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1 : 운송인 인도조건 (3)
미션 : FCA - Free Carrier (운송인 인도조건)
d-4 0130 31.708471, 125.891187 동중국해 해상
“한시 반이네.”
잠에서 깬 한규호는 한껏 기지개를 폈다.
브리핑을 듣고, 작전을 하겠다고 말하고, 고맙다는 악수를 하고, 벙커를 나오자마자 바로 비행기가 한규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놈들은 이런 식이다.
준비 다 해놓고, 바로 진행해버린다.
자신들의 절차 수행에 자신이 있다 이거겠지. 돈도 많겠다. 비행기 한두 대 굴리는 건 우습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활주로에 시동을 걸어놓은 걸프스트림 G650을 타자마자 비행기가 이륙했다.
로건의 전용기일까? 뭐 상관없겠지.
소파에 앉자마자 좌석에 붙은 바를 열었다. 고급 싱글몰트가 라인업을 짜 놓은 듯 종류별로 놓여 있었다.
“췌. 암튼 양놈들은.”
걸프스트림을 몇 번 타봤지만 항상 똑같다. 기내 바에 프리미엄 위스키를 쟁여놓으라고 미 연방항공법에 규정이라도 돼 있는지, 비싼 위스키가 항상 구비돼 있다.
어제 밤에 술을 그렇게 먹었는데도, 밤새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도, 한규호는 30년산 싱글몰트를 더블로 마시고 바로 눈을 감았다. 작전에 들어가면 잠 못 잘 수도 있는데, 잘 수 있을 때 자두고,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자.
작전 개요는 이랬다.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현지 브로커 역할을 하던 CIA 요원이 알 샤바브에 의해 납치당했다.
알 샤바브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인질을 잡았겠지.
몸값을 받을 수도 있고, 정치적인 카드로도 쓸 수 있다. 여차하면 목을 자르고, 차에 매달아 다니면서 내장으로 길바닥 청소를 시킬 수도 있다.
동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알 샤바브만큼 미친놈들이 열심히 전 세계로 퍼 나른다. 극단주의 미친놈 하면 어디 빠지지 않는 탈레반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알 샤바브다.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직원이 납치되었다면 CIA가 움직일 필요가 없다. 미국 시민권자를 최후까지 구출한다는 것이 미국 연방정부의 방침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놈들도 아니고, 더군다나 CIA가 움직일 이유가 없다.
CIA가 움직였다고 해도 한규호에게 의뢰가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번 작전에 보수는 최소 100만 달러가 책정됐다. 한규호가 작전에 참여하겠다고 말한 순간 50만 달러가 뱅크오브아메리카 계좌로 입금된다. 작전이 끝나면 나머지 50만 달러도 들어오고 추가수당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직원을 구출하기 위해 CIA가 100만 달러를 낸다고?
CIA 요원이다. 그것도 단순한 현장 요원이 아니라, 중요 업무를 다루던 책임 요원이라는 것이다.
CIA의 의뢰는 간단하다. 그를 구출해 줄 것. 그 이면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것, 죽었다면 알 샤바브가 CIA임을 인지했는지 확인해 줄 것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독립요원인 한규호가 선택된 것이다.
단독으로 소말리아에 들어가, 요새화 된 기지에서, 한 사람을 구해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현재로서는 한규호가 유일하다.
“그 사람은 단순한 책임요원입니까?”
“소속에 대해서 지금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일 할 수 없는데요?”
“지금 말씀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 제반 사항을 모두 알 수 있게 됩니다.”
“100만 달러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정보제공이 한정적이면 가격이 더 올라가는 것은 상식 아닙니까?”
“작전 완료 이후 추가 협상이 가능합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갑을 관계에서 저희가 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로건이 공손하면 공손할수록 마음에 걸렸다. 일이 어렵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100만 달러의 돈은, 물론 큰돈이지만, 한규호로써는 그리 매력적인 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규호는 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CIA에 빚을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의뢰를 수락한 후 비행기를 타고, 한숨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나자 그제서야 자신 앞에 앉아 있는 백인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미스터 한. 일어나셨습니까?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요?”
