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2 : TBD (2)
5월 2일
수완나품 국제공항
방플리군, 사뭇뿌라칸 주, 태국
태국의 관문 공항 수완나폼(Suvarnabhumi) 국제공항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방콕이 아니라 방콕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20km 외곽에 위치해 있다.
태국 수왓나폼 국제공항 19R 활주로로 착륙한 타이항공 747기는 천천히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1등석 2A 좌석에 앉아 있는 한규호는 김형원 사장의 말을 떠올렸다.
“뭐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큰 기대는 없어. 반쯤 휴가라고 생각하고 놀다 오라고. 태국 쪽과 공조해서 준비는 다 끝났으니까, 졸부짓이나 잘 하고 와.”
그래서 그런지 좌석도 1등석에 지급된 캐리어에도 비싼 옷과 물품이 가득했다.
비행기가 게이트에 도착하고 브릿지가 연결되자 한규호는 제일 먼저 내렸다. 1등석의 특권이다.
막 연결통로를 나오자 그의 이름, 정확히 그의 가짜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가.
“Mr. park?”
아름다운 여자가 한규호를 보며 물었다.
“I am.”
한규호가 답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시겠습니다.”
여자는 웃으며 한규호의 캐리어를 받아들었다.
태국인과 서양인의 미적 요소만을 조합해 포토샵을 하면 이런 얼굴이 나옵니다 하는 느낌이 드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
감색의 투피스 정장은 몸에 딱 붙어 몸매의 선을 그대로 드러냈음에도, 요염하다기보다는 우아한 느낌이 들었다.
타이항공 같은 FSC들은 1등석 탑승객에게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곤 한다. 공항 내 카트 이동, 일반 승객과 구별된 구역에서 따로 하는 입국심사, 도착 라운지 이용 등등.
그런데 이 여자는 타이항공 직원 같지 않았다. 보랏빛이 도는 타이항공 유니폼도 입지 않았고, 무엇보다 항공사 지상직 여직원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누구?”
한규호가 물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프라이멀 카지노의 완(Waan)입니다. 제가 데이비드 박 님을 모시게 됩니다.”
“모신다고?”
“네. 이곳에 계시는 동안 개인 비서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흠......”
한규호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아주 기뻐하고 있었다.
지난 작전에서 트레이시도 경우도 그러하더니....
요즘 미인들이 붙는구만!
“그럼 모시겠습니다.”
완이라는 여자는 입국 심사장 대신 헬리포트로 카트를 몰았다.
헬리포트에는 아구스타웨스트월드社의 AW139가 로터를 회전하며 이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입국 심사도 받지 않고, 헬기에 오른 한규호는 자신이 가는 카지노가 일반 시골 카지노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15명이 정원인 헬기를 5인석으로 개조해 놓은 AW139는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아주 고급스러웠다. 신경 써서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거의 200마일의 속도로 1000km를 이동할 수 있는 이 헬리콥터를 타고 방콕 수왓나폼 공항에서 트라이앵글까지 한 번에 이동 한다는 것이다. 입국심사도 받지 않고!
그렇다는 것은 중국 정보기관의 숨은 지부라는 이 카지노에 태국 정부도 발을 걸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규호는 푹신한 의자, 헬리콥터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좌석과 편안한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재미있을지도 모르겠군. 뭔가가 있을 지도 모르겠군.
그런 한규호의 생각도 모르고, 완이라는 여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그의 앞에서 계속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조신히 무릎을 모으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올라간 치마 밑으로 매끄러운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졸부를 연기하기로 마음먹은 한규호는 그 허벅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참을 날아 카지노에 도착한 한규호는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저 소파에 앉아 있으면 됐다. 소파에 앉아 웰컴드링크로 크룩 그랑 퀴베를 마시면서, 입국심사와 숙소 체크인을 대신 하는 완의 뒷태를 감상하고만 있으면 됐다.
그저 스키니한, 날씬한 몸매인줄 알았는데, 쪼그려 앉는 뒤태에서 브라질 댄서의 모습이 보였다. 리오의 카니발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스커트 너머의 낙원을 상상하며, 크룩을 홀짝였다.
한규호는 스위트룸에, 방 2개, 욕실이 2개, 거실과 식당이 분리된 아주 호화스러운 호텔방에 들어가자 마자 침대에 벌렁 누웠다.
완이 벌러덩 누워 있는 그의 옆에 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환영합니다. 앞으로 제가 24시간 데이빗 박 님을 전담해서 모시게 됩니다. 필요하신게 있으시거나, 불편하신 사항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특유의 미소,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최적화 되는 미소를 연습이라도 했는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 말에 한규호는 누워있던 그 상태 그대로 그녀에게 얼굴을 돌렸다.
“필요한 거?”
“네. 게임을 즐기시는 것을 비롯해, 식사, 알콜류를 포함한 모든 음료. 마사지, 관광, 여성 등 모든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준비 안되어 있으면 준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항상 곁에 있으니, 언제라도 말씀해 주세요.”
스님이라도 승복을 벗겠군. 한규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아름답다로는 표현이 힘든 여자다. 복합적인 아름다움이 그녀에게서 보여졌다.
“필요한 모든 서비스라...”
