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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7화 (28/386)

MISSION 02 : HANDCARRY (4)

5월 13일

완 나몬(Wan Namon) 서쪽 14km 지점

샨 주, 미얀마

동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은 일출 이후 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고각을 이루고 있었다.

숲을 태양빛에서 지켜내던 그림자는 점점 길이가 짧아지며, 빛의 침공을 속수무책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두 남녀가 말없이 숲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한규호는 눈으로는 앞을 보면서, 귀로는 뒤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정확히는 완의 호흡주기를 세고 있었다.

그는 이쯤에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분 째, 오르막이 계속되고 있었고, 태양은 본격적으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고르던 완의 숨소리가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거칠어져 갔다.

그는 뒤에서 들려오는 호흡을 체크하면서, 쓸만한 장소를 찾으면서, 계속 걸었다. 땅이 마르고, 그러나 햇빛은 들지 않고, 기왕이면 한쪽은 막혀 있는 그런 공간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눈에 한 장소가 들어왔다. 커다란 나무와 바위로 감싸여 있는 곳. 약간 경사져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잠자리였다.

“여기.”

완은 한규호의 그 말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대략 세 시간을 단 한번도 쉬지 않고 한규호를 따라 걸었다. 정확히 두걸음 뒤에서, 그의 발자국을 따라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행군에는 리듬이 중요하다. 일정한 박자에 맞춰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이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멀리 걸어가는 방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규호는 아주 좋은 선도자였다.

신체적차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보폭을 완에게 맞추어서, 그녀에게 편안한 보폭으로, 일정한 리듬으로 계속 걸었다. 마치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박자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길을 세 시간이 넘도록 걸을 수 있었다.

한규호는 단 한 번도 산줄기를 우회하지 않았다. 그저, 직선거리로, 그가 향한 목적지를 향해 직선거리로 계속 걸었다.

가장 빠른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산줄기를 피하기 위해, 능선을 피하고, 때로는 능선을 타고 움직인다면 훨씬 편하기는 하지만 거리가 늘어난다. 최대 두 배 이상 늘어날 수도 있다.

한규호의 생각은 확고했다. 최단거리, 일정한 리듬, 그 길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상관없이 일정한 리듬으로, 최단거리를 걷는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한편으로 완이라는 여자가, 중국 측 요원이 얼마나 잘 훈련 받았는지, 그 부분을 체크 할 겸, 그는 무식하게 한 방향만을 고집했다. 일정한 리듬으로.

“허억. 허억. 허억.”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요원 교육을 받을 때, 일주일동안 잠깐잠깐 토막잠을 자면서 500km의 산악행군을 통과했던 그녀가, 고작 22km의 거리에, 완전 녹초가 된 것이다.

체력단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KTV에서 술 시중을 들 때도, 국영통신사의 특파원으로 근무 할 때도,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내릴 때도, 그리고 프라이멀 카지노에서 접객팀 직원으로 있을 때도, 그녀는 단 하루도 정해진 운동을 빼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 이 짧은 시간의 행군이 그녀를 녹다운시킨 이유는 정신적인 피로가 더 컸기 때문이다.

핑계는 많았다. 몇 시간 동안 좌우로 흔들리는 차에서 시달렸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느끼는 피로의 가장 큰 원인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날카롭게 곤두세운 신경때문일 것이다.

“괜찮나?”

한규호는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하나 꺼내 던져주었다.

초코렛과 캬라멜, 그리고 땅콩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미국식 과자.

완은 한규호가 던진 초코바를 받아 잠시 들고 있었다.

언제 이걸 챙겼지?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미니바에서 챙겨왔을까?

이 남자는 어디까지 계획하고, 어디서부터 임기응변으로 행동하는 것일까?

“먹어두라고. 다이어트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고 한규호는 풉 웃었다.

“..... 기분 좋아 보이네요.”

완이 초코바의 껍질을 까며 말했다.

“내가? 설마. 변태도 아니고.”

실제로 한규호는 기분이 좋았다.

