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5화 (16/386)

MISSION 02 : TBD (8)

5월 9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주 선생은 생각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한규호와 같이 바라카판에서 딜러를 욕하고 있어야 할 그도 리조트 내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의심스러웠다.

데이빗 박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젊은 놈이. 처음 그 자식을 보았을 때부터 의심스러웠다.

근거?

그런 것은 없다. 의심스러우면 의심하는 것이다.

지금 침대에 누워 있는 그 옆에서 잠들어 있는 저 여자조차도 그는 의심하고 있다.

그녀는 알몸으로 누워 깊게 잠들어 있었다.

주 선생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완과 같이 주 선생에게 배정된 여자 직원.

주 선생은 아주 적절하게 그녀를 이용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한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는 그녀에게 당근과 채찍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가 갑이라는 지위의 우월성을 기본으로 때로는 매섭게, 때로는 다정하게 그녀를 조련했다.

그녀는 이제 그에게 예속됐다. 복합적으로 심리적인 족쇄를 걸었다.

그녀는 자신도 알지 못한 채, 그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는 정보원이 되었다.

주 선생은 정리하기로 했다.

데이빗이라는 그 한국놈은 분명히 호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첫날 10만달러를 날리고, 다음날부터 쫄아서 베팅을 했다.

적은 돈에 욕심을 내고, 많은 돈에 대범한 멍청함을 보였다..

따면 기뻐하고, 잃으면 분노했다.

전형적인 호구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의심이 멈추지 않는다.

너무 완벽한 도박꾼의 모습이라, 그래서 더욱 의심이 멈추지 않았다.

근거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

5월 9일

비밀 상황실,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소동은 어느 정도 정리돼 가고 있었다.

귓속에서 웅웅거리던 소리도 많이 잦아 들었다. 그러나 아직 두통은 징춘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때 상황실 문이 열리고 일본산 고급 위스키 히비키 상자를 손에 든 여자가 들어왔다.

“뭐야 씨발. 저 개자식.”

징춘이 그 여자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 완이 사과했다.

“빵즈. 저 개자식을 죽여버려야 겠어.”

징춘이 씹어삼키듯 말했다.

그러나 완은 답이 없었다.

둘다, 말하는 징춘도, 듣는 완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인걸 알았으니까.

“보고해.”

징춘이 말했다.

“데이빗 박은 시계 쪽으로 태블릿을 던졌습니다. 그게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 밑에 있던 TV를 향해 던진 것이 빗나간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시계를 맞고 튕겨져 나온 태블릿을 그는 발로 여러번 밟아 완전하게 파괴했습니다. 태블릿 자체 기능은 물론 연동기능, 원격기능도 작동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개자식.”

징춘은 또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하필 맞아도 거길 맞았을까.

이런 개같은 우연이라니.

“태블릿을 박살낸 데이빗 박은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귀국행 비행기를 수배할 것을 명했습니다. 비즈니스 클래스도 괜찮다며 최대한 빠른 항공편을 예약하라고 말했습니다.”

평소였다면 방에 설치된 카메라와 도청장치로, 또는 완의 태블릿으로 징춘이 다 알고 있었어야 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 박살난 관계로 완이 직접 구두 설명을 하고 있었다.

“개자식. 저 피해를 입혀놓고 그냥 가겠다고?”

“.... 그의 계좌엔 약 15만달러, 보증금 포함 25만 달러가 남아있습니다. 찾아갈지, 아니면 예치된 그대로 둘지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 개자식.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징춘이 물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나무박스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산토리에서 만든 위스키. 히비키 한정판이 들려 있는 것을 보니 완도 무언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와 잠을 잘 겁니다.”

완이 말했다.

“가서 이 술을 먹이고 그와 잠을 자겠습니다. 최대한 늦은 오후 시간까지 침대에서 시간을 끌고, 마음을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해? 요원 아니야?”

"확실합니다. 일반인입니다.“

“..... 개자식. 돈이라도 다 쓰고 가게 해야지.”

데이빗 박은 10만달러를 썼고, 20만 달러를 송금받아 15만 달러가 남았다.

그 돈을 다 쓰게 하고, 카지노에서 돈을 빌려주면서 목줄을 채워버리는 것이다.

“가서, 제대로 해주라고. 아주 뿌리 끝까지 다 뽑아버려!”

징춘이 완에게 말했다.

완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몸을 섞으러 문을 나섰다.

------

5월 9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난동을 부린 한규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너무 오바했나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완은 직접 빗자루를 들고 와 박살난 시계와 태블릿의 잔해를 정리하고 방을 나섰다.

에이. 집에나 가야지. 뭐 어쩔 수 없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돈은 두고 가야 하나? 여기에 또 오게 될까?

