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TBD (6)
5월 3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완은 주인 없는 방에 양 무릎을 모으고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한규호가 박살 낸 집기들은 전부 교체 되었다. 비싼 85인치 OLED TV도. 7000달러가 넘어가는 물건이었다.
7000달러라고 해봤자 이곳에서는 칩 6개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완의 손님은 하룻밤에 10만 달러를 잃었다. 거기에 비하면 7000달러야 푼돈이다.
당연히 청구는 안한다.
또 와서 수십만 달러를 또 잃어줄 귀중한 손님을 고작 7천 달러에 놓치면 그것은 바보짓이다.
다시 안 와도 상관없다. 10만달러의 디파짓(회원 보증금)이 있으니까.
중국 국가안전부(國家安全部 / Ministry State Security, MSS) 요원인 완은 이곳에서 카지노 직원으로 위장해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VIP들을 공항까지 마중하고, 머무는 내내 따라 다니며 일을 봐주고, 필요하면 잠을 자주는 그런 역할이었다.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연민에 빠질 생각도 없었다. 그냥 일이다. 그저 남들과는 다른 일.
자신이 처음 요원으로 뽑혔을 때, 자신 앞에 있던 남자가 자신에게 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세시켰을 때부터 모든 것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뭐. 그녀도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행복했을까? 일반적인 인생을, 남들처럼 공부를 하고 학교를 다니고, 평범한 사람을 마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다면. 그랬다면 과연 그녀는 행복했을까?
완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슬슬 손님을 모시러 갈 시간이 되었다.
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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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비밀 상황실,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어두운 방 한쪽 전면에 수십대의 화면이 떠 있었다.
한 가운데 초대형 스크린을 중심으로 양쪽에 수십여개씩의 작은 화면이 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떠 있는 메인 화면에서 3인의 모습이, 여자 한명과 남자 두명이 나체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 투영 되고 있었다.
태국 전 장관의 아내이자, 태국 3대 재벌 중 하나라는 모 그룹 회장의 둘째 딸. 그리고 프라이멀 리조트의 VIP 손님은 침대 위에서 두 명의 남자와 뒤엉켜 있었다.
상황실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뜨겁고 추악한 욕망이 400인치 스크린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미친년.”
중국국가안전부(MSS) 요원 징춘(景春)은 그 모습을 보면서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자신도 자신만의 성벽이 있다. 취향이 있다. 남들에게 말 못할 은밀한 취향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저 여자는 독특한 성벽을 가직 있었다.
뭐. 상관없겠지. 아니. 오히려 좋다. 미친년이면 미친년일수록 좋다.
녹화된 영상은 상품으로서, 협상도구로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독특한 성벽은 영상의 가치를 높인다.
그 가치는 중국정부에 도움을 줄 것이다.
“돌려.”
징춘이 말했다.
메인스크린에 걸린 화면이 바뀌었다.
그녀가 사라지고 다른 방의 모습이 비쳐졌다.
대만 부동산 재벌이라는 노인네와 그를 모시는 직원이 화면에 떴다..
“다음.”
또 다른 방. 아직 시작 전인 지, 아니면 끝났는지, 이불을 덮고 있는 한 쌍의 남녀.
“다음.”
빈방.
“다음.”
방 주인은 뭐가 화가 났는지 청소직원을 불러놓고 뺨을 때리고 있다.
“소리 켜봐.”
통칭 싱글리쉬. 싱가포르 특유의 영어가 스피커로 흘러 나왔다.
뭐가 기분이 나쁜지 욕설 섞인 고함이 계속 흘러 나온다.
“미친 새끼. 직원 보내. 그리고 다음.”
화면이 바뀐다.
깔끔하게 정돈 된 방.
주름 하나 없는 침대 한쪽에 유니폼을 입은 여자 하나가 조신하게 앉아 있다.
징춘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긴 완을 바라봤다.
완.
프라이멀 카지노 접대 직원. 그리고 MSS 요원.
징춘은 그녀의 프로필을 떠 올렸다.
80년 전 장제스의 국민당 부대는 모택동의 인민해방군에 의해 대만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운남성에 남아있던 국민당군 93사단 잔당은 거기에 끼지 못했다.
대만까지 가기에 너무도 멀고 위험한 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남으로 향했다. 국경을 넘어, 태양이 뜨겁고, 습기가 많고, 겨울이 없는 지역에 정착했다.
태국 북부 메쌀롱.
국민당 잔당이 정책한 마을.
그곳에서 한 국민당 잔당은 소수민족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중국인도, 태국인도, 그리고 소수민족도 아닌 아이는 성장해서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아주 개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타이족의 특성을 기본으로 아리안계와 화족의 특성이 얼굴에 드러났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그대로 보이는, 아주 매력적인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여자아이는 가난했고, 교욱 받지 못했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적당한 몸값을 받고, 적당한 늙은이에게 팔리는 삶이 예정돼 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녀는 정해진 삶을 거부하기로 결정하고 집을 나갔다. 무작정 도시로 나가 고된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MSS가 그녀를 발견했다. 발견한 그녀를 MSS 샀고, 키웠다.
