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TBD (5)
5월 3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위스키 1리터를 급하게 마시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한규호의 정신은 보이는 모습과 달리 또렷했다.
그는 신체 활성도를 높여 알콜을 분해했다.
평소의 그는 숙취도 음주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은 적진이고, 지금 그는 작전 중이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해독했고, 금새 그의 혈중알콜농도는 제로에 가까웠다.
한규호는 잠든 척하고 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기 위해 감각을 확장했다. 눈을 감았지만 그의 감각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물건을 박살 낼 때도, 불같이 소리 지를 때도, 병나발 불 듯 위스키를 폭음 할 때도, 완은 아무 말 없이 옆에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한규호가 침대에 쓰러지자, 완은 살포시 이불을 덮어주고, 방안에 널브러진 잔해 중에서 위험할만한 것들을 대충 정리하고, 아주 살며시 소리 안 나게 문을 열고 나갔다.
한규호가 과하게 난동을 부린 이유는 세가지 였다.
첫 째. 돈 많고 흥분 잘하는 졸부의 모습을 보여줄 것. 두 번 째는 완이라는 여자의 의도를 파악할 것. 그리고 남은 하나는 다음을 위한 포석으로서.
예상과는 다르게, 완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항상 생글생글 웃는 미소를 감춘 채, 미안한 표정으로 그의 곁을 지키다가 그가 잠든 후 조심스럽게 나갔을 뿐이었다.
문을 열고 나간 완이 옆에 마련된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한규호는 완에 대한 의심을 완벽하게 지우지는 않았다.
완을 특정해서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모든 사람들에 대해 경계하고 있을 뿐. 그래서 완이 한규호의 기대와 달리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할지라도, 완에 대한 경계는 완전히 지우지 않았다.
한규호는 그렇게 술 취해 쓰러진 자세, 그리고 멀쩡한 정신으로 12시간을 누워 있었다.
12시간 동안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그렇게 일어난 한규호는 완 앞에서 숙취에 괴로워하는 척, 어제 게임 한 것을 후회하는 척, 난동 부린 것을 부끄러워하는 척 연기를 했다.
그런 그에게 완은 예의 그 싱글벙글한 미소로 사우나를 권했다.
“사우나?”
“네. 지하에 있어요.”
“그래?”
“네. 모실까요?”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우나라. 느낌이 쌔하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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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에 들어선 한규호를 본 남자직원이 빠르게 그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음.”
웨이터는 그를 대기실로 안내했다.
탈의실이 아닌 대기실.
한규호는 놀라지 않았다. 예상한 시스템이었다. 느낌이 맞았다.
독립된 구조의 개인실로 만들어진 대기실에는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다.
한규호는 최대한 거만하고 재수없게 보이도록 소파 앞의 탁자에 발을 올리고 소파에 몸을 눕혔다.
이 카지노는 전체적으로 마카오를 벤치마킹 하고 있었다.
중국 입김이 작용해서인지 건물 전체 외형이나 레이아웃부터 직원들 유니폼이나 소소한 인테리어까지 전부 마카오의 중국계 카지노를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마카오의 대표적인 윤락 시스템인 사우나를 도입했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한규호는 의자 옆에 놓여있는 메뉴판을 펼쳤다.
메뉴판에는 각종 주류와 음료는 물론 음식 사진도 실려 있었다.
한 자리에서 목욕을 즐긴 다음 먹고, 마시고, 잠자고, 마사지도 받고, 윤락 서비스도 받는다.
어른들의 놀이공원, 마카오사우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실례하겠습니다.”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중국계로 보이는 여자가 차가운 물수건과 음료수를 들고 들어왔다.
한규호는 여자를 흘깃 살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쯤? 키는 160대 초반. 신발을 감안하면 150대 후반 일 수도 있겠다. 왼쪽 팔이 살짝 더 두꺼운가? 왼손잡이? 발걸음이 독특하군. 무술을 배운 것 같지는 않고, 사뿐사뿐 걸으려는 오랜 습관이군.
한규호는 빠르게 분석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여자는 음료수를 조심스럽게 한규호 옆에 놓더니 물수건을 들고 한규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곳에 매니저인 페이페이라고 합니다.”
한규호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인사를 마친 페이페이가 물수건을 들고 한규호 앞으로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규호의 발을 들어 물수건으로 꼼꼼하게 닦기 시작했다.
“손님께서는 이곳이 처음이신가요?”
“음.”
한규호는 거만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뵙지 못한 분이라 실례되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대해서 설명해 드릴까요?”
발목에서 시작된 물수건의 움직임은 발등을 거쳐 발가락에 닿았다. 정확히는 발가락 사이로.
