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8화 (19/386)

MISSION 02 : TBD (11)

5월 9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징춘은 자신의 방에 앉아 있었다.

그는 목이 탔다. 갈증이 그를 괴롭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실까 하다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차.”

한 음절. 그는 단 한 음절만을 말하고 수화기를 내렸다.

지금 징춘이 할 일은 크게 없었다.

완이 들어가 있는 방을 제외하고 나머지 감시대상들은 지금도 계속 감시 중이었다.

그가 상황실에 있어도 변할 것은 없었다.

어젯밤과 유일하게 다른 부분. 그것은 한규호와 그의 방에 대한 감시가 끊긴 것.

상관없었다. 완이 들어가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녀가 잘 하겠지.

징춘은 가장 중요한 주제로 생각을 집중했다.

식양.

그의 잠적이 지금 국가안전부의 최우선 과제이다.

식양이 갑자기 잠적한 것은 1년 전이었다.

MSS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식양은 MSS의 지시를 받았지만 관리는 받지 않았고, 그가 사라지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까.

문제의 심각성은 MSS내부에서 식양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감지되면서부터였다.

식양의 대한 정보는 최우선보안정보로 가장 엄격한 보안체계하에서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었다.

MSS에서 점검에 들어갔을 때 이미 관련 정보는 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MSS와 식양의 마지막 연결선이었던 중국미래국제관계연구원의 구 교수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MSS와 식양의 모든 연결선이 끊어졌다.

가장 중요한 보물을 최소의 사람만이 아는 곳에 안전하게 숨기겠다는 안일한 생각이 지금의 이 사태를 만들었다.

보물이 스스로 걸어나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니. 알고 있었어야 했다.

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30년이 넘는 동안 식양이 이루어낸 업적이, 중국에 준 도움이, 그 같은 대비를 못하도록 눈을 가려버렸다.

MSS는, 아니, 중국 정부는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실마리를 찾아야만 했다.

식양과 연결된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MSS 감찰심계국(監察審計局) 소속 징춘이 이곳에 온 이유도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징춘은 표면적으로 제 7국, 반간첩정보국 소속이었다. 그러나 실제 그는 감찰심계국 소속이었다.

처음 MSS에 들어오고 그는 계속 7국 소속 요원으로 활동했지만 그는 들어오기 전부터 감찰심계국 소속이었다. 감찰을 위한 위장이었다.

지금 이 곳에서도 그의 임무는 표면적으로 한국, 북한, 일본, 미국, 이스라엘 등의 요원을 판별하고 감시하기 위한 목적 이었다. 7국 소속 요원의 자격으로.

그러나 실제 그의 임무는 식양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머리카락 하나 만큼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남자 직원이 차를 들고 왔다.

징춘의 심부름을 하는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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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매싸이, 태국

태국 국가정보부 소속 2급 요원 야닌 윗미따난(ญาณิน วิสมิตะนันทน์)은 식양(息壤)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그의 실종은 중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호재였다. 그가 없어짐으로 인해서 중국의 대 동남아시아 전략 수정은 불가피해 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불안함도 있었다.

진짜로 그가 사라진 것일까? 혹시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큰 그림을 그리려 하는 것이 아닐까?

정보기관 요원들은 모든 것을 의심한고 모든 상황에 대해 대비한다. 그래서 야닌도 갑자기 사라진 식양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녀가 추가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별로 없었다.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식양이 사라진 후 1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거미줄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특이 징후 없음,’

그녀는 이렇게 타이핑하고 마무리 지었다.

이제 세 번째 내용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데이빗 박. 그를 떠올렸다.

그녀가 출근한 날, 정확히 데이빗 박이 카지노에 체크인한 그 다음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그녀에게 동료 딜러가 와서 말했다.

언니. 그거 들었어요?

어제 까올리(한국인) 하나가 체크인 했는데, 어젯 밤에 10만달러를 날렸대.

그녀는 데이빗 박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전날 태국에 입국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카지노에서 제공하는 헬기를 타고 바로 이곳으로 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들려오는 소식은 예상도 못한 이야기였다.

10만 달러를 하룻밤에 날렸다니.

“10만? 하룻밤에? 어떻게?”

그레이트 마틴게일, 홀짝 같은 확률 게임에 2배씩 걸어가는 아주 멍청한 베팅법으로 돈을 날렸다고 동료가 말했다.

그 순간 야닌은 확신했다.

데이비드 박이라는 그 남자는 아주 잘 훈련된 요원이라고.

요원인 것은 알고 있었다.

태국 국가정보부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신분을 프라이멀 카지노의 VIP로 꽂은 것은 그녀 자신이니까.

한국의 정보기관과 태국의 정보기관이 그의 위장신분을 만들고 승인하는데 합의했다.

어떠한 이유로? 그녀는 알지 못한다. 짐작은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한다.

위장신분이 만들어지자, 그녀는 그를 카지노에 VIP로 등록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작 딜러에 불과한 그녀가 VIP 등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요원인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프라이멀 카지노, 중국 MSS의 동남아 지부는 그녀가 태국 국가정보부 요원인 것을 알고 있었다.

요원임을 알면서도 그녀가 타국 정보기관 지부에서 대놓고 일 할 수 있는 것은 양 국가 정보기관이 맺은 상호 요원파견에 관한 협약 덕분이다.

그녀는 연락책으로써, 양 정보기관을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양국의 합의에 의해 그 곳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자격으로 그녀는 카지노에 데이빗 박 이라는 남자를 VIP로 등록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집안의 아들이고, 태국에 대규모 투자를 준비 중인 젊은 기업인이라고, 태국 투자청(BOI : The Board of Investement of Thailand)이 특별히 모셔줄 것을 요구한 귀한 손님이라며, 극진히 모셔 줄 것을 요청했다.

