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침략-3
방어력을 극대화한 성기사와, 뒤에서 보조해 주는 사제.
그리고 적들의 기력을 깎아 내는 주술사.
공격이 아닌, 방어만 놓고 본다면 최고의 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대마법사 아이작의 호위를 맡을 정도라, 각 직업군 중 상위권에 있는 자들이다.
‘뭐 이런 무식한 놈들이….’
제아무리 김민준이라 하더라도 1시간 이상은 거뜬하게 버틸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과거 악명높았던 흑마법사라 할지라도,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생각했다.
‘다르다. 아이작 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분명 아이작 님은 차원문을 열기 전 병사들을 세워 놓고 연설을 했었다.
승리는 이미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다.
마족까지 포섭했으니 마음껏 즐기면 된다고 말이다.
특히, 과거 수많은 제국을 공포에 떨게 한 흑마법사 김민준은 약해진 상태라는 것을 강조했다.
‘저게… 저게 약해진 상태라고?’
김민준.
놈은 어지간한 전사들은 들지도 못할 검을 들고 휘둘러 댔다.
흑마법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놈의 부하로 추정되는 인간들이 합류하고 나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졌다.
저 무식한 인간들이 마치 오늘만 사는 것처럼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네놈들이 발악해 봐야 아이작 님에게는….”
“말이 왜 이렇게 많아? 죽어.”
“컥!”
김서현 상사가 성기사를 처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팀원들 역시 사제와 주술사를 처치했다.
외양은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헌터들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기분 나쁜 놈들.”
손은서 소위는 축 늘어진 놈들을 보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훈련을 반복했음에도,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무리하게 스킬을 남발해 길을 뚫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사이렌과 방송.
파괴된 건물과 혼란에 빠진 시민들.
상공에 바글거리는 몬스터와 그런 놈들에게 미사일을 퍼붓는 전투기까지.
현 상황은, 그야말로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쉴 시간 없다. 너희들이 1분 쉴 때마다 시민들이 1명씩 죽어 나간다고 생각해라.”
“예!”
“이대로 계속 뚫고 간다. 포션 마시고 바로 달려!”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팀원들에게 분노를 느낄 틈도 주지 않았다.
노바 제국이 기습적으로 침략해 온 데다가, 아이작이 보란 듯이 포탈을 열고 있다.
놈을 저지하는 것이 늦으면, 병력이 추가로 동원될 것이 확실했다.
‘루나가 시간을 끌어 주고 있긴 하지만, 이것도 오래 못 간다.’
사실 팀원들이 앞서 싸울 때 나설까 말까 망설여지긴 했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있고, 팀원들은 필요 이상으로 무리해 길을 뚫고 있었으니.
‘아니. 이게 맞다. 내가 없으면 한국은. 아니, 지구는 끝이다.’
곧 고개를 저어 잡념을 떨쳐 냈다.
아이작.
놈을 처리할 헌터는 자신밖에 없다.
만전의 컨디션으로 놈을 상대해야 했다.
“팀장님! 걱정하지 마십쇼!”
“이 정도야 팀장님의 특별 훈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팀원들은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걱정 말라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지. 덕철이.”
“중사 김덕철!”
“아껴 둔 스킬. 지금 사용할 때다. 이다음부터는 강행 돌파해야 된다.”
“예! 알겠습니다!”
곰 같은 덩치를 자랑하는 김덕철 중사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등에 메고 있던 샷건을 집어 들었다.
드워프가 특수 제작해 준 샷건, 블랙 타이거였다.
“김덕철 중사 뒤로 2명 보조해 주고. 나머지는 병사들 상대한다.”
“예!”
블랙 스완 팀원 전원은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김덕철 중사는 그중에서도 탄환의 위력을 높일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정확히는 탄환의 회전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스킬, 불릿 토네이도.
김민준은 그 가공할 위력을 눈여겨보고 드워프에게 따로 부탁했었다.
