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TBD (13)
5월 10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완은 의식을 찾았다.
그녀는 바로 눈을 뜨진 않았다. 눈을 감은 채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찔러들어갔다.
행동하고 판단한다.
무력 사용에 있어서, 적 앞에서 최우선 행동원칙이다.
그녀는 그 원칙에 따라서 판단하기 전에 행동에 들어갔다.
눈을 찔러들어간다. 동시에, 무릎으로 고간을 찬다.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본능적이고 동시적인 공격을 했음에도, 그는 쉽게 막아냈다. 그리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 초크를 걸었다.
거기가 기억의 끝이었다.
그녀는 계속 눈을 감은 상태로 지금의 상황을 파악했다.
방은 조용했고, 그녀는 바로 누워있는 상태였다. 이불이 덮어져 있는 느낌이 있었고, 그녀의 옆에서 그의 기척은 없었다.
우선적인 상황파악이 끝나고서야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 아래는 마치 마비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직 목 위로, 마치 전신마비 환자처럼 목 위의 신체만이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유일하게 통제 가능한 목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자 의자에 앉아 생수병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죽었어야 했을 남자, 자신이 죽음을 확인 한 남자.
“잘 잤어?”
그런 그녀를 보고 한규호가 인사했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요.”
완이 말했다.
“나중에. 지금은 말고.”
한규호가 답했다.
완은 다시 고개를 내렸다.
지금 상황은 완전한 그의 지배하에 있다. 그녀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살짝 들고, 그 밑에 베개를 놓고는 침대가장자리에 앉았다.
“항상 내가 누워있고, 당신이 앉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군.”
“.........”
완은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돌려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이불을 덮어 줬나요?”
“에어컨 바람은 생각 외로 차니까.”
무심하게 말하는 그를 한참 동안 말없이 보던 완이 다시 말을 꺼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한규호는 테이블로 걸어가 빈 생수병을 들어 보였다.
“그냥 봐. 내가 받아 줄테니까.”
그러고는 걸어와 이불을 걷었다.
나신이 드러났다. 완이 매서운 눈으로 한규호를 노려봤다.
“농담이야.”
그렇게 말하고서, 한규호는 완의 고개를 살짝 들고 목을 잡아 기운을 갈무리했다.
완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이 돌아옴을 느꼈다.
그녀는 잠시 몸을 체크한 후, 몸을 일으켜 방안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기에 물을 틀어 놓고 변기에 앉아 완은 빠르게 생각했다.
그는 죽었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낮은 온도, 굳어진 감각,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살펴본 그의 동공.
모든 요소가 그의 죽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살아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그녀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살아났는가?
중요하지 않다.
가장 궁금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말이다.
완이 생각을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한규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베개 두 개를 겹쳐 베고, 양 팔로 머리를 괸 평상시 그 모습으로.
“옷을 입어도 될까요?”
완이 말했다.
“좋으실대로.”
완은 바닥에 흩어져있는 자신의 옷 대신 옷장으로 가서 가운을 걸쳤다. 허리끈을 질끈 동여 매고, 침대 가장자리 대신 한규호가 앉아 있던 의자로 가서 앉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아요.”
“나도 그래.”
“당신은 누구죠?”
“지금 이 관계에서 누가 우위인지 잘 생각하라고.”
완은 말없이 다시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원하시는 걸 얻으려면 절 죽이는 게 빠를 거예요. 그래봤자 시체 한구 얻는데 그치겠지만.”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나타난다.”
뜬금없는 한규호의 말에 완은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세네카가 한 말이지. 행운에 대한 정의.”
“무슨 의미죠?”
“내가 당신의 행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원하는 걸 해 줄 수도 있다는 말이고.”
한규호의 말에 완의 마음에 쿵 하는 울림이 퍼졌다.
------------------------------------------------------
수 개월 전.
지하 상황실, 백악관,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구, 미국
“인류는 죽지도 늙지도 않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더 이상 늙지 않습니다.”
CIA 밀러 국장의 말에 모두들 말이 없었다.