한규호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분명 이 카지노는 전술적으로 가치가 있지만, 전술적 가치가 전략적인 이득이 되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뭐 내가 신경 쓸 바 아니지. 그렇게 생각했다.

돈을 회수할지, 아니면 그대로 카지노에 묶어둘지, 전부 김형원 사장이 결정할 일이다.

아무튼 일 같지도 않은 일, 휴가 같지도 않은 휴가가 끝나가고 있었다.

1등석 아니라도 좋다. 비즈니스 클래스라도 좋으니 오늘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천과 방콕을 오가는 항공편은 어마어마하게 많으니, 뭐 걱정은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완에게 제대로 대하지 못한 것. 그 하나 뿐.

참 매력적인 여자였는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 때 완이 얼굴 가득 예의 그 미소를 띤 채 한손에는 직육면체의 나무 상자를, 다른 한 손에는 얼음 주머니를 들고 들어 왔다.

“히비키?”

완이 들고온 나무 상자에는 산토리에서 만든 프리미엄 위스키 히비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늘 기분이 별로이신 것 같아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완은 침대 옆에 살짝 걸쳐 앉으며 말했다.

“히비키는 별로인데. 너무 날카로워서..”

“그 특징 덕분에 일본 위스키가 지금 위상을 얻었어요..”

완은 술병을 따면서 물었다.

“어떻게 드릴까요?”

“더블로..”

“알겠습니다.”

완은 술병을 들어 조심스럽게 잔에 따랐다.

더블. 2온즈의 호박색 액체가 잔을 따라 아름답게 회전했다.

잔을 받아 든 한규호는 잔을 살짝 돌려 회전을 만들고 향을 맡았다.

강렬한, 그러면서도 깊은 오크향이 코 점막을 찔러왔다.

다시 잔을 살짝 돌려 회전 시킨 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알콜도수 43도의 호박색 액체가 그의 목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 넘어갔다.

“조금... 다르군.”

한규호는 병을 보았다.

히비키 21년 의장보틀 후지풍운도.

2015년에 나온 한정판 상품.

“신기하군. 몇 천개만 팔았다는데, 그중에 한 개가 이런 시골 카지노에 있다니.”

“그러니 특별히 준비 해드렸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 한정판이라고 해도 한 3천달러 정도? 내가 15만 달러를 카지노에 바쳤는데, 고작 이걸로 특별하다고 말 할 수 있나?”

“그래도 신경 써서 어렵게 준비했는데, 그리 말씀하시면 조금 속상해요.”

완이 살짝 삐진 표정을 짓는다.

남자를 잘 다루는 여자다.

“한잔. 할텐가?”

완의 표정이 또 변했다.

반가운 미소. 고마운 미소. 사람을 홀리는 미소가 그 얼굴에 걸렸다.

“그러면 감사히.”

한규호는 자신의 잔을 다 비우고, 그 잔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병을 들어 잔의 3분의 1 가량을 채웠다.

언더락 잔을 받아든 완은 잔을 천천히 코로 가져가 깊게 향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작은 입술을 열어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잘 마시는군.”

한규호가 그런 완을 보며 말했다.

“의장보틀은 처음 먹어봐요. 이런 맛이었군요.”

살짝 상기된 눈으로 완이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 모금.

“마시는 줄 알았으면 같이 마실걸 그랬군.”

그 동안 한규호는 혼자서 술을 마셨다.

그녀는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고.

“조금 섭섭했어요.”

마지막 남은 한모금까지 비운 완은 정말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한규호를 보았다.

“.... 미안하게 됐군.”

“괜찮습니다. 손님은 미안하시다는 말씀 안하셔도 돼요.”

“아까 일도 그렇고.”

태블릿과 벽시계.

특히 태블릿은 그녀의 필수 소지품 같았는데.

“신경쓰지 마세요. 데이빗 님의 기분이 풀리신다면 맥북이라도 가져다 놓겠습니다.”

그 말에 한규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거 아세요?”

완이 물었다.

“뭘?”

한규호가 같이 물었다.

“처음 웃어주시는 거에요. 뵙고 나서 처음으로.”

그녀가 말했다.

“그랬나.”

“네.”

“미안하게 됐군.”

“이건 미안해 하셔야 해요.”

다시 표정이 변했다.

살짝 삐진 듯. 섭섭한 듯. 그런 표정.

“그런가. 이건 사과의 표시.”

한규호가 병을 들었다.

그리고 완이 들고 있는 잔을 채웠다.

“그럼 저는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완은 다시 그 작은 입술을 열어 위스키를 한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한규호의 입술에 포갰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