170cm, 갈색머리, 염색? 아니, 자연 갈색 같다. 푸른 눈, 미 동부 억양.
로건 비서일까? 전용기 승무원이라고 하기에는 투피스 정장 안에서 느껴지는 몸이 너무 탄탄하게 느껴졌다. 하긴 어떤 미친놈이 CIA 북동태평양지부 부지부장 전용기에 승무원을 두겠어?
“컵라면 있나요?”
장난삼아 말했다. 샌드위치나 있겠지.
“어떤 컵라면으로 드릴까요?”
순간 한규호는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죄송합니다. 마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답변을 예상했는데, 그러면 상큼하게 웃어주고, 있는 걸로 적당히 든든하게 준비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려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컵라면이 있다니. 요즘 걸프스트림 트렌드가 바뀌는 건가?
“로건 부지부장님이 한국에서 오래 근무하셔서 한국음식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몇 종류의 컵라면을 항상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당황한 한규호가 재미있다는 듯 상큼하게 웃으며 말한다.
무섭구나 CIA.
“그럼 뭐 아무거나 하나 주세요. 아 그리고 다른 것도 있으면 좀 주세요. 든든하게 먹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저는 트레이시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가시는 동안 제가 불편함이 없도록 모시겠습니다.”
무섭구나 CIA. 컵라면을 구비해놓는 것은 로건이 좋아한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당황하는 순간적인 반응도 없이 바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마치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시나리오라도 짜놓은 듯 한 느낌이다.
저런 애를 비서로 쓰고 있나? 나도 CIA에 취직해볼까? 저 언니 붙여달라고 해볼까? 분명 오케이 할 텐데. 계약금으로 왕창 뜯어내고,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 펜트하우스를 숙소로 달라고 해도 바로 오케이 할 텐데.
한규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트레이시가 쟁반에 라면과 음식을 담아왔다.
“밥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참치 샌드위치와 가벼운 치킨 샐러드 함께 드시죠.”
쟁반을 내려놓는 모습이 현직 항공사 승무원 같다. 현직 승무원 같은 저 여자도 필요할 때는 사람 목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꺾어버리겠지.
한규호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해장국을 한 그릇 먹고 나서 별로 먹은 것이 없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자. 그의 철칙이다.
컵라면에 샌드위치 두 조각, 그리고 샐러드를 다 먹고, 부족해서 우유에 오레오까지 찍어 먹고 나서야 새벽의 식사가 끝났다.
담배 한 대를 다 필 때까지 기다렸다가 트레이시가 말을 걸었다.
“서류를 드리겠습니다. 숙지 이후 돌려주시면 파기하겠습니다.”
가방에서 꺼낸 서류철을 받아 건네준다. 서류에는 일정, 작전내용, 현지 상황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다.
4시간 이후에 쿠웨이트에 중간 급유를 위한 기착, 그리고 다시 6시간 이후에 이탈리아 북부 비첸짜(Vicenza)에 착륙한다.
비첸짜. 미 육군 아프리카 사령부가 있는 도시.
그곳에서 장비를 수령하고, 이후 작전지역에서 고공강하. 작전 지역에 돌입한 이후 20시간 대기. 그리고 인질 구출하고, 탈출지역으로 10km 이동 후 헬기로 탈출한다.
작전 주체는 CIA이고, 표면적으로 한규호는 CIA특작요원이 된다.
국방부와의 협조로 한규호에 대한 지원은 육해공 전 군에서 지원되며, 지원은 훈련으로 기록된다.
한규호의 기록은 남지 않는다.
작전 지역은 소말릴란드 아우달 주 주도인 보라마(Boorama) 북북서 방향 10km 위에 위치한 알 샤바브 신규 보급기지이다.
당초 케냐 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계해 소말리아 남부지역에 지배력을 떨치고 있던 알 샤바브가 최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와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새롭게 점령한 지역이다.
소말릴란드가 자치정부가 자치민병대를 동원해 진압작전에 들어갔지만 한번 크게 박살이 나고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다.
