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침략-1
“허억…. 무슨 그런 스킬을 만드셨습니까. 무섭습니다.”
“김민준 님, 정말 대단해요!”
“응. 같은 편이라 다행이라고 베키가 전해 달래.”
앞의 세 명은 스킬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공격과 수비, 그야말로 완벽한 공방 일체의 스킬이었다.
특히 누군가를 보호하는 스킬이 없다시피 한 흑마법사의 단점을 메워 주기까지 했으니.
“내가 만든 스킬인데 당연하지.”
절망의 별은 강력한 효과를 가진 만큼 소모되는 마기도 엄청났다.
무리한다 해도 2번 정도 사용하는 것이 한계였으니.
하나.
영구 기관이 있는 지금은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존재했다.
‘공명과 연계하면 그야말로 무한 복사다.’
공명.
영구 기관이 가져다준 말도 안 되는 스킬.
이 스킬만 있으면 소모되는 마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공짜로 연발할 수 있거든. 거기다 쿨타임은 하루에 한 번.’
자신이 창조한 스킬이라 공명과 연계가 될지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연계가 가능했다.
그 말은 즉, 지금 당장 노바 제국이 쳐들어온다 해도 막아낼 수 있을 수준이었다.
놈들이 따로 준비한 비장의 한 수가 없다면 말이다.
‘네놈들이 알고 있는 나랑, 지금의 나는 완전 다른 흑마법사일 거다.’
물론 시련을 클리어하고 강력한 스킬을 얻었다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아직 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으니.
“애들 좀 빡세게 굴려 볼까.”
**
한편.
이스가르드의 노바 제국에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대마법사 아이작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실험체, 루나가 도망친 것.
그것만 해도 큰 문젠데, 계획의 주요 역할을 담당해야 할 스코티아까지 지구로 넘어갔다.
거기다 스코티아는 결국 지구에서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나기까지.
“아이작 님!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변명하지 마라. 무능한 놈들은 필요 없으니까.”
“끄아아아아!”
중년의 남성.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을 기른 대마법사 아이작.
그는 노바 제국의 영역으로 돌아오자마자, 해당 문제에 관련된 기사와 마법사들을 모두 처형했다.
그들 중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제법 있었지만, 그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무능한 놈들.”
고대 마족, 루나가 도망쳤을 때.
자신은 마족의 영역에 있었다.
계획이 어긋났을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들기 위해서였다.
“그래. 내 잘못도 있기는 하지.”
마족을 만만히 본 탓에 협상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그리고, 부하들을 조금이나마 믿은 것.
이 두 가지였다.
“루나의 생사는 불명. 스코티아는 사망이라….”
나름 공들였던 패 2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루나야 그렇다 쳐도 스코티아가 사망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녀는 고대 마족의 세포를 이식하는 것에 성공했다.
비록 팔뿐이었지만 힘이 한층 더 강해진 것은 물론이요, 지구에 있는 김민준의 천적이 되었다는 말이다.
차원 이동에 별 제약이 없기도 했고.
“김민준. 놈이 죽였다고 봐야겠지.”
성녀를 잡아들였을 때, 머릿속을 헤집어 모든 정보를 빼냈다.
김민준이 힘을 잃으면서까지 지구로 귀환하는 것을 고집한 것.
지구에는 흑마법사의 힘을 회복할 수 있는 마기가 없다시피 한 것.
“도대체 어떻게 힘을 되찾은 거냐.”
파직! 파직!
아이작의 몸을 휘감은 마나가 사납게 방출되었다.
나름 공들여 준비한 계획이 뒤틀려 버리니, 감정이 절로 끓어올랐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만 빠져도 문제가 생긴다. 이 계획은 폐기다.”
본래라면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면 된다.
하나, 스코티아가 지구로 넘어가 경각심을 심어 준 이상.
시간을 주는 건 위험했다.
흑마법사, 김민준.
놈이 큰 변수였다.
