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11화 (12/386)

MISSION 02 : TBD (4)

5월 2일.

가데나 공군기지

가데나, 오키나와현, 일본

“참 솔직한 친구야. 자네는.."

“네?”

“그렇게 감정을 막 드러내다니. 어떻게 요원이 됐는지 모르겠군.”

“...........”

트레이시는 말 없이 로건을 노려보았다.

“요원에 안맞아. 직설적이고, 감정적이고. 욕심도 많고.”

그녀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전방만을 주시한 채 말을 이었다.

“트레이시 테일러는 중학교 때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지. 자연금발에 이뻤고, 공부도 잘했으니까. 트레이시란 소녀는 알게 됐지. 인기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래서 그녀는 인기를 유지하고, 나아가 계속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지.”

트레이시는 놀라지 않았다. 정보기관에서 정보원의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로건은 그의 상관이니까.

“그래서 그 소녀는 금발의 치어리더이며 쿼터백의 여자친구로 학교의 여왕이 되는 대신 여자 축구부에 들어가 중앙 수비수 역할을 했지. 아마 트레이시라는 소녀는 고민했을 꺼야. 치어리더는 미국 전통에 딱 들어맞는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피임법 빼고는 아는 것이 없다는 편견이 따라다니지. 그래서 그 반대로 여자 축구부에 들어간 것이지.”

정확했다. 정확히 그녀를 알고 있었다.

“여자축구부는 그저 그랬지만 그녀는 그래도 꽤 괜찮게 했나봐. 하긴 수비수라는 자리가 그렇지. 전체 진형을 보고, 전략을 짜고, 전술을 수행하는 자리니까. 공격수처럼 화려함은 없어도, 스카우터들의 눈에 더 잘 띄는 자리가 그곳이니까. 그래서 전액 장학생으로 브라운대에 들어갔지. 치어리더였다면 아이비리그에는 들어가지 못했을 꺼야.”

“아니요. 저는 치어리더였어도 갔을 꺼에요. 장학금은 못받았겠지만.”

“그런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갑자기 궁금한 부분이 있는데. 왜 하필 브라운대학교였지? 하버든, 예일이나, 프린스턴이나 원하면 다른 곳도 갈 수 있었을 텐데?”

“그 소녀에게 물어보시죠.”

“그 소녀는 지금 없잖아. 지금 있는건 불같이 화내고 있는 브라운 아가씨 뿐인걸?”

“..........”

“아직 요원이라 이건가? 자네 질문에도 하나 답 해주지. 그러니까 알려줘.”

“...... CMP. CMP가 마음에 들었어요.”

Concurrent Master's Program 학사와 석사 과정을 4년만에 끝내버리는 브라운 대학만의 독특한 학부과정이다.

“그렇군. 욕심쟁이 아가씨는 간판 대신 시간을 얻으려 했었군.”

“...... 뭐.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괜찮군. 마음에 들어. 내가 면접관이었다면 좋은 점수를 줬겠어. 아무튼 브라운을 졸업한 소녀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CIA에 지원했지. CIA는 일반 회사가 아니니까 대학 졸업장이 있다고 뽑아주는 곳은 아니었고.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 소녀는, 아니 이제 여인은 참 다양하게도 방법을 마련해 놓았더군.”

트레이시는 자신의 대학생활을 떠올렸다. 상위 학생에게만 가입이 허락되는 Phi Beta Kappa 가입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학점, 학교생활, 논문, 인턴, 연구조교. 전부 다 CIA를 향해 있었지. 참 가상해. 우리 딸에게도 본받으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꿈을 향해 달렸더군.”

이제 다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트레이시는 생각했다.

“들어온 후에도 잘 해냈어. 아주 잘 해냈더군. 라인도 잘 탔고. 업무도 잘 했고. 동기들이 다 떨어져 나갈 때 오히려 승진했으니. 아주 잘 했어.”

지금 이 자식이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거지?

왜 날 뽑았는지 그걸 설명하라고!

“그런데 자네가 모르는 게 있지.”

“뭐죠??”

“자네의 욕심. 그래. 뭐 열정이라고 표현해보자고. 그 열정이 윗사람들 보기에는 좀 꼴보기 싫거든.”

트레이시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자신은 국가와 조직을 위해서 열심히 할 뿐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니.

“동아시아지부로 온 것을 자네는 좋게 생각했지? 맞아. 극동아시아는 이제 러시아를 넘어선 제 1 전선이 되었지. 그런데, 그건 우리들 이야기야. 어느 정도 직급이 있고, 직위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지. 자네는? 그냥 병정이야. 폰(PAWN:체스의 병정-장기에 졸에 해당함)에 불과하다고. 자네는 영전이라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좌천이었지.”

트레이시는 충격을 받았다.

“놀랐나? 놀랐겠지. 조직은 다 그래.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 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우리는 너를 키울 것이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거야. 실제로는 부품으로 쓰면서 말이지. 내 위치쯤 되면 다 보인다고.”

“..........”

“자네도 내 위치가 되면 이해 할 거야. 아니군. 자네는 이제 CIA를 떠날테니 그런 일은 없겠군. 영원히 알 수 없겠네.”