침투해야 하는 기지는 100여 년 전까지 실제 요새로 사용됐던 산지에 위치해 있다.
절벽 암반을 파서 구성된 기지인데, 이번 작전을 위해 위성에서 24시간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위성촬영으로 인질은 절벽 요새가 아닌 외부 건물에 감금되어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CIA 요원이라고 알아냈으면, 훨씬 더 깊숙한 곳에 숨겨놨겠지. 아니면 목을 잘랐던가. 아직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규호는 판단했다.
주둔 병력은 200여명 정도로 파악되는데, 남부에서 정예병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서에 적혀있다.
한규호는 아프리카 민병대와 대여섯 번 교전을 벌인 바 있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약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민병대는 군사적으로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필로폰을 치사량까지 맞아대니 그게 무섭다. 나토규격 5.56mm 총탄을 맞아도 좀비처럼 덤벼드는 그들의 무서움은 그 유명한 블랙호크다운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바다.
마약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합쳐진다면 말 그대로 광(狂)전사가 된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는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보면 마르크스에게 엄지척을 해주고 싶다고 한규호는 생각했다.
마지막 장에는 지급 장비가 명시돼 있다. 한규호는 목록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너무 많다. 이대로라면 걸어가다 발소리에 발각되겠다.
“특별히 원하시는 장비가 있으십니까?”
트레이시가 물었다.
“딱히 선호하는 장비가 있는 것은 아닌데······. 소음기 달린 권총 한 자루, 그 외에 무기는 필요 없고. 비상식량, 이것도 빼고, 뭐 필수적인 것 말고 전부 다 뺍시다.”
“비상상황에 대비해야 되지 않나요?”
트레이시가 놀라서 반문했다.
지금 필로폰과 코란에 취해있는 극단주의자 한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사람을, 아마도 걷지도 못할 사람을 구출해 와야 하는 상황인데, 최소한으로 가겠다고?
트레이시는 이 작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CIA에 들어와서 많은 작전에 참여하고 관여했다.
이 작전은 불가능하다.
일례로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이었던 넵튠 스피어만 해도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라는 DEVGRU(Naval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 : 미 해군 특수전개발단) 타격팀만 25명, 스텔스 기능이 있는 페이브호크 2대, 치누크 2대를 동원해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구출임무는 암살임무보다 난이도가 높다.
소말리아에 비하면 파키스탄은 대도시와 다를 바 없다. 인터넷도 터진다. 실시간 정보 수집이 가능하다.
그에 비해 소말리아는 위성자료에 의존해야 한다. 200명이 넘는 적 한가운데에서, 걷지도 못하는 인질을 데리고 10km를 걸어 나와 헬기에 탑승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한규호는 살짝 짜증이 났다.
설명해줘야 하나? 납득시켜줘야 하나?
“제가 당신에게 허가 받아야 하는 사항이 있으면 지금 알려주세요.”
트레이시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지시하시는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당연히 알겠지만 작전 들어가면 머리 위에 UAV 없어야 합니다.”
“네. 그 부분은 이미 작전에 적용되어 있습니다.”
한규호는 기분이 좋아졌다. 미녀에게 한방 먹였다.
그는 근엄한 얼굴로 서류를 넘겨주었다. 세부 내용은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있다. 이제 자자. 100만 달러, 12억 원이면 적당한 듯싶은 작전이다.
그는 천천히 잠에 빠져 들었다.
“참. 작전명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막 잠이 들려는 찰나에 잠 깨우는 소리에 한규호는 순간 또 짜증이 났다. 오늘 왜 이렇게 잠자기가 힘드냐······.
“음······. FCA가 좋겠네요.”
“FCA요?”
“Free Carrier(운송인 인도조건), 인커텀스 몰라요?”
“아······. 운송인 인도조건······.”
FCA, Free Carrier (운송인 인도조건).
수출하는 회사가 수출품을 수입 항구까지 운송하는 조건이다.
즉 태청무역 수출입4과 과장 한규호는 수출자인 자신이 물품인 구출자를 지정된 장소로 운반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작전명을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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