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2화 (23/386)

MISSION 02 : TBD (15)

5월 10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그래서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이유로 나를 죽이려 했던 당신을 내가 벗어나게 해 달라?”

완은 협상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지적은 모두 옳았고, 그의 논리는 모두 맞았다.

그래서 자신이 말하는 이유가 모두 억지처럼 느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남은 카드는 많지 않았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완은 일어나서 가운을 벗었다.

그리고 누워 있던 한규호에게 다가가 그 앞에 섰다.

눈부신 나신이 그의 앞에서 있었다.

“날 죽여줘요.”

“..........”

“나를 데려 가던가, 아니면 나를 죽여줘요. 데려갈 수 없다면 나를 죽여줘. 안그러면 당신을 죽이겠어.”

“죽이겠다고? 어떻게?”

“옷을 입고 나갈 거야. 나가서 내 상관에게 당신이 어딘가의 요원이가, 여기서 무언가를 알게 됐다고 이야기 할 거야. 그럼 내 상관이 여기 와서 당신을 잡아다가 카지노 지하로 데려가 고문을 할 거야.”

“협박하는 건가?”

한규호는 그의 눈 앞에 완벽한 나신이 있었음에도, 시선을 그녀의 두 눈동자에 고정했다. 눈은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하니까.

“사실을 말하는 거야. 내 상관은 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아내려 할 거야. 아주 고통스럽게. 그리고 당신은 결국 죽게 되겠지. 당신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죽은 척을 한 건지는 몰라. 하지만 이번에는 살아남을 수 없어. 시체는 지하 소각장에서 소각해버릴 테니까.”

소각장에 들어가게 되면 그도 방법이 없다. 신체를 조절하고 자시고, 그냥 한줌 재가 되겠지. 뭐 잡히느냐 잡히지 않느냐의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지만.

“그러니 나를 죽여. 나를 죽이지 않으면 당신이 죽어. 나를 데리고 가든가, 죽이든가, 아니면 죽어.”

한규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로 가서 가운을 집어들고 와 그녀의 몸에 걸쳤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여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그런 한규호를 가만히 지켜보다 담배를 건네 받고 한 모금 깊게 들이 마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규호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녀가 가진 패는 거진 다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한규호의 목숨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탈출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데리고 가던가, 아니면 죽이던가.

어떠한 방법으로든 그녀의 이 생활은 끝이 난다.

“들어보지.”

한규호가 말했다. 자신을 설득하라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남자에게 자신을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던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죽이라는 이야기를 납득시키라고.

"태국 북부에서 국민당군 잔당의 후손으로 태어난 소녀는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어. 하지만 행복했을꺼야. 그 고통스러운 환경을 인지하기에, 소녀는 너무 어렸고, 그 세계는 엄마만 있으면 완벽한 것 처럼 느꼈으니까."

완은 한규호가 덮어준 가운을 여미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13살이 되었을 때, 한 노인이 집에 찾아왔어. 소녀는 그 늙은이 앞에 상품처럼 서게 되었고 늙은이는 그녀를 가축처럼 품평했지. 그리고 그 늙은이와 아빠라고 불렀던 남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소녀는 그 노인의 아내가 될 것을 알았지.”

한규호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은 많은 이야기를 해주니까.

“소녀는 도망쳤어. 가축처럼 소녀를 이리저리 살피던 그 늙은이의 눈빛과 손길이 소름끼치도록 싫었으니까. 그래서 도망쳤어. 밤에 몰래 도망치려는 소녀에게 엄마는 돈 몇 푼을 쥐어줬어. 지금 생각하면 그건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었지만, 가난한 그 집에서는 부담될만한 금액이었고, 엄마에게는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한규호는 자신이 항상 누워있던 위치에 가서 그 자리에 항상 취하던 자세로 누웠다.

“도망친 13살 소녀는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었어. 그저 살기 위해서 구걸하고, 몸을 지키기 위해서 쓰레기 위에서 굴러야 했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는 결국 어른들의 치밀하고 간악한 심계에 넘어갔고, 적당한 몸값이 붙어서 팔렸고, 그리고 살기위해, 맞지 않기 위해,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해야 했어.”

흔한 이야기다. 가난한 나라에서 아동들은 생산성은 낮지만, 저렴한 비용을 감안하면 효율성은 괜찮은 노동 자원이니까.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몇 번의 주인을 거친 소녀는 마음씨 좋은 주인에게 넘겨졌지. 마음씨 좋은 주인은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어. 때리지도 않았고, 밤에 자신의 방에 부르지도 않았어. 그저 일을 시키고, 가끔 과자들을 쥐어주었지. 소녀는 집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꼈어.”

