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HANDCARRY (3)
5월 13일
1095번 지방도로
매홍손주(州), 태국
완은 잠에서 깨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눈을 떴다.
치앙마이와 빠이(Pai)를 연결하는 1095번 지방도로의 악명높은 762고개 때문에 도저히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치앙마이에서 북부로 연결된 107번 도로에서 매홍손으로 향하는 1095번 도로로 갈아타면, 그 유명한 762고개가 나온다.
태국 북부에서 시작해 태국 전역을 관통하는 통차이(Thongchai) 산맥의 시작이 바로 지금 그들이 지나가는 이곳이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바꿔 만들어진 1095번 지방도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762번의 커브가 연속으로 나오는 일명 762고개였다.
“매홍손 경계를 넘었으니 거의 다 왔다고.”
운전대를 잡고 있던 한규호가 옆자리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완을 보며 말했다.
완은 좌우로 끊임없이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잠을 자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트럭을 몰고 있는 한규호가 차의 한계까지 끌어올린 급가속과 급회전, 급정거를 계속 반복하며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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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문을 열고 나온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한규호는 완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완은 그의 제스처를 알아채고, 그 팔에 매달리듯 팔짱을 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냥 일반 연인 같은 모습으로, 새벽 시간에 트레킹 복장인 것이 이상해 보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연인임은 분명해 보이는 모습으로 그 둘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호텔 로비를 빠져 나왔다.
관광도시 치앙마이는 늦은 시간에도 쉽게 잠들지 않는다. 그러나 새벽 2시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그 열기는 식어가고 있었다.
호텔을 나온 두 남녀는 하나씩 꺼져가는 전등 사이로 움직여 도시 외곽 방향을 향해 걸었다. 천천히.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핑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널 때는 연인처럼 더 밀착했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은밀하고 어두운 곳을 찾아가는 연인의 모습을 연기했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걸어간 두 남녀는 다라 아카데미(Dara Academy)를 끼고 우회전 한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 그곳에 새워져 있던 스즈키 트럭을 훔쳤다.
완은 그가 트럭을 탈취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려 했다.
“망봐. 혹시 누가 오는지.”
그 말을 듣고 완이 잠시 고개를 돌리는 그사이에, 한규호는 벌써 문을 열고 있었다.
완은 잠깐 둘러보는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가 트럭 문을 열었는지 볼 수 없었다.
트럭에 탄 한규호는 영화에서 하는 것처럼 운전대 밑의 카울을 뜯어낸 다음 전선 몇 개를 연결해 시동을 걸었다.
“타. 가자고.”
한규호가 다라 아카데미 골목길에서 트럭을 발견하고, 저리로 가자고 한 다음 트럭 문을 열고 시동을 걸 때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완도 배웠다. 잠긴 차량 문을 어떻게 열고, 열쇠 없이 어떻게 시동을 거는지. 그녀도 방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1분 안이라면 그녀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차마다 배선이 다르고 시스템이 다른데, 그걸 1분 만에?
그녀를 가르친 교관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자. 이제 가볼까.”
한규호는 사이드브레이크를 풀면서 완에게 말했고 완이 조수석에 타자 한규호는 그대로 차를 몰았다.
차량은 조심스럽게 골목을 빠져 나와 우회전했다. 치앙마이 외곽으로 가는 방향이다.
“너무 단순한 방법 아닌가요?”
완은 운전하는 한규호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가?”
“호텔을 빠져나올 때도, 차량을 확보할 때도.”
완이 생각하기에, 한규호는 너무 즉흥적으로 행동했다.
탈취할 차를 선정할 때도, 저놈이 어떨까 그렇게 말하고 그냥 탈취했다. 호텔을 빠져나올 때도, 그냥 별다른 동작 없이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탔고, 감시카메라를 피한다거나 하는 동작도 없이 그냥 일반인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치앙마이로 가겠다고 마음을 정했을 때도.
그때도 즉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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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바(BAR) 펜타닐(Fentanyl) .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완의 오른쪽 가슴은 한규호의 손에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었다.
그는 단 한 순간의 주저함이나 머뭇거림도 없이 그녀의 가슴을, 유륜의 경계를, 그리고 유두를 계속 유린했다.
남자 손에 익숙한 완이라도, 부끄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노골적인 손놀림이었다.
“그렇군. 좋아. 시간은 3일 정도 남았고. 이것도 길게 잡아서. 당신은 움직일 수 없고. 그렇다면 정말 방법은 하나 밖에 안 남았군.”
“뭐죠?”
“잘 걷나?”
“네?”
“행군. 괜찮냐고.”
“네.”
그녀는 MSS 교육을 이수한 요원이다. 행군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침투와 탈출, 어디에도 쓸 수 있으니.
“하루에 얼마나 걸을 수 있지?”
“환경에 따라 달라요. 대략.”
“90km는 갈 수 있겠지?”
“하루에요?”
완은 하루에 90km를 걸어갈 수 있냐고 묻는 한규호를 바라봤다.
