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4화 (15/386)

MISSION 02 : TBD (7)

5월 9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한규호는 자신의 방, 스위트 룸 넓은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그는 마음을 굳혔다.

이제 그만 둬야겠다. 더 이상 상황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김형원 사장이 그랬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데려와라 실패하면 휴가라고 생각해라.

애초에 성공하기가 힘든 작전이라는 것을 김형원 사장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이야기 했겠지.

한규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성공확률이 희박한 작전이다. 아니, 작전이고 뭐고 시작도 못했다.

천국 같은 이 카지노는 적진 한가운데이고, 여기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헐리우드의 싸구려 첩보영화처럼 낮에는 카지노에서 한량짓을 하다 밤에 몰래 서버실에 들어간다든가, 도청기를 설치한다고?

말도 안 된다.

지금 그가 누워있는 이 방에도 감시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 도청기 겸 감시 카메라가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한규호를 비추고 있다.

완도 그의 행동을 제약하는 걸림돌이었다.

완이라는 여자는 한시도 자신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상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헌신적으로 그를 모신다.

그녀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기란 쉽지 않다고 한규호는 판단했다.

그러면 이제 돌아가야지.

여기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생각해보면 할 일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사라졌다는 중국 측 요원은 이미 1년 전에 자취를 감췄다.

살아있다면 멀리 떠났을 터이고, 잡혔다면 죽었겠지.

중국이나 일본 쪽에서 정보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것이 이번 작전의 근거였는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더 이상의 무언가를 알아내기는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한규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는 군인에 더 가깝다.

그런 그가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행동방침을 정한다?

무리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에이 집에나 가야겠다.”

한규호는 시계를 봤다.

밤 11시.

평소 같으면 카드를 쪼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았다.

집에 가야지.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한규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완이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간식이 올려진 쟁반이 들려 있었다.

“간단히 드실 것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녀는 침대 쟁반을 침대 옆에 내려 놓고 조신하게 앉았다.

주 선생과 더불어 한규호가 컨셉을 잘못 잡은 또 다른 한 사람.

지금 저 곧고 이쁜 다리를 모으고 앉아 있는 저 여자. 완이었다.

싸가지 없는 졸부 흉내 낸다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 살갑게 말 한번 건네지 않았다.

단답형으로, 짜증을 섞어서 항상 그렇게 말하고 상대했다.

좀 여유있게, 능글맞게 가끔씩 농담도 좀 섞고, 섹드립도 해가면서 그랬으면 지금 이 분위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인데,

뭐 얼마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계속 틱틱 거렸으니. 이건 뭐.

“역시 할 수 있을 때 했어야 하는데.”

한규호가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니야.”

그는 또 틱틱 거렸다.

첫날 물어봤을 때, 잘 수 있냐고, 당신이랑 잘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그때 그냥 하는 건데, 괜히 좀 어색하다고. 괜히 카메라 신경 쓰인다고 주저한 한규호의 잘못이었다.

침대에 앉아 있던 완은 일어서서 한규호가 던져 놓은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몸매 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는 저 옷. 저 옷 너머로도 알 수 있는 그녀의 가슴. 땅에 떨어진 셔츠를 줍기 위해 쪼그려 앉을 때 진가가 나타나는 저 엉덩이.

한규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멍청함에 치를 떨었다.

컨셉을 잘못 잡았음에 한탄했다.

물론 억지로 하려면 못할 것은 아니었다.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으니.

지금이라도 한규호가 손을 잡고 침대로 이끌면 그녀는 군말없이 따라 오겠지.

아니면 지금 당장 벗어. 이렇게 말하면 완은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몸을 감싸고 있는 죄 많은 천들을 벗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옷을 차곡차곡 정리한 완은 다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특유의 미소를, 안그래도 아름다움을 가진 얼굴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그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한규호가 손만 뻗으면 그녀에게 닿는 거리에 앉아 있었다.

“완.”

한규호가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내 계좌에 얼마가 남았지?”

“확인 해봐야겠지만 아마 15만 달러 정도입니다.”

한규호는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에서.

“그래. 그렇군.”

