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스코티아-3
김민준은 거인의 손톱을 위로 힘껏 던졌다.
최대한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서.
스코티아에게 거검을 휘두를 수 있는 범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
그렇다고 해서 거리를 벌려 줬다가, 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이거지.’
저 고대 마족의 팔.
저것의 능력을 모르는 이상, 놈에게 기회를 줄 행동은 최소화해야 한다.
슈우우우.
상공 수백 미터가 넘게 솟구친 거검이 다시 낙하하기 시작했다.
거인의 손톱은 아다만티움을 무식하게 때려 넣어 1t이 넘는 무게를 자랑한다.
그 검에 가속도가 붙는다면?
작은 소행성이 충돌하는 파괴력 정도는 가지지 않을까.
“이… 이 미친 새끼!”
스코티아는 김민준의 의도를 파악하고 경악했다.
그녀의 기억상으로, 그는 아무리 그래도 목숨을 내던지는 인간은 아니었다.
특히나 물리적인 공격에 취약한 흑마법사 아닌가.
‘안 풀어? 아직도?’
거검이 지면에 닿을 때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수초 남짓.
마지막에 손을 옭아맨 채찍을 풀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없었다.
“김민준! 여기서 같이 죽어 봐야 아이작 뜻대로 되는 거야. 지구의 좌표도 까발려졌겠다, 네가 죽어 버린 걸 안 순간 좋다구나 하고 들어올걸?”
“왜. 이 정도는 해야 널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너, 혀가 길어졌다?”
“…후회할 거다.”
“후회는 네가 할 것 같은데.”
스코티아는 속으로 초조했다.
저쪽은 연기가 아니었다.
자신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는걸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 무식한 검을 받아치는 건 현재 상황으로는 불가능했다.
1분 남짓한 시간만 있었어도 보란 듯이 저 무식한 쇳덩이를 반으로 갈랐을 것이다.
고대 마족의 강인한 팔 덕분에, 위력적인 차원참도 날릴 수 있었으니.
하나, 당장 수초 안에 목숨이 날아가게 생겼다.
유일한 방법은 차원 이동을 통해 이 장소를 벗어나는 것.
그것조차도 김민준이 자신을 단단히 묶어 놓고 있어 힘들다.
그야말로 풍전등화인 셈이다.
‘쯧. 그 방법밖에 없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구의 좌표를 알자마자, 김민준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놈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으니까.
그래서 뒤도 생각하지 않고 차원 이동을 했다.
‘아이작의 말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힘의 대부분은 잃어?
그냥 평범한 인간 수준일 것이라고?
저게 어딜 봐서 평범한 인간이란 말인가.
당장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졌는데.
‘내 몸을 주겠다. 그러니까 힘을 내놔! 주위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죽여라!’
일단 사는 것이 우선이다.
몸을 먹히게 된다 해도, 허무하게 죽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스코티아는 마인의 팔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쿠우우웅!
그사이 두 명의 머리 위로 거인의 손톱이 떨어졌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주위의 건물들이 힘없이 무너질 정도.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튀며 크레이터가 발생했다.
크레이터의 깊이만 50m를 훌쩍 넘어섰으니, 거인의 손톱이 지닌 위력은 상상 이상인 셈.
“…이걸 사네?”
김민준은 몸을 뒤덮은 흙을 털며 스코티아의 복부를 걷어찼다.
방금 전과는 달리, 그는 시꺼먼 외양에 붉은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콰아앙!
스코티아는 허리가 꺾인 채 날아갔다.
의식이 없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숨은 붙어 있었다.
‘증폭 회로를 켠 채로 욕망의 마기를 사용. 그 뒤에 마인화까지 사용. 여기까지는 몸이 버텨 주네.’
몇 배 이상 강화된 스킬로 인해, 신체가 폭발적으로 튼튼해졌다.
거검의 충격을 별 탈 없이 견뎌 낼 정도.
‘한번 떠보려고 했는데 끝까지 참는다 이거냐?’