그 지옥같은 카지노를 벗어나, 이렇게 몸을 움직이니 이제야 숨 쉬는 기분이었다.

“괜찮나? 계속 갈 수 있겠어?”

한규호가 물었다.

“... 괜찮아요. 산길을 걷는 건 오랜만이라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

“발목 잡지 않아요.”

“그래야 할 거야. 일단 좀 자라고.”

“언제 출발 하게 되나요?"

“해 지면. 힘들게 땡볕 아래 갈 필요는 없잖아?”

“불침번은 어떻게 하죠?”

“그런 건 신경 쓰지마. 걱정 말고 우선 자라고.”

한규호의 말을 들은 완은 그 순간, 아주 짧은 순간, 한규호의 말에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 알겠어요. 발목잡지 않으려면.”

그리고 그녀는 약간 경사지고 살짝 등이 배기는 땅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고급의 끝을 달리는 카지노 리조트, 신혼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샹그릴라 호텔의 로터스 스위트룸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수마가 그녀를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의식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닫혔다.

한규호는 그렇게 잠에 빠져드는 그녀를 잠시 주시하다 자신도 몸을 눕혔다.

대략 8시간 이후에 다시 움직여야 한다.

다음 목적지가 있는 미얀마 횡단 5번 도로까지 대략 90km, 이틀간 그들이 걸어갈 거리이다.

그도 눈을 감았다. 이제 잘 시간이다.

그에게 불침번 따위는 필요 없다. 그의 감각, 주변을 살피고, 위험 상황에서 그를 깨우는 그의 감각이 불침번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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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샹그릴라 호텔 치앙마이

치앙마이, 태국

샹그릴라 호텔 치앙마이의 총 지배인 에릭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두 남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 그에 방에 막무가내로 두 남성이 들이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요구사항을 일방적으로 말했다.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에릭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감당할 수 있겠어?”

두 사람 중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에릭을 매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비서를 밀치고 갑자기 들어온 두 남자, 그에게 태국정보부 신분증을 들이민 남자. 그리고 에릭에게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온 VIP가 어느 방에 묶고 있는지를 묻는 남자는 사나운 짐승의 눈빛으로 에릭을 노려보고 있었다.

에릭은 그들이 비서를 격하게 밀치고 들어올 때 본능적으로 공포심을 느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몸에 새겨진 폭력성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이민 신분증, 태국정보부의 신분증을 본 에릭은 오히려 안심했다.

태국 정보부, 태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관 중 하나. 그 재산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안되는 태국 왕실의 직할 정보기관이라고 해도, 그들은 에릭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란 에릭은 양국의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싱가포르와 홍콩은 태국이 무시할만한 국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의 직장. 아시아 전역은 물론, 북미까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샹그릴라호텔 그룹은 태국 정보기관의 신분증 하나에 벌벌 떨 그런 작은 회사가 아니다.

“당신들이야말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에릭은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체포당할 수 있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싶나?”

에릭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남자, 태국 정보부 4급요원 차논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협박.

가장 빠르고, 또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 언제나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을 꺼내 든 것이다.

에릭은 차논의 협박에 코웃음을 칠 뻔 했다. 그러나 서비스업의 미덕인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해 참아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체포하세요.”

“뭐..뭐?”

“체포하세요. 태국정보부에서 영장도 없이 들이와 샹그릴라 호텔의 총지배인을 체포해 가신다? 여기 호텔 총 지배인 집무실에서?”

차논과 그의 부하는 당황했다.

그들 앞에서 그 누구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으니까.

“...너.. 이 자식. 진짜 죽고 싶어?”

“죽고 싶냐고? 죽여보세요. 어떻게 죽일 겁니까? 지금 끌고 가서 고문을 할 건가요? 아니면, 근무 중이 아닐 때 납치할 건가요? 교통사고로 위장할 건가요?”

“이 미친 자식이.”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은 강제추방 정도겠지요. 뭐든지 꼬투리를 잡아서. 좋아요. 요원님들.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에릭은 한발자국 더 다가갔다. 그리고 차논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을 내보낸 다음에 바로 당신들이 찾던 VIP에게 찾아갈겁니다. 그리고 말하겠지요. 태국정보부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두 분을 찾아왔습니다. 걱정이 되어서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말입니다.”

