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212화 (에필로그) (212/212)

212. 마지막 전투, 에필로그

아이작의 피부가 붉게 물들며 몸이 부풀어 올랐다.

5m에 달하는 근육질의 덩치와, 이마에 자라난 두 개의 검은 뿔.

양팔에 생성된 묵직한 건틀릿까지.

‘저건….’

기록상으로만 남아 있는 고대 마족.

그중에서도 폭식의 마왕의 유능한 부하였다고 불렸던 말리고스였다.

‘적어도 외관은 똑같다.’

말리고스는 전투, 그것도 육탄 돌격에 특화된 고대 마족이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력했냐면….

과거, 말리고스의 상식을 벗어난 힘과 방어력 때문에 제국 2개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9서클의 대마법사가 목숨을 걸고 막아냈는데도 그 정도의 피해였다고 한다.

“아. 그렇게 변신하면 날 이길 수 있다 이 말이냐?”

김민준은 놈을 떠보기로 했다.

아무리 마왕의 힘을 건네받았어도, 알맹이는 인간일 뿐.

마법사였던 아이작이 고대 마족의 힘을 제어할 수 있을 리는 없을 터.

“그 기고만장한 얼굴이 절망으로 물드는 걸 봐 주마.”

아이작이 자세를 낮췄다.

놈의 다리 근육이 터질 듯 불끈거리기 시작했고,

파삭!

지면이 움푹 파이며 거구의 덩치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퍼어엉!

주먹과 주먹의 격돌.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김민준은 아이작의 힘에 밀려 뒤쪽으로 날아갔다.

“크하하하하하! 온몸에 흘러넘치는 힘! 순수한 완력! 이거라면 아무리 네놈이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동안 무슨 짓을 해도 통하지 않던 김민준에게, 처음으로 피해를 입혔다.

건틀릿을 타고 느껴지는 이 타격감.

확실하다.

놈은 힘에 밀려, 유효타를 허용했다.

“어디 한번 막아 봐라! 방금처럼 날 얕보고 깔보란 말이다!”

아이작은 이 기세를 틈타 전투를 이어 나갔다.

퍼엉! 퍼벅!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운 구도였다.

“크하하하! 네놈의 그 자랑스러운 흑마법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신난 듯 울부짖던 아이작은, 갑작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뭐지? 이 섬뜩한 느낌은?’

자신이 물러난 게 아니다.

고대 마족의 힘이 위험을 감지하고,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지금까지 맞았던 것 중에 제일 아프긴 하네.”

김민준은 해진 전투복을 탈의하며,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이작은 말리고스와 유사한 힘을 가졌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할 뿐이었다.

물론 말리고스를 실제로 상대해 본 적은 없다.

허나, 자신의 몸은 비교적 멀쩡했다.

유효타를 수십 대나 허용하고도 말이다.

“이게 말리고스라고? 그랬으면 과거 마법사 부대에 입구 컷이다. 이 씹새야.”

스스스스스.

김민준은 증폭 회로를 켠 채, 마인화를 사용했다.

몸에서 세차게 방출하는 검은 연기가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건… 그 모습은…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아이작은 마인화를 마친 모습을 보자,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붉게 빛나는 안광.

검게 물든 전신.

그리고, 바람에 휘달리는 거대한 망토.

몸이 도망쳐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건 네가 알 필요 없고, 죽었다고 복창해라. 뒈질 때까지 두들겨 줄 테니까.”

김민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작을 향해 돌진했다.

방금 전까지 스킬을 사용해 몸에 적지 않은 부담이 가해진 상태.

증폭 회로까지 사용해 마인화를 강화했으니, 변신의 유지 시간은 기껏해야 10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어설프게 마족의 힘을 흉내 내는 아이작에게는 말이다.

쿠와아아앙!

“이게 진정한 완력이고, 이게 진정한 힘이다.”

그가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지면이 움푹 파이며 크레이터가 발생했다.

얼굴에 정타.

얼굴 측면에 정타.

복부에 정타.

등에 정타.

그야말로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크아아악!”

전투가 지속될수록 아이작의 몸을 감싼 붉은 기운이 떨어져 나갔다.

마왕의 권능조차, 전력을 다하는 김민준을 어찌할 수 없었다.

“너 이제 갑옷 다 벗겨졌다. 맨몸이네?”

“허억… 크허억….”

고작 3분의 짧은 시간.

승리를 확신했던 아이작은,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나는… 변수에 대비해 마왕의 힘을 빌렸다.’