“그래프를 보여 드릴까요?”

그래프.

완이 들고 다니는 태블릿에 기록되는 한규호의 게임 승률 기록표.

언제 어느 테이블에서 어느 딜러에게 얼마를 베팅했으며 따고 잃었는가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그래프.

“그래..”

완이 밖으로 나가 태블릿을 들고 왔다.

그리고는 어플을 실행해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숫자와 선의 나열이 한규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한규호에게는 의미가 없는 수와 선이었다.

한규호는 유심히 그 숫자들을 보고 있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관심 있는 척을 할 뿐.

아무런 말 없이 그렇게 한참을 보다 한규호는 태블릿을 있는 힘껏 벽시계 쪽으로 던졌다.

충분한 힘으로.

시계와 태블릿이 모두 박살 날 수 있를 정도의 힘으로.

시계로 날아간 태블릿 모서리는 벽 시계의 유리를 뚫고 로고 부분에 정확히 맞았다.

그리고 벽이 움푹 파일 정도의 충격을 주고, 그 다음에 천장에 충격한 다음 몇 번 회전하며 땅 바닥에 떨어졌다.

한규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태블릿을 발로 밟았다.

여러 번, 확실하게, 내부의 기판이 다 박살날 정도로 힘주어 밟았다.

완은 그런 그의 모습을 앉은 자세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놀람도, 동요도 없이.

“돌아갈 거야. 귀국 비행기 예약해. 최대한 빠르게.”

한규호가 완을 돌아보며 날카롭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완이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

5월 9일

비밀 상황실,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상황실 전면에 있는 400인치 메인 스크린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 한규호와 그 옆에 서 있는 완의 모습이 보였다.

“내 계좌에 얼마가 남았지?”

스피커에서 한규호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확인 해봐야겠지만 아마 15만 달러 정도입니다.”

완의 목소리도 흘러 나왔다.

“그래. 그렇군.”

“그래프를 보여 드릴까요?”

그런 두 남녀의 모습을 부지배인 왕은, 아니 MSS 요원 징춘(景春)은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과 스피커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로 판단할 때 데이빗 박은 지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아보였다.

완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태블릿을 건내는 모습이 징춘의 눈에 들어왔다. .

데이빗 박은 태블릿을 받아 들고 한참을 살펴봤다.

“속 쓰리냐 이 자식아.”

그 모습을 보면서 징춘은 비웃었다.

그러나 그 비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참을 뚫어져라 태블릿을 보던 데이빗 박이 태블릿을 던진 것이다.

카메라를 향해.

그 순간 메인 스크린에 노이즈가 끼면서 화면이 뚝 꺼졌고, 스피커에서 참을 수 없는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이 터져나왔다.

헤드폰을 끼고 있던 상황요원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헤드폰을 내던졌다.

징춘도 귀를 찢는 듯한 소음에 잠시 휘청였다.

그리고 그가 눈을 들었을 때, 메인 스크린에는 아무 영상도 떠 있지 않았다.

“씨발 뭐야!”

징춘이 소리쳤다.

그러나 헤드폰을 쓰고 있던 상황요원들은 그 자리에서 머리와 귀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 할 뿐 그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가오리빵즈(한국인을 비하하는 비칭) 개자식이....”

징춘은 자신도 모르게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태블릿을 던졌는데, 공교롭게도 태블릿이 방을 감시하는 카메라에 맞은 것이다.

그 충격으로 렌즈고, 센서고, 도청기까지 한 번에 박살이 났다.

체크인 한 첫날 7000 달러나 하는 OLED TV 액정을 박살낼 때 알아봤어야 했다.

저 성격 더러운 졸부 자식이 결국 큰 사고를 친 것이다.

혹시 잠입한 요원일까 싶어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 패착이었다.

“정신들 차려! 어서!”

상황실 선임 요원이 아픈 귀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요원들을 하나씩 일으켜 새우고 있었다.

징춘이 다시 이를 뿌드득 갈았다.

역시 조선놈들은 재수가 없다. 남이고, 북이고.

“저 개자식. 가만 안 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