두 남자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직 끝이 아닙니다. 저는 바로 홍콩 본사에 보고서를 쓸겁니다. 태국 정보기관에서 요원을 사칭하는 두 명의 괴한이 들이닥쳤습니다. 고객에 대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저를 겁박했습니다.”

차논은 일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잘못돼도 엄청 잘못됐다는 사실을.

“그리고 CCTV에 담긴 두 사람의 영상을 첨부 할 겁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이 방에 있는 CCTV, 저기. 저거 보이시나요? 저건 음성도 녹음이 됩니다. 샹그릴라호텔 총지배인쯤 되면 상당히 높은 자리라서, 본사에서도 뭘 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어 하니까요. 날 죽인다고 했나요? 쥐도 새도 모르게?”

차논은 일이 잘못 됐다는 말로는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이 일을 망쳤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섹션 3, 즉 태국 북부 치앙마이 지부 4급 요원인 차논은 어제 샹그릴라 호텔에 묵고 있는 한국인과 태국계 중국인 남녀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지시는 급할 것도, 크게 중요할 것도 없는 일반명령 등급이었고,

차논은 그저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그안에서 그에게 전달된 사진을 보며 그들이 나타나면 어디로 가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그것만 기록하고 작성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멍청했다.

그러면 차라리 호텔에 이야기해서 옆 방을 확보하고, 감시대상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방에 도청기와 카메라를 설치하면 되겠다는 멍청한 생각을 떠올렸다.

태국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태국정보부 요원인 자신이 요구하면 호텔 측에서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고, 위에서 내린 명령보다 더욱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것이라는 더욱 멍청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 멍청함에 취한 그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두 발로 걸어 들어가, 총 지배인에게 신분증을 내밀면, 자신의 신분증을 본 총지배인이 아이고 요원님.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말씀만 하시면 제가 다 준비 하겠습니다 하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기대하면서 자신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한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차논은 자신을 따라온 후임이 당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죠 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논도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상대방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니까.

그는 잘못된 선택 중에 제일 최악의 선택을 했다.

“네 놈은 죽을 꺼다. 살아서 태국 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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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완 나몬(Wan Namon) 서쪽 14km 지점

샨 주, 미얀마

완은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아직 눈을 뜨지는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도 바로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녀의 감각에 여러 가지가 걸렸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 풀벌레 소리, 그리고 고기 굽는 냄새.

고기 굽는 냄새?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한 4~5m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데리고 온 남자가 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벗겨놓은 가죽을 보니 토끼 같았다.

“일어났어?”

마치 캠핑이라도 온 것처럼 여유 있는 말투로 물어오는 남자를 보면서 완은 기가 찼다.

“뭐 하는 거죠?”

“밥 먹어야지.”

“..... 불 피워도 되는 건가요?”

“왜? 걱정되나?”

남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 불쏘시개를 들고 모닥불을 뒤적거렸다. 불씨가 꽃가루처럼 튀어 올랐다.

완은 일어나 몸을 점검했다. 그리고 이상 없음을 확인 한 후 그에게 다가갔다.

“걱정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군요. 이렇게 흔적을 남겨도 되나요?”

흔적을 없앤다. 요원으로써도, 추격당할 지도 모르는 입장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흔적?”

남자는 다시 모닥불을 헤집었다. 땅을 파고 그 위에 모닥불을 피웠는지, 재 속에서 드러나는 불씨가 꽤나 땅 속 깊숙히서 반짝거렸다.

“뭐.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면 너무 피곤해져. 오늘 최소 45km는 가야 하니까. 빨리 먹자고.”

완은 모닥불 가에 앉았다. 은은한 온기가 그녀를 감쌌다.

한규호는 적당히 익혀진 것처럼 보이는 토끼를 꺼내 다리 부분을 힘있게 뜯어냈다.

속까지 제대로 익은 것을 보니,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여기.”

