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9화 (20/386)

MISSION 02 : TBD (12)

3월 22일

윌리스 웨버 미 상원의원 사무실

리틀록, 아칸소, 미국

윌리스 웨버 미 상원의원이자 상원의회 기밀보호 위원장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지금 딜레마에 빠저 있었다.

얼마 전, 처음 알게 된 기프티드라는 존재, 그리고 미국이 그 존재를 대하는 관점이 자신의 관점으로는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몇 달 전 백악관 지하 벙커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우선은 알겠네. 알겠는데, 내가 드는 의문점은 이것이네. 지금 저 친구가, 저기 날아가는 저 친구가 대단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겠네. 알겠는데, 과연 그 신체능력 때문에, 지금 여기 이 사람들이 여기에 모일 정도로 중요한 사항인가?”

“위원장님. 그건 말이죠.”

네일 밀러 CIA 국장이 답했다.

“저희는 한규호라는 저 친구가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능력, 아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능력. 그것이 어떠한 유용성을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

웨버 위원장이 보머 대통령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머 대통령이 그 의미를 받아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렇지. 단순히 빠르다는 것 하나만으로 수퍼 히어로가 되기에는 좀 부족함이 있지. 그래서 플래쉬맨이 영화화 안되는거 아니겠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밀러 국장은 이 이야기를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언젠가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이기는 했다.

“원맨 아미(One man Army). 미군이 지향하는 최종목표입니다. 단순히 빠르다고 해서 전투력이 높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저희는 여기서 의문을 가집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어디에도 언급된 적 없고, 기록된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밀러 국장은 흘깃 헤일스 NSA 최고 책임위원을 바라봤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대통령과 기밀보호위원장은 그렇다고 쳐도, NSA 까지 있을 필요는 없는데.

“괜찮네. 말하게.”

보머 대통령이 NSA의 참여를 허락했다.

“우리는 모든 사안에 대해 검토하고,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작성해 각 개별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에는 최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이 포함됩니다.”

밀러 국장이 입을 열었다. 이는 단순히 CIA만의 방침은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방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수립된 시나리오가 이것입니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방식의 능력도 가능하다면?”

“예를 든다면 뭐가 있습니까?”

헤일스 NSA 최고위원이 물었다.

“예를 든다면, 힘이나, 감각을 지금의 속도만큼, 인간의 신체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확장할 수 있다면.”

“...............”

시각이 확대되면 망원경이 필요없어진다.

적외선을 볼 수 있다면 야간투시경은 더 이상 미군의 필수 보급장비가 아닐 것이다.

피부를 강화할 수 있다면? 더 이상 폭발물 처리반은 EOD슈트를 입을 필요가 없어지고, 병사들은 무거운 강화복 대신 가벼운 군복만으로도 전장을 뛰어다닐 것이다.

원맨 아미도 꿈이 아니다.

“국장. 기프티드의 선결 조건은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것 아니었나?”

대통령이 질문 했다.

“맞습니다. 기프티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해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물리법칙에 위배됩니다. 지금의 법칙에 말이죠.”

“지금의.....”

헤일스 NSA 최고위원이 그의 말을 반복했다.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월식이 일어나면 신의 분노라고 외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악마의 사자라는 이유로 마구 잡아 죽여 전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우리 미국은 지금 어린아이도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의 백만분의 일 정도의 성능을 가진 프로세서로 3명의 사람을 달에 보냈습니다.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칵테일 치료법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이제 이해했다.

“이런 시나리오는 어떻습니까?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 부교감 신경은 물론 신경세포 하나, 모근세포 하나, 조직세포 하나까지 전부 의지에 따라 통제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지금’의 과학으로 해명할 수 없는 그 원리를 결국 찾아낸다면?”

모두의 눈이 그에게 모였다.

“인류는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습니다. 죽는 것은 몰라도, 더 이상 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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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완은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그녀를 감쌌기 때문이다.

그녀는 빠르게 등 뒤에서 죽어있을 시체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왼쪽팔로 머리를 괸 채 그녀를 보며 오른손을 흔드는 그를 발견했다.

“굿 모닝.”

남자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미소를 담아.

완은 그 미소를 인식하자마자 두 개의 손가락, 손톱이 아주 날카로운 두개의 손가락을 그의 두 눈을 향해 찔러들어갔다.

그러나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흔들던 손을 그대로 움직여 그 손을 잡았다.

동시에, 이불 밑에서 그의 고환을 노리고 날아오는 그녀의 왼쪽 무릎도 허벅지로 막아냈다.