한규호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다른 누군가가 찾아왔고, 소녀는 직감적으로 그가 그녀의 새 주인이 된다는 것을 알았어. 그녀는 18살이 되었고, 여인으로써의 모습을 갖추었으니, 본격적으로 몸을 팔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고, 하지만 소녀의 새 주인은 그런 단순한 포주가 아니었어.”

“MSS였군”

“소녀는 새 주인과 차를 타고 한참을 갔어. 어딘지 알 수 없는 지역의 알 수 없는 건물로 들어갔고, 거기서 일주일동안 끝없는 질문을 받았지.어디서 태어났고, 어디서 자랐고, 무엇을 하면서 살았고, 누가 그녀를 알고 있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했고, 같은 답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일주일을 보내면서 소녀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어.”

한규호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신원도 밝히고, 정신도 망가뜨리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망가진 정신 위에 국가라는 새로운 지배 체계를 심어놓기 위한 사전작업이기도 하고.

“그리고 또 며칠을 기다렸어. 소녀는 몰랐지만, 심문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심사가 진행됐고, 거기서 소녀는, 중국 국민군 잔당의 핏줄을 이은 소녀는 중국 정부기관의 내부 심사에 합격하게 되었어.”

“.............”

“소녀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했고, 중국은 그녀의 새 조국이 되었어. 그리고 그녀의 새 조국은 그녀를 수술대로 올리고 그녀의 자궁을 적출했어.”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는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가운을 열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정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개복의 흔적. 그 흔적이 배 한쪽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2년이 넘는 동안 그녀의 새 조국은 그녀에게 자랑스러운 중화의 역사와 그녀가 지켜야 할 조국의 가치와, 요원으로서 살아갈 이유를 가르쳤어. 거기와 더불어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법, 자연스럽게 남자를 홀리는 법, 잠을 잘 때......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만족감을 주는 법도.”

그녀는 냉장고로 걸어가 생수병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신 다음 한규호에게 내밀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저었다.

“교육이 끝나고, 상해에 있는 KTV(룸사롱)에서 상해 주재 외국 기업인들을 접대해야 했어. 그녀는 매력적이었고, 교육도 잘 받았으니, 돈 많은 외국인들은 그녀를 보기 위해 돈을 펑펑 써대야만 했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회사 기밀을 술술 불었어. 조국이 그녀에게 원한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했어. 그녀는.”

남자는 잠자리에서 여자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아내가 아니라면. 한규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능력을 검증받은 그녀는 신화사 특파원으로, 무역상 딸로, 유학생으로 쿠알라룸푸르에서, 하노이에서, 마카오에서 계속....... 임무를 수행했고 그리고 3년 전에 이곳에 오게 되었어.”

“그렇군.”

“그녀의 임무는 의심되는 고객을 파악하는 것이었고, 그 역할을 위해 몸을 팔았지. 그녀의 고객들은 그녀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았고, 탐욕스럽게 그녀를 유린했어. 더러운 몸뚱아리 아래에서 유린당하면서도, 그녀는 자신 위에 올라탄 그자가 의심스러운지 아닌지, 아니라면 조국에 도움이 되는지, 도움이 된다면 어떻게 도움이 될 지를 생각해야 했어. 그리고.”

“....... 그리고?”

“..... 그리고, 고객이 없을 때는 그녀의 상관들이 그녀를 찾았어. 오줌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듯, 여자가 생각나면 그녀를 불렀어.”

“........”

“사는 게 뭐지? 당신이 말해줘. 사는 게 뭔지. 매 끼니마다 밥을 먹고, 그 영양분으로 생명활동을 유지하면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낮 동안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잠이 드는 사이클을 따라가면 사람이 사는 걸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니. 몰라. 당신은 몰라. 그 누구도 몰라. 나는 숨을 쉬고 있지만 이미 예전에 죽었어. 나는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야.

“.....”

“아까 말했지? 여권도 없이, 당신을 도와줄 조력자 하나 없는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

“.... 음.”

“그러면 나를 죽여줘. 그리고 탈출해.”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완의 말을 다 들은 한규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완도 그냥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끝난 건가? 이야기가?‘

그런 완의 모습을 보고 한규호가 말했다.

완이 듣기에, 한규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녀는 거기에서 희망이라는 감정을 찾을 수 없었다.

“더 할 이야기가 남았나요?”

완의 말투가 예전처럼 존대로 바뀌었다.

그녀는 일어나 가운을 벗고, 바닥한켠에 떨어져 있던 팬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그를 설득하는 것은 실패했다고.