기분좋을 정도의 차가운 물수건을 감은 가늘고 긴 손가락이 해초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발가락사이를 노닐었다. 확실한 쾌감이 발끝에서 다리를 타고 흘렀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꼼꼼히, 하지만 부드럽게 손가락을 놀리던 그녀는 눈을 들어 한규호와 눈을 맞추었다.
고양이상. 애교 부리는 중국 고양이의 모습이 그녀에게서 나타났다.
그녀의 손길도, 그녀의 말투도, 그녀의 얼굴도, 그녀의 표정도. 모든 것들이 그녀가 남자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음.”
그녀가 한 무릎 더 다가왔다. 그러자 그녀의 치마 앞트임이 벌어졌다.
벌어진 트임 사이로 Y존이 드러났다. 새하얀 허벅지. 그리고 두 허벅지를 연결하는 중심에는 검은색 팬티.
“이곳에서는 목욕뿐만 아니라 식사와 음료, 주류 등 모든 것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마카오 식이군.”
“어머. 맞아요. 손님. 마카오에서 사우나를 경험해보셨나요?”
“음. 뭐.”
“그러시면 잘 아시겠네요. 식사, 술, 음료, 샤워, 스파, 마사지, 특별 서비스. 원하시는 모든 것이 준비 돼 있답니다.”
“그렇군. 꽃값은?”
“VIP 손님들에게만 특별 제공되는 리조트의 서비스입니다. 그 부분은 신경 안 쓰셔도 괜찮습니다.. 어느 것부터 시작하시겠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여자의 손이 다른 발로 옮겨 갔다.
“아직.”
“어머. 이 시간까지? 그럼 식사를 먼저 준비해 드릴까요?”
“음······.”
새끼와 약지 발가락 사이의 속살이 그녀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다.
한규호는 다양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런식의 쾌감은 처음이었다.
하복부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다 끝내고 먹지. 으음. 일단 목욕 부터.”
“알겠습니다. 그럼 쇼업(Show Up)을 준비하겠습니다.”
양 발을 한껏 가지고 놀던 그녀가 더러운 발을 닦은 물수건을 개의치 않고 잘 접었다.
그리고는 문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자 몸을 가린다는 기능이 결여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들어왔다. 대략 십여 명 정도가 우아하게 들어와 한규호 앞에 일렬로 도열했다.
한규호는 천천히 그 여자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흠. 적은데?”
한규호가 말했다. 40명~50명씩 한꺼번에 들어오는 마카오에 비하면 10이라는 숫자는 작으니까..
“어머.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에요. 백 송이의 꽃이 피었어도 그 중 싱싱한 꽃송이가 몇 없다면 백이라는 수는 의미가 없죠.”
페이페이가 능숙하게 받았다. 예상된 질문, 준비 된 답변이겠지.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여자들을 살펴보았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자 하나하나가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인 보다 훨씬 긴 다리를 가진 중국계 여인. 크지만, 그렇다고 비율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가슴을 가진 남방계 여인, 얼굴에서 요염함이 흘러나오는 여인, 드세보이는 여왕님 스타일의 여인, 그리고 백금발에 완벽한 비율을 가진 슬라브계 미녀까지.
어떻게 이렇게 모았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아름다움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도열한 여인들을 쭉 훝어보던 한규호는 여인이라기보다 소녀라고 불려야 할 정도의 어린아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몇 살이야?”
한규호의 손 끝에 그 소녀가 걸려 있었다.
“어머. 여자 나이는 물어보는 게 아니랍니다. 외형만 그렇지, 실제로는 합법적인 나이에요.”
페이페이는 답을 골랐다.
그 소녀, 이제 막 15살이 된 미얀마 소수민족 출신 소녀를 바라보는 한규호의 눈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눈에 떠 오른 혐오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만약 그 눈에 호기심이 떠올랐다면 그녀는 18살이 될 것 이고, 흥분이 떠올랐다면 13살이 되었을 것이다.
페이페이는 빠르게 잘 대처했다.
“참. 다양하게도 모았군. 그나저나 영어는 다들 할 수 있나?”
“음······. 능숙하다고 말씀 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목욕을 도와드리고 손님을 모시는데 큰 불편함은 없답니다."
페이페이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나 골라도 되나?”
“네. 어느 누구든, 몇 명이든. 원하시는 대로.”
한규호는 다시 여자들을 살펴봤다.
만약 누군가가 이 카지노에 도박과 유흥을 즐기러 왔다면 지금 상황에 엄청 흥분했을 것이고, 분명 머릿속으로 다음에 언제 또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규호는 전혀 흥분해 있지 않았다.
눈을 가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나 냉철한 선택이 그의 목숨을 살린다.
그는 지금 작전 중이다.
“당신.”
한규호는 페이페이를 가리켰다.
