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5화 (6/386)

MISSION 01 : 운송인 인도조건 (5)

미션 : FCA - Free Carrier(운송인 인도조건)

d+1(작전 개시 1일 후) 0540

10.008773, 43.163271, 보라마 북북서, 소말리아, 아프리카

복도로 나온 한규호는 왼쪽 두 번째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 전에 이미 한껏 끌어올린 감각으로 이 뒤에 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에는 좌물쇠 대신 철사로 조악하게 만든 시건장치가 걸려있었다. 한규호는 힘 쓸 것도 없이 손으로 철사를 펴서 문을 열었다.

다시 한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니, 퀴퀴함을 넘어 악취가 흘러 나왔다.

대소변 악취만으로는 이런 냄새가 날 수가 없다. 피 냄새가 섞여 있어야만 가능하다.

살짝 얼굴을 찡그린 한규호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3평 정도의 공간에 들어선 그는 더욱 진해진 악취 속에서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찾았다. 얼핏 보면 쓰러져있는 짐승처럼 보이는, 피 묻은 거적때기로 천천히 다가가 조용히 목표를 확인했다.

살아있나?

한규호는 조심스럽게 목에 손을 가져갔다. 턱 밑에 움푹 들어간 부위, 동맥이 피부에 가깝게 노출된 그 곳. 맥박이 가장 잘 느껴지는 그곳에 손을 가져간 그는 약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맥박을 느꼈다.

아직은 살아있다.

살아는 있다. 아직은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 며칠만 더 보내면 죽을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은 살아있다.

그는 CIA 요원의 어깨를 흔들었다.

어깨가 흔들리자 목표는 무조건 반사처럼 눈을 떴다. 그 눈에 공포가 떠올랐다.

한규호는 재빨리 목표의 입을 막았다. 어느 정도 소리가 나도 상관없다. 이미 이 주위에서 둘의 대화를 듣거나 느낄 수 있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규호는 목표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말했다.

“에이전트 노이스?”

목표의 눈이 흔들린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는다.

훈련된 요원이다. 아주 잘 훈련된 요원이다.

“에이전트 노이스, 지금부터 코드를 말하겠습니다. 에코나인, 포트 엘리스, 노벰버(N), 골프(G), 유니폼(U), 위스키(W), 탱고(T), 양키(Y), 브라보(B), 호텔(H).”

한규호가 코드를 말했다.

CIA 공식 구출 코드,

Never Give Up. We'll Take You Back to Home.

(절대 포기하지 마라. 우리가 당신을 집으로 이끌 것이다.

목표의 눈이 더 크게 흔들린다. 동공이 커지면서 눈에 담긴 감정이 바뀌는 것이 보인다. 공포에서 희망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에이전트 에녹?”

목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입을 막은 손을 치운 한규호는 귀에 대고 말한다.

“미 합중국 정부가 당신을 모셔오라고 저를 보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미 중앙정보국(CIA) 핵확산방지센터 소속의 에녹 노이스(Enoch Noyce)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육성으로 말씀해주십시오. 탈출에 동의하십니까?”

“Yes, I agree. please take me home. sir.”

(예. 동의합니다. 선생님, 저를 집에 데려가 주세요.).

가늘고 떨리지만 의지가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탈출에 동의를 얻는다. 그리고 기록한다.

필수 절차이다.

“오케이. 집에 갑시다.”

한규호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 미소를 보며 에녹 노이스 요원은 생각했다. 믿을 수 있는 미소라고 말이다.

“걸을 수 있습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노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자신의 하체를 덮고 있던 피 묻은 거적때기를 걷었다.

한규호의 눈에 에녹 노이스의 발이 보였다. 피투성이의 발, 정확히는 발가락이 있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살점과 엉겨붙은 피가 눈에 들어왔다.

“흠.”

한규호가 예상한 결과 중 하나였다.

발가락은 매우 효율적인 고문위치이다. 신경말단이 몰려 있어 충격을 가할 시 그 고통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발가락을 짓뭉개놓으면 포로는 도망을 칠 수가 없다.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규호는 에녹 노이스의 손도 살펴보았다. 손가락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손 끝은 전부 뭉개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우선 응급처치부터 해야 겠네요.”

적어도 3~4일은 되어 보이는 상처다. 이미 곪기 시작했을 것이다. 환경은 둘째치고,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파상풍은 100%이다.

“조금 아플껍니다.”

한규호는 가방에서 소독용 알콜을 꺼냈다. 그리고 조금씩 상처에 부었다. 본래대로라면 거즈로 조심스럽게 소독해야 하겠지만, 그 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흠!”

에녹 노이스는 손과 발 끝에서 시작된 고통이 그의 척추를 타고 빠르게 그의 뇌를 찔러오는 것을 느꼈다. 고문 당할 때, 알샤바브의 고문 담당이 장도리를 들고 그의 손과 발을 찍을 때 느껴지는 고통과 같았다.

한규호는 신기했다. 도대체 CIA 놈들은 어떻게 요원을 교육시키기에 이 고통을 참아낼까?

아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지금 이 사람의 온몸을 휘젓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작 흡 하고 숨 한번 내쉰 것이 전부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소독을 마친 후, 응급키트에서 준비한 손발용 보호장갑을 꺼냈다.