그러나 그녀의 그런 생각과는 달리, 속옷을 입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완을 데리고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요원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하는 독립요원이었다.

국가의 이익보다, 스스로의 판단을 더 우선시하는.

“남았지. 어떻게 이곳에서 나갈지 방법을 이야기해야 하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5월 10일

태청무역

산성동, 성남시, 경기도, 대한민국

태청무역 김형원 사장은 눈앞에 놓여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잔뜩 찌푸린 미간은 그의 고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깊게 골이 파여 있었다.

골치가 아팠다. 거래처 하나가 또 떨어져 나간 것이다.

대기업이 자사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대기업 2PL 물류계열사들이 최근 공정거래법 위반을 피해가기 위해 3자 물류로 눈을 돌렸다.

대기업들의 자가 물류의 비중을 낮추고, 이를 통해 경쟁력있는 물류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룹사의 운송비율을 낮춰야 했던 대기업 물류 자회사는 모기업의 물량은 그대로 둔 채, 그동안 중소기업이 담당해오던 작은 일감에도 손을 뻗었다.

전체 운송물량을 늘려, 자사 운송물량의 양은 그대로지만 표기되는 비율을 낮춘다는, 아주 개같은 생각을 해낸 것이다.

결국 골목상권에까지 마수를 뻗친 대형그룹 물류 자회사 때문에, 중소무역/물류 기업들은 계속 거래처를 빼앗기고 있었다.

태청무역도 오랜기간 거래해온 거래처 하나를 빼앗겼다. 보고서를 들고온 수출팀 팀장에게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김형원 사장도 알고 있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하아... 이걸 어쩐다. 이러면 빵꾸는 피할 수 없는데.”

김형원 사장은 골치가 아팠다.

회사가 손해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워낙 경기가 안좋으니까. 문제는 손해를 봐도 적당히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위장기업이라고는 해도, 태청무역은 국정원이나 기무사에서 운영하는 이름만 빌려주는 유령기업이 아니었다. 그런 위장이야 금방 걸린다.

한규호가 원청이라고 부르는 김형원의 조직은 이 기업을 완벽하게 위장하기로 했고, 그래서 김형원 사장은 이익은 보지 못해도 회사가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는 운영해 나가야 했다.

문제는 이대로 가다가는 회사가 망한다는 것이다.

영업이익이 마이너스인 것은 그렇다고 쳐도, 매출이 안 나오면 외부에서 볼 때 바로 걸려버린다.

안그래도 미국에 노출된 상태인데, 이러다가는 정말 회사를 닫아야 할 수도 있다.

“그냥... 접어버릴까?”

그냥 회사를 접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면 다른 회사를 만들겠지. 문제는 다시 그 일을 김형원이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장 회사를 만들고, 다시 영업망을 구축하고, 또 발로 뛰어서 영업을 따내고.

차라리 사표를 쓸지언정 그 짓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 김형원 사장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아... 어쩐다. 어째야 하나. 이번 분기는 완전히 빵꾸나겠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책상 위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김형원 사장은 전화기를 들고 화면에 뜬 번호를 확인했다.

태국의 국가번호가 찍혀있는 긴 전화번호. 한규호의 번호였다.

“여보세요.”

김형원 사장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이. 김 부장.”

전화기 너머로 한규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 부장? 지금 김 부장이라고 했지? 이 자식이?

“네. 사장님.”

김 사장은 말투를 바꿨다. 그는 이제 김 부장이다. 출장 간 사장의 전화를 받는 김 부장.

“어. 그래. 별일 없지? 회사에?”

“네? 네. 별일 없습니다.”

“그래. 내가 출장이 좀 길어져서. 나 없어도 회사 잘 챙기고 있어요. 그건 그렇고.”

“네. 말씀하십시오 사장님.”

이 자식이 뭔 이야길 하려고 하지?

“나. 출장비가 좀 더 부족하게 됐는데 말이야. 좀 더 보내줘야 겠어.”

“출...출장비 말씀이십니까?”

한규호가 이번 작전에 떠나기 전에 카지노 보증금으로 10만 달러가 들어갔다. 그리고 한규호 활동비로 10만 달러가 들어갔고, 20만 달러가 추가로 더 들어갔다. 그런데 더 보내라고?

“어... 얼마쯤 더 보내면?”

“한 40만 정도만 더 보내면 될 것 같아.”

“사....사십만 달러요?”

“그래. 그 정도면 뭐 적당할 것 같은데.”

“사장님. 40만 달러면 좀.....”

“김 부장.”

“네? 네 사장님.”

“회사가 김부장 껀가?”

“네? 아..아닙니다.”

