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1 : 운송인 인도조건 (4)
미션 : FCA - Free Carrier(운송인 인도조건)
d-day(작전 개시일) 2340
10.015499, 43.160656, 보라마 북북서, 소말리아, 아프리카
한규호는 적외선 스코프를 통해 알샤바브가 점거한 오래된 요새를 보고 있었다.
스코프를 눈에서 떼고, 한규호는 에너지바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특수전단에 보급되는 특별한 에너지바를 먹으면서 한규호는 침투 루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위성사진으로 본 것보다 황량했다. 안그래도 건조기후의 말미에 걸려있는 지역인데, 벌목을 얼마나 해댔는지, 민둥산이 여자의 둔부마냥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북한 생각나는구만.”
손가락 두 개 크기에 3000킬로칼로리, 일반 여자의 이틀치 기초대사량을 담고 있는 에너지바를 먹으면서 한규호는 북한에 들어갔을 때 민둥산을 가로지르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참 힘들었는데.”
나무하나, 풀 한포기 없는 민둥산은 엄폐가 정말 힘들었다. 도로와 민가를 피해 그런 민둥산만을 통해서 300km를 이동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한규호는 몸을 떨었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던 바보같던 시기였다.
북한에서는 15일을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는 하루, 이틀이면 일이 끝나니,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생각. 몸에 좋은 좋은 생각.”
미 육군 아프리카 사령부가 있는 비첸짜에서 장비를 보급받고, 몸도 마음도 편한 걸프스트림에서, MC-130으로 비행기를 바꿨다.
컴뱃탈론이라고 불리는 MC-130. 한규호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안겨준 특수전 지원기를 타고, 목적지 10km 지점에서 고공강하했다. 일반 강하와는 달리 최대한 프리다이빙을 하다 최소 안전거리에서 낙하산을 펴는 고공강하가 광신도가 가득한 이 죽음의 땅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규호는 다시 스코프를 통해서 요새를 살폈다. 랭글리(CIA)놈들은 현장에 있어서 모든 결정은 맡긴다고 했다.
한규호는 자신의 경험에 맞춰 움직이기로 했다.
작전시간은 03시 40분. 새벽에 들어갔다 일출 전에 나오기로 결정했다. 경계가 가장 취약한 시간에 들어가 뜨는 해를 등에 지고 나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한규호는 위장막을 폈다. 미군에서 개발한 1인용 위장막을 피고 그 안에 들어가면,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다.
“양놈들이 이런건 참 잘 만들어요.”
한규호는 투덜거리며 위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미션 : FCA - Free Carrier(운송인 인도조건)
d+1(작전 개시 1일 후) 0330
10.015499, 43.160656, 보라마 북북서, 소말리아, 아프리카
작전 10분전, 한규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누워있는 그 상태로 천천히 몸에 의식을 집중했다. 혈류를 높여서 손, 발끝 말단까지 잠들어있던 신경의 말단을 깨웠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한규호는 온몸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다. 그리곤 천천히 위장막을 거뒀다.
하늘 가득한 별이 한규호의 눈에 들어왔다.
달은 없지만, 별들이 하도 많아 재수 없으면 발각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한규호는 우선 위장막을 적당히 접고, 그 위에 돌을 얹어 놓았다.
일반 작전 같았으면 완전히 흔적을 지워야 하겠지만, 이 지역, 비공인 자치정부와 알샤바브라는 무장집단이 싸우고 있는 이 지역에서 치밀하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편하긴 하네.”
한규호는 적당히 주변을 정리한 후, 주머니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한입 깨물었다.
이제 슬슬 움직일 시간이다.
요새까지는 대략 4km.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에너지바를 다 먹은 한규호는 요새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한규호가 위장막을 쳤던 곳부터 요새까지는 작은 구릉이 부채처럼 굽이굽이 구부러져 있는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한규호는 부채 주름 같은 그곳을 이용해 최대한 은신 상태로 몸을 움직였다.
4km.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한시간이 걸리는 거리. 시속 20km로 달리는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속력 기준으로 12분 정도 걸리는 거리가 4km이다.
한규호는 4km의 거리를 4분에 주파했다. 그것도 10kg 정도의 짐을 지고서.
속도로 치면 시속 60km.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
전 세계에서 오직 한규호만이 가진 능력이 바로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였다.
한규호는 심장에서 나오는 혈류, 폐에서 진행되는 기체교환, 세포말단에서 진행되는 세포호흡과 근육에서의 젖산발효까지 그의 의지대로 조절이 가능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산소호흡량을 늘리고, 혈류를 빠르게 돌렸다. 다리 근육에 산소를 더 공급하면서 불필요한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누군가 지금의 한규호를 본다면, 뭔가 시커먼 짐승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4km를 달려 요새 지근 거리에 접근했다.
출발 전 적외선 스코프로 본 것처럼 요새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한규호는 재빨리, 그러나 은밀하게 지정된 건물로 움직였다.
CIA 요원이 감금되어 있는 건물. 아마 요새가 만들어지고, 요새로서 기능을 하던 수백년전에는 말을 키우는 축사로 사용됐을 건물, 그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건물 입구에는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감시병이 앉아있어야 하는 의자는 한규호의 예상처럼 비어 있었다.
문을 열기전, 한규호는 심장박동센서를 꺼냈다. 체온과 심장박동을 동시에 표시하는 센서 화면에는 두 개의 신호가 잡혔다. 경비와 요원이겠지.
한규호는 조심히 건물 문을 열였다. 조심했음에도 문의 녹슨 빗장은 마찰음을 냈다. 그러나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안깨면 좋고, 깨면 처리하면 되니까.
문이 열리자 복도를 두고 양 옆에 2개씩 4개의 공간이 보였다. 아직 어두움이 잔뜩 깔려있는 시간에, 또한 불 빛 하나 들어오지 못하는 건물임에도, 한규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문이 열리자 바로 오른쪽 방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경비 하나가 약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위도가 낮다고 해도, 건조기후의 밤은 추웠다. 더군다나 어느정도 고지라 밤에는 많이 추운 곳임에도 저렇게 잘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누워있는 경비에게 다가간 한주호는 한쪽 손으로 그의 목을, 다른 한쪽 손으로는 목과 등이 연결되는 지점, 기호혈에 손을 댔다. 목에 다가간 왼손으로 양쪽 경동맥을 살짝 잡은 후, 오른손으로 기호혈에 내기를 주입했다.
경비는 잠깐 몸을 떨더니, 금방 잠잠해졌다. 아마 누군가 깨우기 전까지 그는 의식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한규호는 벽에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는 AK 복제소총을 집어 들었다. 얼마나 손질을 안했는지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한규호는 탄창을 분리한 후 탄창 결합부를 손으로 우그러트렸다.
만에 하나, 경비가 깨어난다 하더라도 탄창을 소총에 결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몸을 돌리려던 한규호의 눈에 쓰러져 있던 경비의 앳된 얼굴이 들어왔다.
손을 쓸 때는 몰랐는데, 아직 어린애 티를 벗지 못한 소년병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중3 정도 되는 나이일까?
직접 손을 쓰지는 않았지만, 아마 해가 뜨고 인질이 사라진 것을 알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한규호는 잠시 생각했다.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
“니가 믿는 신에게 물어보렴.”
한규호는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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