“제안을 하겠다. 마족의 군단을 빌려다오. 또한, 마왕의 힘 역시 필요하다!”
허공을 대고 외치는 말에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주겠는가. 마족의 군단이야 조건에 따라 빌려주겠지만, 그분의 힘을 빌리는 건 어지간한 대가로는 불가능하다.
“사후 내 영혼을 대가로 내놓겠다.”
-영혼이라. 영혼이란 말이지. 8서클 마법사, 그것도 질 좋은 인간의 영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잠시 기다리도록.
스스스.
잠시 후.
공간을 찢고 마족 한 명이 나타났다.
이스가르드의 알 만한 인간들은 다 아는, 그림자 백작이었다.
“아이작. 고대 마족의 세포를 제공받은 걸로 모자라 마족의 군단에, 마왕의 힘까지 빌리겠다니. 욕심이 많은걸.”
“대답은?”
아이작은 섬뜩한 그림자 백작의 모습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듯 대답부터 요구했다.
“폭식의 마왕님께서 받아들이셨다. 그분이 이끄는 군단 일부와, 그분의 힘을 3일간 빌려주신다고 하신다.”
“3일인가. 대마법사의 영혼을 바치는 것치고는 너무 짧지 않나?”
“마족은 몰라도 마왕은 직접적으로 나설 수 없다. 그렇게 계약이 맺어져 있으니까. 너도 잘 알 텐데.”
“쯧.”
마왕과 마족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건, 수백 년 전 성녀와 나눈 계약 때문이었다.
하나 그 계약은 어디까지나 이스가르드에 국한된다.
지구라면 해당하지 않기에, 아이작은 마왕을 직접 움직일 생각이었다.
‘힘을 빌려준다고 대답한 걸 보면,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인가.’
고작 3일 대여에 대마법사 영혼을 바치라니.
마족이란 것들은 불공정 계약을 즐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상관없다. 내 조건은 어디까지나 사후니까.’
죽지만 않으면 영혼을 빼앗길 일도 없다.
먼저 지구를 침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난 뒤, 방법을 찾으면 될 뿐.
“받아들이겠다.”
긴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작은 피를 내, 그림자 백작이 내미는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지금부터 3일 동안, 아이작 님을 폭식의 마왕님과 동등하게 대하겠습니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그림자 백작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이것이 마왕의 힘인가…. 대단하군.”
아이작은 흘러넘치는 힘을 느끼며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작 말 몇 마디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목숨을 걸고 마족과의 관계를 만들어 둔 보람이 있었다.
“지구로 간다. 지금 당장.”
주어진 시간은 3일.
계획을 짤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 힘이 있다면 9서클의 마법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많은 마족들은 또 어떻고.
‘이스가르드에는 어차피 미래가 없다.’
길어 봐야 100년이면 이스가르드의 자원은 고갈된다.
애초에 이곳은 척박하고 미래가 없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어찌어찌 칼로리 높은 식량을 만들어 버텨 왔지만, 그것도 한계에 달한 지 오래다.
그래서 지구로 침략을 계획한 것이다.
자원이 풍부한 것은 물론이요, 기후도 완벽하다.
다른 차원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쾌적하다는 말이다.
그 많은 인간은 또 어떻고.
노동력으로 굴려도 좋고 실험체로 사용해도 좋다.
“노바 제국은 나, 아이작이라는 이름 아래 번성할 것이다.”
**
다음 날, 새벽 5시경.
전 세계 곳곳에서 검은 포탈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국을 시작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등.
“저항하는 인간들은 죽이고 저항하지 않는 인간들은 살려 둬라. 소중한 자원이니까.”
포탈 밖으로 걸어 나온 아이작 뒤로 수많은 마족이 출현했다.
등 뒤에 달린 박쥐 형태의 날개.
머리에 날카롭게 솟아나 있는 뿔.
그야말로 악마라고 불러도 될 듯한 외양이었다.