처음부터 앞의 과정을 거쳐 놈을 처리하지 않은 것은, 저 오른팔에 달린 마족의 팔 때문이었다.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모르는 이상, 확실한 방법을 거쳐야 했다.
‘좋아. 이 정도면 10분은 거뜬하고. 무리하면 30분까지도 되겠네.’
증폭 회로와 마인화를 같이 사용하면 몸에 부담이 온다.
그래서 아낀 것이다.
필요한 순간이 올 때까지.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지.’
스코티아.
놈은 지금껏 만난 상대 중에 가장 강하다.
실험체로 태어난 고대 마족?
놈이 프로라고 한다면, 앞은 그냥 어린아이 수준이다.
뛰어난 검술 실력에 방어 불가 기능을 가진 차원참.
이것들만 해도 웬만한 강자들은 나가떨어졌으니.
“죽인다. 죽인다아아!!”
놈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생각하던 사이, 스코티아가 으르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만한 데미지를 줬는데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든가.”
“크아아악!”
다만, 눈이 뒤집힌 게 이성을 잃은 듯했다.
잘 다루는 칼을 놔두고 손톱을 휘둘러 왔으니까.
“뭐 하냐?”
위력 하나는 강하다.
다만, 공격이 너무 마구잡이였다.
이전까지는 철저히 거리를 두며 사람들을 농락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지금은 저돌적인 스타일.
마치 알맹이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쭈.”
한동안 이어진 공방.
김민준은 스코티아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했다.
“그 팔한테 먹혔냐? 그거 믿고 나댈 때부터 알아봤다.”
놈의 팔을 날리고, 머리를 쳐 내고.
몸을 꿰뚫어도 순식간에 복구되는 상처.
짐승처럼 날뛰는 모습.
점점 강해지는 완력.
시간이 지날수록 검게 물드는 피부.
고대 마족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 이러면 너무 쉬워지는데.”
놈은 무식한 힘과 재생 능력을 얻었지만, 이성을 잃었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었다.
“크아악! 크악!”
당장 멀리서 날아오는 마력탄조차 맞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네가 제정신이었다면 저격수들부터 처리했겠지. 그랬으면 내가 더 많이 움직여야 했을 테고.”
엄호 사격이나 미사일.
그 외에도 갖가지 포격이 놈에게 쏟아지고 있다.
이 정도의 일이 벌어졌으니, 군이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에이 씨. 저거 다 돈이 얼마야. 소용없다고 말해 봐야 듣지도 않겠고.”
“크아아아아악!”
본능에 따라 반응하고 있는 스코티아를 보니, 괜히 김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스가르드에서 자신을 그토록 귀찮게 하고 흔들어 대던 검사 아닌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고.
어쨌든, 그런 강자가 위험한 힘에 손을 댔다가 결국 가 버린 것이다.
“처음엔 고대 마족을 길들이려 했다가 나한테 뺏기고. 이번엔 고대 마족의 팔을 단 부하를 잃겠네?”
대마법사 아이작.
이 사실을 안다면, 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오. 저거 고대 마족만 아니었어도 다크사이더를 소환해서 생명석을 무한으로 즐겨 버리는 건데.”
김민준은 규모가 큰 스킬을 사용할 것이니, 병력을 최대한 뒤로 물리라는 무전을 전달했다.
고대 마족이 스코티아의 몸을 완전히 먹어 버리는 순간, 큰 피해가 발생한다.
그 전에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도 사실 이 스킬이 궁금하긴 했거든.”
마인화를 유지한 채,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검은 태양.”
스스스스스스.
손에서 발생한 검은 공 하나.
섬뜩한 기운을 풍기는 공이 천천히 상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건 어차피 고대 마족의 몸뚱이니까 흑마법사 스킬은 안 먹히겠지.”
하지만 검은 태양이라면 다르다.
마인화는 영구 기관이라는 스텟에서 발생한 스킬이니까.
즉, 흑마법사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스킬이라는 말이다.