한규호는 손톱으로 침대 끝을 툭툭 치면서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서비스에 당신도 포함되나? 당신하고도 잘 수 있나?”
그리고 말했다.
돈 많은 졸부 역할에 맞추어 거만하게.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뻔뻔하게.
“데이빗 박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완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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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프라이멀 리조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한규호는 화가 나 있었다.
정확히는 화가 난 척을 하고 있었다.
일이다. 이건 일이다. 일이다. 나는 일하는 중이다.
한규호는 속으로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침대 옆에 있는 재떨이를 들어 85인치 OLED TV 액정 한가운데에 던져버렸다.
어제 도착한 한규호는 몇 시간 만에 10만 달러, 1억 2000만원을 잃었다.
원래 잃을 계획이었다. 펑펑 써댈 생각이었다. 김형원 사장은 모르는 한규호의 현장 판단이었다.
10만 달러. 1억 2000만원을 하룻밤에 잃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어색하지 않게. 의심받지 않게.
최저배팅금액 1000 달러(120만원) 최고베팅 제한이 없는 VIP 바카라방에서 10만 달러를 잃어버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한판에 걸어버리면 되니까. 따면 그 다음에 또 다 걸면 되니까.
문제는 자연스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카지노에 몇 번 다녀본 것처럼, 바카라판에서 카드 좀 쪼아본 것처럼, 그리고 호구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룻밤에 1억 2천만원을 날려야 한다.
한규호는 걱정하지 않았다.
도박꾼들의 성경과 같은 마틴게일 베팅법을 활용하면 되니까.
마틴게일 베팅법.
베팅액을 계속 두배로 올려가는 베팅방법이다.
쉽게 말해, 100만원을 베팅해서 잃었다면 다음에는 200만원을, 그 다음에는 400만원을, 그 다음에는 800만원. 이런 식으로 베팅금액을 늘려가는 것이다.
100만원 베팅해서 따면 100만원의 이익이 난다.
100만원 베팅해서 잃고 200만원 베팅해서 따면 300 지출에 400 수익이니 100만원의 이익.
200만원 베팅해서 잃고 400만원 베팅해서 따면 700지출에 800 수익이니 100만원의 이익이 되므로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한번만 따면 100만원의 수익이 나게 되는 것이다.
한규호는 처음 이곳에 올 때 외환거래용 법인 계좌를 통해서 10만달러를 미리 보냈다. 그리고 카지노에서 1000달러짜리 칩 20개와 1만달러 칩 8개를 받았다.
그리고 마틴게일 베팅을 했다.
이렇게 하면 총 5번의 베팅에 6만 4천 달러가 들어간다. 즉 50프로의 승률을 가진 게임에서 다섯 번 연속으로 패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천달러의 수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규호는 잘 알고 있었다.
마틴게일 베팅법, 이쪽 용어로 그레이트마틴게일이라고 부르는 이 방법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니, 지옥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주사위 하나를 다섯 번 던져 홀수만 5번 나오는 확률과 홀수와 짝수가 번갈아 나올 확률은 차이가 있을까?
정답은. 둘다 2의 다섯 제곱분의 1, 1/32로 동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홀, 홀, 홀, 홀, 홀 보다 홀, 짝, 홀, 짝, 홀이 더 자연스럽게 느낀다. 초보 도박사의 전형적인 오류다.
또한 짝이 연속으로 4번 나왔을 때, 다음에 홀이 나올 확률은 짝이 나올 확률 보다 높을까?
이 또한 동일하다. 같은 확률이다.
주사위를 던지는 각각의 행위는 독립된 사건이고, 앞의 결과는 뒤에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독립사건의 확률이다.
그러나 도박꾼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다음에는 짝이 나올 거야. 그렇게 믿는다. 믿어버린다.
한규호는 그런 도박꾼을 연기하기로 했다.
마틴게일 베팅과 맹목적인 믿음. 이 두 가지만 보여주면 된다.
몇 번을 따고 잃고를 반복하다 결국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5번 연속으로 게임에서 졌다. 6만 4000달러를 잃고, 그의 수중에는 4만 달러 가량이 남아 있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4만 달러를 한 번에 베팅하는 것이다.
흥분한 모습으로. 그것이 돈 많고 이성이라고는 없는 도박에 찌든 도박쟁이의 모습이니까.
그렇게 그는 하룻밤 만에 모든 돈을 잃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그리고 화난 얼굴로 방에 들어와 재떨이를 들어 85인치 텔레비전에 던져버렸다.
7천달러짜리 TV의 액정이 박살나는데도 완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근처에 서 있을 뿐이었다.
“위스키.”
한참 물건을 부수던 한규호는 숨을 살짝 몰아쉬며 완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완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돈을 잃었고, 물건을 부쉈다.
이제, 그녀가 술을 가져오면 빠르게 폭음 한 후, 쓰러져 잠들면 된다.
아니. 잠든 척 하면 된다. 그러면, 그가 생각한 첫날 계획이 완료 된다.
한규호는 차분한 그의 생각과는 달리, 방안에 있는 협탁을 들어, 벽에 던져 버렸다.
그를 감시하는 카메라에 잘 찍히도록, 그리고 그 화면을 보고 있을 인물들이 자세히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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