그 변수는 바로 김민준.

침략에 있어 아주 작은 불확실한 요소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혼을 대가로 걸면서까지 마왕의 힘을 빌렸다.

‘마왕의 군단, 그림자 백작, 마왕의 권능. 그리고 9서클의 대마법과 노바 제국의 병력.’

이 모든 걸 동원하고도 지구 침략에 실패했다.

단 한 명의 인간 때문에.

“도대체 그 말도 안 되는 힘을 무슨 수로 얻은 거냐!”

김민준의 힘이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 한들 맹수 아닌가.

그런데 막상 마주치고 보니, 놈은 단순한 맹수가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 그 자체였다.

“이건… 갑자기 몸이 왜 이러는….”

아이작이 경악할 틈은 없었다.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왕의 힘을 무리하게 끌어다 쓴 탓에, 몸이 견디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붕괴했다.

“안 된다!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단 말이다! 내가 수십 년간 계획한 지구 침략이….”

“거 참 말 많네. 날 어떻게 해 보려면 마왕이 와야 할 거다. 물론 인과율인지 뭔지에 묶여서 못 움직이겠지만.”

김민준은 주먹에 온 힘을 집중시켰다.

“갈 땐 가더라도, 최대한 고통스럽게 가야지? 어딜 편하게 갈려고.”

쿠와아아아앙!

“뒈져!”

“끄아아아아아아!”

아이작은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몸이 터져 나가며 죽음을 맞이했다.

“후우. 질긴 놈. 이걸로 끝났네.”

노바 제국의 수장이 죽었다.

이 전쟁은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

마인화의 변신 시간이 유지되는 동안, 노바 제국의 병사와 마족들만 쓸어 버리면 끝이다.

“아직 5분 남았네. 5분이면 다 정리하고도 커피 한잔할 수 있겠네.”

그가 말을 마치고 상공을 향해 도약하려던 순간,

스으으으으.

검은 포탈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상공을 뒤덮고 있던 마족들은 포탈이 나타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퇴했다.

마왕의 힘을 빌린 아이작이 죽음을 맞이했다.

계약이 끝났으니, 마족들이 더 싸워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두 번 다시 지구를, 특히 대한민국을 얕보지 마라.”

김민준은 숨을 크게 들이켠 뒤, 함성을 질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투를 벌이고 있는 헌터들.

그리고 대피소에서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노바 제국의 수장은 내 손에 죽었다! 마족은 모조리 도망쳤다!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뒈지기 싫으면 무기 버리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노바 제국의 병사들은 아이작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16시간의 전투.

짧지만, 무엇보다 격렬했던 전쟁이 막을 내렸다.

**

그 뒤로 1개월이 지났다.

김민준이 경고했던 외부 차원에서의 침략은 실제로 발생했고, 전 세계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세계 언론사들은 ‘그럼에도 그 정도로 끝난 것이 기적이다.’라며 입을 모아 김민준을 칭찬했다.

실제 그는 전 세계를 구한 영웅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검은 별. 상공에 떠오른 별 덕분에, 사망자가 세 자릿수를 넘기지 않았습니다. 이건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전 분명, 몬스터의 손톱에 가슴을 꿰뚫렸습니다. 아,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상처 하나 입지 않았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는 외부 차원의 수장을 단독으로 상대했습니다.

-남아 있던 영상 기록을 보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없었더라면… 지구는 외부 차원에 의해 지배당했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김민준을 영웅으로 추앙했다.

그 열기는 수개월이 지나도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마지막인가.”

그가 오히려 전 세계를 향해 사과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명도 죽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싸워 주신 모든 분에게 고맙다.

김민준은 그 말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을 찾아가 조의를 표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이런 그의 행보에 전 세계가 감동했으며, 다른 사람들 역시 사망한 병사들의 넋을 위로했다.

“나라를 위해 싸워 줘서 고맙다.”

한국을 지키다 전사한 4명의 헌터.

김민준은 국립묘지에 안장된 용감한 병사들을 향해, 거수경례했다.

그들의 잊지 않기 위해, 이름을 몇 번씩 되뇌었다.

“전 세계에서 한국 헌터의 전사자가 가장 적게 발생했다라.”

역사적으로 이토록 적은 전사자가 발생한 전쟁은 없었다.

그래도 자신에게는 아쉬웠고, 미안했다.

단 한 명도 죽게 하지 않고 싶었으니까.