“회사가 김부장 꺼야? 니 꺼야? 어? 대답해봐. 회사가 니 꺼냐고!”

전화기 너머로 불같이 화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식이. 진짜..... 김형원은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참으며 대답했다.

“준비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왜? 씨발 차용증이라도 써줘?”

씨발이라고 했다. 지금. 김형원 사장은 뒷목이 빳빳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청이라도 당할까 봐 그러는 것이겠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김형원은 잘 알고 있다. 물론 한규호도.

한규호는 침대가에 걸터 앉아 꼰 다리를 까딱까딱 거리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어? 김부장. 왜 말을 못해? 김 부장님 회사에서 40만달러 빌렸다고 차용증 써줘?”

“죄송합니다. 사장님. 용서해 주십시오.”

“죄송? 죄송하다고 끝날 일이면, 경찰은 왜 있고, 재판은 왜 받고, 감옥은 왜 가는데?

그만해라 이 자식아 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참아냈다.

김형원도 잘 훈련된, 아주 잘 훈련된 요원이니까.

“...... 준비하겠습니다.”

김형원 사장의 목소리에서 살짝 분노가 느껴졌다.

이쯤해야 되겠군. 한규호는 생각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건 그렇고 말야. 저번에 말했던 수입건 있지?”

“수입건 말씀이신가요? 네.”

수입건.

무언지 알 수 없는 중요한 일에 관여된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데려 오는 것.

“그거. 샘플을 하나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샘플. 목표이거나, 목표와 관련 있는 인물.

김형원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게. 좀. 그래서. 알잖아 김 부장도. 그래서 핸드캐리 해야 할 것 같아.”

핸드캐리. 직접 데리고 온다.

“근데 문제가 좀.. 알다시피 세관놈들이 좀 그렇잖아.”

세관. 현지에서 행정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러니까 세관에다 좀 약을 쳐야 할 것 같은데.”

약을 친다. 위장 신분을 만든다.

“문제는 웬만큼 약을 쳐도 먹을 것 같지가 않단 말야.”

한규호의 이야기가 끝났다.

김형원 사장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어떠한 인물을 찾았다. 확보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인물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러려면 위장신분이 필요하다. 문제는 위장신분을 만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지의 인물이.

“사장님. 그러면 특송으로 보내면 어떨까요? 페덱스라면 슬롯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핸드캐리가 아닌 특송, 직접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인물을 국내로 데려오는 방법을 제안했다.

“김 부장.”

“네. 네?”

이 자식이 또 뭔 소리를 하려고.

“내가 말이지. 그동안 아버지가 김 부장 잘 챙기라는 말 때문에 그냥 참고 넘어갔는데 말야.”

뭔 이야길 하려고?

“당신 부장 어떻게 달았어? 나이 먹고 회사 오래 있으면 부장 다는 거야? 어? 그런 거야?”

또 시작이군.

“생각을 해. 생각을. 머리는 뭐 걸어다닐 때 무게중심 맞추려고 어깨 위에 두고 다니는 거야?”

이 자식. 앵간히 해라.

“세관에 약 이빠이 쳐도 핸드캐리가 될까 말까한 상황에서? 뭐? 특송? 특송? 그러다, 중간에 샘플 망가지거나 없어지면? 그러면 어떻게 할껀데?”

“아.. 저는 그저 사장님 힘드실까봐....”

“아부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지! 그렇게 멍청하게 아부하면 티만 나고 욕만 먹는 거야. 그러니 30년 넘게 부장이지. 다들 상무, 이사 달고 있는데.”

“하아... 죄송합니다.”

“하아? 지금 한숨 쉰거야? 어? 그거 좀 혼났다고?”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됐고. 세관에 돈이나 좀 뿌려. 뭐 할 줄 아는거라곤 아부하고 뒷돈 주고받는 거 밖에 못하니..원 참.”

죽인다. 이자식 기필코 죽인다. 김형원은 마음에 새겼다.

“얼마나 걸려?”

위장신분 만드는데?

“최소 일주일은 주셔야....”

김원형 사장이 원청을 움직이고, 원청이 국정원의 탈을 쓰고, 국정원이 태국 정보부와 조율해야 한다. 일주일도 빠르다.

“장난쳐?”

“죄송합니다.”

“도대체 할 줄 아는게 뭐야?”

“죄송합니다.”

“그놈의 죄송. 죄송. 죄송하다는 말 밖에 몰라!!!!!”

한규호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복식호흡으로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김형원은 당황했다.

이 놈 봐라. 지금전화를 끊어? 이러고 그냥 전화를 끊은 거야? 이 자식 봐라.

김형원은 전화를 든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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