자주 있는 요청이었고, MSS가 아는 그녀의 역할은 이러한 요청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MSS는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를 초청했다. 그리고 그가 온 것이다.

MSS도 의심은 할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초청되면 의심하고 감시하겠지.

그러나 BOI의 공식서류가 그 의심을 어느정도는 막아 줄 것이다.

태국 국가정보부와 그녀를 제외하고는 의심은 할 지언정, 그를 요원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정식 서류를 발급해 준 BOI를 포함해서.

그가 체크인을 하는 날 그녀는 비번이었다.

그녀는 한규호가 방문하는 날로 굳이 근무 쉬프트를 변경하지 않았다.

자연스럽지 않다. 쓸데없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었다.

그리고 출근한 다음날, 그가 10만달러를 잃고, 난동을 부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만달러.

그가 요원인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그녀도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작전비로 첫날에 10만달러를 쓰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마틴게일 베팅법을 활용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잃고 따고를 반복하다가 자연스럽게 돈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가 이러한 작전에 아주 능숙하거나, 아니면 꾸민 것이 아닌 진짜 도박쟁이일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후자는 아니다. 위장신분을 만들 때 그녀가 참여했으니.

그 이후로 며칠간 그녀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가볍고 천박했다.

카드를 쫄 때, 칩을 던질 때, 음료수 등을 주문할 때 등 모든 순간에 천박했다. 평생을 안하무인의 졸부처럼 살아온 듯 능숙하게 눈살을 찌푸려지는 행동을 잘 했다.

또한 그녀의 귀에, 그가 방에서 얼마나 난동을 피웠는지, 완에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탈의실 수다라는 방식으로 들어왔다.

완.

몸매가 아름다운 그녀, 여러가지 매력을 가진 얼굴의 그녀. 그리고 MSS 요원.

접객팀, 고객들을 24시간 수행하며 수발을 드는 직원들 전부가 MSS 요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완이 붙었다는 것은 데이빗 박이라는 남자를 MSS에서 일단은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다.

완은 알아챌 수 있을까?

야닌은 고개를 저었다.

알아채기에는 너무도 완벽하다.

도박 좋아하는 젊은 한량의 모습을 보였다. 그녀조차도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을 의심할만큼.

그가 어떠한 의도로 이곳을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식양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것치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단순한 휴가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높은 양반들이나, 그 자제들이 은밀한 경로로 휴가를 즐기는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니.

‘특이 징후 없음,’

잠시 고민한 그녀는 저장 단축기를 눌렀다.

야닌은 팔을 쭉 펴 기지개를 핀 후 페트병을 들고 남아있던 콜라를 절반 마셨다.

그리고는 헛구역질을 하며, 남아있는 콜라는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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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완은 눈을 떴다. 그리고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옆에 알몸으로 누워있는 남자가 깰 까봐 우려하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음에도, 그녀의 가슴은 그 부피에 비례해 조금 더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려다가 한규호가 시계를 부숴버린 사실을 떠올리고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마지막 정사가 끝나고 대략 2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그에게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 손목시계의 초침이 4번을 회전하는 동안 그는 계속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 시간사이에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완은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코 밑에 가져댔다.

느껴져야 할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약한 공기의 흐름도, 아주 살짝 높은 온도도.

그녀는 그 손가락을 그대로 움직여 그의 턱에 살짝 댔다.

체온보다 낮은 온도, 그리고 약간 단단한 느낌이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들어왔다.

사후 경직.

관절에서 시작된 사후 경직이 그의 턱에서 느껴졌다.

그녀는 그대로 손가락을 천천히 내렸다.

목을 따라 턱 까지.

사망 후 4시간은 지나야 시작되는 어깨관절 사후 경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격렬하게 그녀를 탐했다.

그 과정은 매우 격렬했으며, 그 격렬한 육체활동이 그의 사후 경직을 더욱 가속화했을 것이다.

완은 손가락을 떼고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완은 그를 감시하기 위해 그의 옆에 배치됐다.

처음 오는 손님에 대한 감시와 파악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 손님이 돈을 얼마나 따고 잃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중국 정부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으로 그러한 작업이 진행됐다.

1년 전 식양이 신기루처럼 사라저 버리고, 이 같은 절차는 더욱 강화됐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이나 남한 같은 주변국에서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요원이 침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였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다. 카메라와 도청기를 동원한 24시간 동안에 철저한 감시, 거기에 접객팀이라는 감시역을 붙이는 방법이 동원됐다.

완의 업무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태국 정부 투자청의 요구에 따라 새롭게 VIP로 초청된 데이빗 박에게 그 같은 목적으로 완이 배당된 것이다.

완은 며칠 동안 그를 지켜봤다. 그녀는 속단하지 않고, 그의 모든 언행을 감시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이 남자는 요원이 아니라는 결론을.

완은 다시 남자를 살펴보았다.

남자의 몸은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은 계속 그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며칠동안 긴장과 흥분 상태에 반복적으로 노출됐다.

도박이라는 것이 그렇다. 반복된 긴장과 흥분.

그는 감정기복이 심했고, 많은 돈을 잃었으며, 그로 인해 분노해 있었다.

거기에 과도한 음주와 격렬한 정사.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를 위한 완벽한 조건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의 눈동자를 확인 했다.

동공이 풀려 있었다.

확실하다. 동공이 풀렸다.

그는 죽었다.

죽음에 대해 완벽한 확신을 얻은 완은 몸을 돌려 위스키 병을 잡았다.

그리고는 남은 술을 모두 마셔버렸다.

이제 잘 시간이다.

그녀는 술에 취해 그와 정사를 나눴고, 몇 시간 있다 깨어나서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죽어있는 그를 발견할 것이다.

그녀는 알몸인 그 상태 그대로,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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