너무도 허황된 이야기라, 도저히 CIA 국장이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그게.... 가능한 거요?”
좌중에서 가장 젊은 NSA 헤일즈 최고책임위원이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
“시나리오 중에 하나입니다.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 그가 그의 신체 모든 세포, 조직, 기관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과학이 그것의 실체를 파악해낸다는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 말입니다.”
“최선의 시나리오라.”
보머 대통령이 말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때, 최선의 시나리오입니다.”
윌리스 웨버 위원장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일랜드 이민계 자손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로서는 불노불사라는 개념 자체가 신의 섭리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 불노불사가 사실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지혜는 다들 가졌다.
닐 밀러 국장도 거기에 동의했다. 그래서 추가 설명을 하기로 했다.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일 뿐입니다. 불노(不老)라는 이야기는 다른 의미로 질병이 없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자연적인 노화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되, 그 외에 인류를 괴롭히는 모든 질병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의미합니다.”
통제에서 벗어난 세포가 무한 증식한다. 그것을 의학계에서는 암이라고 부른다. 신체에 대한 완전한 통제가 가능하다면?
질병으로서의 암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불노불사라는 불경한 단어를 입에 담았으니 마저 하겠습니다.”
닐 밀러 국장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가 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 능력을 미국이 확보하게 된다면, 미국은 전 세계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지배가 아닙니다. 통제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한 나라가, 한 집단이, 또는 한 개인이 그 능력의 원리를 알아낸다면, 세계 질서는 그 나라, 그 집단 또는 그 개인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뭔가? 그냥 단순히 빠르다는 것에 그치는 것인가?”
보머 대통령이 물었다.
닐 밀러 국장은 대통령의 아둔함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랜 정치권력 투쟁에서 승리가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싶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다시 모든 눈이 그에게 모였다.
“그가 그의 신체 모든 세포, 조직, 기관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과학이 그것의 실체를 파악해 냈을 때, 우리가 그 실체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밀러가 말했다.
------------
5월 10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어떻게 행운이 될 수 있죠?”
“예를 들어서.”
한규호는 완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얼굴은, 저렇게 감정없는 얼굴은 두 번째군.
“당신을 살려준다던가?”
그가 게임장에서 나왔을 때, 왕 뭐라고 하는 부 지배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보았던 표정이다.
“여기서 저를 죽이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완이 물었다.
“불가능할 것 같은가?”
한규호가 답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완은 그렇게 말하는 한규호의 말과 표정에서 거짓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가능해요.”
"못 믿겠으면 말라고.“
“믿지 못해요. 할 말도 없어요. 이제 저를 어쩌실거죠?”
완이 카드를 던졌다.
한규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잘 교육받은 요원이고,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캐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고문?
가능하다. 지금 이 방에서, 별다른 고문도구도 없는 이 방안에서 그는 완이라는 저 여자를 고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고문의 목적은 단순하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고문의 목적은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정신을 파괴해, 고문을 시전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보의 획득은 그저 부산물일 뿐이다.
한규호는 지금, 아무것도 없는 이 방에서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녀의 정신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죽일까?
죽이는 방법도 있다. 애초에 그를 죽이려고 했으니, 상응하는 보답을 할 권리가 그에게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적자생존과 더불어 인류가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행해온 불문율 아니던가.
그러나 둘 다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익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한규호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첫 번째는 잘 구슬려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완은 그가 이곳에서 찾아낸 첫 번째 실마리이다. 이 실마리를 최대한 활용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 요원을 찾고, 더불어 북-중 양국 관계를 박살낼 정도로 큰 사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냥 무시하는 방법이다.
그냥 이대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그러면 끝이다.
누가 뭐라 하겠어? 김형원 사장이야 잔소리를 조금 하겠지만, 그래봤자 그 정도다.
한규호는 자신을 뻔히 보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어떤 방법을 택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
5월 10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사모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전화기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 여편네가 뭐라는데?”