“.............. 질문에 답해주시죠. 왜 저를 택하신거죠?”

“아까 그 찬스권. 지금 쓰는 거야? 아깝네. 조금 더 중요한데 쓰라고 말하고 싶은데.”

“................”

트레이시는 말 없이 더 매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아까 말한 그 부분 때문이지.”

“그 부분?”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자네를 뽑았다고. 요원에 안 맞는 부분. 직설적이고, 감정적이고. 욕심도 많은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전 이해가 안가요. 어떤 의미죠? 직설적이고, 감정적이고 욕심이 많아서 저를 뽑으셨다고요?”

로건의 차량은 이미 트레이시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내리지 않고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자. 자. 일단 씻고 나서.”

“부지국장님!”

트레이시가 소리를 질렀다.

“테일러 요원. 지금 이게 상급자에게 올바른 태도인가?”

로건이 표정을 바꾸고 근엄한 어투로 말했다.

트레이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를 더욱 매섭게 노려보았다.

로건은 생각했다. 사람을 잘못 골랐나? 사나운 개를 찾았더니 투견을 고른 것일까.

“말 해주세요.”

로건은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웠다. 시동은 끄지 않고.

“그래. 답해주기로 한건 내 약속이었으니까. 나는 자네의 경력을 알고 있었지. 자네의 성격도 유추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높은 사람들에게 밉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지. 그래서 조만간 옷을 벗게 될 것이란 것도. 아 물론 옷을 벗는 다는 것은 요원을 관둔다는 의미야. 괜히 이상하게 곡해해서 권력형 성희롱을 당했느니. 그러면 곤란...”

“본론으로.”

트레이시가 그의 농담을 끊었다. 농담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 진짜 끝이라고 막 나가는구만. 알겠어. 나중에 후회하게 해주지. 기대하라고.”

트레이시는 아무말 없이 부지국장을 노려봤다. 어서 말해 이 자식아! 그런 눈빛을 담아서.

“왜 그런 것 있지? 가끔씩 예상도 못한 와일드카드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로즈볼에서 우승하거나, 아니면 후보 중에 후보가 우연히 게임을 나가서 막 60야드 패스 성공하고, 색 하고, 터치다운 성공하고. 나는 그런 부분에서 자네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 거지.”

“전 미식축구를 안보는데요?”

“오. 이런. 자네가 그만둬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군. CIA 요원이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를 안 본다니. 맞다. 자네는 축구(Soccer)를 했지?”

“축구(Football)을 했습니다.”

“영국놈들 같은 소리를 하는군. 아무튼. 자네를 비행기에 태운 이유는 자네가 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지. 이야기가 길어지는군. 짧게 말하지. 비행기에 누군가를 태워서 가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사실 요원이 아니어도 괜찮지. 그냥 서류 하나 던져주고, 걸프스트림에 태워보내면 지가 알아서 다 꺼내 먹을테니까.”

트레이시도 동의했다. 트레이시의 이번 역할은 브리핑이라기보다 의전수행에 가까웠다.

그런데 한규호라는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의전을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자네를 거기에 태우고, 서류까지 미리 챙겨주면서 브리핑을 시켰을까? 그 정도 수준의 정보를 왜 자네 같은 일반 요원에게 공개했을까?”

확실히 이상했다. 트레이시의 지위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규호를 도우라는 이유로 그 정보가 자신에게 허락됐다.

“의도했단 말인가요?”

“그래. 내가 의도했지. 자네라면, 직설적이고, 감정적이고, 욕심이 많은 자네라면 분명 그 상황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네에게 득이 되는 장치를 해 두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 자네 혹시 바둑을 둘 줄 아나? 포석이라는 개념을 아나?”

“잘 모릅니다.”

“참나. 아직 멀었군. 이러면서 동아시아 지부에서 일을 한다니.”

로건은 트레이시를 약올리듯이 손가락을 까닥까닥거렸다.

“그럼. 혹시. 전화번호도, 제가 전화번호를 넘길 것을 예상했나요?”

“예상이라. 표현이 맞지는 않군. 그냥 가능성이 있다 정도로 해 두지. 자네는 몸에 쫙 붙는 스커트를 입고 섹시하게 걸프스트림에 앉아있었지. 승무원 역할에 불과했지만 작전이 작전인만큼 흥분했을 가능성이 높았지. 그리고 거기에 맞춰 행동했고. 힌턴에게 쏘아 붙이는 건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었어. 힌턴 그 개자식에게 한방 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 때, 자네를 뽑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니까.”

“....... 전화번호 이야기로 돌아오지요”

“그래. 전화번호. 만약 작전에 성공한 그 남자를 태우고 돌아온다면 자네는 분명히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지. 비단 자네뿐만 아니지. 작전의 전체적인 그림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 작전은 절대로 실패야.”

트레이시는 침을 삼켰다.

“초고공낙하로 침투해 코란과 마약에 미쳐있는 광신도들 사이에서, 그것도 탈레반도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는 알샤바브의 요새에 몰래 들어가 손발가락이 짓이겨진 사람을 구출해 20km를 걸어 나온다고? 그것도 단독으로? 불가능해. 절대로.”

