고만 하면. 그런데,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니까.”

“흠... 다른 것일 수도 있잖아? 뭐 납치라던가, 그 한국놈이 피에 미친 살인마라던가.”

“설마요. 여권도, 정보도 모두 다 카지노에서 가지고 있는데 설마 그럴라고요. 그리고... 이거는 비밀인데....”

그러면서 그 여자는 데니얼 양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사실 여기는 중국과 관련이 있어요.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 같다는 소문이 있어요.).

데니얼 양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멍청한 여자같으니. 자신의 심리 트랩에 걸려, 스스로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이 멍청한 여자는 입을 함부로 놀리고 있다.

분명 카메라와 도청기가 이 방을 감시하고 있을텐데. 실시간은 아니어도 분명히 녹화되어서 나중에 분석될텐데.

“그래? 그건 몰랐는데.”

(비밀이에요. 여기 카지노에는 숨겨진 공간도 많고, 이상하게 무서운 사람도 많아요. 유독.).

“음. 하지만 그런 이야긴 안하는게 좋을 거야. 당신을 위해서라도.”

여자는 데니얼의 그 말에 살짝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 눈이 반달 모양으로 바뀌었고,  데니얼의 뺨에 입을 맞추며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쩌면 이다지도 자상할까, 그런 마음으로.

그 이후에도 여자는 카지노에서 누구와 누가 눈이 맞아서 결혼했고, 어떤 손님이 접객팀 직원을 맘에 들어해 첩으로 데려갔다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데니얼 양을 귀찮게 했다.

데니얼 양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 한국놈, 자신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살갑게 굴던 호구놈을 의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의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너무도 완벽한 호구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촉이라는 두 근거는 그렇게 신뢰할만한 요소는 아니니까.

또한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식양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었고, 그가 식양과는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자의 말대로 단순한 사랑의 도피이든, 아니면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여자를 납치해 간 것이든, 아니면 여자가 자발적으로 그를 따랐든 상관없다.

사건이 발생하면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 데니얼 양과 그가 소속한 박물관연대라는 집단의 일이다.

그를 찍은 사진이 있다. 그가 쓴 안경은 카메라 역할을 하니까.

그 사진을 전송해 그를 찾아야 했다.

사진만으로 부족하다. 그와 관련된 서류도 구해야 한다.

VIP로 이곳에 왔으니, 분명히 흔적은 남겨져 있다. 방콕에 특히 많을 것이다.

그 흔적을 찾아야 한다.

데니얼 양은 손을 뻗어 자신에게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여자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허벅지 사이로 손을 넣었다.

“어머.”

여자는 살짝 놀라지만 거절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다리가 살짝 벌어진다.

데니얼의 입이 여자의 목으로 향했다.

몸을 좀 달궈줄 필요가 있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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