전화기를 든 주 선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사장님이... 너무 출장이 길다고.....”
겁먹은 듯 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씨발. 뭐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보면 늦을 수도 있지. 어디서 전화질이야!”
주 선생은 아내에 대한 화를 엉뚱한 비서에게 풀어냈다. 주 선생의 욕설과 분노가 적절히 섞인 목소리에 전화기 너머로도 비서의 긴장이 느껴졌다.
“... 죄송합니다.”
“아. 짜증나네. 한참 기분 좋았는데. 여편네가 뭐라고 했는데?”
“그게... 사장님 출장 어디로 가셨냐고. 연락이 안 되어서 걱정 되신다고....”
“그래서? 뭐라고 했어?”
“저희도 잘 모르겠다고.... 그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뭐 그것 밖에 할 말이 없겠지.
“알았어. 끊어.”
“혹시 사모님께 전달할 말이....”
“됐어! 내가 전화할게.”
주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기를 침대에 내려치듯 던져버렸다.
“괜찮으세요?”
주 선생이 분노하며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그의 옆에서 눈치를 보던 알몸의 여자가 물었다.
“놀랬지? 미안해. 괜찮아.”
주 선생이 놀란 듯 물어보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자상한 말투에 여자는 다시 그의 품에 안겼다.
주 선생은 자신의 품에 안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안달인지.
주 선생이 이곳에 온지 대략 8일 정도가 지났으니, 슬슬 연락을 줄 때가 되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안달 낼 정도는 아니다.
벌써부터 이렇게 안달내면 앞으로 같이 일 하는데 골치 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주 선생도 며칠 정도면 어느 정도 방향은 잡힐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일이 잘 안 풀렸다.
처음 의뢰를 받고, 베이징과 방콕에 있는 정보망을 활성화시켰다. 여기, 골든 트라이엥글에는 각자 서로를 알지 못하는 3명을 파견해 정보를 모았다.
그는 태국과 중국에서 각각 취합된 정보를 모아 분석해 상호 모순되는 부분들을 찾아냈다. 모순이 왜 일어났는지, 어디에서 발생한 모순인지, 모순이 의도된 것은 아닌지를 분석했다. 이와 더불어 현장에서 취합된 정보를 적절히 취사선택하고 혼합해 큰 그림을 그렸다.
그러고 나서야, 그가 직접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것이 8일 전, 어느 정도 정보는 모였고, 대충 큰 그림도 그렸다. 그는 조만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식양.
그의 의뢰인이 원하는 식양에 대한 정보를.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이곳에서 얻은 게 없었다. 식양에 대한 정보는 한정적이었고, 그것조차도 얻기가 쉽지 않았다. 힘들게 얻은 정보는 별로 가치가 없었다.
정리해보자.
식양이 사라진 것은 1년 전이다.
그 시점이 명확하지 않다. 잠들었다 깨어나는 전설상의 식양처럼, 현재의 식양도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베이징은 안일하게 대처했다.
초기에 인식하지 못했고, 대응할 시기를 놓치면서 유일한 선이라는 구 교수를 잃었다.
어느 시점에서 식양이 사라졌는지 베이징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주 선생은 베이징에 만들어놓은 정보망을 믿었다.
그 정보망을 통해 식양이 사라졌고, 마지막 실마리가 이곳에 있었고, 그래서 징춘이라는 감찰국 요원을 보냈다는 것까진 알아 냈지만, 의뢰인이 원하는 것은 식양 그 자체에 대한 정보다.
그는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최대한 정리해보자.
아내에게 전화해야 한다. 어쨌든 의뢰인이니까.
주 선생, 의뢰인과 계약에 의해 정보를 모으고 분석해 제공하는 사설정보기업 ‘박물관연대(Museum Union)’에 를 운영하는 독립요원 데니얼 양은 빠르게 정보를 정리했다.
의뢰인인 나이초(内調).
일본 수상 직할 내각정보조사실(内閣情報調査室 : Cabinet Intelligence and Research Office, CIRO)에게 전해야 하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