그의 허벅지에 막혀 그녀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렸다.

그 순간을 이용해 남자는 재빨리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빠르게 등 뒤로 돌아 팔로 그녀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그녀의 팔이 축 늘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 더 기다렸다.

넷.

다섯.

여섯.

그리고 팔을 풀렀다.

그의 감각이 그녀는 완벽히 정신을 잃었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참 대단하군. 어떻게 교육을 시켰길래.”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여자를 기절시킨 한규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단 한순간의 당황스러움이나 망설임도 보이지 않고 바로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왔다.

마치 눈을 뜨자마자 그러기로 준비한 것처럼.

오히려 그 동작에 한규호가 당황했다. 물론 당황했다고 해도 당할 그가 아니지만.

한규호는 엎드린 채로 기절한 그녀의 목에 손을 대고 경추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몸에 들어간 그의 기운은 경추를 감싸고 돌면서 신경의 기능을 제한할 것이다. 정신이 들었을 때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렇게 기운을 불어 놓은 다음 그는 완의 몸을 돌려 똑바로 뉘었다.

그리고서 누워있는 그녀의 나신을 한동안 지켜보다 이불을 끌어올려 가슴위로 덮고는 침대 머리맡 작은 의자에 앉았다.

한규호는 그녀가 잘못을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해주었던 첫 번째 키스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미량, 아주 미량의 이질적인 물질이 위스키에 섞여 그의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그의 감각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 만큼의 미량의 물질은 술과 섞여 식도를 타고 넘어가 위에서 흡수되었고, 그녀는 계속 키스를 반복하며 그 물질을 그에게 먹였다.

한규호는 그녀의 몸을 탐하면서 흡수되는 물질이 어디로 향하는지 주시했다. 입과 손은 계속 그녀를 탐하면서, 신경의 일부를 조절해 그 이물질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질적인 물질은 아주 빠르게 흡수되었고, 알콜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몸 여기저기를 돌아 심장에 안착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심장을 공격했다.

그 순간 한규호는 완의 의도를 알았다.

그가 심장마비로 죽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죽어주기로 했다.

완이 주입하는 물질이 적당히 쌓이고, 과격한 정사로 그의 체내 순환이 빨리지면, 그때 자연스럽게 죽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죽었다.

정확히는 심박을 천천히 느리게 했고, 체온을 떨어트렸다.

동공을 확장하고, 사후경직 순서에 따라 턱과 목에서 어깨까지 천천히 관절을 경직시켰다.

물론 그의 감각은 열려 있었고, 그의 뇌는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완이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완은 정사가 끝나고 절정에 못이겨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든 척 했지만, 한규호의 감각은 속지 않았다.

지루한 두 시간,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을 연출한 두 시간이 지나고서야 완은 몸을 일으켜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완벽한 연기를 위해 괄약근을 열어 배설물을 배출할까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완은 동공을 확인한 후 그의 죽음을 확신한 듯 했다.

한규호는 완이 위스키를 들어 병째로 마시고 그제서야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다시 천천히 경직을 풀고, 동공을 축소하고, 체온을 올리고, 심박수를 높였다.

“세상에. 무슨 여자가. 사람을 죽여놓고. 그 옆에서 잠을 잘 수 있을까.”

한규호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병을 꺼내어 뚜껑을 따고 마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다.

시계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시계가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시계가 박살 난 이후 이 방에 있었던 정사도, 죽음도, 가벼운 다툼도, 그리고 지금 한규호의 모습도, 앞으로 둘이 나눌 대화도.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첫날 TV 액정을 발로 차 버렸다.

그 시계를 박살내기 위한 포석으로.

체크인 한 첫날, 그가 방문을 열고 침대에 누웠을 때, 그는 바로 눈치챘다.

시계, 아주 고풍스러운 시계에 설치된 도청기와 카메라를.

그래서, 저 카메라를 처리하기 위한 포석으로 첫날 난동을 부린 것이다.

한규호는 완을 의심하고 있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는 적진 한가운데 있고, 완이 그의 곁에 있으니 의심할 뿐이었다.

그러나 별로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가 없다면, 카메라와 도청기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완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다.

그가 잠든 척을 했을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면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버리면 그만이니까.

마지막 행동으로 카메라를 부수고 완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랬는데, 설마 그를 죽이려 할 줄이야.

“들킨건가?”

들켰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

“뭐 들어보면 알겠지.”

한규호도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는 완과 달리 기절해 있는 그녀 옆에 눕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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