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8화 (1/386)

MISSION 02 : TBD (1)

5월 6일

지역

기계가 카드를 뱉어냈다. 딜러는 그 카드를 조심스럽게 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밀었다.

남자, 40대 후반에, 비싸 보이지만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반지를 양 손에 몇 개씩 낀 남자는 딜러가 밀어낸 카드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두 장의 카드를 겹쳐서 조심스럽게 카드를 쪼았다. 슬쩍 보이는 검은색. 스페이드, 그리고 숫자 8.

그런 남자를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한규호도 그 중 하나였다.

바카라(BACCARAT).

성질 급한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테이블 게임. 플레이어 측과 뱅커 측이 각각 2~3장의 카드를 가지고 가장 9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홀짝처럼 단순한 게임.

그 바카라 테이블에서 플레이어의 카드를 든 남자가 아주 조심스럽게 카드를 쪼고 있었다.

한규호는 답답했다.

그냥 카드를 받았으면 바로 뒤집으면 되지, 여기 이 도박에 미친놈들은 카드를 받을 때마다 저 지랄들을 하고 있으니. 아주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일반적인 카지노의 바카라 테이블이었다면, 딜러는 카드를 넘기지 않는다. 딜러 스스로가 바로 공개하고, 승패가 결정난다. 베팅부터 확인까지 2분도 걸리질 않는다.

그런데 이놈의 카지노, 회원제로 운영하는 여기에서는 게임을 할 때마다 저 짓거리를 해대서 게임 진행이 아주 느렸다.

그럼에도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신성한 의식인 것 마냥 카드를 쪼았다.

정성스럽게 쪼면 쫄수록 내추럴 나인으로 바뀌기라도 할 것 마냥 온 신경을 다해 카드를 쪼고 있었다.

물론 한규호도 그랬다. 아니, 그래야 했다.

자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이 테이블에서 도박에 미친 돈 많은 졸부로 보여야 했으니.

독립요원 한규호.

미 정부가 주목하는 기프티드 후보는 골든트라이앵글의 한 고급 회원제 카지노의 바카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며칠 전 김형원 사장의 명령에 따라서 그는 이곳에서 졸부 행새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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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태청무역

산성동, 성남시, 경기도, 대한민국

태청무역 사장실에 앉아있는 한규호에게 김형원 사장이 명함크기의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었다.

“뭡니까? 이게?”

약간 촌스러운 황금빛 카드 전면에는 Primal Casino라는 글씨가, 그 밑에는 VIP 멤버라는 등급과 David Park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3국의 접경지인 골든트라이앵글에 있는 회원제 카지노 VIP카드야. 여기서 사람하나 잡아와라.”

“누군데요?”

“몰라.”

한규호는 어이가 없었다.

“예? 모른다고요?”

“그 쪽에서 활약하는 중국 국가안전부(國家安全部 / Ministry State Security, MSS) 위장요원이야. 정체는 모르고. 1년 전부터 중국 쪽에서 선이 끊긴 모양이더군. 찾아다닌다고 여기저기 들쑤시는데 소문이 안 날래야 안날 수가 없었지.”

김형원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깊게 빨아들인 다음 하늘로 연기를 뿜어냈다.

“우리한테까지 소식이 들려왔는데, 크게 신경 안 쓰고 있었어. 그냥 요원하나가 부패해서 여기저기서 돈 받고, 이야기 흘리고. 그런 단순한 사안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

“아니라면?”

한규호는 허락도 없이 김형원 사장 앞에 놓인 담배갑을 집어 들고, 그 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냈다.

김형원 사장은 그런 그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두 사람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사장실을 가득 채웠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内閣情報調査室 / Cabinet Intelligence and Research Office, CIRO)에서 정보가 흘러 나왔어. 중국의 동남아시아 전역에 대한 작전 수행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고, 아르바이트로 북한 쪽 돈 세탁도 해주고 하다가,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뭔가 트러블이 발생했고, 요원이 잠적했다고. 그런데 그 트러블이 서로 죽이네 살리네 어쩌네 하는 양국 관계를 한 번에 박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그 트러블이 뭔데요?”

“몰라.”

한규호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 양반이 장난치나 지금.

“아니. 그럼 지금 저더러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안을 가지고 있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서 데리고 오라는 말인가요?”

“정확해.”

한규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김형원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형원 사장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한규호는 자신 앞에 놓인 카지노 골드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럼 이 카드는요? 이건 뭡니까?”

“트라이앵글 지역에 태국, 라오스, 미얀마가 공동개발한 자유경제구역이 있어. 중국정부가 위장 자본으로 투자했고, 그때 중국 국가안전부에서 거기에 네트워크를 깔았지. 그 카지노를 설립한 게 중국 놈들이야. 똑똑한 놈들이야. 카지노라면 돈이 넘쳐나고, 정보도 넘쳐흐르지. 거기다가 높은 분들 접대도 할 수 있고.”

한규호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카지노. 아주 좋은 선택이다.

그건 그거고.

“그런데요? 중국 놈들 본거지 한 가운데에서 어쩌라고요? 그놈들도 눈 벌개져서 찾고 있다면서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취합했을 때, 결국 마지막 남은 선이 그곳 하나뿐 이었어. 그리고 우리에게 협조하는 태국국가정보부(NIA)에서 위장 신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곳도 그 곳 뿐이고.”

김형원 사장의 말에 한규호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건 성공하면 기적이네요. 아니. 성공할 수가 없어요. 목표에 대한 정보도 없이.”