“이것도 안 먹히면 뭐. 이 악물고 두들겨 패야지. 무리를 해서라도.”
“크아아아! 죽인다!”
“그렇게 느리게 휘둘러서 맞겠냐?”
검은 태양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스킬을 시전하는 동안 물리적인 피해를 입지않아야 하는 것.
사실 이것들도 단점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스킬의 위력이 어마어마했으니까.
‘설명대로라면 이놈은 무조건 죽겠지.’
고대 마족은 무슨.
고대 마족 할아버지와 트롤의 조상이 손을 잡아도 어림없을 터.
스스스스.
김민준이 스코티아를 상대하고 있던 사이 스킬이 완성되었다.
몸집을 부풀린 검은 태양은, 하나의 도시를 가려 버릴 정도로 거대했다.
“먼저 가 있어라. 네 뒤로 친구들 줄줄이 보내 줄 테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검은 태양에서 굵직한 광선이 쏘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을 위력을 가진 검은 광선이.
“이 스킬, 세밀한 컨트롤이 불가능했으면 절대 안 썼다.”
저 광선은 닿는 모든 것을 무로 되돌려 버린다.
말 그대로 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조절을 잘못했다가 지구에 구멍이라도 뚫려 버리면 큰일이었지만, 스킬의 제어는 쉬웠다.
대상만 정확하게 지정해 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 줬으니까.
“아니. 이거 왜 이렇게 세.”
검은 태양의 위력은 설명 그대로였다.
스코티아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킬이 있다고?”
드래곤이 “뒈져!”라고 하면 죽어 버리는 언령보다 더 사기적인 스킬이 아닐까.
적어도 언령 같은 경우는 까다로운 조건이 뒤따랐으니까.
“진짜 영구 기관의 스텟을 고른 건 신의 한 수였다.”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스텟인 영구 기관에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이 스텟이 없었다라면, 저놈에게 농락당하다가 결국에는 졌을 것이다.
고대 마족은 그 정도로 상성이 최악이었으니까.
[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민첩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민첩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스텟이 1 상승….]
“이야. 고맙게 선물까지 주네. 안 그래도 되는데.”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스코티아.
이스가르드에서 죽이지 못했던 놈을 죽였다.
그것만 해도 쾌재를 외칠 정돈데, 스텟 경험치까지 듬뿍 퍼 주다니.
“스킬 컨트롤까지 완벽하고.”
김민준은 고대 마족의 오른팔까지 챙기고 나서야 쓰러지듯이 누웠다.
스코티아를 봤을 때부터, 팔이 신경 쓰여 남겨 둔 것이다.
“팀장니이이임!”
“빨리 들것 가져와!”
“포션! 상급 포션은! 있는 대로 가져와서 부어!”
“병원으로 이송 준비하고! 헬기 불러! 뭐? 지금 쓰러진 사람이 누군지 몰라? 투 스타라고, 투 스타!”
저 멀리서 헌터들이 달려오고 있다.
다급한 표정을 보면 뭔가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어우. 너무 무리했나.’
무리하게 강화해 연발한 스킬.
거기다 검은 태양까지 사용했기 때문일까.
갑작스럽게 잠이 쏟아졌다.
“…다친 사람은 없냐?”
“팀장님!”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
그리고 죽은 것처럼 눈을 감은 김민준.
사방에 튀어 있는 피와, 그의 몸에 흥건한 피.
누가 봐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시민들은… 시민들은 모두 안전하게 대피했습니다!”
“정말…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모두 팀장님이 해내신 일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헌터들은 한동안 울먹였다.
“으허어어어엉!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습니까아아! 저보고 기다려 준다고 하셨잖아요!”
특히 손은서 병장은 하늘이 떠나가라 오열했다.
가족을 잃은 것처럼 말이다.
“김민준 소장님은 괜찮으십니다! 단순히 피로가 누적되신 것뿐입니다.”
“…예?”
슬픈 분위기도 잠시뿐.
의무 장교의 말에,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