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200화 (200/212)

200. 스코티아-2

“주변의 인간들을 먼저 물리는 게 좋을 거야.”

스코티아는 손가락을 들어, 보라는 듯 헌터들이 잠복하고 있는 장소를 가리켰다.

지구의 인간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것 정도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지구에 온 지 10일이 지나서야 감시가 붙은 거냐? 태평해서 좋겠어, 이곳의 인간들은.’

스코티아는 지난 10일 동안, 지구가 얼마나 평화로운지 질릴 정도로 경험했다.

이곳의 인간들은 전쟁에 대한 걱정이 없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작은 날붙이조차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그녀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흐흐. 모조리 베어 버리고 싶어. 팔다리부터 하나씩.’

우연히 지구의 좌표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날아갈 듯이 기뻤다.

인간들을 마음껏 짓밟을 수 있었으니까.

노바 제국이 이스가르드를 점령했고, 전쟁이 끝났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그 점이 불만이었다.

‘인간들을 베는 게 힘들어지잖아. 포로는 일꾼으로 부려 먹어야 해서 못 베고.’

별것 아닌 트집을 잡아 아군이나 포로를 베는 것도 잠시뿐.

아이작이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기에, 충동적인 행동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슬슬 참기 힘들었는데, 눈앞에 지구의 좌표가 나와 버리다니. 이걸 어떻게 참냐. 히히히.’

비록 아이작이 오른팔을 붙여 주고, 힘을 되찾게 도와줬다 할지라도.

그녀는 아이작을 진심으로 따를 생각이 없었다.

지구의 인간들을 마음껏 학살할 수 있다면, 아이작을 배신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김민준이 있다.

그를 생각하니, 잘렸던 오른팔이 욱신거렸다.

‘그런 느낌을 받은 건 김민준밖에 없었지.’

이 오른팔도 그에게 잘렸던 것이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니,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흐흐. 안 되겠어. 적당히 놀면서 눈앞의 여자를 베어 버리려 했는데….’

김민준.

지금 당장 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김민준을 데려와. 10분 기다려 줄 테니까.”

“갑자기 무슨….”

자기와 놀아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김민준을 언급하다니.

손은서 병장은 뭐라 대답하려 하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10분. 그 뒤로는 눈에 보이는 대로 베어 버릴 거다.”

“……!”

스코티아가 갑자기 침을 질질 흘리며 검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표정.

사람 키보다 긴 도신.

“뭐, 뭐야 저거!”

“칼 아니야?”

“경찰에 신고해요! 빨리!”

주위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스코티아에게서 멀어졌다.

‘뭐, 뭐야!’

손은서 병장은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두 눈으로 확실하게 체크했다.

그런데, 고작 수 초 사이에 검이 들려 있었다.

‘도망… 도망가야 하는데. 몸이 안 움직여.’

김민준이 당부했던 내용 중 하나.

검이 보이는 즉시 도망가라.

매뉴얼대로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무형의 기운이 몸을 억압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움직이기라도 했다가는 목이 날아갈 것 같은… 그런 직감이 강하게 들었기에.

“손은서. 팀원들과 합류해서 시민들 대피시켜.”

“티, 팀장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던 찰나, 어느새 김민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 알겠습니다!”

이 장소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

손은서 병장은 플랜 B를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김민준… 이게 얼마 만이지?”

어느새 둘만 남은 시내.

스코티아는 끈적한 눈빛으로 김민준의 몸을 훑었다.

“변태 새끼. 혼자 온 걸 보니까 독단적으로 움직였나 보네.”

“그렇지. 노바 제국 마법사들이 자구 좌표를 알아냈거든. 아주 유능하다니까.”

지구의 좌표를 알아냈다.

그 말에, 김민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예상보다 빠른데.’

드워프를 지구에 데려오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침략을 막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마법사, 기사, 성기사, 사제, 주술사 등등.