자신도 모르게 트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성공했어. 말도 안되지. 에티오피아에서. 어디였지? 하랄 어쩌구 하는 공항에서 자네는 그 괴물을 기다리면서 이 작전이 성공 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하랄 메다 공군기지입니다.”

“답을 피하는군. 아주 능숙해. 하지만 수준은 낮아.”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한다 해도 그 날 당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나오라고. 자네는 페이브호크가 다가오는 것을 봤어. 특수작전에 투입되는 구출용 헬리콥터가. 그리고 거기에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내리는 그 괴물도 보았지. 흥분했을 거야. 분명.”

정확했다. 트레이시는 흥분했었다. 그것도 매우.

“묻고 싶은 게 많았지. 성공했는가? 성공했으면 어떻게? 그런데 자네는 묻지 않았지. 아니 묻지 못했지.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그럴 지위가 아니니까. 그 상황에서 힌턴이, 자네만큼 묻고 싶은 게 많은 힌턴이 불쑥 끼어들었지. 그래서 면박을 준 거고.”

“....................”

“하하. 보고서를 보니 돌아오는 내내 그 괴물은 잠만 잤다고 하더군. 자고 잠깐 일어나 먹고, 또 자고. 자네는 잠든 그 괴물을 보면서 생각했을 거야. 묻고 싶다. 궁금한 것을 묻고 싶다. 그리고 또 이 생각도 했을 거야. 이 괴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분명 앞으로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CIA와 연결될 것이다. 친구든. 아니면 적이든. 그래서.”

로건은 이미 얼음은 다 녹은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트레이시도 갑자기 갈증을 느꼈다.

그 갈증이 목마름의 갈증인지, 다음에 이어질 말에 대한 갈증인지 아니면 둘 다일지 잠시 고민하던 트레이시의 귀에 이어지는 로건의 말이 들렸다.

“그래서 자네는 전화번호를 넘겼지. 선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경력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트레이시는 알몸으로 로건 앞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자신까지 그가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자네가 그 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길 바랬지. 그래서 자네를 뽑았지.”

“........ 그 남자는....누구죠? 아니. 대체 뭐죠?”

트레이시는 Who 대신에 What이라는 의문사를 사용했다.

“아깝습니다. 찬스권은 하나 뿐! 이래서 선택과 타이밍이 중요한 거지.”

“말해주세요. 전 들을 자격 있어요.”

“자격이 있다고?”

“저의 욕심과 부지국장님의....... 놀라운 혜안 덕분에 제 경력이 박살 났으니까요. 그 정도 들을 자격은 있어요.”

로건은 불타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트레이시를 보고 있었다.

이 욕심 많은 아가씨는 사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정보를 요구하는군. 정말 욕심쟁이야.

“찬스는 없어요. 자격도 없고. 이 아가씨야. 하지만 특별이 말해주지. 이별 선물로. 그 남자가 ‘뭐’냐고 물었지?”

트레이시는 침을 꼴딱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몰라.”

그 대답에 트레이시는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까지....”

“몰라. 실제로 몰라.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위에서 그 괴물을 주목하고 있다는 부분이지.”

“위?”

“랭리. 아니면 그 이상.”

랭리, CIA 본부의 대명사, 그리고 그 위에는 단 한 곳 뿐이다.

백악관.

“세상에.”

이 정보는 분명 트레이시가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알아서도 안 되는 정보다.

“자네는 이제 선을 넘었군. 알아서는 안되는 것을 알게 된 거야. 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이고, 트레이시도 죽이는군.

“..........”

로건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D에 넣었다.

“그동안 즐거웠네.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자네는 참 아까운 인재야.”

트레이시는 안전벨트의 버클을 눌렀다.

이제 차에서 내려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생각할 시간이다. 살기 위해서.

트레이시는 차문을 열고 탄력 있는 긴 다리를 밖으로 빼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아직 의문 하나가 풀리지 않은 것을.

“왜 부지국장님은 제가 그 괴물에게 선을 만들기를 바라신거죠?”

이 맹랑한 아가씨가 바닥까지 다 털어가는구나. 로건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괴물은 이제 중요인물이야. 좋은 쪽이 될지, 나쁜 쪽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괴물과 연결점을 만들어 놓으면 뭐가 되기는 되겠지. 그것이 영광이든, 파멸이든지. 자네가 우선 선을 만들었네. 그리고 내가 자네를 통해 그 선을 따라가겠지. 스튜(Stew). 그 괴물의 임시코드명이 스튜네. 스튜에 대한 중요성이 증가할수록 자네의 중요성도, 그리고 나의 중요성도 증가하겠지. 그런 이유에서였네. 언제까지 부지국장만 할 수는 없잖아?”

충격적인 이야기다. 결국 그 괴물과의 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이용한 것 아닌가?

자신은 로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다.

“기도하게. 그 친구에게 전화가 오기를. 그게 자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로건은 떠났다.

트레이시는 3일간 입고 있던 땀에 절은 옷의 불쾌감도 잊은 채 떠나가는 포드 토러스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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