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침략-2
‘공명의 지속 시간은 1분. 그 안에 최대한 많이 움직여야 한다.’
김민준은 먼저 절망의 별을 하나 생성한 뒤 상공으로 올려보냈다.
자신이 보유한 스킬 중 가장 강력한 효과를 가졌으니, 어느 정도는 버텨 줄 터.
‘우선은 미국부터.’
그 뒤 차원 문을 통해 인접한 주요 국가부터 차례대로 이동했다.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습니다. 버티시고, 이겨 내세요. 상공에 올려보낸 저 별이 여러분들을 도와줄 겁니다.”
“저 사람은… 김민준? 한국의 헌터, 김민준 소장 아닌가!”
“별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미군들이 의문을 나타내기도 전, 그는 다른 국가로 향했다.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 인도 등등….
1초도 낭비하지 않는 신속한 대처 덕분에, 10개의 국가에 절망의 별을 설치할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도와줬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대한민국이다.
다른 나라는 기껏해야 마족들이 포탈을 타고 넘어온 것뿐이다.
허나, 한국은 다르다.
마족의 수도 가장 많을 뿐더러, 노바 제국의 병사들까지 침략해 왔다.
그뿐인가.
8서클의 대마법사 아이작까지 작정하고 포탈을 추가로 열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급한 불은 한국이었다.
“아이작이라. 성녀의 경고를 들어 미리 대비를 할 수 있긴 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노바 제국이 마족과 연합해 지구를 침략해 오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족이랑 손을 잡았으면 버거워야 정상인데.”
다만, 마족과 이스가르드인이 힘을 합친 것치고는 힘들다는 느낌이 없었다.
저 상공을 뒤덮은 마족이 진짜배기 상급 마족이었다면, 이미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자신 역시 다른 국가를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고.
“뭔가 급조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엉성하다.
침략해 온 놈들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당장 마족부터 일차원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마치 한 개의 명령만을 수행한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게다가 지구는 인간의 홈그라운드.
침략을 행하는 노바 제국에게 있어 몇 배의 병력을 더 퍼부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법이나 검술 같은 스킬이야 너네들이 더 우위겠지만, 무기 쪽은 우리를 이길 수 없거든.”
놈들의 침입을 허무하게 허용한 것치고는 피해가 그리 크지 않다.
충분히 해 볼 만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생각은 전혀 없다.
노바 제국이 지구를 침략한 이상, 철저히 부술 생각이었다.
“기다려라. 아이작. 바로 갈 테니까.”
전쟁을 승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적장의 목을 취하는 것.
아이작을 처치하는 순간, 승기는 이쪽으로 기울 것이다.
**
한편.
대한민국 전국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현 시간부로 국가 재난 사태를 선포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신속하게 지하 대피소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대통령 권한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현재 원인 파악이 불가능한 외부의 존재가 한국을 침입, 전국으로 확산 중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전 지역의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신속하게 지정된 대피소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불가피할 경우, 군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허가받지 않은 돌발 행동은 즉결 처형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시끄럽게 울려 대는 사이렌 소리와, 반복되는 긴급 재난 방송.
사람들은 상공에서 바글거리는 몬스터를 확인하고 서둘러 대피소로 향했다.
“전투기 지원은!”
“이제 막 긴급 점검을 마쳤습니다. 해당 지역에 도착할 때까지 20분가량이 소요됩니다.”
헌터 본부의 장성들은 재빨리 사태 파악을 끝낸 뒤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개월 전부터 행하던 훈련 덕분이었다.
외부 존재의 침략.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가 위험하다는 김민준 소장의 경고.
처음에는 코웃음 치며 말이 되는 소릴 하라며 비웃었다.
두 번, 세 번째 훈련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만을 품었었다.
허나, 지금은 김민준 소장의 혜안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이 세계의 존재가 침략해 왔으니까.
“국민의 안전과 대피를 최우선 사항으로 둬야 한다! 부대에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모두 준비시켜! 탱크, 전투기, 대공 미사일. 사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준비해!”
“드워프들이 만든 지하 대피 시설의 수용 인원이 부족합니다. 수용하지 못한 국민들은 각 군부대로 대피시키는 게 어떻습니까?”
“대통령님께서 특수 방공호든 뭐든 다 사용해도 좋다고 하셨다! 해군 쪽에서 대형 수송함을 내어 준다고 하니까, 시민들을 호위할 병력들 대기시켜 놔!”
“예!”
헌터 본부 소속 4성 장군, 구학철 대장이 신속하게 명령을 하달했다.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는 헌터라 할지라도, 병력 지휘에 있어 베테랑 중의 베테랑.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만큼 믿음직한 장성은 없었다.
“그리고 각 장성들은 1개 여단으로 주요 지점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한다.”
“1개 여단… 알겠습니다.”
장성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군의 병력 절반 이상이 국민들의 대피와 보호에 동원된 상태.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적었다.
‘망할. 파악된 이세계인만 해도 10만이 넘어간다고 했는데.’
즉, 최소 10만 이상의 외부 세력을 6개 여단인 3만의 병력으로 막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탱크가 있고 전투기 지원이 있다 한들, 이쪽의 병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거기다 이세계인은 괴상한 스킬을 남발한다 하지 않았는가.
‘이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하다 못해 5만 명 정도만 되어도 어떻게든 해 볼 텐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구학철 대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충성! 김민준 소장입니다!
정예 특수 부대, 블랙 스완을 창설한 김민준 소장이었다.