“최인호 병장. 심강민 병장. 이수호 일병. 김민수 상병. 영원히 잊지 않겠다.”

편히 쉬어라. 그리고 고맙다. 나라를 위해 싸워 줘서.

**

그 뒤로 1년이 넘는 시간이 더 흘렀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전쟁의 흔적은 대부분 복구되었으며, 사람들의 상처 역시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다.

“참나. 무슨 게임도 아니고. 별을 2계급 특진시키는 군대가 어디 있어?”

김민준은 전쟁의 공을 인정받아, 2계급 특진으로 헌터군 대장의 자리에 앉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훈장과 함께, 엄청난 액수의 포상금, 아이템 등등.

입으로 말하는 데에 끝이 없는 정도의 포상을 받았다.

“어디 있기는. 여기 있지.”

자신의 한탄에, 옆에서 장교 한 명이 다가와 팔짱을 끼워 왔다.

손은서 중위였다.

“자기는 8개월 전에 이미 진급 확정이었는데, 그럴 자격이 없다며 거부했다면서. 이젠 더 무를 수도 없어. 그냥 받아들여.”

“그래 보이긴 하더라. 신세형 씨가 진땀을 빼던 걸 보면.”

“1년 전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자기가 무슨 신이라도 돼? 그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했어. 자기가 구한 생명은 수십억이 넘는다고! 수십억이!”

김민준은 자신을 위로해 주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왜 또. 무슨 장난치려고.”

“손은서. 내 여자친구 되더니 많이 컸다?”

그는 그녀의 볼을 두 손으로 쥔 채 조몰락거렸다.

“요즘 들어 귀엽다니까. 남자친구 위로할 줄도 알고.”

“아, 하지 말래도. 화장 다 지워지잖아!”

“뭐 어때. 내 눈에만 귀여우면 됐지.”

“못 살아.”

과거, 약속했던 대로 김민준과 손은서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평소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김민준만 보면 애교 많은 강아지로 변했다.

그 차이가 얼마나 컸으면, 같은 부대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달라붙냐. 덥다.”

“좋으니까 달라붙지. 내가 너 하나 때문에 이 악물고 장교까지 올라온 거 몰라?”

손은서는 히히 웃으며 자신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근무 시간 중, 휴식 시간만 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동안 오래 참았으니,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면서.

“그런데… 정말 1년 뒤에 전역할 거야? 안 아까워?”

그녀는 문득 아쉬움이 담긴 말투로 질문했다.

“목표를 달성했는데 굳이 더 있을 이유가 없지. 계급이 올라갈수록 군 생활이 재미없어졌거든.”

헌터군에 복무한 지 4년 차.

자신은 장군이라는 끝판왕 계급으로 진급했다.

4성 장군.

하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위치.

지금 당장 저 산을 깎고, 옆에 있는 산을 옮기라고 해도, 그 말대로 이루어지는 정도.

“남은 1년 동안 밑에 있는 병사들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지. 그리고 난, 애초에 오래 복무할 생각은 없었다.”

“알아. 5년 안에 별을 달고 전역하겠다면서. 그걸 진짜로 해낼 줄은 몰랐지만.”

“사실 전역한 뒤에도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긴 해.”

“뭔데?”

“일단 던파 회사에서 흑마법사란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 줄 계획이거든? 던파x김민준 콜라보로. 모션 촬영 일정이 잡혀 있지.”

“…네가 그렇게 좋다는데 어쩌겠어.”

“좋지. 무조건 개사기 캐릭터로 만들어 달라고 말해 뒀다.”

“그래. 그것참 좋겠네.”

손은서는 졌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길래, 뭔가 있는 줄 알았다.

“1년 뒤에 루나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까, 신경 좀 써 주고. 김서현이랑 이봉구는 알아서 잘하고 있고. 그리고….”

김민준은 구석진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로브가 장식되어 있었다.

“이스가르드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내 동료들. 잘 지내는지 한번 보러 가려고.”

녀석들이 잘 지내면 딱히 건넬 말은 없을 것이다.

만약, 녀석들의 삶이 힘들며.

도와 달라고 부탁해 온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와줄 생각이었다.

‘물론 이건 내가 전역한 뒤의 이야기다.’

현재 자신이 해야 할 국방의 의무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걸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몸도 근질거리는데, 오랜만에 던전 정리 싹 해 볼까.”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자신이 있는 이상, 몬스터와 외부 침략에 의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