“네?”
“당신. 당신이 목욕을 도와주면 되겠네.”
“어머? 저요?”
“왜? 내가 원하면 누구든 가능하다며?”
페이페이는 당황했다. 방에 들어오기 전 룸 매니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하룻밤 만에 10만 달러를 잃었고, 방을 아주 개박살 내놓은 진상 중의 진상이 내려갈 테니 잘 해달라고.
평소에 페이페이라면 자연스럽게 손님의 마음을 돌렸을 것이다.
저 앞에 저렇게 싱싱한 꽃들을 앞에 두고 시든 꽃을 고르시다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하면서.
페이페이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들은 더욱 아름다웠다. 다들 쉽게 마음을 바꿨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하룻밤에 10만 달러를 잃고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처음 방문한 손님이다.
페이페이는 약하게 거부해보기로 했다.
“어머. 호호. 저를 아직 여자로 봐주는 분이 계시는 군요. 너무 기뻐요. 하지만 손님. 저 앞에 있는······.”
“당신. 당신이 마음에 드는 군.”
한규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페이페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놀람의 표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진것을 알아챘다.
한규호는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한규호도 여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사람이고, 성욕이 있었다. 그러나 사우나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성욕 떄문이 아니었다.
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기 위한 장치로, 어제 난동을 부려 미안해서 그래서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우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페이페이를 지명한 것은 어차피 받아야 되는 서비스라면 페이페이를 통해서 정보를 얻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안되면 말고.
그런데 지금 페이페이가 당황한 모습을 보니, 그것을 빠르게 숨겨가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약을 올리고 싶어졌다.
“안되나? 그럼 난 그냥 올라가지.”
한규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페이페이는 고민했다. 진상인 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진상일 줄이야.
“아니에요. 손님. 저는 그저.”
“그저?”
“아. 일단 앉으세요. 앉으셔서.”
페이페이가 한규호의 손을 잡아 끌어 앉혔다. 그리곤 아가씨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일단 나가 있으세요.”
페이페이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가씨들은 일사불란하게 대기실 문을 열고 나갔다. 대기실에는 다시 페이페이와 한규호 둘만이 남았다.
“마저 이야기 해봐. 그저?”
한규호는 약 올리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 손님도. 저렇게 젊고 예쁜 애들을 두고, 저처럼 늙은 여자를.”
“싫다는 건가?”
“아니요. 싫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조금 놀래서.”
“당신이 제일 예쁘더군.”
“어머? ····· 참 못 말릴 손님이시네요.”
페이페이는 마음먹었다.
“그럼 부족하지만,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진상이라고 해봤자 그도 남자다. 남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후후후. 잘 부탁하네.”
한규호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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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한규호를 사우나까지 배웅한 완은 다시 한규호의 방으로 올라왔다.
그녀가 방문을 열었을 때, 주인 없는 방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니폼마저 마카오의 그것과 비슷한 것을 착용한 직원들이 한규호가 부숴버린 물건들을 치우고 있었다. 그 중에는 85인치 OLED 텔레비전도 있었다.
“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완을 보고 방 안에 있던 한 남자가 중국어로 물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른 사람과 달리 혼자 창가에 기대 선 채로 담배를 피우던 남자였다.
완은 고개를 숙였다.
“모르겠습니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완도 중국어로 답했다.
완은 천천히 걸어가 그 남자 앞에 공손히 섰다.
“훗.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나 한 거야?”
남자는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죄송합니다. 마땅한 기회가 없었습니다.
질책하는 남자, 담배를 피고 있는 남자도 알고 있었다.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이 방의 주인은 체크인 하자마자 VIP방에 들어가 10만 달러를 허공에 뿌렸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고, 위스키 한병을 나발 불 듯 마시고는 쓰러져 잤다. 기회가 없었다.
그도, 중국국가안전부(MSS) 요원 징춘(景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고 있었고, 듣고 있었다.
“하룻밤에 10만 달러. 그래. 뭐 큰돈은 아니지만, 요원이 하룻밤 작전비로 날리기에는 많은 돈이지. 아는 만큼 이야기 해봐..”
“기본적으로 무례한 사람입니다. 말은 짧고 명령조에. 감정적이고. 속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요원이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완이 말했다. 무표정하게. 무감정하게.
“도착하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참 많이도 부셔놨군. 얼마나 더 이 지랄을 할지 잘 지켜보라고. 다른 건 몰라도 북조선과 남한, 그리고 일본 개새끼들이 눈치 챈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자자고는 안하던가?”
징춘이 물었다.
“첫날 체크인 직후 가능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완이 답했다.
“조만간 하자고 하겠군.”
징춘이 완의 온몸을 눈으로 흝으며 말했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완이 무감정 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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