“정말 그래도 되겠는가? 아무리 자네라도 해도 그 많은 수는 힘들 텐데. 현 상황을 생각해 보면, 신속한 지원은 불가능하다.”
-상관없습니다.
“허어. 그렇게 해 주면 우리야 숨통이 트이겠지만, 최전선에서 싸워야 할 자네가 그만큼 위험해질 텐데.”
-저는 걱정 마십쇼. 자신 있습니다.
“그래. 자네 뜻이 그렇다면 계획을 변경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가 놀란 얼굴로 대화를 몇 마디 나누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통화를 끝냈다.
“김민준 소장에게는 특별 권한이 있는 거 알고들 있지?”
“특별한 권한이라면… 비상시에 사단장 권한을 가진다는 것 말입니까?”
“그래. 외부의 침략에 한해 1개 사단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김민준 소장. 이놈이 그 병력을 자네들에게 돌리라고 하는군.”
“그게 무슨….”
장성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김민준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10개의 국가에 지원을 하고 왔다.
그가 상공으로 쏘아 올린 정체 모를 검은 별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군인들의 피해를 흡수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상자가 나오고 있지 않은 걸 보면, 아마 피해를 흡수하는 효과를 가졌을 것이다.
“수 초 만에 국가에서 국가로 이동하며, 저런 스킬을 설치하고 복귀한 것으로 모자라서….”
“바로 최전방으로 향하는데 사단급 병력을 거점을 사수하는 데 돌린다니….”
괴물.
인간을 넘어선 괴물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김민준 소장이 아군이라는 게 천만다행이라 느껴질 정도.
‘어떻게든 거점을 막아낸다.’
‘김민준 소장이 저렇게 움직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장성들은 의욕을 불태우며, 군장을 챙기러 뛰어나갔다.
**
“김민준이다!”
“막아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접근 못 하게 막아!”
“진을 설치해라!”
한편.
김민준은 아이작을 처치하러 가는 도중, 노바 제국의 집요한 방해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성기사. 사제. 주술사까지 포섭했다 이거지.”
놈들은 기를 쓰고 자신의 움직임을 옭아맸다.
몸에 두꺼운 갑옷과 방패, 신성을 두른 성기사.
그리고 그 성기사를 지원하는 사제까지.
자신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막아서는 게 당연하긴 했다.
놈들 입장에서 아이작은 머리였으니까.
“그냥 곱게 뒈져 좀. 왜 이렇게 질겨?”
작정하고 방어 자세를 취한 놈들을 뚫는 것이야, 흑마법을 사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스킬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게 바로 아이작이 노리는 것일 터.
‘힘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
공명을 사용해, 영구 기관은 하루 동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몸에 남은 마기만으로 아이작을 상대해야 한다.
‘놈은 과거에 8서클 대마법사. 지금은 더 강해졌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김민준은 거검, 거인의 손톱을 꺼내 놈들에게 휘둘렀다.
쿠웅!
강한 충격음과 함께 지면이 흔들렸다.
각종 스킬로 신체를 강화한 성기사조차 드워프의 특제 거검에는 버틸 수 없었다.
더군다나 과거와는 다르게, 세 자릿수를 돌파한 스텟을 가진 김민준 아닌가.
무식한 스텟에 더해진 거검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크헉!”
성기사가 곧 피를 토하며 허물어지는가 싶더니,
화아아아!
새하얀 빛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사제의 회복 스킬이었다.
“더럽다, 더러워. 성기사와 사제가 붙으면 트롤은 어린애 장난이라던데. 이건 더하네.”
노골적인 소모성 싸움의 유도.
당연히 그것에 응해 줄 리 없었다.
“야. 너네들은 내가 누군지 알긴 하냐?”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계급장을 가리켰다.
“…….”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노바 제국의 병사들.
“대한민국 군인, 사단장이다. 임시지만.”
말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신호탄을 꺼내 상공으로 발사했다.
그러자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헌터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가 이 사태를 예견하고 공들여 키운 정예 헌터들, 블랙 스완이.
“충성! 팀장님의 긴급 호출로 급히 뛰어왔습니다!”
“그래. 눈앞에 보이지? 두꺼운 갑옷 입은 놈이랑 어울리지 않는 사제복 입는 놈.”
“예. 그리고 뒤에는 전신에 괴상한 문신을 한 놈도 보입니다.”
“앞에서부터 성기사, 사제, 주술사다. 저놈들은 작정하고 방어만 하고 있다.”
김민준은 다시금 거검을 들어 올렸다.
“저놈들이 이 악물고 드러누울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한 지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방어를 무너뜨린 뒤, 사제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질문에 손은서 소위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 지금까지 훈련 지겹게 했지? 지금부터는 실전이다. 내 앞길을 뚫어라. 이놈들 뒤에 노바 제국의 우두머리가 있다.”
“예!”
“맡겨 주십쇼, 팀장님!”
블랙 스완의 팀원들은 일제히 마력검을 꺼내 오러를 둘렀다.
쉬익!
손은서 소위가 날리는 검기를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래 봐야 마법도, 신성도, 주술도, 흑마법도.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성기사는 코웃음을 치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온몸에 신성을 두른 데다가, 뒤에는 사제의 지원까지 있다.
방금만 해도 김민준의 무식한 검까지 막아내지 않았는가.
‘김민준. 흑마법사 주제에 그런 무식한 것을 다룰 줄은 몰랐다만, 이곳을 뚫기엔 부족하다.’
허나.
그렇게 장담하던 성기사의 몸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허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