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7화 (18/386)

MISSION 02 : TBD (10)

5월 9일

매싸이, 태국

주 선생에게 돼지 아줌마로 불리는 태국 국가정보부 소속 2급 요원 야닌 윗미따난(ญาณิน วิสมิตะนันทน์)은 샤워를 마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나체를 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 자신을 잠시 지켜 본 야닌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몸에 목욕수건을 두른 후 부엌으로 가서 컵라면을 하나 꺼내 그 위에 치즈를 얹었다.

그리고 전기 주전자에서 물을 끓여 그 위에 부었다.

그녀는 이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 40kg을 찌웠다.

그런데 조금만 방심하면 살이 빠져버리는 체질 때문에 힘들게 불린 체중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틈 날 때마다 먹었다.

지방과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을 짜고, 틈 날 때마다 먹었다.

먹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그녀에게는 곤혹스러운 작업이었다.

치즈가 풀린 컵라면을 억지로 먹은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보고할 내용을 정리하고 순서를 정했다.

우선, 현재 그녀와 태국 국가정보부의 최대 관심 사항은 카지노의 VIP인 전 장관의 아내였다.

모든 것을 가진 고위층 부인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말썽을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일으키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 부분에서 그녀는 아주 안 좋은 장소를 택했다.

중국 정보기관이 지부로 사용하고 있는 카지노에서 말썽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일으키는 문제들은 이미 모두 파악되고 있었다.

그녀의 씀씀이는 계속 커졌다.

만달러를 들고와 며칠을 보내던 그녀가, 이제는 하루에 20만달러를 잃어도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돈항아리가 크다 할지라도 그렇게 펑펑 써 제끼면 결국 독 바닥도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결국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친정이 그 빈 독을 메워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녀가 메워 주는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썼고, 그 돈의 대부분이 카지노 측에서, 정확히 중국 측에서 빌려 준 돈이라는 것이다.

돈은 그렇다 치자. 뭐 돈이 떨어지면 집안에서 갚아 줄테고, 안되면 친정에서라도 해 주겠지.

아니면 의절 당해서 목 매고 죽어버리던가.

흔한 이야기다.

문제는 동영상. 그 동영상이 문제다.

그녀의 성벽은 이미 정보부에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성벽을 지닌 그녀의 방문 횟수가 늘어났다.

방문 할 때마다 남자 둘을 시종처럼 대동하고 다녔다.

그리고 매일 밤 마다 그녀의 동영상이 녹화됐다.

무기이다.

이 동영상은 그녀에게 지운 채무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이다.

그녀는 그 동영상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지.

추악한 욕망을 덮으려고 추악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겠지.

다행히도 그녀의 남편은, 전직 장관은 정권의 중심에서 거리가 멀어졌다.

한때 차세대 총리 후보자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던 그녀의 남편은 당내 계파 투쟁에서 탈락하고, 현 정권에 의해서 배척당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중국 입장에서도 그녀를 활용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혹시라도 그가 정권에 중심에 다가간다면? 만에 하나 중심에 선다면?

중국이 가진 동영상은 좋은 패가 될 것이다.

아주 좋은 패가.

그래서 야닌 윗미따난과 그의 소속기관은 장관의 아내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야닌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얼마를 썼고, 어떠한 반응을 보였고, 누구와 말을 했으며, 어떠한 말을 했는지. 그녀가 보고 들은 내용을 모두 작성했다.

이로써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주제가 끝이났다.

야닌은 냉장고로 가서 1.5리터 페트병을 들고 왔다.

냉장고에 넣어 놓을 때, 뚜껑을 살짝 열고 넣어둔 콜라였다

야닌은 뚜껑을 마저 열고 탄산은 다 빠져나가, 톡 쏘는 콜라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설탕물을 마셨다

그녀는 탄산음료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셔야 했다.

그래서 탄산이라도 빼놓자는 생각으로 뚜껑을 살짝 열어 놓은 것이다.

욕지기를 참아가며 억지로 겨우 3분의 1 정도를 마신 그녀는 두 번째로 중요한 주제에 대해 생각했다.

없어진 중국 측 요원에 대해서.