드워프의 무기와 김덕철 중사의 스킬이 합쳐진다면, 성기사의 두꺼운 벽을 뚫어 버릴 수 있을 듯했기에.
쿠아아아앙!
“커어어억!”
“뭐,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신성을 최대로 끌어올린 보호막이!”
실제 그 위력은 대단했다.
똑같이 앞을 막아선 성기사의 보호막을 방아쇠 한 번에 깨 버린 것이다.
“크으…. 반동 장난 없네.”
“뒤에서 두 명이 받쳐 줘도 5m는 밀려난 것 같습니다.”
이처럼 블랙 타이거는 그 자체로도 엄청난 위력과 반동을 자랑한다.
거기다 김덕철 중사의 스킬까지 더해졌다.
아무리 성기사라 할지라도 그 파괴력을 견딜 수 없었다.
다만,
“죄… 죄송합니다. 전력을 다했더니 어지럽습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횟수는 기껏해야 세 번이 끝이었다.
그마저도 지금처럼 위력을 최대로 높이면, 한 번 사용하고 기절해 버렸다.
“고생했다.”
김민준이 손을 까딱이자, 나이트 워커가 그의 몸을 휘감은 뒤 대피소로 움직였다.
“앞으로 1번이다. 1번만 더 뚫으면 된다. 할 수 있겠냐.”
아이작.
놈은 무슨 자신감인지 호위 병력을 9명만 배치해 놨다.
그것도 방금처럼 성기사 한 명에 사제 한 명, 주술사 한 명으로.
여기서 주목할 점은, 마법사가 거의 없다는 것.
‘이상한데. 놈이 마법사인 만큼 마법사의 가치를 모를 리가 없는데.’
그래서 노바 제국이 침략해 왔을 때, 소환수를 풀어 마법사의 동향부터 파악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 마법사였으니까.
‘마법사가 작정하고 스킬을 연발하면, 절망의 별이 금방 깨진다. 광역 마법 하나는 기가 막힌 놈들이니.’
상공을 올려다보면, 이미 스킬이 흡수한 피해량은 절반을 넘어섰다.
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마법사 부대가 없어서 이 정도로 그쳤다. 뭔지는 몰라도 이 기회는 놓칠 수 없지.’
마법사 부대를 처음부터 내보내지 않은 이유가 뭘까.
뭘 노리는 걸까.
머리를 몇 번 굴려 봐도 아이작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아껴 둘 이유가 없을 텐데. 내 입장에서야 고맙다만.’
이 기세를 몰아 놈을 친다.
지금부터는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팀장님이 명령하신다면 10번이라도 더 뚫겠습니다!”
“이놈들 별것 아닙니다. 자신 있습니다!”
“모조리 때려잡고 포상 휴가 왕창 받을 겁니다!”
혼자가 아니니까.
과거에 자신을 따르는 흑마법사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헌터들이 있다.
‘아이작. 거의 다 왔다. 넌 이제 죽었다고 복창해라.’
난 네가 알고 있던 흑마법사가 아닐 거다.
**
“하나부터 열까지 쉽게 되는 일이 없군.”
한편.
아이작은 예상치 못한 방해에 화가 난 상태였다.
설마 했던 고대 마족이 지구, 더군다나 한국에 정착했을 줄이야.
“이해가 가질 않는군. 내가 그토록 길들이려 했는데도 실패했다. 그런데 김민준이 성공했다는 건가?”
더욱 열받는 건, 애써 만든 실험체가 김민준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고대 마족의 실험체, 루나.
녀석을 만드는 데 많은 대가를 치렀다.
고대 마족의 세포 몇 개를 얻는 데만 해도, 수만 명의 인간을 마족에게 바치지 않았는가.
“요구하는 건 다 들어줬다. 그런데도 넌 내 병사들을 학살하고 도망쳤지. 이제 와서는 날 막아선다 이거냐?”
아이작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퍼엉!
그러자 폭발이 일며, 지면에 널브러져 있던 루나가 튕겨 나갔다.