이런 것들이 준비되어있는 것을 보니 이미 CIA에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한 것 같았다.

“구출 직후 바로 수술 준비도 해놓았으면 좋겠는데.”

한규호가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소독이 끝났음에도 에녹 노이스는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귀에 한규호의 중얼거림은 들리지도 않았다.

“이걸 먼저.”

조악한 응급처치를 마친 한규호는 가방에서 에너지젤을 꺼내 뚜껑을 열어 에녹에게 내밀었다. 젤 행태로 되어 있는 응급구조용 식료품이다.

에녹은 그 젤을 받아 입에 가져갔다. 그러나 약해진 체력 때문에 빠르게 빨아들일 수가 없었다.

한규호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보채지 않았다. 어차피 나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가 없었다면, 그가 이 공간에 없었다면 골치가 아팠겠지만, 이렇게 발견했으니,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이동 중에 그가 죽을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신체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준비를 해야 움직일 수 있다.

에너지 젤을 다 먹은 에녹 노이스는 순간 활력이 도는 것을 느꼈다. 정제된 포도당이 들어가자 그의 몸이 바로 반응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 이제 집에 갑시다.”

한규호는 에녹을 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좀 전에 아직 어린애 티를 벗지 못한 소말리아 소년병에게 한 것처럼 에녹에게 내기를 불어 놓았다.

에녹은 순식간에 정신을 놓았다.

한규호는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에녹 노이스를 부축했다. 그리고 부상이 심한 양손과 양발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킨 상태로 업었다.

며칠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체중이 많이 줄었지만 에녹 노이스의 무게는 묵직하게 느껴졌다.

“골치 아프군. 이렇게 될 것 같기는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구출하긴 힘들 거라고. 설사 운신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시가 급박한 지금 상황이라면 그냥 재워서 들고 뛰었을 것이었다.

“슬슬 가 볼까?”

문을 열고 나오자 지평선에 태양이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출이 다가온 것이다.

응급처치를 하느라 시간을 좀 더 보냈는데, 벌써 태양의 끄트머리가 지평선에 걸려버린 것이다.

“우선 뛰어야되겠군.”

한규호는 코드를 보냈다.

“수출품 선적 완료. 이제 항구로 가겠다.”

그리고서는 에녹을 고정한 벨트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기지를 뒤로 한 채 태양 쪽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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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FCA - Free Carrier(운송인 인도조건)

d+1(작전 개시 1일 후) 0620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USAFRICOM), 슈투트가르트 독일

“놓쳤습니다.”

전면이 온통 스크린으로 가득한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외침이 울렸다.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 통칭 아프리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미국의 9개 사령부 중 한곳. 그리고 사령부 내에서 가장 보안레벨이 높은 특수작전상황실.

일반 상황실과 달리, 정말 소수의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특수상황실에서 위성영상을 담당하는 대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반복합니다. 놓쳤습니다.”

전면에 떠 있는 위성화면은 보라마 북북서 방향에 있는 알샤바브 보급기지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었다.

“놓쳤다고? 다시 한번 확인해봐.”

아프리콤 작전 부사령관 미하엘 K 콜론 중장은 놀라서 다시 지시했다. 놓쳤다고? 방금 위치를 확인 했는데, 에녹 노이스를 업은 한규호를 방금 포착했는데, 갑자기 위성화면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범위를 확대하겠습니다.”

콘솔을 잡은 대위가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사라질 수가 있지?”

콜론 중장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었다.

그를 옆에서 보고 있는 CIA 작전국 매튜 로스는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자신도 저런 표정을 하고 있었겠지. 처음 한규호를 알게 됐을 때, 그와 작전을 했을 때, 그리고 그의 위치를 놓쳤을 때, 그때 자신도 콜론 중장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부국장. 이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콜론 중장이 당황함을 가득 담아 로스 부국장에게 물었다.

“그건 중장님이 설명해주셔야지요.”

매튜 로스 부국장이 오히려 반문했다.

어떻게 위성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그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인 그는 놀라지 않았을 뿐, 이해가 안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콜론 중장은 침묵했다. 정보부서 쪽 놈들은 항상 이랬다.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항상 입을 닫았다.

이번 작전은 중앙정보부와 국방부의 공조라는 틀을 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CIA가 작전을 수립하고, 국방부 산하 아프리콤이 돕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아프리콤은 협조라는 명목아래 CIA의 지시에 따랐다.

산하 근무사령부인 미국아프리카 육군 사령부에 장비를 준비시킨 것도, 미국 아프리카 특수작전 사령부의 병력을 운용한 것도 아프리콤 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의 일환으로 현장 구출요원에 대한 위성추적을 이곳, 아프리콤 작전 상황실에서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작전에서 가장 쉽다고 할 수 있는 위성 추적이 실패한 것이다.

랭글리에서 나온 저 재수없는 놈은 분명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저 현장요원이 사라지게 된 것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정보를 숨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추적 실패에 대한 책임은 이곳 아프리콤에서 뒤집어 쓸 판이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콜론의 기분이 그랬다.

그런 콜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트 로스 부국장은 아무런 말 없이 화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픽셀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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