야닌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중국 요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잘 알고 있다는 말은 사실과는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중국 정보기관의 네트워크를 깔아 놓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어쩌면 중국의 대외 정보라인의 틀을 만든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77년 복직한 등소평은 문화대혁명의 그림자를 청산 한 후 안으로 눈을 돌렸을 때, 만리장성이라는 틀에 갇힌 중국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고립되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 중국은 외국 자본 앞에서 덩치만 크고 살만 많은 고깃덩어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등소평은 농업생산성을 확대하고, 경제특구를 지정하는 등 경제 개발에 힘 썼다.

1978년 등소평은 더 이상 공산주의 장벽 안에서의 교역으로는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비밀스럽게 미국과의 수교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등소평은 또 한번의 충격을 받게 된다.

냉전 기간동안 소련이라는 강적과 치밀한 정보전을 통해서 당시 중국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정보수집 능력을 보유한 미국 정보기관에 농락당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등소평은 MSS, 국가안전부를 살펴본 후 더 큰 충격을 받았다. 1937년 모택동이 장제스 국민당 정부의 비밀 특무기관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안전부의 기능이 변질 돼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내부 결속만을 위해 움직이는 중국의 비밀 경찰들, 국가가 아닌 당권을 잡은 특정 집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정보기관들의 수준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다시 한번 알게 된 것이다.

등소평은 과거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와 달리 정보기관은 쉽지 않았다.

어촌이라는 이름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낙후한 심천을 해외의 다양한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현지화하면서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시킬 수 있었지만, 정보기관은 다양한 모델을 접할 수도, 벤치마킹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것이 바로 독자적 중화 정보망의 구축이었고, 그 장소로 동남아시아가 선정됐다.

그리고 전설이 시작되었다.

암호명 식양(息壤).

이름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성별도 모른다.

그저 식양이라고 불릴 뿐이었다.

식양, 또는 식토(息土)라고 불리우는 중국 전설의 생물은 보통 때는 잠들어 있지만 한번 깨어나면 쉬지 않고 증식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등소평은 전 세계에 중국의 살아 숨쉬는 흙을 깔고 싶었다.

그래서 식양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를 동남아시아로 보낸 것이다.

단 한 사람이 식양이라는 이름을 받고 중국의 흙이 되어 무한 증식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온 것이다.

식양이 처음 인도차이나 반도에 도착 했을 때, 그를 둘러싼 환경은 참혹 그 자체였으리라.

고립된 공산주의의 한계에 직면한 베트남,

크메르루즈의 바보같은 선택으로 국민도, 영토도 잃어 버리고 베트남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캄보디아.

쿠데타로 버마 연방을 폐지하고 수립됐지만 계획경제의 실패와 서방세계의 제재, 반정부 시위 등으로 고통받고 있던 버마,

73년 민주화 이후 민정이 시작됐지만 군부의 심심치 않는 쿠데타와 유혈사태로 아직 정국이 불안한 태국.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그는 홀로 세력을 넓혀가야 했다.

어떠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식양의 거짓말같이 출중한 행보에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점점 중국의 입김은 넓어졌다.

일각에서는 놀랍도록 커진 중국경제 성장의 파급효과라고 하지만, 정보기관이나 요원들은 잘 알고 있다.

식양, 한번 깨어나면 무섭도록 증식하는 그 괴물의 무서움을.

야닌도 식양과 접촉한 바 있었다.

야닌은 1999년도 당시 태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인 남부 이슬람 분리세력에 대한 작전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 지역의 범이슬람지원네트워크와의 연계를 끊어버리는 작전을 자카르타에서 수행하면서 식양과 접촉했다.

중국 정부도 인도네시아 내 화교세력의 확대를 위해 이슬람 세력과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특히 1998년 일어난 대(對)화교 폭동 사건.

정식명칭, May 1998 riots of Indonesia. 또는 흑색 오월 폭동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 내 중국 정부의 입김은 매우 약화 돼 있었다.

이익이 일치한 두 나라는, 정확히 두 나라의 정보기관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야닌이 그때 식양과 같이 일 할 기회를 얻었다.

정확히 그녀는 식양을 만난 적은 없다.

다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녀가 원하면 식양이 알아냈고, 식양이 원하면 그녀가 알 수 있었다.

흙. 마치 흙 같았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떤것도 할 수 있었다.

그저 과장된 소문인 줄 알았는데, 식양의 전설은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작년, 갑자기 태국 북부가 시끄러워졌다.

중국과의 통신량이 증가했고, 요원들의 이동도 많아졌다.

프라이멀 카지노의 지분을 일정량 보유한 태국국가정보부도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알게 된 소식.

식양이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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