“김민준. 놈은 내가 맡는다. 내 지시대로 움직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마족들이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적게 잡아도 수만 가까이 되는 수 때문에, 하늘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마법사와 기사는 무력 집단을 맡는다. 지구의 인간이라 해서 방심하지 마라. 철저히 부숴라.”
“예!”
뒤이어 등장한 노바 제국의 병력들 역시 신속하게 움직였다.
마치 지리를 아는 것처럼 말이다.
“뒤에 도착할 마족까지 생각해 보면, 지구를 차지하는 건 그리 힘들지 않겠군.”
하늘을 뒤덮은 저 수만의 마족들.
뒤에 추가로 도착할 마족과, 수십만에 달하는 노바 제국의 병력들.
그리고 마왕의 힘을 받은 대마법사인 자신까지.
이걸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지구는 노바 제국의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아이작이 큰 목소리를 내며 웃는 와중,
지이이이이잉!
상공에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고,
“키아아악!”
마족들이 힘없이 추락했다.
“뭐냐 이건!”
아이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족이 저렇게 약했던가?
**
“하하하하! 드워프의 우람한 레일건 맛이 어떠냐! 망할 놈들아!”
갑작스러운 노바 제국의 침략.
선제공격에 피해를 입긴 했지만, 각국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대참사는 면할 수 있었다.
드워프가 세계 곳곳에 설치한 탐지기 덕분이었다.
게다가 평소 김민준의 경고도 있었기 때문에, 각국의 헌터들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오! 김민준! 자네 왔는가!”
소리를 지르며 레일건을 발사하던 드워프 뒤로, 차원 문이 열리며 김민준이 나타났다.
“그래. 저 마족들은 어떠냐. 상대할 만하냐?”
“물론이다. 제아무리 마족이라도 레일건 맛을 보면 정신을 차릴 수 없지!”
방아쇠를 연달아 당기던 드워프는 말과 다르게,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흠. 너무 연발했나. 충전에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곧 레일건을 사수할 정예 헌터들이 도착할 거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버리고 대피소로 가라.”
김민준이 상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등 뒤로 지옥귀들이 나타나, 마족들을 향해 돌진했다.
퍼엉! 펑!
놈들은 별 저항도 못 해 본 채 몸이 터져 나갔다.
자신이 과거의 힘을 넘어서기도 했고, 저 마족 자체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중급에서 상급 사이에 있는 몬스터.
그 정도였다.
‘아이작. 정신 나간 새끼. 마족을 끌어들였냐?’
마족은 인간을 따르지 않는다.
그런 대전제를 무시하고 따르는 경우는 단 하나.
그만한 대가를 마족에게 바쳤을 경우다.
‘아무리 그래도 저만한 수의 마족을 움직이려면 어지간한 걸로는 어림도 없는데….’
영혼이라도 바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거야 나중에 알아보면 될 일이고.’
김민준은 상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많은 수의 마족을 줄였지만, 줄인 수만큼 마족이 다시 보충되고 있었다.
‘아주 그냥 나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해라, 광고를.’
김민준은 당장 아이작을 반으로 찢어 죽이고 싶었다.
10㎞ 떨어진 지점에서 대놓고 마나를 방출해 대고 있는데,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놈은 한동안 못 움직인다.’
현재 아이작은 포탈을 미친 듯이 열고 있는 상태다.
그사이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세계 곳곳에 차원문과 스킬을 설치하는 게 우선이었다.
무방비 상태인 아이작을 먼저 제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놈은 멍청하지 않다.
분명 대비를 해 놨을 터.
“그래도 최대한 방해는 해야겠지. 루나.”
“나 불렀어?”
자신의 부름에 루나가 어둠을 찢고 나타났다.
“아이작을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죽이지 못할 것 같으면 최대한 방해만 해라.”
“알았어.”
“위험하면 도망치고.”
“응.”
김민준은 루나를 놈에게 보낸 뒤, 공명을 사용했다.
“전세가 금방 기울게 될 거다.”
새롭게 창조한 스킬 하나 때문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