“90km는······. 무리하면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몰라도, 지속적으로는 불가능해요.”
“흠···. 실망이군. 중국 애들은 허약하구만.”
대마에 취했는지, 아니면 맥주와 삼송럼을 섞은 싸구려 칵테일을 하도 마셔서 정신을 잃은 건지, 히피 하나가 비틀거리다 난간을 넘어 메콩강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완도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규호는 변함없이 강 건너, 태국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불가능해요. 요원도 사람이고.”
“뭐. 그렇다고 치고.”
“........”
“치앙마이로 가자.”
“네? 어떻게요?”
한규호는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뺐다. 그리고 두 손으로 완의 겨드랑이를 잡아 그녀를 들어 올려 그의 몸 위에 앉혔다.
“어머.”
완이 진짜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엉덩이가 한규호의 허벅지에 닿았다. 그리고 그의 물건이 느껴졌다.
“본국에 돈을 더 달라는 전화를 할 거야. 당연히 어렵다고 할 테고.”
그의 혀가 그녀의 귓불을 건드렸다. 부드럽고, 또한 강렬하게.
“그러면 치앙마이로 가서 돈을 받아 온다고 하는 거지. 한 100만 달러?”
그의 왼손은 아예 대 놓고 그녀의 상의 속에, 그의 오른손은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었다.
“호구가 되는 거지. 100만 달러를 잃어 줄 호구. 그러면 안 보내줄까?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할 텐데.”
그녀의 귓불을 간질이던 그의 혀가 천천히 뺨을 타고 내려와 완의 목에 닿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경동맥을 강하게 압박하는 순간 뇌로 올라가는 혈류량이 감소하면서 그녀는 살짝 의식이 날아감을 느꼈다.
그녀는 흥분해 남자를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요부의 눈빛을 보내며 그의 머리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다음은요?”
가슴을 유린하던 한규호의 손은 그녀의 등, 척추를 따라 부드럽게, 엉덩이 골까지 흘렀다. 그의 두 손이 완의 엉덩이에서 만났다.
“간단하지. 거기서 슉 하고 사라지는 거지. 한 3일 정도 일정으로 잡아놓고 거기에서 바로 사라져 버리면 우리의 실종을 인지하고, 찾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 사실 찾을까 싶기도 하고.”
한규호가 생각하기에 완은 그저 일개 요원일 뿐이다. 그녀가 사라지면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녀는 남자에게 몸을 허락해 정보를 얻어내는 하급 요원에 불과하니까.
“..... 평소라면 그럴지 몰라도, 지금의 날카로운 분위기라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완의 한 손은 한규호의 가슴을, 다른 한 손은 한규호의 물건 주위를 애무하고 있었다.
“뭐. 추적해와도 상관없어.”
“90km는 불가능해요.”
“가능하도록 해야지.”
“......”
“오늘은 이 근처에서 자고 간다고 해. 내일 카지노로 가서, 바로 보고하고. 할 수 있으면 내일 저녁에, 늦어도 12일 아침에는 치앙마이로 갈 수 있도록 헬기를 요청해.”
그의 손은 적극적이었다. 위장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욕정에 따르는 것인지, 완은 알 수 없었다.
“그러면 거기서 뜨자고.”
그리고서는 한규호는 그녀를 애무하던 손을 그녀의 얼굴로 가져가며 부드럽게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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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1095번 지방도로
매홍손주(州), 태국
트럭을 탈취한 한규호는 치앙마이 외곽을 반원으로 감싸고 있는 121번 도로를 이용해 107번 도로로 갈아탔다. 그리고 북으로 향했다.
트럭이 107번 도로에 접어들자 탈출 계획에 관해서 설명했다.
“빠이(Pai)를 지나 매홍손으로 가는 도로를 타고 가다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들어갈 거야. 국경까지는 대략 20km가 좀 안 되니까 빠르게 이동하면 한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겠지. 발각된다 해도 상관없으니 능선을 타고 갈 거야. 그리고 네피도 남쪽까지 직선으로 주파한 다음, 거기서 약간 북쪽으로 꺾어 방글라데시 국경까지 갈 거야. 거리는 약 700km가 좀 안 되는데 이라와디 강을 건너면 산맥이 시작되니까 초반에 최대한 많이 걸어 두자고. 하루에 90km 정도면 대략 일주일이면 방글라데시 국경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한규호가 처음으로 자세한 탈출 계획을 말해줬다.
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탈출 계획을.
700킬로를, 그것도 산맥이 핏줄처럼 퍼져있는 그 지역을 중간에 보급이나 외부 지원 없이 두 다리로만 걸어서 탈출하겠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완이 황당해하며 말했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하고 화가 났다. 700km를 걸어서 가겠다니.
“당연히 말이 안 되지.”
“네?”
“당연히 말이 안 되지. 이 아가씨야. 사람이 하루에 90km를 어떻게 걸어가?”
“......”