한규호가 다리를 건네주자, 완은 그 다리를 받았다. 잘 구워진 야생 굴토끼의 다리는 닭고기처럼 결을 따라 찢어졌다. 야생이라 그런지, 육질이 식용으로 키워진 집토끼 보다 더 단단했다. 야생의 특성상 지방함량이 낮아도, 단백질 함량이 더 높아서.

완은 다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한규호는 불을 피우고, 나무를 많이 넣어 임시로 숯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적당히 불이 사그러들면 남은 잔불에 요리할 재료를 넣고, 그 위를 재로 덮어서 잔열로 통째로 굽는 방식을 사용했다.

고기는 재투성이가 되지만, 익기는 완벽하게 익는다. 먹을 때는 속살 부분만을 먹는다.

야전에서 취득한 재료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완은 입 안에 있는 고기를 천천히 씹으면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완이 자는 사이에, 토끼를 잡고, 임시 화덕을 만들고, 이 습도에서 불을 피우고, 숯 비슷한 것으로 통구이를 만들었다.

적어도 2~3시간은 필요했을 텐데.

특수부대 출신일까? 요원이라기보다 특수부대원에 더 가까워 보였다.

한규호도 다리 하나를 들어 대충 재를 털고, 고기를 찢어 속살을 입으로 가져갔다.

특유의 누린내가 났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소금만 있었어도.”

한규호가 투덜거렸다.

완은 그런 한규호를 보면서 기가 찼다. 무슨 캠핑온 사람이 투덜거리는 표정이라니.

“45km를 가나요? 오늘밤.”

“카야 주 경계를 따라 서쪽으로 갈 거야. 살윈강을 건너 산맥. 이름이 기억 안 나는군. 살윈강과 평행한 산맥 자락에 가서 야영을 하자고.”

“계속 걸어야 하나요?”

“아마도 오늘은. 내일 로이코까지 가는 동안에 마을이 좀 나올 것 같으니 중간에 트럭이나, 오토바이라도 하나 건질 수 있겠지.”

“........”

“로이코에서 국도로 접어들면 모으비얼 호수를 따라 북서쪽으로 갈 거야. 거기서는 차 구하는 건 문제가 없을 거야. 문제는 도로로 접어들고 나서 검문소를 어떻게 통과하느냐 하는 건데, 뭐 어떻게 되겠지.”

이 남자는 이런 식이다.

그냥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어떻게 되겠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막상 움직여보면 마치 계획 해놓고, 준비 해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칼로까지 갈 거야. 가본 적 있나? 칼로?”

“없어요.”

완은 가본 적 없었다. 하지만 알고는 있었다.

“여름피서지로 유명한 곳 중 하나지. 적당한 기온, 적당한 습도. 호텔이 싸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다만 음식이 아주 엉망이었어. 영국 식민지 시절 흥한 동네라 그런가. 거기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군.”

“아는 사람이요?”

“그래. 마지막에 봤을 때가 5년 전이었는데... 그때도 약에 쩔어있었으니 지금은 죽었을 가능성이 더 높겠군.”

한규호는 예전에 알던 PMC(민간군사기업) 관계자를 떠올렸다.

분명 죽었을 거야. 그렇게 약을 하면서 살아날 수가 없겠지.

“그 다음은요?”

“만달레이와 네피도 중간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를 최대한 이용해서 서쪽으로 가다가 이라와디 강을 건너야지. 그 강만 건너면 남은 거리는 200km도 안 돼.”

“계속 걷게 되나요?”

“아니. 최대한 차를 타야지. 칼로에서 그 인간을 만나면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을 거야. 대충 다 먹었으면 출발 하자고.”

한규호는 먹던 다리뼈를 던지고 몸을 일으켰다.

“모닥불은 정리 안하나요?”

“이 습도를 봐. 절대 불 날일이 없어.”

“......... 흔적을.... 이렇게 남겨도 되나요?”

“흔적? 뭐. 여기 주민이 배고파서 토끼 잡아먹었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완은 그와 논쟁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우선 그의 지시를 따르자.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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