그런 한규호의 말에 김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네가 못하면 누구도 못하겠지. 일 잘 안 풀리면 휴가라고 생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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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프라이멀 카지노

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

카드를 쪼던 남자는 숫자를 확인하고 나서 딜러를 노려보며 카드를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는 카드를 입으로 가져가 이빨로 서너 번 씹었다.

미친놈.

그 남자를 보면서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 카지노라는 장소가 미친놈 천지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사업한다는 저 40대 후반의 남자는.

주 선생이라고 자신을 불러달라는 저 남자는 유난히 더 그랬다.

주 선생은 몇 번 씹은 카드를 퉤 하고 뱉었다. 침이 잔뜩 묻은 카드가 딜러 앞으로 떨어졌다.

태국인 딜러는 아무런 감정 없는 기계처럼 침이 잔뜩 묻어있는 카드를 집어 들고 펴서 테이블에 놓았다.

“뱅커(banker) 윈(win).”

테이블의 칩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한규호도 자신이 베팅한 4000달러 한화 약 480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카드를 오픈한 40대 후반의 남자가 딜러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한규호도 딜러를 노려보았다. 아니. 노려보는 척 했다.

한규호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뭐가 재미있지? 이런 단순한 게임이?

단순한 홀짝 게임이다. 아니, 홀짝 게임보다도 못하다.

확률이 45% 정도 밖에 안 된다. 수학시간에 확률과 극한을 배운 고등학생이라도 게임이 계속될수록 결과는 0으로 수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제로로 향해 달려가는 이 바보같은 게임에서 무슨 돈을 따겠다고 이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표현할 수는 없지. 한규호는 이곳에 온 일주일간 열심히 도박쟁이의 롤을 수행해왔다. 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잘.

그래서 한규호도 딜러를 노려보았다.

그런 한규호의 동조에 힘을 얻었는지, 40대 후반 중국인 남자, 주선생은 입을 열었다.

“아주 씨발 카드 좆같이도 주네. 좆 달려 있다고 카드 좆같이 주나?”

중국어로 이야기 했음에도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알 것 같았다.

물론 중국어를 모르는 태국인 딜러도.

“죄송합니다.”

딜러가 기계 같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한걸 알면 미안할 짓을 하지 말아야지. 좆같이 생겨서 좆같은 카드만 주네.”

주 선생이 영어로 말했다. 그는 항상 이랬다. 잘 되면 팁을 남발하고, 안되면 욕을 남발하고.

“어머. 주 선생님. 오늘 잘 안 되시나 봐요.”

뱅커에 500만 원 정도를 베팅한 여자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아. 진짜. 오늘 안 풀리네요. 그나저나 여사님은 오늘 패가 좋으시네요.”

“호호호. 어제 3만 달러 정도 빨렸는데, 카지노도 미안한가 봐요.”

태국 무슨 장관의 아내라는 여자는 오늘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3만 달러. 한화로 3600만원.

한국에서 일반 직장인 에게는 연봉에 필적하는 금액.

태국의 노동자는 수 년을 모아야 하는 금액.

그러나 이곳에서 하룻밤에 쓰기에 많은 돈은 아니었다.

한규호는 이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재미없는 일을 지금 며칠 동안 하고 있다.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하는 도박은 도박꾼들에게 꿈이겠지만, 한규호에게는 지겨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왜? 가시려고?”

주 선생이라고 불리는 중국인 남자가 일어서려는 한규호에게 물었다.

“오늘 너무 빨리네요. 이럴 때는 쉬어줘야죠.”

한규호가 웃으며 답했다. 요 며칠간 같은 테이블에서 안면을 익혔기 때문인지 주 선생이라는 호구는 한규호에게 살갑게 굴었다.

“그럴 때일수록 더 공격적으로 나가야 하는 거야. 흐름은 돌아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억지로 끌고 오는 거야. 아니, 그렇게 게임을 많이 했다면서 그것도 몰라?”

주 선생이 한규호를 잡았다.

이 양반아. 홀짝 게임에서 흐름이 어디 있어? 고등학교 때 독립 확률 안 배웠나?

한규호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형님. 저는 기가 약해서 그런지, 흐름을 끌고 올 자신이 없네요. 오늘 너무 빨렸어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한규호가 말했다.

잡지마 이 양반아. 피곤하단 말이야.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돌아오라고. 해 뜰 때까지 있을 거니까.”

해 뜰 때라면 적어도 10시간을 한자리에 앉아서 카드를 본다는 말이다.

물론  먹을 것, 마실 것 다 가져다 주고, 피곤하면 마사지도 해주니 앉아 있으려면 10시간은 앉아 있을 수 있겠지만, 매순간 카드를 보고, 베팅을 하면서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일을 몇 시간 동안 한다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느낌 오면 내려올게요.”

한규호는 가볍게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보증금 10만 달러, 최소 베팅금액 1000달러짜리 VIP 전용 방을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자 의자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그를 맞이했다.

완(Waan)이라는 이름의 카지노 직원, 그리고 한규호가 이 카지노에 머무는 동안 그를 담당하는 전담직원.

“수고하셨습니다.”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감색 투피스를 입은 그녀가 시원한 물수건을 건네며 한규호에게 미소지어주었다.

“어.”

대충 건성으로 답한 한규호는 수건을 받아들고 목 부위를 대충 닦은 후 여자에게 넘겼다. 여자는 무슨 비싼 물건을 받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받았다.

“방으로 모실까요? 아니면?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여자가 물었다.

“위스키.”

한규호가 걸음을 떼며 최대한 건조하게 말했다.

돈 많고 재수 없는 졸부처럼.

“알겠습니다.”

대답이 한규호를 따라 왔다.

* TBD : 곧 결정 됨(to be deter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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