한규호는 자신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완은 그런 한규호의 얼굴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우선 우리를 추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가 이 트럭을 버리는 곳까지는 아주 쉽게 찾아오겠지. 그래서 도로에 차를 버린 다음에 국경까지는 도보로 이동하긴 해야 해. 국경까지 거리는 대략 20km 정도 맞아.”
완은 그제, 바 펜타닐 인근 숙소에서 그가 구글 지도를 보면서 대충 경로를 그리는 것을 보기는 했다. 그래 봤자, 중간중간에 거리를 재고, 좌표를 찍어보고 하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설마 이 남자는 불과 20여 분 동안 지도를 본 것 만으로 이 탈출 경로를 생각했단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루트를?
“미얀마에 들어서면 지금처럼 차량을 탈취해야겠지. 문제는 그게 다 흔적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중간중간 차 대신 걸어가면서 그 흔적들을 지우진 못해도 희미하게는 해야 해. 우리는 여권도, 돈도, 그리고 외부 지원도 없이, 지금 있는 소지품만 가지고 탈출을 해야 하니까. 돈은 있네. 달러는 얼마나 챙겨왔지?”
“....바트화 포함하면 대략 1만 달러 정도.”
“국경이라면 몰라도, 내륙으로 들어가면 달러나 바트화는 쓰기 힘들겠군. 호텔에서 좀 바꿔 놓을 걸 그랬나? 아니지. 그랬다가는 미얀마로 들어간다고 광고하는 거랑 똑같은데. 아니야. 차량을 버리면 어차피 미얀마 쪽으로 튀었다는 거 알긴 알 텐데. 확 그냥 돈을 뿌리고 다니면서 재빠르게 튈까?”
“가능···. 한가요?”
“글쎄. 도시라면 모를까, 시골에서는 안 통할 것 같은데.”
“그거 말고······. 그 말도 안 되는 루트요.”
“가능하지. 나 혼자라면.”
“저와 함께라면?”
“그건 당신에게 달렸지. 얼마나 잘 걷나.”
“............”
“자두라고. 편안한 의자에서 자는 건 당분간 없을 테니까.”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액셀을 힘껏 밟았다.
적어도 15년 전에 스즈키에서 제작한 소형트럭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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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두 남녀는 1095번 지방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빠이를 지나 매홍손으로 향하는 도로 중간, 762고개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좌우로 커브가 연속되는 구간이었다.
한규호는 그곳에 차를 세우고, 북북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이 국경이니까, 저리로 가자고.”
그러고는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저, 트럭. 그대로 두고 갈 건가요?”
완은 그들이 타고온 트럭을 어떻게 할지 물었다. 흔적을 지우는 것은 요원에게 기본이 되는 행동이니까.
“왜?”
“흔적을 저렇게 두고 가도 되나요?”
그 말에 한규호는 픽 하고 웃었다.
“어떻게 없앨 건데?”
“.............”
“여기에 두나, 고개 아래로 밀어버리나 발각되는 데는 별 차이 없어.”
“네?”
“이 도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고 갈 것 같아? 별로 없어. 별로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고.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덩그러니 서 있는 저 오래된 트럭을 보면서 의심할 것 같아? 페라리도 아닌데? 그냥 신경 안 쓸 거야. 어떤 바보 같은 자식이 기름 떨어져서 여기다 세워놓고 갔나 보군. 이러고 말걸? 만약에 저 아래로 떨어트리다가 나무라도 걸린다면, 불이라도 난다면? 훨씬 더 빨리 알려지게 되는 거지.”
“.......”
“우리가 트럭을 훔친 곳은 치앙마이 주고, 여기는 메흥손이야. 관할이 다르지. 치앙마이 경찰들이 트럭 분실을 인지하고 찾아다닌다고 해도, 저렇게 오래된 트럭을 열심히 찾아다닐까? 또 설사 치앙마이 경찰이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신들의 본분을 잊지 않고, 생계수단인 트럭을 도난당해 울고 있는 시민을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다고 생각해보자고. CCTV도 돌려보고. 그래서 빠이 방향으로 갔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래서?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최소 3일은 걸릴걸? 관할이 다르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뭐죠?”
“귀찮으니까. 그냥 두고 가자고.”
그러고는 한규호는 씩 웃었다.
“마지막은 그렇다 치고, 앞에 이유들은···. 다 생각하고 움직인 건가요?”
완은 물었다.
이 남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가 지적한 부분들을 전부 파악하고 움직인 것일까? 마치 완을 이곳으로 데리고 오겠다고 예전부터 계획을 세워뒀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에 완은 믿음보다 의심이 더 커졌다.
“어떤 것 같나요? 자. 걱정 많은 아가씨. 갑시다. 이제.”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한규호는 기분이 좋았다.
막 동이 터 오르는 산악지대를 행군해야 하는 그는 기분이 더 상쾌해짐을 느꼈다.
편안한 리조트의 스위트룸, 즐거운 카지노, 그리고 성적인 서비스를 포함해 그에게 제공되는 안락한 생활보다, 거친 산악지대를 행군하는 것이 그의 생리에 더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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