완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지만, 그 시선의 끝은 벽이 아닌 오직 그녀만이 아는 어딘가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꼿꼿하게 세운 허리. 조신하게 모은 다리. 완벽한 여자다.
MSS에 의해 거두어진 그녀는 잘 만들어졌다. 사상교육, 그리고 사상교육과 함께 병행 된 혹독한 기초훈련과정을 그녀는 견뎌 냈다고 기록 돼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심화 과정에서, 보통 50%가 탈락하고, 그중 30%는 죽거나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얻게 된다는 심화과정에서도 우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족하지 않은 성과를 보였다.
상해 KTV(룸사롱)에서 고급 창부로, 신와사(중국 국영통신사 겸 MSS 정보수집 기구) 쿠알라룸푸르 특파원으로, 베이징 외교가 수타박스의 대학생 아르바이트로, 하노이에서 중국과 밀무역을 하는 밀무역상의 딸로, 라오스 루앙푸라방의 싸구려 게스트하우스 스테프로, 자카르타 물류회사의 콘솔 직원으로 그녀는 경력을 쌓았고, 작년 부터 이곳 프라이멀 카지노의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 동안의 경력이 있는 만큼,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본부도 그녀를 주목할 것이다. 간부 후보가 될 경력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징춘은 그녀가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징춘에게 그녀는 현재의 경쟁자도, 미래의 경쟁자도 아니다.
아직은. 아직까지는.
우선은 지켜보자. 지커보면 알겠지.
“다음”
징춘이 말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알몸으로 뒤엉켜 있는 두 사람의 남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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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프라이멀 카지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며칠이 지났다. 한규호의 단조로운 일상들이 계속된 며칠이.
아침이든, 저녁이든 잠에서 깨어나면 완을 불렀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식당을 이용하거나 룸서비스로 끼니를 때우고, 수영장에서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하거나 물 위에 해파리처럼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는 게임장으로.
한번 가면 평균 4시간 정도를 버텼다.
10만 달러를 날린 후에, 다시 20만달러를 카지노 계좌로 송금했다.
김형원 사장은 골치가 아프겠지만, 뭐 어쩌겠어? 다 작전에 필요하다는 현장판단이니 깨지는 것은 알아서 하겠지.
이제 20만달러를 가지고 한규호는 천천히 게임을 진행했다.
옆 자리 주선생에게 살갑게 말도 걸면서 노하우도 배웠고, 장관의 아내라는 그 여자는 알고보니 전 장관의 아내이자 태국에서 유명한 대기업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딜러하고도 많이 안면을 익혔다.
그 중 약간 살집이 있는 미얀마계 태국인 아줌마 딜러와 합이 좋았다.
“하오(好)! 그렇지!”
주 선생이 소리 질렀다.
5연속 플레이어윈이 뜬 것이다.
“역시 박 사장과 저 돼지 아줌마 조합이 최고야!”
면전에서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듣는데도 딜러는 뭐가 좋은지 싱글싱글이다.
“어머. 축하드려요. 저 교대 안하고 계속 여기 있어야겠어요.”
“하하하. 우리 이쁜 돼지 아줌마 말하는 거 봐봐. 어쩌면 이렇게 이쁘게 말할까?”
주 선생은 화통하게 웃으며 칩 하나를 던저 주었다. 노란색 바탕에 주홍색 띠가 들어간 1만달러 짜리 팁이었다.
방금 주 선생은 5연속 플레이어윈이 나오면서.
이쪽 업계 용어로 줄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12만 8천달러를 땄다.
마틴게일 베팅.
잃으면 두 배씩 거는 베팅법을 역으로 이용해 따면 2배로 거는 베팅을 한 것이다.
4천달러 판돈이 5번 연속 이겨나가면서 12만 8천달러가 된 것이다.
한화로 약 1억 6천만원.
순식간에 1억 6000만원이라는 돈을 딴 주 선생은 딜러에게 1200만원을 팁으로 준 것이다.
“이야. 우리 큰형님(大兄) 진짜 통 크시네요.”
한규호는 간신배처럼 목소리를 한톤 높여 아부를 떨었다.
“이게 다 우리 돼지아줌마와 박 사장 덕분이지. 박 사장도 이거 하나 가져가라고.”
1만 달러 칩이 한규호 앞으로도 하나 떨어졌다.
“형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한규호는 주 선생이 준 칩을 두 손으로 들고 성체처럼 하늘 높이 올렸다.
주위에서 웃음이 터졌다.
반면에 한규호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게 다 컨셉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처음 주 선생을 만나서, 주선생과 처음 대화를 나누었을 때, 가볍고 실없는 한량으로 컨셉을 잘못 잡아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거다.
이렇게 광대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과묵한 미친놈 할 껄. 아니면 싸가지 없는 재벌 3세나.
괜히 이 컨셉을 잡아서...
한규호는 후회하고 있었다.
집에 가야지. 이대로 가다가는 미쳐버리겠다.
한규호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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