수많은 이세계인들이 연합해 몰려들면 7일은 버틸 수 있을까.

‘이 미친년이 혼자 이곳에 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네.’

이 상황은 오히려 기회였다.

저 까다로운 놈이 단신으로 넘어왔으니까.

만약, 고대 마족 루나와 스코티아가 함께 지구로 왔더라면….

장담하건대, 어느 곳이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주위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싸우는 건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뭐. 내 모가지 따러 왔냐? 한판 해 봐?”

“아하하하! 그런 시원한 성격이 마음에 든다니까!”

스코티아는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내가 굳이 너랑 싸워 줄 필요가 있을까? 보니까 힘을 상당 부분 되찾은 거 같은데.”

그녀가 오른팔을 들어 허공을 벴다.

아주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검붉은 검기가 방출되었다.

“일단 네 힘을 좀 빼 놔야 공평해질 것 같은데?”

쉬이익!

검기가 날아가는 방향은 2층의 카페.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남아 있는 장소였다.

김민준은 몸을 날려 검기를 받아 냈다.

팔이 베이며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역시. 저 엿 같은 능력은 그대로네.’

피를 털어 내며,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자신은 과거에 비해 높은 신체 능력을 갖췄고, 마기 역시 상당 부분 되찾았다.

현재로서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 몬스터는 거의 없다.

하나, 스코티아가 가진 특수한 스킬은 예외였다.

‘차원참.’

말 그대로 공간을 넘어 차원을 베어 버리는 스킬.

튼튼한 피부든, 쉽사리 뚫지 못하는 배리어든 저 스킬에 대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유일한 방법은 회피뿐.

“이거 그대로 싸웠으면 졌겠는데? 피부 질긴 거 봐! 오래 즐길 수 있겠는걸?”

스코티아는 김민준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차원참의 유일한 단점은 위력이 약하다는 것.

물론 약하다고 해도, 웬만한 인간의 몸은 두 동강 낼 수 있다.

한데, 김민준의 팔에 고작 얕은 상처를 내는 게 전부일 줄이야.

“가진 힘을 대부분 포기하면서까지 지구로 귀환해? 그게 저 정도라고? 아이작이 알면 놀라 자빠지겠는데?”

김민준은 성녀의 표식을 받아 힘을 얻게 된 특수한 케이스다.

억지로 표식을 지우면서 지구로 갔으니, 힘에 대한 페널티는 확실한 상태.

‘흐음. 그렇다면 지구에서 힘을 키웠다는 건데.’

고대 마족의 세포를 이식한 오른팔이 있는 지금,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김민준.

놈의 몸 안에 진한 마기가 잔뜩 자리 잡고 있는 것을.

‘과연. 이래서 아이작이 김민준을 극도로 경계한 거네.’

지구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아주 미미했다.

티끌을 아무리 모아 봤자 티끌이다.

이런 불모지에서 흑마법사의 힘을 되찾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눈앞의 인간은 그걸 보란 듯이 해냈다.

“힘이 많으면 뭐. 줄이면 그만이지.”

스코티아는 인간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마다 차원참을 날렸다.

김민준과 수차례 전투를 해 봤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약점도 알고 있는 상태.

주륵.

“그래. 그게 네 약점이라고.”

몸에 상처가 늘어 가는 그를 보며, 히죽 웃었다.

인간들을 보호하는 것.

그것이 놈의 약점이었다.

“이스가르드에서 심심할 때마다 인간들을 베었거든. 그중에 흑마법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를 자극하기 위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분노로 이성을 잃을수록, 자신에게 유리해졌으니.

‘넌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김민준은 냉정함을 유지하며 기회가 생기길 기다렸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만 다 내보내면, 마음껏 날뛸 수 있었으니.

‘역시 절망의 세계는 안 통한다 이거지.’

사실 놈과 얼굴을 맞대자마자 스킬을 사용했었다.