“쯧. 실험체라도 고대 마족이군. 생명력 하나는 알아줘야 하는 건가.”
아이작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루나를 보고 혀를 찼다.
위력이 강한 마법을 연발했는데도 도저히 물러날 기미가 없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지금이라면 못 본 척해 줄 테니 꺼져라.”
마왕의 힘을 빌리고 있다 한들, 마나는 무한하지 않다.
김민준을 상대하기 위해서 마나를 최대한 온존해야 했다.
놈을 제거하지 못하면 지구의 침략은 실패로 끝나니까.
“…김민준은. 나에게 잘 대해 줘.”
루나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난 실험체야. 인간이 아니야. 그건 알고 있어.”
스스스.
어둠이 솟아나며 루나를 뜯어말렸지만, 그녀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곳의 인간들은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어. 밖에서는 괴물이라고 말하면서.”
김민준은 자신을 인간으로 대해 준다.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편하게 지내도록 도와줄 뿐.
“난 민준이 어떤 명령을 내려도 따를 수밖에 없어. 그런 상태니까.”
허나, 존재가 귀속되고 나서 한 일은 그야말로 평범했다.
평범한 인간들처럼, 이곳의 지식을 배울 수 있게 해 줬다.
그 외에도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줬다.
“거기다 지구는 맛있는 것들이 많아.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싸워 달라는 명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마저도 위험하면 도망치라고 몇 번이나 말해 주었다.
“내가 싸워야 할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쯧. 말이 통하질 않는군. 그냥 죽어라.”
아이작은 귀찮다는 듯 손을 크게 내저었다.
화아아아!
그러자 루나의 발밑에서 푸른 불꽃이 일었다.
8서클에 달하는 화염 마법, 헬파이어였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생명령이 강한 자신이라 해도, 이건 못 버틴다.
이젠 끝났다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어?”
몸이 타들어 가며 고통스러워야 했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야. 위험하면 도망치라고 했지.”
눈을 떠보니, 어느새 나타난 김민준이 루나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아오. 뜨거워라. 헬파이어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쉬고 있어. 싸울 생각 하지 말고.”
“그래도….”
“내 말 들어라.”
김민준은 그녀를 아무렇게나 들어 던졌다.
베키가 알아서 보호해 줄 테니 걱정은 없을 터.
루나는 지금까지 버텨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
‘스킬 지정 대상은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이다. 그 외에는 해당이 없다.’
만약 절망의 별이 루나의 피해를 대신 흡수했으면, 스킬이 깨졌을지도 몰랐다.
“아이작. 그새 많이 컸다? 이 씨펄련아.”
“미놀드. 아니, 김민준….”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장기로 비유하자면 서로의 존재는 장군이나 마찬가지.
즉, 눈앞의 대상을 없애면 어느 쪽이든 승리한다는 말이다.
스윽.
아이작이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그는, 입으로 주문을 외는 영창이 필요 없었다.
고위 마법 몇 개를 제외하고, 이처럼 간단한 동작 하나로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파지지직!
하늘에서 굵직한 벼락이 떨어졌다.
8서클에 해당하는 마법, 퓨리.
저 벼락에 맞는 존재는 즉시 소멸하며, 땅에서조차 전기가 흐르게 된다는 고위 마법.
아이작은 아껴 둔 마나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역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김민준이 헬파이어를 맨손으로 쳐 내는 걸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은 잃어버린 힘을 되찾았다.
아니.
어쩌면 힘을 되찾은 것을 넘어서, 더 강해졌을지도 몰랐다.
‘방금 그 무식한 행동이 오기인지 아닌지, 이걸로 알게 되겠지.’
퓨리는 절대 피할 수 없는 마법이다.
빛의 속도로 떨어지는 벼락을 무슨 수로 피할 것인가.
괜히 고위 마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네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아이작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고위 마법을 연속해서 사용했고, 적중한 것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에이 씨. 이거 2도 화상 아니야? 흉터 남겠는데.”
그런데 눈앞의 인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