저 고대 마족의 팔 때문인지, 스킬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저 미친년한테 휘둘릴 필요는 없다. 우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야지.’

이스가르드의 흑마법사들을 학살했다는 저 발언.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이다.

설령 저 말이 진짜라고 한들, 이성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

쉬익! 쉬익!

김민준은 묵묵히 시민들에게 쇄도하는 검기를 받아 냈다.

“뭐야. 벌써 저 멀리 도망갔어? 평화에 찌든 지구인들치고 빠른데?”

스코티아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등 뒤로 허공을 베었다.

차원 이동을 통해 다른 장소로 향한 뒤, 방금 했던 작업을 반복할 생각이었다.

‘강한 상대는 철저하게 약점을 공략해야지. 아. 저 찢어 죽여 버릴 것 같은 표정. 볼수록 흥분된다니까.’

마족의 팔로 인해 잃어버린 스킬도 많지만, 얻은 스킬도 많다.

특히 차원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차원 이동은 꽤 유용한 스킬이었다.

씨익 웃으며 차원 이동을 하려는 찰나,

“누구 맘대로 움직이냐.”

“응?”

눈앞에 나타난 김민준 때문에, 스킬을 발동하지 못했다.

어느새 검을 든 채로, 자신의 목을 꿰뚫으려 했으니.

“방금 뭐지? 블링크? 새로운 스킬을 얻은 거야?”

“엿이나 처먹어라.”

스코티아는 내심 놀라며 공방을 이어 나갔다.

아무리 빠르다 한들, 극한의 동체 시력을 가진 자신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나의 움직임도 없었는데… 흑마법사가 마나를 사용할 수 있을 리도 없고.’

그래봤자 잠깐 놀랐을 뿐.

검에 관해서는 아무리 놈이라 한들, 자신을 이길 수 없다.

공방이 길어질수록, 김민준이 밀리는 구도가 나왔다.

“나를 놀리는 거냐? 아니면 나약한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는 거냐?”

팔이 베이고.

다리가 베이고.

옆구리가 꿰뚫려도, 김민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코티아를 붙들었다.

‘몸이 이렇게 튼튼하다고? 이거 흑마법사 맞나?’

스코티아는 이쯤되니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아, 놈을 떼어 내려 했다.

하나, 김민준의 무식한 힘과 맷집 때문에 좀처럼 쉽지 않았다.

“넌 이미 묶여 있다.”

이제는 아예 채찍을 써서 팔 한쪽을 옭아매고 있다.

“역시 넌 정신이 나갔다니까. 이 팔이 어떤 팔인지 알기나 해?”

“고대 마족의 팔이겠지 뭐. 딱 보면 알겠는데.”

김민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데미지는 꽤 축적된 상태.

‘아직 버틸 만하다.’

마족의 팔을 달고 휘둘러 대는 검이라 그런지, 과거에 비해 맵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이제 슬슬 신호가 올 텐데.’

주위 수 킬로미터 반경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

스코티아를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언제까지 맞고만 있을거냐? 넌 예전에도 날 죽일 기회가 있었어. 그런데도 동료를 살리기 위해 날 보내 줬지. 나한텐 그게 굴욕이었어. 알아?”

공격이 매서워졌지만, 김민준은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삐이이이이.

“야. 이게 무슨 신호인지 알겠냐?”

그 뒤로 10분쯤 지났을까.

상공에서 사이렌 신호가 울려 퍼졌다.

저 신호는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마음껏 날뛰어도 된다는 뜻.

“네 맷집이 센지, 내 맷집이 센지 한번 보자고.”

김민준은 씨익 웃으며, 목 부근을 툭툭 두드렸다.

화아아!

그러자, 목 언저리가 빛나며 검이 나타났다.

“…저건?”

그냥 검도 아닌, 아다만티움을 무식하게 때려 넣은 거대한 검.

평범한 헌터는 드는 것조차 불가능한 검.

거인의 손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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